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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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는 젊은 시절에 비디오 가게에 근무하면서 숱하게 봤던 싸구려 B급 영화들을 인용하여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감독으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성향 덕분에 미국 영화계에서 덕질로 가장 성공한 영화 오타쿠’, 'B급인척 하는 S급 영화 감독' 으로 불린다. 그의 특징이라면 극단적인 폭력성, B급 성향, 찰진 대사, 과거 영화에 대한 오마주, 탁월한 음악 선곡 능력 등이 꼽히며, 이 외에도 극단적 성향 캐릭터의 충돌, 장황하지만 시시껄렁한 대사, 긴박감 넘치는 전개와 비선형적 서사 구조 등이 있다.

 

바스터즈, 저수지의 개들, 킬 빌, 헤이트풀 8, 쟝고 등 타란티노의 영화 대부분이 재미를 선사하는 요소는 질리지 않는 소재, 즉 통쾌하고 유혈 낭자한 복수에 있다. 나치의 머리 가죽을 벗겨 이마에 철 십자를 새기고, 이미 외눈박이인 상대의 눈알을 마저 뽑아 으깨고, 아예 폭발물로 몸통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폭력 한 가지만 놓고 보면 상당히 께름칙하지만 대개 폭력을 당하는 이는 만렙 악당이다.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는데 관객은 환호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와 대상을 철저히 희화하기 때문이다.


사실 타란티노의 첫 소설이자 이론적으로는 같은 제목의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인 이 책을 어떻게 평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영화에 대한 동반 작품이 아닌 이상 별반 효과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영화의 필사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역할을 하는 챕터가 몇 개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전혀 나오지 않으며, 영화가 끝난 후 등장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긴 부분에서 지나가는 대화로만 언급되는 방식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절정 부분이 책의 마지막이 아니라 4분의 1 정도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 기존의 영화에 대한 재구성이나 삭제된 장면에 양념을 치는 듯한 소설화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하리란 뜻이다.

 

대신, 타란티노는 시간을 앞뒤로 넘나들며 다양한 시점을 통해 릭 달튼이 랜서 파일럿을 촬영하던 당시의 느슨한 흐름을 따라 훨씬 더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펼쳐낸다. 브래드 피트의 클리프 부스에 대한 많은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타란티노는 종종 캐릭터를 둘러싼 모든 언어 외적인 의미를 말로 표현한다. 종종 브래드 피트의 간결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조화시키기가 조금 더 어렵거나 더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달튼의 경력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아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 밖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샤론 테이트가 할리우드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맨슨 가족과 함께한 푸시캣의 초기 경험도 볼 수 있다. 타란티노가 영화를 시작하기 전 염두에 두었던 더 큰 세계와 배경에 대한 감각을 통해 그가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 이야기를 구상하는 방법 등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상당히 목적이 없고 느슨하며, 토끼 굴을 헤매며 시간을 표류하는, 매우 느슨한 의미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맨슨 가문이라는 줄거리가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샤론 테이트의 일부 장면이 흥미롭기는 하다. 그녀 역시 릭과 클리프처럼 타란티노를 사로잡지 못하는 줄거리 흐름처럼 느껴지는 등 몇 가지 문제를 강조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단순히 왔다가 사라진 할리우드 시대, 즉 이 시점에서 이미 사라지고 있었지만 끔찍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더욱 밀려난 시대에 어울리고 싶은 욕망이다.

 

클리프가 일본 영화를 처음 접하고 방황하거나, 릭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폭발적인 성장과 씨름하고, 노배우들이 한때 알고 지냈던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당대의 중심인물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원초적 욕구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역사 속 이름과 인물을 삭제하는 것을 허용한다. 알도 레이의 고통스러운 몰락이나 배역을 얻지 못한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동료 배우들 간의 대화와 한 장면에 불과한 예상치 못한 마지막 장까지, 영화의 힘과 연기의 기술에 대한 연애편지로 느껴질 정도로 타란티노에게는 기대 이상의 더 많은 진심이 담겨 있다.

