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본질 세창클래식 21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지음, 이서규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이어바흐의 신작(?)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년 7월 28일 ~ 1804년 7월 28일)'는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자본론>을 쓴 것으로 유명한 '카를 마르크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포이어바흐는 자신만의 사상 - 즉 유물론적 시각으로 종교의 모순을 철저히 비판한다. <기독교의 본질(1841)>에선 기독교 깊숙한 곳에 숨겨진 인간 중심의 이기주의 사상을 폭로했으며,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1851)>에서는 원시적 종교부터 시작해 전반적인 종교가 사실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에서 비롯된, 인간의 무지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포이어바흐는 자신의 저서에서 공통적으로 종교란 결국엔 ‘인간 숭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초창기 종교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되었지만 문명이 발전해감에 따라 자연과 분리된 인간은 점차 자연이 아닌, 그 너머 피안의 세계에 있는 관념적인 '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인간 숭배가 나올 수 있단 말일까? 스스로를 희생하고 신에게 의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 숭배 행위이지 않을까? 하지만 포이어바흐는 자신의 <종교의 본질>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신을 '창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왜 종교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 숭배를 실현하는지를 설명한다.


포이어바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종교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초기 원시 종교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면서 만들어졌다. 무생물에 인간적 감성이 거의 없는 자연이 자신처럼 감정과 생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린다고 치자. 비는 단순히 구름 속에서 이루어진 여러 화학적 반응으로 인해 내린다. 여기엔 별다른 ‘인간적’ 의미가 없다. 구름이나 비는 딱히 의도를 가지고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따라 우울하거나 시적 심상이 강한 사람들은 이걸 보고 ‘비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내린다’거나, ‘하늘도 슬퍼서 눈물(비)를 흘리는구나’라고 말한다. 이렇듯 인간은 자연 현상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감동하거나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곤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게 진실이 아니라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이든 알라든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온갖 자연현상 역시 신이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종교적 특성이 인간의 상상에 불과할 뿐, 진리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봤다. 초창기 원시적인 인간은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먹을 것과 곡식을 주는 등 고마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천둥 번개를 비롯한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를 주는 무서운 존재였다. 예측 불가능하고 불가사의한 자연을 인간은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했고, 자기 자신을 투사하는 방식을 통해 자연을 이해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상의 것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없었기 때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곧 신에게도 이로우며,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신에게도 해롭다. 잘 생각해 보면 신은 우리처럼 입이나 장기 같은 신체 기관이 없는데 고대 사람들은 소나 다른 가축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이걸 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이외에도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신들은 모두 인간처럼 생겼다.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인간처럼 먹고 마신다. 기독교의 신도 마찬가지다. 야훼는 질투하고 진노한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종교에서의 신은 인간과 다른 존재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인간 같다. 포이어바흐는 모든 종교는 자연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상상(투사)에 기초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허구이며, 이러한 신 안에 있는 인간적 특성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간 숭배 행위라 말한다.


하지만 포이어바흐가 경고한 것은 단순히 종교의 본질이 인간 숭배 행위라는 사실뿐만 아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숭배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또는 일부로 모른 채 하며) 자꾸만 허상의 신에 매달리는 행동이다. 특히 관념적인 신에 매몰되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인식한 '인간적인 자연' 또는 '인간적인 신'은 허구이며 보편적 진리가 아닌, 전적으로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인간 중심적인 종교관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신들은 현실 속 실존하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관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인간의 추상적인 상상에만 의존하므로) 이에 매몰될 경우 현실 세계와 동떨어지는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 있기에 인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있기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신을 통해 죽지 않은 영원함과 무한성을 바라지만 돌아오는 건 신의 침묵과 몇십 년 후 다가올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냉혹한 포이어바흐의 주장에도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처럼 하나의 '희망'이 남아있다. 다름 아닌 '사랑'이다. 포이어바흐가 종교를 비판한 건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종교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다. 그는 종교가 헛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러한 종교가 '인간'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신이 아닌 '인간'을 사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것도 현실에 존재하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 역시 추상적이라 훗날 마르크스를 비롯해 다른 철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지만, 종교적인 시선이 아닌 유물론적인 시각으로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는 크다. 유물론 철학이나 마르크스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인이지만 따끔한 충고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고픈 책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와 같은 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종교의 본질>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보다 일찍 나온 책으로, 구성이나 내용도 다르다. 뭔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초기 원고 같았달까. 구성 자체도 뭔가 명언집 같아서 좋았다.

