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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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비록 그때는 아주 어렸을 때라 자세한 사정 같은 건 모르고 그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미친 듯한 사랑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절절한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봄으로써 새로운 인상을 받았기에 이번엔 <폭풍의 언덕>도 재독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달 전에도 다시 읽긴 했으나,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집중해서 읽지 못해 흐지부지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다시 한번 읽어 본 <폭풍의 언덕>은 마찬가지로 새로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중에서도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되었다. 흔히 이 둘의 사랑을 '광적인 사랑', '비정상적인 사랑', 아니면 제목에 걸맞은 '폭풍 같은 사랑'이라고들 말한다. 맞다. 지금 봐도 이들의 사랑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미친 듯이 갈망하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 환상을 심어주는 여느 로맨스 소설과 확연히 다른 것이 바로 이 <폭풍의 언덕>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 본 내게 있어 이 소설은, 아니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는 위와 같이 미친 사랑으로서 끝나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두 사람의 사랑은 환상을 떠나 '자기애적인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적인 사랑'은 다른 말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뜻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해 극단적으로 서로 하나 됨을 추구하는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하더라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 자신을 상대방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그렇게 생각한다. 작중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생각할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바로 '나는 나, 너도 나!'이다. 즉, 나도 나지만 상대방 또한 나와 같을 거라는 식의 뉘앙스이다(무엇보다 작중에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대화에는 항상 '나'라는 단어가 나오며, 이탤릭 체로 강조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린턴을 대할 때가 그렇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모두 우아하고 고상한 삶을 살아가는, 당시 평범한 사람에 해당하는 린턴에게 '네가 과연 우리의 정신을 당해낼 수 있을까?'라며 그는 자기네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주 비웃는다. 그리고 사랑에서도 린턴은 자기가 캐서린/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할 줄 모를 거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두 사람은 자기들의 관계에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똑같은 생각과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도 이해 못 할 자기에 대한 끌림을 느끼고 있음을(우리는 하나)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관계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만 쏠려 있다며 이기적이고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지만, 이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함정에 빠진 꼴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자기애란 곧 상대방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캐서린=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캐서린>과 같은 구조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애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또다른 표현이다. 물론 위와 같은 구조는 정상이 아니며, 이로 인해 결국 둘의 사랑이 파국에 치닫게 되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결과를 떠나 꽤나 정상적이라고 생각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두 사람은 왜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

왜 작가는 이러한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왜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제인 에어>의 작가가 에밀리의 언니인 '샬럿 브론테'이다) 충분히 정상적인 로맨스 소설을 지을 수 있었음에도 폭풍같이 격렬하고 자기들만의 세상과 자기애를 고집하는, 그런 독특한 로맨스 소설을 만들었을까?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가 어쩌면 로맨스 소설이라는 틀을 깨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을 관철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폭풍의 언덕>은 로맨스 소설 쪽으로 분류되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게 로맨스 소설답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이기적이고 파멸적인 사랑의 태도에서는 '로맨스'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자기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고려하는 예의 바른 모습 따윈 전혀 없어 실망을 금치 못하게 된다.

여기서 1차로 로맨스 소설적 환상이 깨진다.

한쪽이 고개를 숙이는 일 없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동일한 감정'에 호소하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이, 결투를 벌이듯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는 한번쯤  이렇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온갖 학대와 거친 환경에서 자라온 히스클리프와, 제멋대로이고 자기중심적인 캐서린이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또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요즘 로맨스 판타지물이라고 해서 웹툰이나 웹소설 등등에서 자주 보이는 설정이 있다. 바로 '폭군 길들이기'와 같은 식의 설정이다. 잔인하고 폭정을 일삼는 폭군이 우연히 성실한 여주와 만나 갱생한다는 설정인데, 이때 사랑에 빠진 남주는 다른 사람에겐 거칠게 대하더라도 여주에게만큼은 친절하게 대한다. 여기서 감정을 이입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한테만 예외로 다정하다는 것에 대한 로맨스 적 쾌감을 느끼며 남주를 오직 자기만이 다룰 수 있다는 특별함에 열광한다. 그런데 <폭풍의 언덕>에서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사랑을 함으로써 갱생은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원칙에서 상대방을 제외하는 법이 없다. 특히 히스클리프 같은 경우 캐서린이 해당 가문에 속해있음에도 언쇼 가문과 린턴 가문에 복수를 멈추지 않고 그들 모두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캐서린의 정신에 혼란을 줘서 결국엔 병에 걸리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당연히 히스클리프는 이런 것에 1도 상관하지 않고 오직 캐서린만을 바란다 ㄷㄷ).


