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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세네카의 가르침 ㅣ 현대지성 클래식 67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평점 :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저자 소개부터 하겠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 ~ 65년 4월)'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이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Stoicism)'이란 로고스(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처럼 인간도 이성과 운명을 받아들여 내면의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상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복잡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내면적 평화, 즉 '아파테이아'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스토아 철학은 '스토아(στοά, 주랑)'라는 이름답게 처음엔 건물의 기둥 아래에서 작은 소모임(철학 토론장)에서 시작했지만, 로마에 이르러 특유의 현실적인 면 때문에 대중적인 철학 사상을 자리 잡게 되었다. 세네카 역시 로마 시대 때 활동했던 사람으로,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Nero, 37년 12월 15일 ~ 68년 6월 9일)' 곁에서 보좌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타락을 비롯한 반역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65년에 자결하고 만다. 비록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그였지만, 세네카는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아마 세네카 본인이 쓴, 스토아 철학에 관련한 여러 저작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늘 다룰 <화에 대하여>가 그렇다. 본 책에서는 세네카 특유의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위로가 되는 스토아적 조언으로 가득하다.
<화에 대하여>에는 총 4편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편은 제목이기도 하는 '화에 대하여'이고, 두 번째 편에서는 세네카가 네로 황제에게 보내는 '관용에 대하여'라는 글이며, 세 번째 편에서는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에게 보내는 '평정심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편에선 마찬가지로 친구 '세레누스'에게 보내는 '현자의 항상심에 대하여'이다. 그중에서 나는 첫 번째 편인 '화에 대하여'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보통 철학 하면 복잡한 철학 이론으로 가득할 것 같아 읽기 꺼려지지만, 세네카를 비롯한 스토아 철학은 이런 복잡한 이론보다는 인간의 이성이라든지 심리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는 철학에 가까워 읽기 쉽다. 또한 글 자체도 이론적 설명보다는 주로 설득과 조언의 형식을 띠고 있어 읽다 보면 뭔가 저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에 대하여'에서도 '화'라는 인간의 감정(심리)이 무엇인지, 왜 화를 내는 건 좋지 않은지, 그리고 화라는 게 인간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 맞는지 등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앞서 말했듯이, 화에 대한 저자 세네카의 현실적인 시각이었다. 세네카는 화를 내는 사람의 표정부터 시작해, 그들이 느끼는 감정, 그리고 화낸 자가 어떻게 자신의 화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지까지도 콕 집어서 지적한다. 세네카가 보기에 화를 내는 행위는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참고로 세네카가 말하는 '화'는 특정 상황에서 제안적으로, 상대를 가려가며 하는 화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죽일 듯이 눈을 부라리며 달려드는 화를 뜻한다. 한 마디로 '분노조절장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네카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작은 분노를 허용한 건 아니다. 그가 말하길,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난폭하게 화를 내는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마찬가지로 때에 따라서 사소한 일 가지고 화를 내는 것 역시 무익한 일이며 감히 ’분노’나 ‘화’로 부를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즉, 그냥 감정에 휘둘려 하게 되는 무용한 행위라는 거다. 때문에 세네카는 화가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다른 철학자들의 주장에 반박한다. 사람들이란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존재이기에 물이 뜨겁거나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등 사소한 일에도 앞서 말한. 무용한 화, 쓸데없는 짜증을 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진정한 ‘화‘라 여기기 마련이라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극단적으로 행동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절대 그러한 것들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세네카는 주장한다.
그 외에도 세네카는 화가 났을 때 절대 스스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화가 난 상태에서 당신은 무엇이든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화가 난 사람은 상대방이 무조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 사람이 이러이러한 짓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간혹 나중에 잘 생각해 보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순간 욱하면서 감정에 휩쓸려 상대방의 모든 행위가 전부 내게 해를 입히기 위해서라고 확대해석할 때도 있다. 그래서 세네카는 화란 ‘광기‘에 가까운 상태이기에 화가 났다면 일단 그 즉시 '판단을 중지'해야 하고,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 볼 것을 권장한다. 물론 화난 상태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세네카는 이러한 시도가 적어도 화를 이성의 범주 안에 넣으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분노에 대한 세네카의 날카로운 지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네카는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란 강하고 무서운 사람이 아닌, 되레 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심지어 분조장(분노조절 장애)인 사람은 피해야 하며, 우리가 이런 사람을 피하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오늘날에도 많이 쓰이는 말이다. 때문에 세네카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선구적인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세네카는 세상을 무척 현실적으로 봤다. 그는 이 세상이 악인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악인일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네카는 그렇기에, 우리는 미덕을 행해야 한다고 권한다. 그가 말하는 현자의 전형도 세상의 불의에 대해 맨날 화를 내기보다는 이성을 가지고 훈육의 태도를 지녀야 하며, 때로는 웃어넘길 줄 아는 사람이다. 현자의 목표는 악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면 세네카의 가르침은 간단하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세네카는 자신이 말하는 미덕으로 향하는 길은 실제로 매우 평평한 길이자 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있는 온갖 악덕에 맞서는 방법은 분노 같은 감정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단순하게, 끈기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맨 처음에도 말했지만, 스토아 철학은 복잡한 현실에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을까를 주로 고민한 철학이다. 어쩌면 세네카는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세상에서 언제까지 화만 내고 있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현실은 피할 수 없고, 바꾸기 어렵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의 감정이라든지 마음가짐은 스스로 조절하거나 바꿀 수 있다. 때로는 이 변화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들 수도 있다. 세네카의 스토아 철학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보다 그냥 순순히 따르라고 말하고 있어 조금 그랬다. 로마라는 시대적 한계와 네로 황제라는 폭군으로 인해 이런 아부를 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화에 대하여>는 자기도 모르게 욱하거나 쉽게 상처받아 짜증을 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면서 동시에 성찰의 힘을 제공하는 책이다. 스토아 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화에 대한 심리학적 의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성찰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 드린다.