인간의 본질 또는 신 -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인데 - 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존재, 즉 인간적인 본질, 인간적인 성질, 인간적인 개성이 없는 존재는 실제로는 자연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종교에서의 인간의 악의 없는, 무의식적인 자기 기만은 자연종교에서는 하나의 분명한,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인간은 그의 종교적인 대상들에게 눈과 귀를 달아 주고, 이러한 눈과 귀가 인위적인, 돌처럼 차갑고 어설픈 눈과 귀들이라는 점을 알고 목격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제적인 눈과 귀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종교에서 보지 않기 위해, 완전히 눈을 멀기 위해 눈을 가지며, 사유하지 않기 위해, 매우 아둔하고 어리석어지기 위해 이성을 가진다. 자연종교는 표상과 현실성, 상상과 사실 사이의 명백한 모순이다. 현실에서 죽은 돌이나 통나무는 자연종교의 표상 속에서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가시적으로는 신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지만, 비가시적으로는, 즉 신앙에 의해서는 하나의 신이다. - P80

그 대신에 성실하고 겸손하게, 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나는 근거를 알지 못한다. 나는 나에게 자료, 재료가 없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 생각의 이러한 결핍, 이러한 부정, 이러한 공허를 상상을 통해 실재적인 존재, 비물질적인 존재들, 즉 물질적이지 않고, 자연적이지 않은 존재들인 그러한 존재들로 변형시킨다. 왜냐하면 당신은 물질적인, 자연적인 원인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80

세계는 우리에게 사유를 통해, 적어도 형이상학적이고 초물리적인, 실제적인 세계를 추상화하는, 이러한 추상 속에서 그의 참되고, 최고의 존재를 정립하는 사유를 통해 주어지지는 않는다. 세계는 삶을 통해, 직관을 통해,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추상적인, 단지 사유하는 존재를 위해서는 어떠한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재는 결코 눈, 온기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존재는 감정을 갖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존재는 세계를 위한 어떠한 기관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존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P56

따라서 신은 그를 숭배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인간을 전제로 한다. 신은 그 개념이나 표상이 자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인간에 의존하는 존재이다. 기도의 대상은 기도하는 존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신은 그 존재가 오직 종교의 존재와 함께, 그 본질이 오직 종교의 본질과 함께 주어져 있는 대상이며, 따라서 이러한 대상은 종교의 외부에 있지 않고, 종교와 구분되지 않으며, 종교에 의존하고, 이러한 대상 속에서는 종교에서 주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 이상의 것이 객관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 P130

자연 속에서 자연 자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나타나며, 자연은 그와 다른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고 지배를 받는다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유령들, 악령들, 악마들이 적어도 일정한 상황에서 인간을 통해 나타나고, 인간을 홀린다는 믿음과 같은 것이며, 실제로 자연이 어떤 낯선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사로잡혀 있다는 믿음이다. 무론 또한 실제로 이러한 믿음의 입장에서는 자연이 어떤 정신에 의해 사로잡혀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정신은 자연을 자신의 존재와 상징과 거울로 만드는 인간의 정신, 인간의 상상, 무의식적으로 자연 속에 스스로 집어넣는 인간의 심정이다.

"당신의 마음처럼, 그렇게 당신의 신이 존재한다"

인간이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간의 신들이 존재한다.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만과 편견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8
제인 오스틴 지음, 김지선 옮김 / 빛소굴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득>과 <노생거 수도원>에 이어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의 <오만과 편견>이다. 사실상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오만한 '다아시'와 그런 그를 편견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 '엘리자베스'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가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게 된 계기는 영화 <오만과 편견(2005)> 때문이었다. 워낙 인상 깊었던 영화였기에 원작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완독한 결과, 최고였다! 로맨스 소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1인으로서 과연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괜한 기우였다. 사실상 <오만과 편견> 덕에 제인 오스틴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은 <오만과 편견> 소설을 다시 읽고 난 후기다. 다시 한번 그때의 감동을 느끼고 싶어 재독한 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오만과 편견>은 내게 큰 감동을 줬다.