그중에서 직접적으로 로맨스 소설의 환상을 산산이 깨는 부분은 작중에 히스클리프가 이사벨라에 대해 말할 때이다. 이사벨라는 린턴의 여동생으로, 로맨스 작인 환상에 빠져 히스클리프가 사실은 다정하며 자기한테만큼은 친절할 것이라 생각해 가문과 의절한 뒤 히스클리프와 야반도주를 한다.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야반도주를 성공한 뒤(여기에 모종의 음모가 있음), 오히려 이사벨라를 아래와 같이 통렬히 비웃는다. 


착각에 빠졌던 탓이야. 나를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상상하고, 내가 기사도를 발휘해 무한히 헌신해주기를 기대했던 거야. 나로서는 저 여자를 이성적인 인간으로 보기가 어려워. 저 여자는 지금까지 계속 나라는 존재에 대해 소설 같은 상상을 펼치면서, 애초에 자기가 품었던 잘못된 인상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뒤이어 '자기만 잘 대해줄 것이다'라는 바람에서 그녀야말로 잔인한 여자라고 덧붙인다. 즉, 자기만 괜찮으면 폭군인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든 말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는 <제인 에어>에 등장한 로체스터를 대하는 제인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거친 남주에 대한 여성들의 모종의 기대, 그리고 당대의 흔한 로맨스 소설의 환상을 깨는 작용을 한다. 현실에선 폭력적이고 거친 상대는 말 그대로 '그런 사람'일 뿐, 자기만 예외일 거라는 상상, 그리고 그 사람을 갱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렇듯 로맨스 소설의 환상을 깨는 <폭풍의 언덕>의 또 다른 특징으론 저자인 에밀리 브론테의 세계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에밀리는 다른 언니들과 달리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했다고 한다. 학교에 다니고 가정교사 일을 하며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했던 언니 샬럿이었지만 에밀리는 밖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폭풍의 휘몰아치고 자연이 살아있던 고향의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작품인 <폭풍의 언덕>에서 그대로 살아나 문명적인 인간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거칠고 야성적인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또한 로맨스 적 환상을 깨려는 시도를 통해 언니가 쓴 <제인 에어>와 다른 차별성을 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폭풍의 언덕>은 영미 문학계에서 '3대 비극' 중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며, 뛰어난 문학성에 비해 과소평가 되었다고들 하지만 몇몇 사람들 사이에선 로맨스 적 관점에서도 물론이고 구성면에서도 왜 그렇게까지 극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학은 어떠한 장르에 정확히 속해있거나 누구의 입맛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의미 또한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그 진가를 제대로 알아볼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폭풍의 언덕>도 위와 같은 편견에서 벗어나 읽어보는 게 어떨까? 아무리 해도 정 이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자 예의라고 본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하나의 자기애적인 사랑임과 동시에 한 번 돌풍을 일으키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라지는 폭풍과 같다는 것이 이번에 새롭게 읽은 것에 대한 내 결론이다. 


