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문학 단편선 - 뿌쉬낀에서 고리끼까지
전혜진 옮김 / 문예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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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이어서 읽은 러시아 문학 단편집이다. 마침 중고로 싸게 올라와 있었길래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에서는 푸슈킨, 레르몬토프, 투르네게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끼의 대표 단편들을 다루고 있다. 모든 작품이 훌륭했으나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것들이 몇 개 있었다. 먼저 '레르몬토프'의 <운명론자>이다. 주인공이자 군인인 '나'가 어느 날 동료들과 정말 정해진 운명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묘미는 운명에 대한 것보다는 주인공의 사색과 독백에 있었다. '나'는 운명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생각에 빠지는 것 자체가 피곤한지 씁쓸한 말을 남긴다. 솔직히 레르몬토프하면 짧고 비극적인 인생처럼 그 작품 역시 거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런 섬세한 글을 썼다니 신기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자체보다는 레르몬토프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작품이랄까. 언젠가 다시 <우리 시대의 영웅>을 읽어 볼 생각이다.

다음으로 내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도스토옙스키'의 <농부 마레이>이다. 책에 수록된 단편집 중에서 제일 짧은 이 소설은, 아직 주인공 or 도스토옙스키가 감옥에 있었을 때의 일을 다루고 있다(<죽음의 집의 기록>의 속편 같았음). 정확히는 감옥에 있던 주인공이 문득 자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아홉 살 즈음에 숲속에서 놀다가 저편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농노 '마레이'를 발견한다. 마레이를 처음 본 주인공은 그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누군가 '늑대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깜짝 놀란 주인공은 놀란 마음에 근처에 있는 마레이에게 달려가 울고 불며 도와달라고 한다. 하지만 늑대가 있다는 소리는 환청이었고, 농부 마레이는 놀란 주인공을 다정하게 대하며 위로해 준다. 이에 마음이 편해진 주인공은 무사히 숲속을 빠져나간다. 이 일을 생각하기 전에 주인공은 같은 감옥의 죄수들이 불평하고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괴로워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레이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금세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두려움에 떨었던 그를 진정시켜 준 마레이, 주인공은 마레이에게서 봤던 따스함이 어쩌면 눈앞에 있는 죄수들에게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종교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가난하고 비천했던 농노 마레이에게서 인류를 향한 사랑을 본 주인공이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은 도스토옙스키의 종교적 사랑의 또 다른 변형이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안톤 체호프'의 <상자 속 사나이>이다. 이 작품은 틀에 박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몰락하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체호프는 당시 무료하고 권태로움 그 자체였던 소시민의 삶을 꽤나 정확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상자 속 사나이> 역시 끝까지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 소시민이 등장하니 말이다. <6호 병동> 다음으로 체호프 작품 중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 글자 크기가 조금 작았다. 나는 읽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기존의 다른 단편집들과 달리 촘촘해 보여서(짧다고 해서 글자 크기를 엄청 크게 하는 출판사가 있음)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있거나 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읽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있는 러시아 명화가 읽는데 방해되었다. 물론 좋은 그림이긴 하지만 소설과 전혀 연관이 없는 그림들이 대다수라 물음표였다. 마치 공중 화장실 문에 붙어져 있는 명화들을 보는 것 같았달까. 비유가 조금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는 행위와 정 반대의 모습이라 좀 그랬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러시아문학 단편선 - 뿌쉬낀에서 고리끼까지> 러시아의 대표 문학가들의 작품을 가볍게 찍먹(?)할 수 있는 책이었다. 실력 있는 번역자분들이 여럿이서 번역했기 때문에 글 자체도 깔끔했고 읽기 쉬웠다.




그 밖에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 생각들을 붙잡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추상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아주 젊었을 때는 나도 몽상가였다. 불안하고 강렬한 상상력이 나에게 전해주는 우울한 생각과 무지갯빛 행복감에 번갈아 가면서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깊은 밤 환영과의 싸움 후와 같은 피곤함과 애석함으로 가득 찬 불안한 기억만 남을 뿐이다. 나는 이 무모한 싸움에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영혼의 열정과 불굴의 의지를 모두 소모해버렸다. 머릿속으로 이런 경험을 한 후 비로소 지금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 P36