내가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특유의 '풍자'였다. 아시다시피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굉장히 촘촘하고 절제된 문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작품을 출간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글을 몇 번이나 검토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완벽에 가깝다. 보통 이런 경우 자칫 소설이 지루해지기 쉽지만, 어째서인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지루하지가 않다! 오히려 흥미진진하기 느껴지는데, 이는 앞서 말한 문장 곳곳에 숨겨져 있는 '풍자'와 '위트' 덕분이다. 작중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나 행동들에는 은근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돌려까는(?) 묘사가 상당하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울상이겠지만 이걸 보는 제3자인 독자로선 쾌감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런 능숙한 돌려까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오만과 편견> 속 여주 '엘리자베스(리지)'이다.



리지는 자기를 험담한 다아시를 편견을 가지고 본다. 그가 상대할 가치가 없는 남자라 여긴 것이다. 때문에 작중 리지는 숨 쉬듯이 다아시를 까는데, 선을 넘을 듯 말 듯 돌려까는 게 아주 일품이다. 이는 저자인 제인 오스틴의 풍자 실력이 장난 아님을 보여분다. 물론 결말에 가서는 리지의 풍자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다아시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이러한 풍자와 비꼬는 태도는 당시 상류 사회의 가식적인 면을 타파하고 정면돌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아시가 리지에게 반하게 된 것도 이러한 점 - 가식적인 면 없이 적절한 재치로 하는 위트 때문이지 않는가.


그러나 <오만과 편견>이 단순히 리지가 다아시를 농락(?) 하는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반드시 한 번은 등장인물들끼리 진지하게 대화(토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만과 편견>에서도 다아시와 리지가 대화를 가장한 토론을 한다. 주제는 '볼일이 있어 떠나려는 자기를 친구가 가지 말라고 부탁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빙리와 리지는 친구가 그렇게 말하니까 잠시 떠나는 걸 보류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다아시는 아무리 친구라 해도 정해진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다아시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던 리지는 그가 사람 간의 우정이나 애정을 믿지 않는 것 같다고 쏘아붙인다. 실제론 mbti의 P와 J의 싸움처럼 단순한 성향 차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런 대화는 두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리지가 다아시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토론을 한다는 점에서 제인 오스틴은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지식이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오만과 편견>은 당시의 '세속적인 결혼'을 비판하고 있다. 작중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결혼한다. 첫 번째로는 리지의 친구인 '샬럿'이다. 그녀는 허영심 많고 아첨쟁이인 '콜린스 씨'와 결혼한다. 리지는 진작에 콜린스 씨의 사람됨을 간파하고 그의 청혼을 거절하지만 샬럿은 그럼에도 콜린스 씨와 결혼한다. 왜 그런 걸까? 사실 샬롯의 목표는 '결혼' 그 자체였다. 샬럿 왈, 자기처럼 미혼인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인 독립을 하려면 반드시 결혼(남편)이 필요하다는 거다. 실제로 샬럿은 애정(사랑)은 결혼 이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라며 제1의 목표를 결혼이라 여긴다. 콜린스 씨 역시 '캐서린 영부인'의 권고 + 목사라는 사회적인 지위에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집착하는 거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무척 현실적인 모습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샬럿의 선택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는 인생을 고른 것이다. 밋밋한 삶, 인류가 지난 몇 천, 몇 백 년 동안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거다. 여기엔 한 사람의 개인(인간)으로서 '샬롯'은 없고, 사회적이고 인류로서의 '샬롯'이 있을 뿐이다. 내가 봤을 땐 샬롯의 선택은 잘못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샬롯의 결혼은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당시의 전형적인 결혼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앞선 샬롯의 결혼과는 정반대로, 서로의 감정에만 쏠린 나머지 했던 충동적인 결혼이다. 분별없는 결혼인 거다. 엄밀히 말하자면 리디아 쪽에서만 분별없는 결혼이고, 돈을 보고 결혼한 위컴은 마찬가지로 '결혼=돈'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세속적인 결혼관을 보여준다(위컴이 다아시에게 결혼하는 대가로 돈 흥정을 했던 걸 생각해 보라!). 그리고 당연히 두 사람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는다.

