지옥변 세계문학의 숲 1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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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내가 본 책을 읽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전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와 마찬가지로 이 <지옥변>이라는 책도 강렬한 표지 때문에 읽게 되었다. 표지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어두운 곳에 각각 자리 잡고 있는데, 몸은 보이지만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서 아예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섬뜩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동시에 나는 이 표지를 보면서 '전형적인 일본 가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 1900년대 일본의 가정의 심상(心象)을 그대로 이미지화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즉, 어둠에 묻힌 숨 막히는 분위기, 몸짓은 보이지만 정작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다는 점들은 겉으로는 예의와 친절을 보이는 그들이지만 진정한 그 속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는, 당시 일본의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에서 주인공 '이치로'가 아내를 비롯해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이제 저자 소개를 해야 할 때이다. 본 책의 저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 1892년 3월 1일 ~ 1927년 7월 24일)'는 스승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게이오 3년(1867년) 1월 11일 ~ 다이쇼 5년(1916년) 1월 9일)'와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품에서 일찍이 벗어나 어렸을 때부터 외가에서 자라났다. 문학적인 가풍이 남달랐던 외가였기에 아쿠타가와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아쿠타가와네 외가가 얼마나 문학적으로 관대했는지 알 수 있는 게,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저 때 당시에도 자식들이 문학의 길(작가의 길)을 걸어간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뜯어서라도 말리는 것이 보통인데, 아쿠타가와네 외가는 그가 문학의 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순순히 허락해 줬다고 한다. 그만큼 아쿠타가와네 외가는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그 진가를 알아볼 줄 알았던 집안이었던 거다. 아무튼, 영문과를 진학하고 성인이 된 아쿠타가와는 해군 학교 선생이 되지만 대학시절의 문학잡지를 만든 경험을 살려 틈틈이 자신의 단편소설을 써서 기고하기도 하는 등 문학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지옥변>은 그의 유명 단편소설과 산문글 등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정말 훌륭하다. 앞서 아쿠타가와는 외가의 영향으로 문학이며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러한 분위기를 적잖이 느낄 수 있다. 뭐랄까, 예술적이지만 동시에 절제되어 있고, 유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강렬한 심상이 느껴진달까. 괴랄한 줄거리가 한편으론 무시무시해도 전체적으로 과함이 없고 인간 심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기다 대체적으로 작품의 배경이 '헤이안 시대'를 비롯해 머나먼 과거라 사극적 요소와 함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극과 결합된 공포물보다 더 괴기스럽고 신비한 건 없으니 말이다.


<지옥변>에 수록된 수많은 단편들 중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첫째로 <라쇼몬>이었다. 아쿠타가와의 대표작이자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실제론 이야기가 매우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든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과거 헤이안 시대에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하인으로 나옴)이 비를 피하기 위해 라쇼몬(초소 비슷한 곳)에 잠시 머물다가 그곳 2층에서 시신의 머리카락의 뽑는 노파를 만나게 된다. 참고로 저 때 당시엔 워낙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던지라 사람들이 시체를 몰래 라쇼몬에 버리곤 했다고 한다. 암튼, 주인공은 처음엔 정의감으로 노파를 덮쳐 저지하지만 노파가 자기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팔려는 거라고 변명하자 순간 주인공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 정의감이 아닌 '자기 정당성'이라는 괴물이 말이다. 그리곤 주인공은 되려 노파의 옷을 뺏으며 '나도 마침 먹고 살 거리가 없어졌거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노파 말대로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말한 뒤 유유히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앞서 말한 대로 짧지만 점차 흑화(?)해 가는 주인공의 심정을 통해 인간의 자기 정당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시대는 과거 헤이안 시대지만 어쩌면 아쿠타가와는 이 작품을 통해 점차 인간성을 잃고 개인주의가 만연해가는 일본의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두 번째로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옥변>이다. 여기서 '지옥변'이란 불교에서 묘사하는 지옥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헤이안 시대 지체 높은 '호리카와 나리'의 후원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던 괴팍한 화가 '요시히데'가 주인의 요청대로 지옥변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벌어지는 온갖 기괴한 일들을 다룬 작품인 <지옥변>은 저자 아쿠타가와의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괴기스러움은 물론이고 일본 특유의 미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인데, 특히 요시히데가 지옥변을 그리기 위해 제자들을 상대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실제로 재현해 보게 한다든지(ex. 사슬 묶기 ㄷㄷ)하는 장면들은 열정을 떠나 섬뜩하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때 요시히데가 생생함을 살리고자 호리카와 나리에게 '우차(소가 끄는 마차)가 불타는 모습'을 직접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호리카와 나리가 진짜 우차를 가져와 불태우는데, 여기서 소름인 건 그 우차 안에 요시히데의 딸을 넣고 불을 질렀다는 거다! 그것도 산 채로!!(이유는 스포)

