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지영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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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보는 사르트르의 작품이다. 사실 <구토>를 읽으려고 했는데 왠지 희곡이 땡겨서 이걸로 읽게 되었다. 그렇게 완독한 결과, 재밌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의미로 지루했다!! 분명 작품 자체는 훌륭했는데 어쩐지 읽으면 읽을수록 루즈해지는 느낌이었다. 대충 사르트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으나, 이야기 구성이라든지 전개 방식이 너무 지루하고 복잡했다. 작품 자체가 사르트르의 철학 사상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여느 희곡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 그의 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들 자체가 문학적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읽다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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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닫힌 방>이다. 이 작품은 생전에 죄를 지은 3명의 남녀가 사후 저승 세계에서 어떠한 ‘닫힌 방’에 갇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기자였으나 탈영을 시도한 바람에 총살당한 ’가르생’, 우체국 직원이자 레즈비언으로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이네스‘, 젊은 남자와 바람나서 낳은 어린애를 살해하고 폐렴으로 죽은 ‘에스텔‘. 이들은 처음엔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스스로를 투영하면서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등의 온갖 추악한 행도을 벌인다. 특히 삼각관계로서 누구의 편의 설 것인가를 상대방의 겉모습과 행동으로 결정하려는 태도는 방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에 가르생이 ‘타인이 지옥이다’라며 외치는 대사는 이런 불완전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절망적인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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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대사는 말 그대로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끔찍하다는, 염세주의적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말일까? 한마디로 <닫힌 방>의 주제는 결국 타인과의 단절을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다. 사르트르는 타인에 의해 대상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그러한 타인의 인식에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는 상대방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주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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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악마와 선한 신>은 16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농민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부르주아와 압제자들에 맞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보름스’라는 마을을 두고 ‘괴츠’라는 장군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닫힌 방>에서도 그렇고 무척 지루했기 때문에 도중에 읽는 걸 포기했다(<닫힌 방>은 겨우 다 읽음;;). 다만, 초반부에 봉기를 주도한 빵집 사장 ‘나스티‘가 부르주아와 성직자들을 향해 하는 비난의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선과 악 사이에서 고뇌하는 건 후반부인 것 같아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아쉬웠으나 적어도 자본주의와 부르주아들을 비판했던 사르트르의 반골적인 사상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조금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비록 중도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건 변함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사르트르에 대해 잘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뒤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간략히 다룬 역자 설명도 흥미로우니 이것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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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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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설가이자 문학가인 '토마스 만(Thomas Mann , 1875년 6월 6일 ~ 1955년 8월 12일)'은 어렸을 때 내게 깊은 감명을 준 몇 안 되는 작가이다. 과거 학창 시절에 학교 도서관에서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문 사람들>과 <토니오 크뢰거>를 무척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읽은 <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토마스 만의 대표 단편집들을 모은 책이다. 그중에서 <토니오 크뢰거>와 <행복에의 의지>,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중점적으로 읽어봤는데, 역시나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토니오 크뢰거>가 그랬다.