반면에 제인과 빙리, 리지와 다아시는 세속적인 결혼이 아닌 서로에 대한 애정만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처음엔 다아시도 집안 운운하며 리지에게 청혼하지만 이런 무례하고 세속적인 면에 질린 리지는 대차게 거절한다. 아마 이때 다아시는 리지의 거절에서 자신의 오만함을 되돌아본 건 물론이고 리지가 여느 사람들처럼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덕 좀 보려는, 세속적인 결혼을 원하는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이후로 다아시가 리지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준 것도 결혼보다 애정을 중요시하는 리지의 생각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훌륭한 글솜씨와 재치, 그리고 명확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로맨스 소설 같지만 실상은 세속적 결혼에 얽매여 있던 당시 여성들의 삶과 투쟁(반항)을 다루고 있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전히 다아시 쪽에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결혼은 재산이나 명예 등등을 떠나 서로 동등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드리는 바이다!

돈 많은 미혼남에게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진리다.

"춤추실 때는 항상 그렇게 규칙에 따라 말씀하십니까?"

"그럴 때도 있죠. 조금이라도 말을 하긴 해야 하니까요. 반 시간 동안 같이 춤을 추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이상해 보일 거 아니에요. 하지만 말하는 게 싫은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말을 덜 해도 되게 배려하는 게 좋겠죠."

"지금 같은 경우는 본인을 배려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저를 배려하시려는 건가요?"

"양쪽 다예요." 엘리자베스가 짓궂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엔 다아시 씨와 제 취향이 무척 비슷한 것 같거든요. 둘 다 비사교적이고,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 말을 했다 하면 적어도 이 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조리 감탄하고,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줄 명언 정도가 아니면 적성이 안 풀리죠." - P113

"친구의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다는 건 장점일 수도 있잖아요."

"친구의 부탁이라고 무조건 선뜻 받아들인다면 그건 양측 다 생각이 좀 모자란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보기엔 다아시 씨는 우정이나 애정의 힘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시나 봐요.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부탁을 하면 꼭 그 이유를 들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들어줄 수도 있잖아요. 이건 다아시 씨가 아까 예를 들어 말했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쩌면 빙리 씨 행동이 신중한지 어떤지 하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바꿔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수락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한 걸까요?"

(중략)

"틀림없이 그 두 사람(위컴과 다아시) 교육에 뭔가 엄청난 잘못이 있었나 봐. 한 사람은 속 내용만 선량하고(다아시), 다른 사람은 겉모양만 선량하니 말이야(위컴)." - P267

콜린스 씨는 분명히 총명한 사람도 자상한 사람도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지루했고, 그가 자신에게 가진 애정이라는 것도 그저 머릿속 생각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남편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샬럿은 남자나 혼인 관계 자체를 딱히 중시했다기보다는 결혼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교양은 있지만 재산은 없는 아가씨가 명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결혼뿐이었고,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해도 궁핍하지 않은 생활만은 보장했다. 미인이었단 적이 한 번도 없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로서, 샬럿은 마침내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확보했으니 그만하면 무척 운이 좋다고 여겼다. - P151

"내 딸과 조카는 천생연분이야. 두 사람 다 모친 쪽은 귀족 가문이고, 부친 쪽은 작위는 없지만 훌륭하고 명예로우며 유서 깊은 가문이지. 양가 모두 재력도 빠지지 않고, 양쪽 집안사람들이 전부 나서서 두 사람을 맺어주려 하는데, 그걸 자네가 무슨 수로 갈라놓겠다는 건가? 집안도 친척도 재산도, 어디 한 군데 봐줄 데 없는 젊은 여자가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고. 이걸 그냥 두고 보란 말인가! 어림없고말고. 뭐가 자기한테 이로운지 제대로 안다면 아가씨가 살아온 물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아."

