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변 세계문학의 숲 1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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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내가 본 책을 읽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전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와 마찬가지로 이 <지옥변>이라는 책도 강렬한 표지 때문에 읽게 되었다. 표지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어두운 곳에 각각 자리 잡고 있는데, 몸은 보이지만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서 아예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섬뜩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동시에 나는 이 표지를 보면서 '전형적인 일본 가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 1900년대 일본의 가정의 심상(心象)을 그대로 이미지화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즉, 어둠에 묻힌 숨 막히는 분위기, 몸짓은 보이지만 정작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다는 점들은 겉으로는 예의와 친절을 보이는 그들이지만 진정한 그 속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는, 당시 일본의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에서 주인공 '이치로'가 아내를 비롯해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이제 저자 소개를 해야 할 때이다. 본 책의 저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 1892년 3월 1일 ~ 1927년 7월 24일)'는 스승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게이오 3년(1867년) 1월 11일 ~ 다이쇼 5년(1916년) 1월 9일)'와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품에서 일찍이 벗어나 어렸을 때부터 외가에서 자라났다. 문학적인 가풍이 남달랐던 외가였기에 아쿠타가와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아쿠타가와네 외가가 얼마나 문학적으로 관대했는지 알 수 있는 게,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저 때 당시에도 자식들이 문학의 길(작가의 길)을 걸어간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뜯어서라도 말리는 것이 보통인데, 아쿠타가와네 외가는 그가 문학의 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순순히 허락해 줬다고 한다. 그만큼 아쿠타가와네 외가는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그 진가를 알아볼 줄 알았던 집안이었던 거다. 아무튼, 영문과를 진학하고 성인이 된 아쿠타가와는 해군 학교 선생이 되지만 대학시절의 문학잡지를 만든 경험을 살려 틈틈이 자신의 단편소설을 써서 기고하기도 하는 등 문학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지옥변>은 그의 유명 단편소설과 산문글 등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정말 훌륭하다. 앞서 아쿠타가와는 외가의 영향으로 문학이며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러한 분위기를 적잖이 느낄 수 있다. 뭐랄까, 예술적이지만 동시에 절제되어 있고, 유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강렬한 심상이 느껴진달까. 괴랄한 줄거리가 한편으론 무시무시해도 전체적으로 과함이 없고 인간 심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기다 대체적으로 작품의 배경이 '헤이안 시대'를 비롯해 머나먼 과거라 사극적 요소와 함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극과 결합된 공포물보다 더 괴기스럽고 신비한 건 없으니 말이다.


<지옥변>에 수록된 수많은 단편들 중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첫째로 <라쇼몬>이었다. 아쿠타가와의 대표작이자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실제론 이야기가 매우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든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과거 헤이안 시대에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하인으로 나옴)이 비를 피하기 위해 라쇼몬(초소 비슷한 곳)에 잠시 머물다가 그곳 2층에서 시신의 머리카락의 뽑는 노파를 만나게 된다. 참고로 저 때 당시엔 워낙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던지라 사람들이 시체를 몰래 라쇼몬에 버리곤 했다고 한다. 암튼, 주인공은 처음엔 정의감으로 노파를 덮쳐 저지하지만 노파가 자기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팔려는 거라고 변명하자 순간 주인공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 정의감이 아닌 '자기 정당성'이라는 괴물이 말이다. 그리곤 주인공은 되려 노파의 옷을 뺏으며 '나도 마침 먹고 살 거리가 없어졌거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노파 말대로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말한 뒤 유유히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앞서 말한 대로 짧지만 점차 흑화(?)해 가는 주인공의 심정을 통해 인간의 자기 정당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시대는 과거 헤이안 시대지만 어쩌면 아쿠타가와는 이 작품을 통해 점차 인간성을 잃고 개인주의가 만연해가는 일본의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두 번째로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옥변>이다. 여기서 '지옥변'이란 불교에서 묘사하는 지옥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헤이안 시대 지체 높은 '호리카와 나리'의 후원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던 괴팍한 화가 '요시히데'가 주인의 요청대로 지옥변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벌어지는 온갖 기괴한 일들을 다룬 작품인 <지옥변>은 저자 아쿠타가와의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괴기스러움은 물론이고 일본 특유의 미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인데, 특히 요시히데가 지옥변을 그리기 위해 제자들을 상대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실제로 재현해 보게 한다든지(ex. 사슬 묶기 ㄷㄷ)하는 장면들은 열정을 떠나 섬뜩하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때 요시히데가 생생함을 살리고자 호리카와 나리에게 '우차(소가 끄는 마차)가 불타는 모습'을 직접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호리카와 나리가 진짜 우차를 가져와 불태우는데, 여기서 소름인 건 그 우차 안에 요시히데의 딸을 넣고 불을 질렀다는 거다! 그것도 산 채로!!(이유는 스포)