그런데 더더욱 소름인 것은 자기 딸이 산 채로 타 죽는데 요시히데는 처음엔 놀라다가 이내 황홀한 모습으로 이를 감상한다는 것이다.... 기괴함의 극치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일본 소설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왠지 모르게 호기심과 오묘함을 느끼게 하는 감정을 말이다. 그리고 작중 요시히데가 딸까지 희생하면서 만든 지옥변이라는 그림이 결국엔 이 세상엔 둘 도 없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란 현실에서 허용할 수 없는 행위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즉 현실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 작품의 의도는 저자인 아쿠타가와의 예술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밀감>이라는 작품이다. 처음엔 밀감이 뭔지 싶었지만 알고 보니 '밀감 = 귤'이었다.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화자인 '나'는 어느 흐린 겨울날 웬지 모를 짜증스러운 심정으로 기차에 올라탄다. 그런데 얼마 후 그런 주인공 앞에 꾀죄죄한 차림새의 여자애가 앉는다. 딱 봐도 시골애 같은 그 소녀는 보따리를 꽉 쥐고 있었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주인공은 여자애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찝찝해 한다.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왜 옆에 있는 건지! 그러다 주인공은 깜빡 잠에 들다가 문득 기척을 느껴 일어난다. 알고 보니 그 시골 여자애가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여는 게 아닌가. 주인공은 화를 내려다가 소녀가 바라보는 차창 밖을 보게 된다. 마침 기차는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고 저 멀리서 웬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당시 기차는 느렸음). 그러자 기차 안, 주인공 옆에 있던 시골 여자애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보따리의 밀감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 저 아이들은 소녀의 동생들일지도 모른다. 순간 주인공은 알 수 없는 흐뭇함을 느낀다. 그는 비록 꾀죄죄해 보여도 동생들을 위해 먼 타지로 일하러 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일종의 연민과 함께 가족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민과 사랑은 악에 받쳤던 주인공의 맘을 풀게 만든다.

어쩌면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생활의 권태와 짜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에 대한 감동과 사랑에서 온다는 걸 알려주고자 한 게 아닐까. 아니면 주인공처럼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인 자신과 달리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처지와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쓴 게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파>라는 작품 역시 인상 깊었다.