나무 침상에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나는 이 불행한 사람들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응어리진 모든 증오와 분노가 갑자기 기적적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며 밖으로 나갔다. 강제로 삭발 당하고 얼굴에 낙인이 찍힌 채 술에 잔뜩 절어서 쉰 목소리로 고성방가를 하고 있는 이 농부도 어쩌면 마레이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거짓을 참으면 바보라는 소릴 듣소. 모욕과 멸시를 당하면서 사람들이 정직하고 자유로운 사람들 편이라는 것을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거짓이고, 위선이오. 이 모든 것은 빵 한 조각, 따뜻한 잠자리, 몇 푼 벌지도 못하는 하찮은 일자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오. 안돼. 더 이상 그렇게 살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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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오네긴 SNUP 동서양의 고전 4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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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다. 소설이 아닌 '운문 소설(韻文)'로 쓴 이 작품은 일명 '러시아병'에 걸려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의 몰락을 다루고 있다.


오네긴은 20대 중반의 귀족으로, 한때 사교계에서 유명할 정도로 날아다녔던(?) 사람이었지만 최근에는 어째서인지 모든 것에 산물이 난 상태다. 맛있는 음식이나 도박 게임은 물론이고 사교계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잃은 오네긴은 기분전환 겸 시골마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며칠은 기운이 난 오네긴이었으나 이내 또다시 권태로운 삶에 질려버린다. 그때 오네긴이 있는 시골에 젊은 시인인 '렌스키'가 나타난다. 렌스키는 오네긴과 달리 나이도 훨씬 젊고(약 17살 정도) 삶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진 남자였다. 더구나 시인 기질이 다분했기에 낭만주의자처럼 행동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상극인 두 사람은 이내 친구가 된다. 렌스키는 오네긴을 연장자로서 대했고, 오네긴은 렌스키의 열정을 관망하는 재미로 사귄다.

한편, 렌스키는 시골 마을의 '라린 가문'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되고, 가문의 둘째 딸인 '올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첫째 딸인 '타티아나'가 렌스키와 같이 온 오네긴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오네긴에게서 느껴지는 염세적인 분위기와 권태에 끌림을 느끼고 남몰래 사랑을 키운다. 그러다 결국 연모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타티아나는 오네긴의 사랑의 고백 편지를 보내는데, 정작 오네긴은 그 편지를 받고는 오히려 타티아나에게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오네긴 왈, 자기는 지금 누구랑 연애할 기분도 아니고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면 불행해지니 마음 접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큰 상처를 받은 타티아나는 오네긴이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시골을 떠난 후에도 그를 그리워하다가 우연히 예전에 오네긴이 살았던 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오네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깨닫는다.

몇 년 뒤, 여전히 특유의 권태를 느끼고 있던 오네긴은 어느 사교계에서 아름다운 부인을 보게 된다. 알고 보니 그 부인은 타티아나였고, 오네긴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이후로 오네긴은 타티아나에게 고백의 편지를 쓰면서 예전에 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말을 하지만 타티아나는 무시한다. 나중에 단둘이서 만난 자리에서 타티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오네긴에게 이미 늦었다고, 당신과 달리 자기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만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절망하는 오네긴의 모습을 끝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지식인(인텔리겐치아)의 권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인 오네긴은 언뜻 보면 걍 한량인 것 같지만 그 역시 과거에는 여러 책을 탐독하고 많은 경험을 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렌스키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삶에 대한 열정 역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오네긴은 이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 심각한 권태로움에 빠진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런 에너지가 자기 자신 안에서만 흐르다 보니 그런 듯하다. 그러니까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을 아무리 해봐도 현실은 그대로이고 괜히 자기만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거다. 거기다가 지식인 특유의 허영심까지 있으니, 오네긴으로서는 세상만사가 쓸데없은 일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오네긴의 재수 없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 실망한 지식인의 고립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네긴을 향한 비판을 멈출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마지막에 타티아나에게 비굴할 정도로 고백하는 모습은 정말 추해 보였다. 그가 진정 배운 지식인이고 자기 소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저렇게 행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자의 해설처럼 작중 오네긴의 모습은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모습에 가까웠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러니 뭔가를 배우고 경험해도 거기서 다른 뭔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본인 입맛에 맞는지만 따지려 드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식의 경험이, 에너지가 안에서만 흐르게 되니까 그 결과 갑갑하고 권태로움을 느끼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는 렌스키도 마찬가지다. 렌스키는 오네긴과 반대로 너무 열정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혼자 시적 열정에 빠져 열광하기 일쑤였고, 올가가 오네긴과 춤을 추자 거기에 괜히 분노해 오네긴과 결투를 벌이다 죽는다(올가는 정말 재밌으니까 오네긴과 춤을 춘 것뿐, 렌스키에게 결투하라고 한 적도 없다). 렌스킨 딴에는 올가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기만큼이나 낭만적인 열정에 빠져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올가는 슬픔도 잠시 이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작중에서도 렌스키의 낭만적인 죽음은 결국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과도한 자기 사랑에 취해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제는 뭘까? 내가 생각하기론 과도한 고립은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단순한 물리적 고립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립도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그러니 가끔 스스로를 잊고 남들과 적당히 어울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마치 현실을 깨달은 타티아나가 조용히 오네긴을 나무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외에도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구절이 많았다. 그래서 운문이라는 낯선 전개 방식임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장황하면서도(그런 척을 하면서도) 푸슈킨 특유의 솔직하고 섬세한 문장이 최고였달까.