이 작품은 예술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삶을 사무치게 부러워하는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그리고 있다. 이성적이고 엄숙하며, 시민적 기질이 강했던 아버지와, 반대로 자유분방하고 감성적이었던 남미 출신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크뢰거는 천성적으로 문학가적, 예술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기질보다는 현실적이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시민적 인간)을 부러워한다. 이야기는 크뢰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학창 시절 크뢰거는 같은 반에 있는 금발의 미소년 '한스 한젠'을 동경하는 것으로 운을 띄운다. 한젠은 크뢰거와 달리 예술보다는 운동과 현실적 삶을 살아가는데 재능이 있었다. 보통 예술가적 사람이라면 이런 한젠의 모습을 '속물적'이라며 비웃었겠지만, 크뢰거는 그렇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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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뢰거는 오히려 자신의 예술가적 재능을 저주라 느끼며, 자신과 달리 단순하고 손쉽게 삶을 즐길 줄 아는 한젠을 부러워한다. 문학과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섬세한 성격의 사람의 소유자라면 이런 크뢰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이다. 한젠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건만, 어째서 자신은 이런 간단한 삶의 과정 중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가, 혹은 어려워하는가에 대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뭔가 삶의 길의 한 부분이 꽉 막힌 느낌이랄까. <토니오 크뢰거>는 이런 복잡 우울한 감정을 주인공 크뢰거를 통해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후에 크뢰거는 장성해 예술가가 되는데, 그러면서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적 삶과 시민적 삶 가운데서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크뢰거는 예술가와 시민 사이에 놓인 존재로서 현실적인 삶을 사랑하는 것이 곧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 결론짓는다. 이는 여러모로 큰 울림을 주는데, 현실과 동떨어지기 쉬운 예술을 하면서도 그 현실을 향한 창을 계속 열어 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감성, 문학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론 너무 지나치게 추구하면 흔히 '데카당스'라는 퇴폐적 인간이 되기 쉽다. 현실을 도외시한 채 유유자적하게만 살아가는 태도는 올바른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토마스 만이 이 작품을 썼을 당시 세상은 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데카당스라는 세기말적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러면서 예술가들은 몽상가가 되어 점차 타락하게 되었고,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분명 저자인 토마스 만 본인도 이런 시류에 자연스레 홀렸을 거다. 그러나 토니오 크뢰거처럼 반쯤은 예술적인 어머니의 기질과 또 반은 시민적인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토마스 만은 여기서 벗어나 예술가들도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예술적 삶과 현실적 삶 사이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크뢰거는 현실을 동경하고 또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선은 마지막까지 현실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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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에 이어서 읽은 <행복에의 의지>는 다소 기괴한 이야기다. 화가면서 유약하고 병든 주인공이 사랑하던 여성과 맺어지는 단 하나의 행복을 위해 자기도 모르게 목숨을 이어가다가, 그 여자와 결혼한 다음 날 죽었다는 짧은 단편 소설이다. 몸과 마음은 약하더라도 행복이라는 의지 하나만은 이루고 가겠다는, 다른 의미로 무시무시한 작품 같았다. 그 외에도 <키 작은 프리데만 씨>도 인상 깊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모의 실수로 바닥에 떨어져 곱사등이처럼 돼버린 프리데만 씨가 줄곧 현실의 행복을 무시하다가(이건 불구자인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음), 새로 부임한 관구 사령관 '폰 링린엔'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면서(짝사랑) 그제야 뒤늦게 찾아온 행복을 느끼고 후회로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이 줄곧 영혼과 성격으로 사회 부적응자, 결핍자를 묘사했던 것과 달리 <키 작은 프리데만 씨>에서는 오히려 외적인 결핍을 통해 이를 표현했다는 게 인상 깊었다.


나머지 <어릿광대>라든지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읽고 싶었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너무 읽기 힘들어서 나중에 정신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면 도전해 볼 생각이다. 아시다시피 토마스 만의 소설은 굉장히 촘촘하고 정적이다. 당대 평론가들로부터 '세공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라고 하니 할 말 다 했다. 예술적이고도 정신적인 문장의 극치라 계속 읽다가는 정병이 올 것 같아 포기했다 ㅠㅜ 그래도 지금까지 말한 <토니오 크뢰거>와 <행복에의 의지>,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쉽게 읽을 수 있으니 꼭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크뢰거처럼 예술인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에게 더더욱 추천하는 바이다.

유희적이고도 우울한 경이로운 창조력이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 창조력이 닿지 않는 대안에서 그런 것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명랑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비록 그가 닫혀진 덧창 앞에 외로이, 국외자의 신세가 되어 희망도 없이 서서는 상심한 나머지 마치 창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그때 그의 심장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 P32

문학이란 것은 소명이 아니라,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 두고 싶습니다만, 일종의 저주입니다. 언제부터 이것이, 이 저주가 느껴지기 시작하지요? 일찍부터, 엄청나게 일찍부터지요. 아직도 의당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화해 속에서 살아야 할 그런 시기에 벌써 이 저주가 찾아옵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낙인 같은 것이 찍혀 있는 것 같이 느끼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 평범하고도 정상적인 사람들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갈등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당신을 모든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반어, 불신, 반항, 인식, 그리고 감정의 심연이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해서, 당신은 고독해지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서로 간의 이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 P47

인식해야 하고 창작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행복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 P99