어느 가게의 여급인 '오기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예술적인 삶을 꿈꾸지만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현실적인 삶을 걱정하고야 마는 모순적인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오기미는 아름다운 외모에 취미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등 센티멘털한 성격을 가진 아가씨이다. 어느 날 그녀는 모던 보이로 유명한 '다나카 씨'와 데이트에 나서게 되는데 데이트 도중에 길가 야채 상점에서 파가 말도 안 되게 싼값으로 팔리는 걸 보게 된다. 이에 다나카 씨와 아름다운 데이트만을 생각했던 오기미는 지금까지의 아름다운 감상은 잊어버리고 곧장 현실적인 삶을 걱정하며 파를 산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와 설레는 첫 데이트 도중에 바겐세일하는 마트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저녁 찬거리를 사는 모습을!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앞서 <밀감>에서도 그랬듯이, 이 작품 역시 저자인 아쿠타가와가 자신의 예술관과 문학인이라는 처지가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쿠타가와의 초반부 단편소설들은 기괴함과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반영했다면 후반부의 산문 비슷한 작품들은 작가의 현실적인 처지와 당대 일본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장르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 심상(心象)에 대한 솔직한 묘사와 저자인 아쿠타가와의 예술관 및 심리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으스스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후반부의 <톱니바퀴>와 <갓파 이야기>들은 아쿠타가와의 심리상태가 많이 들어가 있어 말년의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아쿠타가와는 1927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정신질환을 겪은 어머니처럼 자기도 언젠가 정신질환을 겪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실제로 <톱니바퀴>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운 심리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또 당시 일본의 문학적 풍조가 <사회적 현실을 주로 묘사하는) 사회주의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예술을 중시했던 아쿠타가와의 문학풍이 위기를 맞이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예술을 중시했던 동시대의 다른 작가 작품들에 비하면 훨씬 점잖은 편이다. 무조건적인 탐미주의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띠고 예술을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방향으로 문학풍이 흐르자 그 사회주의 역시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아쿠타가와이다(앞선 <밀감>이나 <파> 역시 그런 의미에서 썼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나는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잔잔한 슬픔이 느껴진다. 일찍 죽은 게 아까운 작가 중 한 명이라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노파의 말을 듣다 보니 사내의 마음에 어떤 용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아까 라쇼몬 아래에서 한없이 망설이던 때에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던 용기였다. 또한 아까 이 누각에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 용기였다. 사내는 굶어죽느냐 도적 놈이 되느냐에 대한 망설임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이 사내의 마음속에서 굶어죽는다는 따위의 선택은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처럼 의식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 P15

연기에 숨이 막혀 뒤로 젖힌 그 하얀 얼굴, 불길을 떨쳐내려고 마구 흐트러뜨린 기다란 머리채, 그리고 순식간에 불로 변해가는 벚꽃 당의의 그 아름다움..... 참으로 얼마나 참혹한 광경이었는지요. 특히 밤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가면서 연기가 건너편으로 납작 누웠을 때, 붉은색 위의 금가루를 흩뿌린 듯한 붉길 속에 뚜렷하게 드러났던 아가씨의 모습, 입을 틀어막은 수건을 깨물며 몸을 묶은 쇠사슬이 끊어져라 몸부림치던 그 모습은 지옥의 업고를 고스란히 우리 눈앞에 재현한 것만 같아서 저를 비롯하여 그 힘세다는 사무라이까지도 저절로 몸서리를 쳤습니다.

내 마음에는 안타까울 만큼 또렷이 이 광경이 낙인 되어 찍혔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랑한 기분이 솟구치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당당히 고개를 들어 마치 딴사람을 보듯이 그 소녀를 주시했다. 소녀는 어느새 내 앞에 자리로 돌아와 변함없이 온통 튼 뺨을 연둣빛 털실 목도리에 묻고, 큼직한 보퉁이를 꺼안은 손에는 삼등칸 기차표를 꼬옥 쥐고 있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또한 불가해하고 하등한, 따분한 인생을 문득 잊을 수 있었다.