 

소설로서의 이 책은 분명 미진한 부분이 많다. 랜서의 줄거리를 기본적으로 소설화하기로 한 타란티노의 선택은 깔끔한 아이디어이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맨슨 장면은 완전히 엉성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지며, 이는 영화의 결말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선택으로 인해 더욱 악화될 뿐이다. 그 외에도 타란티노가 기본적으로 액션이나 장면을 필사할 때마다 대화의 속성은 밋밋하고, 묘사는 거칠고, 산문은 너무 기능적이라는 등 작가로서 그의 약점을 잘 드러낸다. 캐릭터의 마음을 묘사한다거나 영화관을 바라본다거나 자신의 창작물을 농담으로 풀어낼 때면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소설가가 그의 전업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 책은 나름의 읽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구성은 자갈밭처럼 거칠고 내용은 마구 얽혀 있고 몇 가지 약점도 보인다. 그러나 1969년 할리우드의 정치와 스크린 규칙에 빠져들거나, 펄프 웨스턴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상기하거나, 클리프와 릭 같은 캐릭터가 더 살이 붙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볼 때 타란티노의 예술적 흥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저랑 같이 놀러 갑시다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문자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보다 이 책이 필수인가? 영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 심지어 소설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이 동반 작품으로서의 매력을 지녔고 타란티노가 항상 보여줬던 영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애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만큼은 마음에 든다.

 

<보너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마지막 결투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TBEvEsv1OeE

 

릭의 집 안으로 침입하는 히피들. 그런데 그 사이 LSD 담배에 취한 상태인 클리프가 브랜디와의 산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클리프는 처음에는 히피들에게 '너네 진짜냐?(You are real right?)'라고 환각인지 아닌지를 묻지만 곧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클리프는 침입자 셋이 모두 스판 영화 농장에서 봤었던 패거리들임을 기억해 낸다. 권총을 겨눈 텍스와 뒷문으로 들어온 새디가 클리프를 포위하고, 집시는 방에서 잠들어있던 프란체스카를 인질로 잡은 상황. 텍스가 총의 공이치기를 젖히자 클리프는 애완견 브랜디를 시켜 총을 들고 있던 텍스를 공격토록 한다. 그리고 신명 나게 울려 퍼지는 라디오 음악 속에서 통쾌한 역관광이 시작. 텍스는 브랜디의 일격에 권총을 떨어뜨리고 이어 온몸을 사정없이 물어뜯긴다. 새디는 뒤늦게 칼을 쥐고 달려들려다가 클리프가 던진 통조림에 정면으로 맞아 쓰러진다. 그러고도 칼을 쥔 채 기어서 움직이려는데, 클리프의 신호를 받은 브랜디가 텍스를 놓고 새디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한다. 브랜디에게서 풀려난 텍스는 칼을 꺼내지만, 클리프는 순식간에 칼 든 손을 내리쳐 텍스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버린 다음, 얼굴을 쳐서 쓰러뜨리고 목을 짓밟아 부러뜨려 죽여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케이티는 프란체스카의 기습으로 한 방 맞고 쓰러졌지만, 이내 칼을 들고 클리프를 기습해 그의 골반을 찌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LSD의 효과 탓인지 클리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꽂혀있는 칼을 툭툭 건드린 뒤, 오히려 더 빡쳐서 케이티의 머리채를 붙잡곤 전화기부터 시작해 액자, 기둥, 벽난로 모서리, 테이블에 안면이 박살 나도록 여러 번 찍어 죽여버린다. 케이티를 내동댕이친 클리프는 출혈과 LSD의 효과 탓인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히피족 텍스가 떨어뜨린 권총을 간신히 집어 든 새디는 총을 쏴서 브랜디가 달아나게 만들지만, 상처의 고통으로 공황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다가 유리 창문을 뚫고 나와 뒷마당의 수영장에 빠진다. 수영장에서 헤드폰을 낀 채 술을 마시느라 아무것도 못 듣고 있던 릭은 이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미 급격하게 흥분해 제정신이 아니던 새디가 피 칠갑을 한 채로 물에 빠지자 더 발광하며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마구 총을 쏘아댔고, 위험을 느낀 릭은 도망치듯 들어간 창고에서 예전 영화에서 써먹었던 화염방사기를 위풍당당하게 들고나와 정면에서 화염을 퍼부어 새디를 구워버린다.