내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그는 물었다. 아니, 결코 없었다! 너 한스도 잊은 적이 없고, 너 금발의 잉에도 결코 잊은 적이 없어! 정말이지 내가 작품을 써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너희들이었어. 그리고 내가 박수갈채를 받을 때, 난 남몰래 내 주위를 살펴보곤 했지. 그중에 너희들이 참석해 있나 하고. 한스 한젠, 네 집 정원 문 앞에서 약속한 대로 너 이제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마라! 난 너한테 더 이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한테 무슨 상관이겠니? 넌 우울한 시 나부랭이를 보다가 네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 - P98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야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저를 시민이라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중략) 리자베타,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이랍니다. 동경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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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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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고골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뽈따바 지역의 미르고로드에서 태어난 고골은 한 마디로 '저주받은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리뷰했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 크뢰거가 말했던 '문학의 저주'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고골이다. 그는 살아가는 내내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하고자 했다. 관리가 되고자 페테르부르크로 갔지만 냉혹한 현실에 좌절해야 했고, 시인이 되고자 시집까지 냈으나 처절하게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가 고향인 우크라이나 지역의 민담과 설화를 모은 <디칸카 근교 마을 야회>라는 작품으로 문학의 재능을 꽃피웠지만 그가 쓴 다른 작품들이 러시아 사회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보수 언론들의 탄압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고골은 해외로 도피해 몇십 년 동안이나 돌아다녔는데 이때부터 잘나가던 문학도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결국엔 극단적인 신앙과 보수적 신념 사이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1852년에 굶어 죽는다.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삶이었던 만큼 고골의 작품은 빛이 난다는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스토옙스키도 러시아 문학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골의 작품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읽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고골의 중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책이다. 대체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의 배경은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저 거대한 도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또 어떻게 미쳐가는지를 보여준다. 아시다시피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철저한 '계획도시'이다. 표트르 대제는 과거 늪지대였던 곳을, 유럽을 향한 창구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독일 비롯한 외국 기술과 양식으로 만들어진 페테르부르크는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낯선 곳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고골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페테르부르크를 향한 러시아인들의 오묘한 감정을 묘사했다. 이번에 읽은 작품들도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 요소를 가미한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외투>와 <광인 일기>였다. 사실 <코>도 최고인데, 예전에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위의 두 작품을 중심으로 읽었다(<초상화>나 <네프스끼 거리>는 흠.. 딱히 주인장 취향이 아니었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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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에서는 만년 9급 관리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름부터가 특이한 아까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소심하고 관청 내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취미도 없고, 놀러 다니지도 않고, 사귀는 사람도 없이 그저 관청 내의 서류를 필사하는 재미로만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그건 아까끼가 평소 즐겨 입던 아주 낡은 외투가 너무 낡아버려서 더 이상 입고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난했던 아까끼는 어떻게든 수선해 보려 하지만 불가능했고, 재봉사인 '빼뜨로비치'는 이참에 새 외투를 장만하라고 설득한다. 값싼 털로 만들면서도 고급져보이는 외투를 만들어주겠다는 빼뜨로비치의 말에 아까끼는 겨우겨우 돈을 마련해 새 외투를 장만한다. 이때 아까끼가 외투를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부터 점차 달라지는데, 예전과 달리 멋진 외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빛난다. 그리고 외투를 장만했을 때 아까끼는 뭔가 자신이 대단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 그를 가엾게 여겼던 동료들은 아까끼의 새 외투를 장만한 기념으로 동료 직원의 집에서 파티를 열고 아까끼를 초대한다. 그러나 말이 아까끼를 위해서지 실제로는 자기들이 놀려고 하는 파티였기에 중간에 아까끼는 홀로 파티를 빠져나와 집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늦은 저녁 시간 때라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아까끼 앞에 덩치가 큰 남자 두 명이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그들은 다짜고짜 아까끼를 위협해 그의 새 외투를 훔쳐 달아난다. 기겁한 아까끼는 근처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경찰은 귀찮은 듯 이미 범인은 도망쳤으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보라고 말한다. 이후로 아까끼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까끼가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어떤 최후를 맞이하고, 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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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까끼는 전형적인 '작은 인간'이다. 스스로 고립된 채 살아가며, 자기만의 세상 안에서만 살아가려 한다. 직장 상사가 서류 정서 작업을 성실히 하는 모습을 보고 약간 다른 일을 하는, 조금 높은 직급으로 승진시켜줘도 아까끼는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원래 정서하는 역할로 돌아간다. 이런 아까끼의 작은 모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하고, 누군가 괴롭혀도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러다가 괴롭힘이 너무 심하면 슬픈 목소리로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라고만 말할 뿐이다. 여기서 이 작은 인간을 향한 연민과 슬픔을 고골은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게 결정적으로 내가 <외투>를 좋아하게 된 이유다.