이 저렴한 가격의 팻말을 보자마자 지금까지 연애와 예술에 취해 있던 오기미 씨의 행복한 마음속에 잠복한 실생활이 갑작스럽게 그 게으른 잠에서 깨어났다. 간발의 틈도 없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장미꽃과 반지와 나이팅게일과 미쓰코시 백화점의 깃발 따위는 한순간에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월급, 쌀값, 전기세, 석탄값, 반찬값, 간장 값, 신문값, 화장품 값, 전차값, 그 밖에 온갖 생활비가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과 함께 흡사 불나방이 불에 모여들듯이 오기미 씨의 작은 가슴속으로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광범위한 사회적 전망이나 다양한 인생, 심각한 생활의 투쟁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상하다고 할 만큼 다독가였던 그는 인생을 서적을 통해 탐구하고 작품의 소재를 고전에서 따오는 전형적인 서재인이었다.
또한 순수한 도쿄 내기로서 일본 전래의 취미, 세련된 감각, 예술에 대한 특별하고도 예리한 감수성, 인간관계에 세심한 배려를 보이는 도회인이었다. 특히 다른 동시대의 작가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초현실과 신비, 괴기한 이야기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였다.

그 살림살이가 상징하듯이 하루하루 살아나가기 고달픈 도쿄의 실생활은 오늘날까지 오기미 씨에게 얼마나 큰 박해를 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막한 인생도 눈물에 젖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오기미 씨는 그 실생활의 박해에서 달아나기 위해 예술적 감격의 눈물 속에 몸을 감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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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의 기원 - 패권 경쟁의 격화와 제국체제의 해체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612
박상섭 지음 / 아카넷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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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세계대전은 역사적으로 국가의 거의 모든 자원과 국민들을 동원한 총력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하지만 최초의 총력전이었다는 특징 이외에도 제 1차 세계대전만이 갖는 독특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어떻게 해서 이 전쟁이 발발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그때 당시 막 불타올랐던 민족주의 열풍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어째서 저 멀리 있던 발칸 반도에서 일어났던 분쟁이 유럽 전체를 전쟁의 물결로 휩쓸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까지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나 또한 이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관련된 책이 어디 없나 살펴보던 중에 본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학술 총서'라는 점에서 뭔가 딱딱해 보일 것 같았지만 그만큼 자료나 원문 조사가 풍부할 것이라 생각해 고민 끝에 결국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어 본 결과 1차 세계대전이 단순히 민족주의의 열풍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족주의는 그 수많은 발발 원인 중 하나였을 뿐이었으며, 1차 세계대전은 아주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발생한 전쟁이었다. 특히 각 국가들의 외교적 노력과 그 노력들이 오해를 쌓고, 또 그 오해가 진실이 되어 마침내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일이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을 이루고 산업의 발전을 겪으며 식민 지배의 필요성과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영국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이것이 해군 경쟁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났으며, 이후 이 경쟁에서 좌절한 독일이 이번엔 세계가 아닌 유럽 내에서 주도권을 자리잡기 위해 영국의 중립성을 강력히 요구했다는 점은 단순히 두 국가가 서로 힘으로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이러한 경쟁을 일으켰다는 일차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국가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여러 국가들이 인접해 있던 유럽의 정치적 상황에서 힘의 균형을 위해 경쟁했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다소 위협적이고 비뚤어진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무조건적인 공격 자세보다는 각국 나름대로 최소한의 피해를 보기 위해 민간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 노력에도 힘썼다는 점,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전쟁이 유럽 전체에 퍼져 장기전으로 될 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 등등은 누군가 혹은 어떤 국가에 의해 이 전쟁이 철저히 계획된 것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깨뜨렸다.


이렇듯 본 책은 1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대해 단순히 군사적 갈등으로만 얘기하지 않고 각 국가들의 사정과 외교적 현실에 기대어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특히 나라 간의 동맹과 이해관계가 국제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그리고 외교에 있어서 공격적인 자세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오늘날 21세기의 정치적, 외교적 상황에서도 대입해 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과거 영국과 독일이 세계패권을 두고 경쟁했다는 건 오늘날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쟁을 연상시키고, 민족 문제로 신경전을 벌였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은 이민자와 난민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만약 우리가 1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그저 군사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그 기원과 외교적, 정치적 원인에 대해선 등한시한다면 또다시 1차 세계대전보다 더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함으로써 독일은 통일국가로 새로운 정치적 삶을 시작했다. 독일의 이러한 지위 상승은 당연히 기존 국제 사회의 역학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기존 정치 질서에 익숙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독일의 정치적 상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 P23