몇몇 현자들은 분노를 순간의 광기라 일컬었습니다. 분노는 마치 광기처럼 자제력을 잃고, 적절한 행동 기준을 잊어버리며, 인간관계를 무시합니다. 한번 시작한 일에 집착하여 몰두하고, 이성적 판단과 충고에는 귀를 당아버립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올바른 것과 진실된 것을 구분하지 못하며, 무너져 내리는 건물처럼 산산조각 납니다. - P14
해로운 것은 다스리는 것보다 애초에 피하는 것이 쉽고, 받아들인 뒤 제어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것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소유자보다 더 강해져서 억제하거나 약화시키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 P25
‘하지만 분노가 일어나도 평정을 유지하며 자제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분노가 끓어오르는 순간이 아니라, 이미 누그러져 저절로 사그라드는 때입니다. - P27
어떤 분노가 통제 가능하다면, 그것은 분노라 불러서는 안 되며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마땅합니다. 제가 아는 분노는 재갈을 물리거나 다스리거나 길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P29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불의를 당하면 분노하는 법이다‘ 테오프라스토스여, 당신의 이 말은 더 용기 있는 가르침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며, 공정한 판단을 저버리고 대중의 감정에 영합한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분노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길 것으로 생각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누나 자신이 느끼는 정념을 정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따뜻한 물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거나, 유리잔이 깨지거나, 신발에 진흙이 묻었을 때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이런 일에 분노하는 것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을 때뿐 아니라, 호두 장난감을 잃었을 때도 울음을 터뜨립니다. - P35
분노하기 쉬운 기질은 결코 위대하고 우아한 것을 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몸이 아파서 살짝만 건드려도 신음하는 병자처럼, 분노하기 쉬운 기질은 약하고 불안정한 영혼이 자신을 방어하려다 드러내는 고통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인파로 넘쳐나는 법정, 사람들이 북적이는 투표소, 시민들이 모여드는 원형 경기장을 볼 때, 당신은 그곳에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악덕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보듯 평화로운 차림새를 하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 평화는 없습니다. 작은 이익을 얻고자 서로를 해치려 듭니다. 누구든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서는 이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68
미덕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고 험난하지 않고, 평탄합니다. 행복한 삶에 이르는 길은 쉽습니다. 좋은 징조와 신들의 은혜로운 도움을 받아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오히려 더 힘듭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분노하기 쉬운 사람들이 가장 순수한 사람들이다‘ 이는 분노하기 쉬운 이들이 속마음을 다 드러내 보이므로, 사기꾼이나 교활한 자들에 비해 순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분별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 사치스러운 자, 낭비하는 자, 그리고 자신의 악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모든 이를 분별없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할 만한 일이 생기면 즉시 반응합니다. 하지만 분노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야 처음의 끓어오르는 열기가 가라앉고 마음을 덮은 안개가 걷히거나 옅어집니다. 당신을 격분시킨 것 중 어떤 것은 한 시간만 지나도 누그러지고, 어떤 것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도 여전히 판단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도, 이제는 분노가 아니라 이성이 당신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시간에 맡기십시오. 마음이 동요할 때는 아무것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 P136
분노할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필리포스는 나보다 강했지만, 자신을 욕한 자를 벌하지 않았다. 신황 아우구스투스는 온 세상을 다스릴 힘이 있었으나, 나는 내 집안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욕하는 자를 멀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아이에게는 나이를, 여자에게는 성별을, 외부인에게는 자유를, 가족에게는 친밀함을 이유로 너그러워야 합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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