이 소설들에는 시대가 반영되어 있었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고

메마른 영혼을 지닌,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지는 영혼을 지닌,

공허한 행위 속에 들끓고 있는

분노한 지성을 지닌

동시대의 인간이

꽤 진실하게 그려져 있었다. - P319

믿음에 몸을 맡기고 차가운 이성을 몰아내고

심장의 달콤한 도취 속에 고이 쉬는 자는

잠자리를 찾아낸 술 취한 길손처럼

또는, 좀 더 사랑스레 말하자면,

꽃 속에 꿀을 빠는 봄나비처럼

수백 번 수천 번 행복하며,

반대로, 모든 것을 예견하며

모든 말과 행동을 스스로 해석하고

번역하여 자신의 언어로 증오하고

경험이 심장을 차갑게 하여 자신을

잊는 것을 금지한 자는 불쌍하다! - P207

오네긴이 어린아이에서 더 성장하지 못한 채 때늦게 ‘엄마‘에게 애정을 무제한적으로 요구하지만, 그런 엄마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네긴은 성숙으로의 도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오네긴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린애처럼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볼 때 가혹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 P383

한참을 정신없이 쾌락을 좇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하찮고 사람들은 심술궂고 시시하다. 결국 그에게는 모든 것이 권태롭고 그는 사랑도 우정도 믿을 수 없다는 환멸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사는 땅에 뿌리박을 수 없기에 모든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고 그의 개혁 시도는 힘을 얻지 못하고 그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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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테리 지음, 정우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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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고 지금 읽었네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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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현대지성 클래식 7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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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도스토옙스키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접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론 <죄와 벌> 못지않게 작가의 사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나'이다. 그는 퇴직 관료로서 줄곧 지하에서 살고 있었는데 독자들을 향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 지하에 홀로 틀어박혀 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마흔 살 정도 먹은 주인공은 예전엔 관료였지만, 먼 친척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게 되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지하 골방에 고립된 채 살아간다. 첫 장면부터 스스로를 '병자'라 칭하는 '나'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이상과 그 거짓됨을 역설한다. 1부에서는 이러한 '나'의 주장이 계속되는데, 여기서 인상 깊었던 점은 주인공의 화법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긍정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거짓말이었다며 부정한다. 딱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꾸만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는데, 읽는 사람 입장에선 이만큼 답답한 게 없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 중에는 1부를 읽고 도대체 이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는데, 사실 이는 화자가 줄곧 주장하고 있는 '사상'을 잘 파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주인공이 자꾸 말을 바꾸는 건 그의 망상과 과장하며 말하는 습관 때문도 있지만, 이런 그의 양면성은 '나'가 주장했던, 그러니까 인간은 이성적인 것 같아도 동시에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행동적 특성이라고 본다. 작중 '나'는 인간이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뻔히 자기에게 득이 되는 상황임에도 일부러 변덕을 부려 '의식적으로' 불리한(안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좋게 흘러갈 일을,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거다. 겉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범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과 선택을 하는 걸 본다.