그런데 더더욱 소름인 것은 자기 딸이 산 채로 타 죽는데 요시히데는 처음엔 놀라다가 이내 황홀한 모습으로 이를 감상한다는 것이다.... 기괴함의 극치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일본 소설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왠지 모르게 호기심과 오묘함을 느끼게 하는 감정을 말이다. 그리고 작중 요시히데가 딸까지 희생하면서 만든 지옥변이라는 그림이 결국엔 이 세상엔 둘 도 없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란 현실에서 허용할 수 없는 행위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즉 현실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 작품의 의도는 저자인 아쿠타가와의 예술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밀감>이라는 작품이다. 처음엔 밀감이 뭔지 싶었지만 알고 보니 '밀감 = 귤'이었다.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화자인 '나'는 어느 흐린 겨울날 웬지 모를 짜증스러운 심정으로 기차에 올라탄다. 그런데 얼마 후 그런 주인공 앞에 꾀죄죄한 차림새의 여자애가 앉는다. 딱 봐도 시골애 같은 그 소녀는 보따리를 꽉 쥐고 있었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주인공은 여자애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찝찝해 한다.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왜 옆에 있는 건지! 그러다 주인공은 깜빡 잠에 들다가 문득 기척을 느껴 일어난다. 알고 보니 그 시골 여자애가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여는 게 아닌가. 주인공은 화를 내려다가 소녀가 바라보는 차창 밖을 보게 된다. 마침 기차는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고 저 멀리서 웬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당시 기차는 느렸음). 그러자 기차 안, 주인공 옆에 있던 시골 여자애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보따리의 밀감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 저 아이들은 소녀의 동생들일지도 모른다. 순간 주인공은 알 수 없는 흐뭇함을 느낀다. 그는 비록 꾀죄죄해 보여도 동생들을 위해 먼 타지로 일하러 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일종의 연민과 함께 가족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민과 사랑은 악에 받쳤던 주인공의 맘을 풀게 만든다.

어쩌면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생활의 권태와 짜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에 대한 감동과 사랑에서 온다는 걸 알려주고자 한 게 아닐까. 아니면 주인공처럼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인 자신과 달리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처지와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쓴 게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파>라는 작품 역시 인상 깊었다.

어느 가게의 여급인 '오기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예술적인 삶을 꿈꾸지만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현실적인 삶을 걱정하고야 마는 모순적인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오기미는 아름다운 외모에 취미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등 센티멘털한 성격을 가진 아가씨이다. 어느 날 그녀는 모던 보이로 유명한 '다나카 씨'와 데이트에 나서게 되는데 데이트 도중에 길가 야채 상점에서 파가 말도 안 되게 싼값으로 팔리는 걸 보게 된다. 이에 다나카 씨와 아름다운 데이트만을 생각했던 오기미는 지금까지의 아름다운 감상은 잊어버리고 곧장 현실적인 삶을 걱정하며 파를 산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와 설레는 첫 데이트 도중에 바겐세일하는 마트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저녁 찬거리를 사는 모습을!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앞서 <밀감>에서도 그랬듯이, 이 작품 역시 저자인 아쿠타가와가 자신의 예술관과 문학인이라는 처지가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쿠타가와의 초반부 단편소설들은 기괴함과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반영했다면 후반부의 산문 비슷한 작품들은 작가의 현실적인 처지와 당대 일본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장르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 심상(心象)에 대한 솔직한 묘사와 저자인 아쿠타가와의 예술관 및 심리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으스스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후반부의 <톱니바퀴>와 <갓파 이야기>들은 아쿠타가와의 심리상태가 많이 들어가 있어 말년의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아쿠타가와는 1927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정신질환을 겪은 어머니처럼 자기도 언젠가 정신질환을 겪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실제로 <톱니바퀴>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운 심리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또 당시 일본의 문학적 풍조가 <사회적 현실을 주로 묘사하는) 사회주의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예술을 중시했던 아쿠타가와의 문학풍이 위기를 맞이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예술을 중시했던 동시대의 다른 작가 작품들에 비하면 훨씬 점잖은 편이다. 무조건적인 탐미주의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띠고 예술을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방향으로 문학풍이 흐르자 그 사회주의 역시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아쿠타가와이다(앞선 <밀감>이나 <파> 역시 그런 의미에서 썼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나는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잔잔한 슬픔이 느껴진다. 일찍 죽은 게 아까운 작가 중 한 명이라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노파의 말을 듣다 보니 사내의 마음에 어떤 용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아까 라쇼몬 아래에서 한없이 망설이던 때에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던 용기였다. 또한 아까 이 누각에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 용기였다. 사내는 굶어죽느냐 도적 놈이 되느냐에 대한 망설임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이 사내의 마음속에서 굶어죽는다는 따위의 선택은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처럼 의식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 P15