그 밖에도 <외투>에서는 당시 러시아 관료 사회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외투를 잃은 아까끼가 높은 사람들을 찾아가 제발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아까끼를 돕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을 과시하며 내쫓는다. 이는 당시 러시아의 경직된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관료 집단의 무능함과 허영심이 그러한데, <외투>뿐만 아니라 고골의 전반적인 작품에선 관료제의 폐단이 나온다. 아마 현직 공무원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 후반부에 죽은 아까끼가 유령이 된다는 식의 내용은 고골 특유의 환상적 느낌을 주고 있어 좋았다. 앞서 페테르부르크가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낯선 존재이자 비현실적인 곳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고골은 이런 점에서 중간에 환상적인 설정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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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광인 일기>이다. 말 그대로 미쳐버린 사람이 쓴 일기인데, 후반부에 갈수록 공포소설과도 같은 충격을 준다. 하급 관리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을 향한 증오 + 질투로 인해 점차 미쳐버린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스페인 황제라고 생각하는 망상에 빠지는 모습은 마찬가지로 환상에 미쳐버린 인간의 모습 그 자체이다. 자신은 결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얻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서 허영심 가득한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보여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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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앞뒤로 꽉 막힌 답답한 사회 앞에 선 자잘한 인간들의 파멸과 슬픔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이러한 현실을 풍자하는 것에 있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모르게 슬펐다. 괜히 고골의 작품을 '눈물로 가려진 웃음'이라고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고골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걸 추천한다.

농담이 도를 넘어 너무 지나치게 그의 팔을 건드리며 일을 방해하면, 그제서야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단어들과 목소리에는 어떤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연민의 정이 솟아나,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어 남들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조롱하던 어떤 젊은이는 갑자기 뭔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 젊은이는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한때는 유쾌하고 사교적인 사람들로만 여기고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도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멀어지게 되었다. - P59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에 젊은이는 이마가 벗겨진 작은 관리가 애처롭게 스며드는 말로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절절이 스며드는 애처로운 말속에서는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라는 또 다른 소리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가련한 젊은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그 후 평생 동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를, 누구나 알 만한 세련되고 품위 있고 명예로운 사람들조차 그 고상하고 점잖고 자랑스런 인품 뒤에 얼마나 잔인하고 무례한 면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알고서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 P59

그는 자신의 중요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예를 들자면, 부하 관리들로 하여금 자신이 출근할 때 층계까지 나와서 맞도록 한다든지,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직접 방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경비원을 통하도록 한다든지, 14급은 12급에게, 12급은 9급이나 아니면 다른 관등에게 각각 보고를 하여 그 끝에 자신에게 보고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중략) 심지어 어떤 9급은 조그만 부서의 책임을 맡게 되자, 칸막이로 된 자신의 방을 만들어 ‘집무실‘이라고 이름을 짓더니 문 앞에는 붉은 깃에 넥타이를 매고 방문객에게 문을 여닫아주는 안내원까지 세워둔 일이 있었다는데, 그 ‘집무실‘이라는 것도 보통 크기의 책상이 겨우 들어갈 만한 넓이였다고 한다. - P84

그가 가장 중요시하게 체계는 엄격함이었다. "엄격, 엄격, 또 엄격" (중략) 아랫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역시 엄격함이 드러나 거의 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나?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나? 누구 앞인지 아느냔 말일세" - P84

아, 하느님! 놈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가요! 내가 놈들에게 무엇을 했단 말인가요? 왜 나를 괴롭히는 건가요? 나 같은 가난뱅이한테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요?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그만 지쳐버렸고, 이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없다, 머리통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고, 눈앞이 핑핑 돈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바람처럼 질주하는 트로이카를 주세요. 자, 마부도 올라타라. 말방울을 울려라. 말도 힘차게 달려라. 나를 세상 끝까지 데려가 다오! 눈앞에서 하늘이 날아오른다. 멀리서 별이 반짝인다. 숲이 검은 나무와 달과 함께 달려나간다. 한쪽에는 바다가 있고 저 다른 쪽에는 이탈리아가 있다. 그리고 저쪽에는 러시아의 농가가 보인다. 저기 푸르게 보이는 것은 우리 집이 아닌가? - P134