비스마르크는 대단히 힘들여 만들어놓은 국제적 안정을 위해 독일의 대외적 팽창 정책을 억제하였는데,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독일 산업의 해외 진출 욕구는 더 이상 정치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P26

서유럽을 향한 보수성은 독일의 정치적 절제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였지만 동유럽에서의 보수성은 민족주의의 억압과 이민족 정치적 탄압을 위한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의 유지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 P28

실제 독일의 해군 증강 작업은 다른 국가들의 해군 증강 작업을 자극함으로써 세계적 규모의 해군 경쟁이 일어나게 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외교 교섭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영국을 공격하는 것보다 독일에 대한 영국의 공격을 어렵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비 증강이 바로 무력행사로 이어질 것을 상정하기보다는 직접 싸우지 않고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즉 위협 외교 또는 공갈 외교의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흔했다. - P48

그러나 해군 경쟁 과정에서 고조된 양국 간의 적대감, 특히 여론의 악화는 1차 대전이 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특히 영국이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대륙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로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해군 경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P83

전쟁이 단기전이 되어야만 한다는 절박감, 사실 단기전에 대한 기대는 육군만이 아니고 민간인, 외교관, 금융가, 산업가 등이 모두 공유하던 기본 가정이었다. 왜냐하면 장기전을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또한 군사적으로는 파국적이었기 때문이다. - P98

이중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체제 안에서 자치권을 누리던 헝가리의 영토 안에는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 같은 남슬라브계 소수민족과 루마니아인들의 많이 거주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헝가리의 차별 정책은 대단히 가혹하여 인접한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와는 첨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민족 국가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의 국내 정치는 바로 국제 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 P108

러시아가 타협적 자세를 취하게 된 데에는 독일의 외교적, 군사적 압박이 크게 작용했는데, 당시 독일의 태도에도 많은 비판이 따랐다. 즉, 퇴각하는 적에게는 타협의 여지를 주어 굴욕감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외교가의 전통이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요구에 러시아의 무조건적인 수락을 강요한 독일의 위협적인 자세는 그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러시아는 보스니아 위기를 통해 앞으로 비슷한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보강하고 영국 및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해야만 한다는 절실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 P122

보스니아 위기 사태에서 외교적 승리를 거둔 것은 분명히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이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장기적으로는 더 큰 패배와 희생의 밑돌이 되었다. 이들의 강압외교는 러시아는 물론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에 실망감과 불만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외교적 고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 P123

독일은 자국의 필요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러시아를 견제해 주기를 바랐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공격하는 동안 독일군이 러시아 군을 견제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1차 대전 개전 직후 동부 전선에서의 초기의 혼란을 야기한 주된 원인이 되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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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유재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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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윤리'라고 한다면 그것이 곧 철학 그 자체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즉, 윤리학은 기타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실천보다는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개념을 배우고 익히는 지성적 측면에서의 학문인 줄 알았던 것이다. 또한 윤리는 도덕과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과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확 변화시키게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전의 선배 철학자들과 달리 저 멀리 '이데아' 같은 또다른 절대적 이상을 좇은 것이 아닌, 현실 세계를 중요시한 철학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저작들 중에서 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말 그대로 윤리학에 대해 다룬 책이다. 본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를 지식의 범주에 넣었지만 일반적인 지성으로서의 학문보다는 '실천적 학문'으로서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윤리는 하나의 성품(성격)과 관련된 것으로서, 우연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한 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를 어떤 천부적인 능력이나 우연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 후천적인 특징이라 본 것이다. 천성이나 원래 성격으로서 윤리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이 늘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않듯이, 우연적으로 획득한 윤리적 성격도 꾸준한 습관 없이는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윤리학이 실천과 가깝다는 것, 그리고 윤리와 덕이 어떤 조건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당사자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거기에 더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윤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에 대한 기준 역시 인상깊었다. 그가 생각한 윤리적인 사람이란 단순히 '착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따라 이성적으로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윤리적으로 탁월한 인간은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기보다는 이 감정들을 이성적으로 똑바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말이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그 감정에 대해 자신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말로 윤리적인 사람인 것이다.