연기에 숨이 막혀 뒤로 젖힌 그 하얀 얼굴, 불길을 떨쳐내려고 마구 흐트러뜨린 기다란 머리채, 그리고 순식간에 불로 변해가는 벚꽃 당의의 그 아름다움..... 참으로 얼마나 참혹한 광경이었는지요. 특히 밤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가면서 연기가 건너편으로 납작 누웠을 때, 붉은색 위의 금가루를 흩뿌린 듯한 붉길 속에 뚜렷하게 드러났던 아가씨의 모습, 입을 틀어막은 수건을 깨물며 몸을 묶은 쇠사슬이 끊어져라 몸부림치던 그 모습은 지옥의 업고를 고스란히 우리 눈앞에 재현한 것만 같아서 저를 비롯하여 그 힘세다는 사무라이까지도 저절로 몸서리를 쳤습니다.

내 마음에는 안타까울 만큼 또렷이 이 광경이 낙인 되어 찍혔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랑한 기분이 솟구치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당당히 고개를 들어 마치 딴사람을 보듯이 그 소녀를 주시했다. 소녀는 어느새 내 앞에 자리로 돌아와 변함없이 온통 튼 뺨을 연둣빛 털실 목도리에 묻고, 큼직한 보퉁이를 꺼안은 손에는 삼등칸 기차표를 꼬옥 쥐고 있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또한 불가해하고 하등한, 따분한 인생을 문득 잊을 수 있었다.

이 저렴한 가격의 팻말을 보자마자 지금까지 연애와 예술에 취해 있던 오기미 씨의 행복한 마음속에 잠복한 실생활이 갑작스럽게 그 게으른 잠에서 깨어났다. 간발의 틈도 없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장미꽃과 반지와 나이팅게일과 미쓰코시 백화점의 깃발 따위는 한순간에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월급, 쌀값, 전기세, 석탄값, 반찬값, 간장 값, 신문값, 화장품 값, 전차값, 그 밖에 온갖 생활비가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과 함께 흡사 불나방이 불에 모여들듯이 오기미 씨의 작은 가슴속으로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광범위한 사회적 전망이나 다양한 인생, 심각한 생활의 투쟁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상하다고 할 만큼 다독가였던 그는 인생을 서적을 통해 탐구하고 작품의 소재를 고전에서 따오는 전형적인 서재인이었다.
또한 순수한 도쿄 내기로서 일본 전래의 취미, 세련된 감각, 예술에 대한 특별하고도 예리한 감수성, 인간관계에 세심한 배려를 보이는 도회인이었다. 특히 다른 동시대의 작가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초현실과 신비, 괴기한 이야기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였다.

그 살림살이가 상징하듯이 하루하루 살아나가기 고달픈 도쿄의 실생활은 오늘날까지 오기미 씨에게 얼마나 큰 박해를 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막한 인생도 눈물에 젖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오기미 씨는 그 실생활의 박해에서 달아나기 위해 예술적 감격의 눈물 속에 몸을 감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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