"영부인의 조카와 결혼한다고 해서 제가 그 물을 벗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은 신사고, 저는 신사의 딸이니까요. 그 점에서 저는 그분과 동등해요." - P415

"그럼 앞으로 약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절대로 그런 확답은 못 드립니다. 위협을 좀 당했다고 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할 수는 없죠. 영부인께서는 다아시 씨가 따님과 결혼하기를 원하시겠지만, 원하시는 대로 제가 약속한다고 해서 그 두 분이 결혼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나요? 그분이 절 사랑한다면 제게 거절당했다고 조카 분한테 청혼하고 싶어질 리가 없잖아요? 외람되오나, 캐서린 영부인, 이런 부탁 자체가 워낙 말이 안 되지만, 그처럼 말이 안 되는 부탁을 뒷받침하는 논거도 그만큼 말이 안 되네요. 그런 식으로 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저를 아주 잘못 보셨어요. 평소 조카 분의 일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시는지는 제가 모르겠네요. 하지만 분명히 제 일에 관여할 권리는 없으십니다. 그러니 이 일로 부디 더는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 P41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meday1120zz 2026-03-0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듣고 있는데^^
 
노생거 수도원 펭귄클래식 8
제인 오스틴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지난번 <설득>에 이어서 읽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의 <노생거 수도원>이다. <설득>에서 여주인공 '앤'이 가족들과 함께 '바스'라는 곳으로 이사 가는데, <노생거 수도원>의 배경도 마침 바스여서 한 번 읽어봤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무슨 수녀나 수도사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노생거 수도원> 역시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의 사랑과 성장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 '캐서린 몰런드'는 이제 막 18살이 된 아가씨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천방지축에 당시 여성들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우아함이나 차분함이 부족했다. 대신에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생각해 내는 등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가까운 지인이자 친척이었던 '앨런 부부'를 따라 '바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바스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처음에 캐서린은 크게 실망한다. 그러다가 무도회에서 '헨리 틸니'라는 신사와 만나는데, 틸니는 바스에 처음 온 캐서린을 친절히 대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캐서린은 헨리에게 반한다. 틸니 이외에도 캐서린은 앨런 부인의 옛 지인인 '소프 부인'과 만나고, 부인의 딸인 '이자벨라'와 아들인 '소프 씨'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특히 이자벨라와는 친구가 되는데, 사실 이자벨라는 그전부터 캐서린의 오빠와 썸(?)을 타고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순수한 캐서린은 이자벨라의 우정에 감격하지만 정작 이자벨라를 포함해 소프 씨는 그녀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겉으로는 캐서린을 생각해 주는 척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길 것을 강요한다. 이때 캐서린 눈앞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헨리 틸니가 등장하고, 상황이 크게 바뀌는데....


<노생거 수도원>은 밝고 순수한 캐서린이 사회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겪는 고난과 행복을 다루고 있다. 초반부에는 앞서 말한 사회와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후반부에서는 헨리 틸리를 따라 그가 사는 노생거 수도원에 가게 되면서 겪는 사건 사고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반부를 재밌게 읽었다. 뭔가 사회 초년생이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되는 마음 고생을 보는 것 같았달까. 작중 순진한 캐서린이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의 말속에 담긴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헨리도 지적했듯이 캐서린은 사람의 이중적인 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순수한 만큼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거다.

그리고 이런 순진한 캐서린의 마음을 악용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자벨라와 소프 씨 남매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제3자인 내가 봐도 '불쾌할' 정도로 이중적인 모습으로 캐서린을 쥐락펴락한다(자기 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 없으면 버림 ㅇㅇ). 장담하건대 캐서린처럼 처음 사회생활했을 때 크게 데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 상황에 PTSD가 와서 책상 뒤엎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행히 캐서린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 + 틸니 남매의 도움으로 점차 성장해 이들의 계략을 뿌리친다.

결과적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하긴 했지만 남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약간의 백치미(?)마저 느껴지는 캐서린은 모습은, 지금까지 나온 제인 오스틴의 다른 여주인공들과 확연히 다르다. 아시다시피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상대방의 의중을 재빠르게 간파하는 건 물론이고, 능숙한 말솜씨로 은근히 돌려까는데 선수이다. <설득>의 '앤'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신랄하지는 않지만 상황 파악을 하면서 눈치껏 적절하게 행동한다. 심지어 <이성과 감성> 속 감성적인 '메리앤'도 주변 눈치는 볼 줄 안다. 하지만 캐서린은 이들과 비교하면 그런 능력이 조금 떨어져보인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캐서린이 너무 미성숙하다며 꺼려 하지만 내 생각엔 바로 이런 점이 저자인 제인 오스틴이 생각했던 바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엘리자베스나 앤, 메리앤도 처음에는 캐서린처럼 무척 순수했을거다. 그러다가 사회적 현실과 '사교'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캐서린'은 제인 오스틴이 창조한 캐릭터 중에서 사실상 '첫 번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캐서린을 보면서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캐릭터의 가장 초창기 모습을 보는 거다. 실제로 <노생거 수도원>은 제인 오스틴이 어렸을 때(초창기 때) 썼던 습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죽기 직전까지 수정을 거쳐 사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할 말 다했다고 본다.