 

#세계사 #원스어폰어타임인할리우드 #소설 #영화원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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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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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소설화한 특이한 작품. 미국 영화사에 바치는 타란티노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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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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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Part 1-1 천당위의 분당

책 제목처럼 이 책은 한국경제의 흑역사에서 배우는 경제 교양을 표방하고 있다. 부동산을 다루는 1부는 1970년대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던 천당 위의 분당경제개발의 이면으로 시작한다. 산업화와 저곡가 정책으로 지방 인구가 대책 없이 서울로 몰려들어 포화상태에 이르자 정부는 감언이설로 유입 인구를 현재의 성남 벌판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가장 기초적인 생존 지원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서 나 몰라라 방관했다. 군사정권의 한계였는지 몰라도 민중이 조선 놈을 조심해야 할 또 다른 이유였다. 부동산 난개발과 이권 개입으로 조직폭력배가 활개 치던 이 혼란한 시기의 사회상은 영화 <강남 1970>에 잘 녹아있다. 인명이 천시되고 금전 만능주의에 물들어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는 먼 나라 얘기였다. 부동산은 결국 일자리의 문제였고 그런 세상을 헤치며 우리를 키워낸 아버지 세대가 새삼 존경스럽다.

 

Part 1-2 강남 개발 배경

강남 지역의 개발은 매우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김신조 남파사건 이후 북한의 공격을 의식하여 강북에 밀집한 인구와 시설을 강남으로 강제 이주하였으며 소위 강북의 명문 고등학교들이 대거 이전하면서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이 당시 학교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 영화로 <말죽거리 잔혹사>를 추천한다. 또한 방사형이던 서울 지하철 건설 계획이 단 20분 만의 번복으로 강남 순환 구조로 변경되었다. 명문고와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철, 경부고속도로가 차례로 연결되면서 강남은 명실상부한 교통의 요지이자 금싸라기 부동산이 되었다. 오늘날 강남의 번영은 정권의 덕을 톡톡히 본 결과다. 그래서 유난히 특정 정당을 철벽 지지하는지도 모르겠다.

 

Part 1-3 전세 시장 탄생기

도시연담화가 진행되면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흡수하는 모양새가 되어 균형 있는 도시 간의 발전을 저해한다. 새마을운동은 도시로 빠져나간 노동 인력을 다시 농촌으로 오게 할 유인책의 성격도 있었으나 온전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허약한 지역구조 때문에 생활 여건의 근대화 등 일정 부분에서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인구 과밀과 주택공급 부족, 집값 상승으로 허덕이던 서울은 전세라는 독특한 거래제도가 일반적이었는데, 사실 18세기 초에 이미 이와 비슷한 관행이 있었다. 전세는 출신이 불분명한 다수의 세입자를 믿을 수 없는 조건에서 발생한, 가장 안전하고 수익률 높은 사금융 주택담보대출인 셈이다. 전세 자금난 타개를 위해 한때 빚내서 집을 사라는 국가적인 권유가 유행했던 때도 있었다. 현재 전세 대출이 제한되는 추세와 부동산 거래 침체로 월세 거래의 비중이 커지고 있으나 앞으로 단기간에 전세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Part 1-4 세종 신도시

1970년대는 수도권에 밀집하는 인구를 분산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인구 유입 요건으로 지방 중소도시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했고 수도권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1996년이나 돼서야 출산 억제에서 장려로 급선회했으나 이미 1984년에 합계출산율이 1.74명으로 떨어졌고 2001년에는 1.3명 이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으며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사회적 경쟁, 즉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쳐지면 안 된다는 불안과 위기의식에 있었다. 인구절벽과 초고령화는 결혼과 출산, 육아와 교육에 마음 놓을 수 있는 혁신적인 지원이 있어야 풀릴 사회문제다. 최근에는 다자녀 가구에 지원금을 주겠다는 지자체도 생겨났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많아서라며, 신생아를 출산한 산모에게 3천만 원을 직접 지급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모 대선 후보의 선견지명이 유난히 생각나는 요즘이다.

 

Part 2-1 최저시급 1만 원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 받고 살면서 최저임금에 무감각했었는데, 장성한 자녀가 아르바이트하게 되면서부터 액수를 의식하게 되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비정규 근로자가 최소한의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금액이므로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개념은 최근에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묶여있었을 뿐이다. 2017년 대선 당시 후보마다 최저시급 1만 원을 공약으로 내 걸 만큼 예민한 사회문제이기도 하며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금액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100년 전 미국에서는 최저시급을 두고 근로자의 노동력을 독점 소유하던 탄광업소의 노사 간에 전쟁까지 벌이기도 했을 만큼 첨예한 사안이다.