(참고로, 번역에 있어서 문학동네 판도 나쁘지 않았다. 조지프를 비롯해 일부가 사투리를 쓰고 번역체가 너무 거칠어서 싫다고 하는데, 작품 특성상 거친 욕과 사투리가 있는 게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아 좋았다)

인간이란 바람 부는 대로 돌아가는 풍향계 같은 존재로다! 세상과 교제를 끊고 살겠다고 작정한 나였는데, 결국 교제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곳을 발견하고 내 행운에 감사한 나였는데, 나도 참 가련한 놈이라. - P54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틀림없는 적이 아닐 경우에는 모두 친구라고 생각하면 정말 좋을 거야. 불량한 똥개 같은 표정 하지 마. 발길질을 당한 개가 자기 같은 놈은 얻어맞아 싸다는 듯 행동하면서도 실은 발길질한 사람뿐 아니라 온 세상을 증오하는 표정이잖아. - P92

"너는 벌써 캐서린을 속상하게 했어"
"속상하대?" 히스클리프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저어, 나는 어젯밤에 울었는걸" 그 아이가 응수했습니다.
"울 이유는 내가 더 많아!" - P90

"여기! 또 여기!" 캐서린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한 손으로는 자신의 이마를,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쳤습니다. "영혼이 있는 데서, 영혼인지 심장인지에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어!"
"나는 천국에서 살면 너무 불행할 것 같아. 나는 세상으로 돌려보내 달라면서 정말로 서럽게 울었어. 천사들이 화가 나서 나를 집어 던졌는데, 떨어진 자리가 폭풍의 언덕 꼭대기의 히스 밭이었어. 나는 너무 행복해서 엉엉 울다 잠이 깼어" - P130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 P130

나랑 그 애를 뗴어놓겠다고 누가 그러는데? 내가 살아있는 한 은 안 돼. 누가 뭐라 해도 안 돼! 린턴 가문 사람들이 지상에서 몽땅 녹아 없어지든 말든, 나는 히스클리프랑 헤어질 수 없어. 그렇게는 못해! 그렇게는 안 해! 히스클리프랑 헤어져야 한다면 나는 린턴 부인 안 할 거야! 그 애는, 지금까지 내게 소중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 P132

자기를 넘어서는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고,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 내가 그냥 이런 몸뚱이일 뿐이라면, 내가 있는 게 무슨 소용이야? 내가 이 세상에서 겪은 가장 큰 고통은 히스클리프가 겪은 고통이야. 나는 그걸 처음부터 지켜보았고 그대로 느꼈어. 내 삶에서 가장 큰 슬픔이 그 애였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그 애만 있으면 나는 계속 존재하겠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라 해도 그 애가 죽는다면 온 세상이 완전히 낯선 곳이 되어버릴 거야. - P132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 눈에 뵈는 행복을 가져다부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 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이쓴ㄴ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하면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 P133

그 애가 정말로 나를 잊는다면, 내 앞날은 죽음과 지옥이라는 두 마디로 끝나. 그애 없는 삶은 지옥이야.
린턴같이 그렇게 하찮은 인간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여든 해를 사랑한다 해도, 내가 하루 사랑하는 것만 못하거든. 그리고 캐서린의 가슴 속은 나의 가슴 속만큼 깊은데, 그자가 그 애의 사랑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건 여물통이 바다를 담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나만큼 사랑할 만한 것이 그자에게는 없는데, 그 애가 어떻게 사랑할 게 없는 자를 사랑할 수 있겠어? - P237

착각에 빠졌던 탓이야. 나를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상상하고, 내가 기사도를 발휘해 무한히 헌신해주기를 기대했던 거야. 나로서는 저 여자를 이성적인 인간으로 보기가 어려워. 저 여자는 지금까지 계속 나라는 존재에 대해 소설 같은 상상을 펼치면서, 애초에 자기가 품었던 잘못된 인상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으니까.  - P239

나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거든. 그것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면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 해도 억지로 해야하고, 그것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면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무엇을 본다 해도 억지로 보아야 해.... 맙소사! 나도 참 오래 싸웠구나!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는데! - 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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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3-17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오네긴님 저도 비슷한 지점들 생각했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