이어서 '나'는 자기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한낱 피아노의 부품, 기계의 한 부품이 되기 싫어서 일부러 반항을 저지른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보통의 존재가 아닌, 좀 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정해진 길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게 바로 '2+2=4' 공식이다. 원래 수학은 이성적이고 답이 정해져 있다. 4가 아닌 모든 것은 틀렸다.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나온 당시 러시아에선 뒤늦게 산업화가 태동하고 있었다. 더욱이 발전하는 산업화를 계산에 필수였던 수학과 과학이 자연스레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상은 불확실한 '인간'이 아닌, 정확한 답이 정해져 있고 체계적인 수학과 과학에 점차 의지하고, 믿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게, 공식만 잘 따르면 실패할 일도 없고 그냥 정해진 대로 움직이면 되니 말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인간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점차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이성을 추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답에 따라 정해진 길을 간다(앞서 말했듯, 2+2=4이다. 다른 답, 다른 길은 없다. 4만이 정답이다). 그렇게 인간은 그 사람 존재 자체가 아니라, 국가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숫자'에 불과하게 되었다. 지하 생활자인 '나'는 이것을 비판한다. 과연 인간은 그저 숫자에 불과할까?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를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과연 우리에게는 모든 걸 계산하고 분류할 수 있는 능력과 '이성'을 갖고 있는 걸까??? 지하 생활자는 스스로를 지하에 가둬놓음으로써 이러한 주장이 틀렸음을 몸소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맞는 건지 쉽게 단언하지 않는다. 인간은 아무리 '2+2=4'라는 공식, 즉 이성이 있더라도 자기 맘대로 이를 부정할 수 있으며, 스스로가 숫자가 아님을-한낱 개미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반항할 수 있는 존재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삶'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삶과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인 지하 생활자는 훌륭한 사상가인 걸까? 한 마디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인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사상을 떠나서 지하 생활자에겐 본질적인 것이 없다. 바로 앞서 말한 '삶'이다. 지하 생활자에겐 문제의식만 있을 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삶'과 '자유'가 없다. 그는 고립되어 있으며 혼자다. 극단적인 집단주의도 나쁘지만, 극단적인 개인주의 역시 옳지 않다. 거기다 지하 생활자는 가능성만 얘기하지, 실제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항상 '벽' 앞에 멈춰 서 있다고 말한다. 남들은 그런 벽 앞에서 몸을 돌리지만, 지하 생활자는 소극적인 저항으로서 벽 앞에 서서 버틴다. 하지만 그뿐, 지하 생활자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상은 거창하나 실상은 겁쟁이인 것이다. 2부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하 생활자는 현실에서는 그저 가난하고 옹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 초반부에 말했던 지하생활자의 사상은 인간 개인의 소중함을 보여주지만, 이를 극단적으로 추구할 경우 자칫 오만함에 빠지기 쉽다. 자기 자신은 그 누구보다 소중하나,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바보에 멍청이니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대개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주변인들로부터 소외되는데, 지하생활자 역시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젊었을 적에 관청에서 근무했을 때도 그렇고 마흔이 된 지금까지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린 적이 없다. 타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무시한다. 이런 지하생활자에겐 당연히 삶도 없고, 자유도 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하처럼 암흑과 고립만 있다. 놀랍게도 이런 현실은 지하생활자가 그토록 외친 사상과 완전히 정반대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나'는 사상가라기보다는 문제적 인간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하생활자의 사상이나 삶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2부에서 창녀 '리자'와의 이야기를 보면 그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인간이란 지하생활자처럼 비열하고 모순적이며, 문제적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라고 본 듯하다.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하생활자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한 리자를 매몰차게 대하지만, 리자는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 이때 지하생활자가 울면서 했던 고백 -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라는 말을 통해 악질적인 인간 역시 사랑을 원했음을, 그가 외쳤던 사상도 결국엔 타인을 향한 사랑을 갈구하고자 했던 일종의 '반항'이었음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짧고 거칠지만 도스토옙스키만의 사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접해보거나, 혹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분이라고 다시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번역 자체도 괜찮기 때문에 강추한다!


나는 병자다.. 나는 못된 인간이다. 영 매력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다.