물론 감정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야 말로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욕망을 제어할 수 있고, 그 욕망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 목적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감정을 비롯한 동물적 욕망을 이성적으로 숙고할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사람이라고 볼 만 하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숙고의 과정에서 '중용'을 얘기한다. 여기서 '중용'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중간을 택하라는 의미에서 중용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은 기독교처럼 어떤 절대적 선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서 선택하는 중용에 가깝다. 한 마디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중간의 선택을 하라는 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인 삶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고, 이것이 곧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능력은 욕망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성적, 합리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란 끊임없는 자기수행과 자기개발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덕이란 우리의 노력과 습관에 달려있다는 점은 오늘날 자기 성격은 원래 이렇다느니, 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다느니와 같이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나 우연적인 천성을 빌미로 윤리적, 도덕적 판단에서 벗어나려는 범법자나 이를 면제해주려는 일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따름이다. 


참고로 이 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요약하고 정리한 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보다 쉽게 알고 싶거나 입문용으로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 책을 적극 추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적 학문, 실천적 학문, 제작에 관한 학문 중에서 윤리학은 정치학과 함께 실천적 학문에 속한다. - P31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니라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 ‘훌륭한 성품을 갖춘‘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이다. - P32

덕이란 특정 상황 속에서 항상 ‘일정하게‘ 반응하는 성향이나 태도다. 살아가다 만나는 갖가지 상황에 잘 대응한다는 것은 해당 상황에서 발휘해야 마땅한 덕을 갖춘 것이다. 윤리적인 인간은 ‘감정‘이나 ‘욕구‘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 무감각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솟아나는 이 감정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 P40

인간으로서, 인간인 한에서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정의‘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 P84

행복은 객관적인 활동이자 성과다. 행복은 만족감, 기쁨, 즐거움, 혹은 신이 주는 복된 삶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이자 ‘성과‘이다. - P90

외적 좋음(잘생긴 외모, 부자 등등)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외적 좋음이 갖춰지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하기가 불가능하지 않다. 행복의 본질적인 것은 물론 영혼의 좋음으로서의 덕이지 외적 좋음은 아니다. - P100

덕을 발휘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행복은 운이 좋았던 한 번의 기회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덕을 발휘하려는 꾸준한 노력으로 달성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연이 개입된 한두 번의 행운이 삶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 P100

인간만이 실천이성을 발휘하여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 이렇게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생겨나는 감정은 어쩔 수 없어도, 감정에 대한 ‘태도‘만큼은 행위의 주체가 어떻게 할 수 있다. - P112

성격적 덕은 ‘중용과 관련된 성품(태도)‘이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감정이 생겼느냐가 아니라, 감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선택과 행위에 뒤따르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적 덕이 어떠한지를 판단 할 수 있다. - P115

탁월한 인간은 자부심, 수치심, 분함이나 억울함 등 자신의 모든 감정들에 올바르게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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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0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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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종교적 권위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우울한 프랑스의 현실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 주인공인 신부도 마찬가지로 병들고 유약하다. 그러나 그 유약한 신부가 자신의 일기를 통해 권태와 일상적인 삶에 파묻힌 사람들의 영혼을 되돌아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다소 지루해도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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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킨 이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0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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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고 표지도 흥미를 끌어서 무심결에 구매해서 읽은 책이다. 탐미주의적이라는 평가 답게 작품은 일본 전통적인 미(아름다움)와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장르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닥 인상깊지 않았다. (단, ‘갈대 베는 남자‘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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