다만, 읽으면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는 후반부에 틸니 남매가 사는 노생거 수도원에 방문한 캐서린이 고딕 소설에 과몰입하는 장면이었다. 당시엔 고딕소설이 인기였을지 몰라도 관련 지식이 1도 없는 나로서는 캐서린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내가 아는 거라곤 그나마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뿐이었음...). 초반부엔 캐서린의 성장을 다루는 것 같았는데 뜬금없이 고딕 얘기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조금 황당했다. 물론 이전에도 캐서린이 소설을 자주 읽는다는 묘사가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과몰입을 할 줄이야!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헨리 틸니라는 캐릭터와 급격하게 끝난 결말이었다. 작중 헨리는 굉장히 장난스러운 인물로 나온다. 순진해서 어벙하게 있는 캐서린을 놀리면서도 그녀의 서투른 면을 이해해 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이런 점 때문에 캐서린은 헨리에게 푹 빠지게 되는데 솔직히 나는 헨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취향 문제가 아니라 헨리의 하는 말이나 태도가 영 찜찜했다. 본인은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서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캐서린을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이고, 여성들에 대해선 배려만 하지 그 외에는 딱히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무슨 사상가나 혁명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뭐랄까, 약간 자뻑(?)이 심한 사람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급박하게 끝나서 두 사람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작중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1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면 좀.... 물론 당시엔 긴 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튼, 개인적으로 헨리 틸니는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서 그저 그런, 밍밍한 남주였다^^;;;

결론적으로 <노생거 사원>은 미숙했던 캐서린이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다룬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선 보지 못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니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시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진지함이나 완벽성 면에선 아쉽기 때문에 유의하시길 바란다!


헨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남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그다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군요"

"왜요?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은 사람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 것 같은가, 그리고 어떤 사람의 감정, 나이, 상황, 존경받는 생활 습관에 작용하는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점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다시 말해, 그것은 나는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는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데 나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같은 의문들이죠"

(중략)

겉으로는 이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것을 바라는 이유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남들이 어떻게 그 속을 알 수 있단 말인가? - P176

소프 씨가 혼자 쏟아내는 이야기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났다. (중략) 캐서린은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으며, 남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전반적인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프 씨가 끝없이 뿜어내는 장황한 자기 자랑을 참고 들으려니, 이 사람이 정말로 괜찮은 남자인가라는 의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 P93

내가 남자답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군요. 내 머리의 영리함뿐만 아니라 내 영혼의 관대함을 입증함으로써 말이에요. 난 남자들 중에서 여성들의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무시하면서 경멸하는 자들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요. 물론 여자들의 능력이 충분하지도 예리하지도 않을 수 있어요. 혹은 열성적이지도 않고 예민하지도 않을 수 있고요. 그렇지만 여자들이 관찰력, 분별력, 판단력, 재능, 재치, 발랄한 상상력을 갖고 싶어 할 수는 있거든요. (중략) 몰런드 양, 나보다 여성의 이해력에 관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 생각에 여자들은 엄청난 이해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평생 자기 이해력의 절반도 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 P1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8
제인 오스틴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득>은 우리에게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이 쓴 '6대 장편소설' 중 한 권이다. 1815년에 집필했고 저자 사후인 1818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사실상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을 장식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과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라는 평이 많아 궁금증이 들었다. 그렇게 완독한 결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언컨대 <설득>은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서 성숙미가 최고인 작품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앤'이 그랬다.