창문가에 앉아 있는 것은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 이 가엾은 아들을 살려주세요! 이 아픈 머리통에 눈물이라도 한 방울 떨어뜨려주세요! 보세요, 그놈들이 당신의 아들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이 가엾은 고아를 당신의 가슴에 꼭 껴안아 주세요! 이 세상엔 당신의 아들이 기댈 곳이 없어요! 사람들이 괴롭혀요! 어머니!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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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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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읽었다. 보통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톨스토이' 할 때 <전쟁과 평과>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작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톨스토이 하면 그가 썼던 민담과 각종 단편들이 떠오른다. 오늘 읽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든가, <바보 이반>, <주인과 일꾼> 등등이 말이다. 그리고 이런 단편집이야말로 톨스토이의 사상을 짧고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을 모은 이 책을 완독한 결과, 역시나 감동적이었다. 특히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서는 눈물까지 흘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가난한 구두장이인 '세묜'이 어느 날 교회 성당 구석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고 쫓겨난 천사 '알렉세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알렉세이는 세묜과 같이 살면서 하느님이 말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세 가지 물음의 해답을 찾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늘로 승천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하는데,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내게 큰 울림을 줬다. 또한 알렉세이의 저 말은 인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을 저자인 톨스토이가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바보 이반>과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주인과 일꾼>, <항아리 알료사>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면, 저 작품들은 단순 명료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민중들을 소중히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문학 작품이라도 민중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백록> 이후의 톨스토이는 좀 더 민중적인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단편집들이다. 또한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호소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랐다. 때문에 대체로 톨스토이의 후기 작품들은 사랑이나 인류애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얘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죽음을 앞둔 톨스토이가 진리에 대해 고심한 결과이자, 마지막으로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자 했던 그의 믿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만약 톨스토이 사상의 진수를 보고 싶다면 장편도 좋지만, 단편들을 읽는 걸 추천한다. 또한 러시아 문학이 아직 낯설고, 문학에 대해서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에게도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강추드린다.


여담으로 민음사 판본을 읽으면서 톨스토이 단편집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민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그들의 언어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러시아 민중들은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존댓말은 수도에 사는 고위층이거나 높은 사람들의 집에서 시중드는 하인들만이 주로 썼고, 일반 시골 민중들은 누구에게나, 설령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 앞에서라도 반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민음사 판본에서는 이를 존중해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반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선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이런 섬세한 부분 덕분에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번역도 매끄러우니 개인적으로 민음사 판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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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인간이든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닌 사랑을 통해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내가 인간이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남자와 그의 아내 안에 사랑이 있었고 그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사랑했기 때문이다. 고아들이 살아남았던 것은 다른 이들이 그 아이들에 대해 숙고해서가 아니라 생판 남인 여자의 마음속에 사랑이 있었고 그녀가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생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숙고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난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기에 각 사람에게 스스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드러내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을 원하셨기에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드러내셨다. - P46

이제 난 깨달았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그저 스스로에 대한 염려 덕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는 자이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신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 P46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참된 예술‘과 ‘모조 예술‘을 구분하는 특징으로 ‘감염력‘을 꼽았다. ‘감염력‘의 핵심은 감상자가 예술 작품을 보며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그 작품을 만들어 낸 것 같은 느낌, 자신이 오랫동안 표현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것을 보는 듯한 느낌, 한마디로 예술가와 하나가 되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한 개인이 고독에서 벗어나 그 작품을 감상한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는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감염력을 통해 전달되어야 하는 내용은 신 앞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의식, 그리고 종교적이지 않더라도 세상의 만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담백한 일상적 감정들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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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적 인간
이즈쓰 도시히코 지음, 최용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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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주제는 너무너무 좋았지만 깊이가 그렇게 깊지 않다. 거기다 전체적으로 문장에 미사여구가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물론 저자가 젊었을 적에 썼던 글이고,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었으나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빠르고 가볍게 읽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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