예컨대 내게는 친구 하나가 있다.. 아니, 그는 여러분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자와 친구 아닌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여하튼 그는 어떤 일을 벌이기에 앞서 자신이 이성과 진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유창하게 늘어놓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으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추구해야 할 이익이 무엇인지 열변을 토하며, 자기 이익이나 참된 미덕의 의미조차 모르는 바보들을 실컷 비웃으며 질타할 것이다. 그리고는 정확히 15분 뒤, 별다른 계기도 없이, 자기의 모든 이익보다 더 강한 어떤 내적 충동에 이끌려, 방금 자기가 한 말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것이다. 방금 했던 말과 정반대 입장을 취하며 이성의 법칙을 거스르고 자기 이익에도 반하는, 한마디로 모든 것에 반기를 들 것이다. - P53

다시 말해 인간은 그가 누가 됐든 간에 이성과 이익을 좇아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원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을 원할 수도 있으며, 때때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이것이 내 지론이다). - P59

어쩌면 인간에게는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것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논리를 따르자면, 모든 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이로운, 그런 궁극의 이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그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이성, 명예, 평온, 번영 같은 모든 법칙을 기꺼이 거스를 것이다. 한마디로 그 모든 아름답고 유용한 것들을 저버리면서까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근원적인 이익을 얻으려 할 것이다. - P54

한마디로 막다른 벽에 다다르거나, 끔찍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거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며 난 결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느끼는 데서 쾌락을 느낀다. 설사 다른 누군가로 변할 시간과 믿음이 남아 있더라도 당신은 스스로 변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매번 양보해 변하고 싶다 한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변할 만한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 P29

난 그저 입으로 나불대고 머릿속으로 꿈만 꿀 뿐이야.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뭔지 알아? 너희 모두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거야. 그게 다야! 날 좀 내버려둬. 성가신 꼴만 안 볼 수 있다면, 난 지금 당장 누가 푼돈만 쥐여 줘도 온 세상을 팔아치울 테다. 봐, 세상이야 망해버리든 말든 내가 이깟 차 한 잔을 못 마실 것 같아? 세상 따위 당장 망해버리라지! 차만 마실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할 테야. 이제 알았어? 그래, 난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으로 게을러터진 놈이야. - P217

그 이상한 일이란 다름 아닌, 리자가 그토록 내게 모욕당하고 짓밟히면서도 내 상상 이상으로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독설을 견디며, 진정 사랑에 빠진 여자가 으레 가장 먼저 직감하게 되는 단 하나의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바로 내가 끔찍하도록 불행하다는 것이었다. (중략) "날 왜 내버려 두질 않는 거야.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 P220

소설에는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부러’ 반영웅에게서 볼 법한 모든 특성을 모아 놓았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은 극도로 불쾌한 인상을 자아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있고 모두 다리를 절룩거리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불완전한 것이다. 심지어 지나치게 단절된 나머지 현실의 살아 숨 쉬는 삶을 혐오하고, 누군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려 하면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현실의 살아 숨 쉬는 삶을 거의 노역이나 무슨 복무처럼 여기기에 이르렀고, 다들 책에 적힌 대로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따금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부질없는 고집을 피우고,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정작 부질없는 요구가 이뤄지면 오히려 우리에게는 독이 되고 말 텐데 말이다. - P229

우리에게 이를테면 더 많은 자율성을 주시라. 우리의 손을 풀어주고 활동 범위를 넓히고 감독을 소홀히 해보시라. 그러면 우리는.. 맹세컨대 다시 구속해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여러분은 필시 내가 하는 말에 화를 내고 소리치고 발을 구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만, 지하실에 있는 당신의 그 비참함에 대해서나 말할 것이지, 감히 ‘우리 모두’라고 말하지 마시오’

신사 숙녀 여러분, 부디 양해하시기를. 나는 ‘우리 모두‘라는 말로써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들이 감히 절반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따름이다. 더욱이 당신들은 자신의 비겁함을 분별력으로 포장하고 자신을 기만하며 위로했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당신들보다 더 살아 숨 쉬고 있는 셈이리라. - P229

자, 한번 똑똑히 살펴 보시라! 지금 ‘살아 숨 쉬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불리는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당장 책이 없다고 가정해 보라. 우리는 즉시 혼란스러워하며 길을 잃을 것이다.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무엇을 붙잡고 버텨야 할지 모를 것이다. 무엇을 사랑하고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하고 경멸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고유한’ 인간이 되는 것조차, 진정 제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 되는 것조차 고역으로 여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기상천외한 ‘보편적 인간‘이라는 틀에 자신을 욱여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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