앤은 준남작인 '월터 경'의 둘째 딸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언니 '엘리자베스'와 살고 있었지만(여동생 '메리'는 일찍 결혼해서 출가함), 집안사람들 중에서 누구도 앤을 존중하지 않는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였다. '준남작'이라는 지위에 집착하며 허영심 가득한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 앤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돌리는 것이었다. 반면에 월터 경의 지인인 '레이디 러셀' 부인은 유일하게 앤의 진가를 알아보고 아낀다. 그러던 어느 날, 19살이 된 앤은 23살의 젊은 청년 '웬트워스'와 사랑에 빠진다. 유순한 앤과 달리 웬트워스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는데, 서로의 매력에 푹 빠져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 웬트워스는 해군에 입대한지 얼마 안 되었고, 별다른 지위나 재산도 없어서 앤의 아버지인 월터 경은 두 사람의 사이를 반대했다. 심지어 레이디 러셀 부인도 성급한 결혼이라며 앤을 '설득'했고, 결국 이에 넘어간 앤은 웬트워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만다.


그 모습에 실망한 웬트워스는 앤의 곁을 떠나고, 이후로 앤은 장장 8년 동안(!) 그 일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사실 앤도 웬트워스와 함께라면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나갈 각오가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만류에 휩쓸려 그만 거절을 한 것이었다. 이제 앤은 28살 노처녀(당시 기준에선 노처녀임 ㅠㅜ)가 되었다. 그동안 다른 남자가 청혼도 했지만 웬트워스 생각에 거절하고 줄곧 독신으로 살던 때에, 웬트워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때 앤의 집안은 아버지의 지나친 사치로 인해 원래 살던 저택에 세를 놓고 '바스'로 이사를 가던 중이었다. 다만 앤은 '머스그로브 씨' 가족에게 시집간 여동생 메리의 병간호를 위해 근처 머스그로브 씨의 저택에 남아있었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곳에서 웬트워스와 재회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웬트워스는 8년 동안 해군에 있으면서 많은 공을 세워 '대령'이 되었고, 상당한 부자가 되어 있었다.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신랑감으로서 맞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누구나 탐내는 1등 신랑감이 된 것이다!


메리를 포함한(당시 메리는 시집가서 앤과 웬트워스와 있었던 일을 모름)머스그로브 씨의 가족들은 이런 웬트워스 대령을 좋아하지만 앤은 슬퍼한다. 단순히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 예전에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기보다는 남의 설득에 휘말려 웬트워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웬트워스가 자기한테 호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내심 기대한다. 하지만 웬트워스 대령은 앤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머스그로브 씨의 딸들과 친하게 지낸다. 이에 앤이 반쯤 체념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퍼서 보는 내가 다 마음 아팠다.


그러나 앤의 태도는 마냥 슬퍼한다기보다는 실연의 슬픔에도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해가며 성찰해가는 모습에 가깝다. 한 마디로 실연 때문에 질질 짜거나 한탄만 하는 사람이 아닌 거다(외유내강형). 내가 이 작품을 성숙미가 있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앤의 모습 때문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리지(엘리자베스)'처럼 톡톡 튀고 활발한 사람은 아니지만 조용히 고통을 감내하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캐릭터랄까. 더욱이 앤은 나중에 웬트워스 대령도 인정했듯이 여느 여성들과 달리 지성과 탁월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19살 때는 레이디 러셀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당했던 처지였으나 28살이 된 지금의 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설득하기도 한다. 잘 보면 머스그로브 식구들도 그렇고 앤에게 많이 의지한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도 그렇고, 마지막 2~3장(챕터)에서 사랑에 대한 남녀의 태도를 말하는 장면에선 앤이 얼마나 현명한지 알 수 있다. 거기다 남녀 간의 구분이 심했던 당시에 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술술 말하는 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성도 남성들처럼 진지하게 대화하고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달까.


이외에도 앤과 웬트워스 대령과의 로맨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앞서 웬트워스 대령은 8년 전 사건 때문에 배신감을 느껴 앤 앞에서 다른 여성들과 어울리지만 그럼에도 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 같이 산책을 하던 중에 앤이 힘들어하자 마침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누나 부부에게 몰래 귀띔해서 마차에 태워 집까지 가도록 해준다든지, 파티를 벌이는 와중에도 앤이 있는 근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든지, 그리고 앤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얼굴에 생기를 띄자(밝아지자) 흐뭇해하면서 바라본다. 그 밖에도 앤을 향한 소소한 배려가 은근 설레게 한다. 거기에 알게 모르게 두근거리는 앤의 반응도 귀엽다!


결론적으로 <설득>은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 중에서 제일 성숙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현실적인 면 때문에 남의 말에 '설득' 당하고, 그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는 앤의 모습을 통해 결혼 문제에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의 슬픔을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앤과 웬트워스 대령의 사랑이라는 로맨스에 싸여있어도 그 속을 벗기면 사회적 현실(구시대적인 귀족이 몰락하고 해군을 비롯한 새로운 계층이 부상하던 시대)과 여성의 위치,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 있기 때문에 꼭 한번은 읽어봤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이 말한 소설의 힘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추가로, 제목이 '설득'이고, 앤이 레이디 러셀 부인의 설득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레이디 러셀 부인이 악인이라거나, 설득 자체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말 부분에서 앤은 자기가 설득당한 일을 후회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디 러셀 부인이 했던 설득 자체는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레이디 러셀 부인이 했던 설득은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이었지만 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것에 가깝다. 현실적으로 보면 앤이 무일푼이었던 웬트워스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 무모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작중에선 '설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레이디 러셀 부인이 했던 설득뿐만 아니라 찰스가 메리에게, 앤이 메리에게, 웬트워스가 루이자에게 등등 다른 수많은 인물들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장면도 많다. 개중엔 앤의 사례처럼 설득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타인의 설득에 대한 자신의 '선택' 아닐까. 본인이 어떤 판단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설득당할 때 결과가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앤의 겨우는 아버지나 큰딸에게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총명하고 상냥해서 조금만 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한 존재로 여겼을 텐데 말이다. 앤의 말은 언제나 무시되었고,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편리를 양보할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녀는 그냥 앤일뿐이었다. - P11

지금의 앤 엘리엇은 젊은 시절에 강렬한 사랑을 하게 된 사람들에게 노력을 모욕하고 섭리를 불신하면서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는 그런 조심성보다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 신뢰를 가지라고, 그편이 훨씬 낫다고 열렬하게, 진정 열렬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신중을 강요당했던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로맨스에 대해서, 그러니까 서투른 시작의 자연스러운 결론에 대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 - P47

더 나쁜 것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의지가 박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성격이 과단성 있고, 자신만만한 웬트워스로서는 그런 박약한 의지를 참아 주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를 포기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나친 설득의 결과였고 결점이자 소심함의 표현이었다. - P93

하빌 대령 : 여자의 변덕스러움을 말하지 않은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노래와 속담도 모두 여자의 변덕을 이야기하죠. 하지만 당신은 그게 다 남자가 쓴 거라고 하겠지요.



앤 : 맞아요. 책에 쓰인 사례는 들지 마세요. 남자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에요. 남자들이 훨씬 수준 높고 교육을 받고 손에 펜을 쥐고 있었잖아요. 책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요. (중략) 그런 문제에 관해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견해의 차이이고 증명이 불가능한 문제예요.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의 성에 관해 편파적인 견해를 갖고 논의를 시작해서 그 기초 위에 주변에서 일어난 우호적인 예들을 모두 쌓을 테지요. - P339

앤은 사람들의 눈에 확 띌 만큼 건강미가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듯하고 어여쁜 이목구비가 미풍을 받은 덕분에 젊음을 되찾고 청순하게 활짝 피어났으며, 눈도 그 미풍 덕인 듯 생기가 넘치면서 총기를 빛냈다. (중략) 웬트워스 대령도 곧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도 그 낯선 신사가 그녀에게 보내는 경탄의 눈길을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일시적으로나마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저 남자가 당신에게 반했군. 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나 역시 당신에게서 과거 앤 엘리엇과 비슷한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있소‘라고 말하는 듯했다. - P156

소설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힘이 표현됩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완벽한 지식,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가장 훌륭한 묘사, 재치와 유머의 가장 활력 있는 토로가 최고로 정제된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 P374

제가 한때 설득당했던 게 잘못이었다 해도, 그건 무모한 짓을 부추기는 설득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설득이라는 걸 기억하셨어야지요. - P3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테 21
오쿠보 케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