 

Part 2-2 IMF 한국에 사과

근로자와 노동자의 용례가 다른 이유. 자본가에 상응하는 사전적 의미로는 노동자라는 용례가 옳고 일반적이어야 하지만, 자본가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암시하는 이 말 대신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뉘앙스의 근로자가 의도적으로 더 널리 쓰였다고 한다. 신라시대 음서제도가 아직도 변형된 형태로 노동시장에 살아남아 작게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크게는 국가 경쟁력을 헤치고 있다. 역설적으로 직장이 있다고 안심할 일만도 아니다. 취업자들은 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노동 유연화라는 괴물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편이니 대졸자가 번듯한 직장을 원하느라 취업이 늦거나,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프리터 현상을 두고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꿰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건만,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노조를 탄압하는 등 전혀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다.

 

Part 2-3 노조와 기업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최초로 원산항에서 노조가 생겨난 지 100년이 넘었으나 오늘날 우리 기업들의 전체 노조 조직률은 15%도 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가 사회 전반적으로 평가절하되어있어 싼값에 인력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 노조를 이권단체나 빨갱이로 치부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회 인식을 접할 때마다 씁쓸하다. 노동자는 자본가보다 약자이므로 서로 협력하여 이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분은 노동자이면서 의식은 자본가인 아이러니도 쉽게 발견한다. 2017년 이후 아직도 최저시급이 1만 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동자 자신도 노조 가입 선택권이 있는지 모르고 있다. 노동자의 삶의 질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스스로 지켜가기 위해 노사관계는 취업 혹은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와 대학 현장에서 반드시 깊이 있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Part 2-4 세계 최고의 건강보험

수십 년에 걸친 의약분업과 의보통합, 수많은 수가와 약가 조정 등을 거쳐 이제 겨우 안정화된 듯한 의료보험은 오랜 세월 지난한 개선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보아야 할 곳투성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전체에 미치는 요인들이 너무나 많아 단순히 수가 조정만으로 개혁은 어림없다. 국민 1인당 의사 수는 여전히 부족한데 밥그릇 싸움하느라 의사 수 늘리는 정책에 의사들이 반대한다. 좁은 문을 지나 소수 배출되는 의사들도 그나마 돈 잘 벌리는 특정 진료과목으로 쏠리고 있다. 의사들의 이기적인 행태를 비난하기 전에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숨은 원인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의료분쟁의 내막을 잘 모르는 국민은 건강보험료 더 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낼 수밖에 없으니 결국 분쟁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노엄 촘스키가 말했듯 무능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고 했던가, 세계적 자랑거리인 이 제도가 민영화된다는 낌새도 예전부터 상당했다. 실제 미국에서의 의료민영화를 고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Sicko>를 보면 민영화의 끝이 얼마나 참담한지 알게 된다. 의료분쟁을 최소화하고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 질을 유지하려면 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눈과 마음도 항상 트여있어야 한다.

 

Part 3-1 2008년 세계 금융위기

1994년부터 5년간 기술 영업직으로 일했던 중소기업 무역회사는 전국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성장할 수 없었다. 주로 대기업의 해외 기술 용역을 알선하고 달러화로 중개수수료를 받았는데, 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바람에 꽤 오랜 기간 앉은 자리에서 두 배 가까이 수입을 올렸다. 남들은 죽상을 하고 있을 때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여 없던 에어컨이 설치되고 영업사원마다 자동차가 생겼다. 고생하던 직원들 월급을 더 줄 만도 하건만, 인상 폭은 쥐꼬리만큼 적었고 세무서에 신고하는 영업 매출은 몇 년째 적자였다. 필자를 비롯한 근속 직원이 다 떠나고 나서야 샤워실 딸린 근사한 오피스텔을 사서 입주하더니 10년 못 가 노령 탓에 폐업하고 만다. 굳이 상도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저승에 가져가지도 못할 돈을 당시 곤궁한 직원들에게 베풀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까지도 남은 아쉬움이 크다. ‘양적완화용어에 대해서는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The Lords of Easy Money)>을 권해드린다(https://blog.naver.com/jyooster/223113934805)


Part 3-2 금 모으기 운동

일회성이기는 하나 우리는 자랑스럽게도 금모으기 운동으로 기사회생한 나라의 국민이다. 그러나 피부로 체감하기에 국정운영 상황이 하도 엉망이라 차라리 그때 망해버리지 왜 기사회생 하였나 싶게 회의감마저 든다. 요즈음 같아서는 나라가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국민적 취미는 국난 극복이다. 선출한 지도자의 설레발에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국민의 힘으로 부활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온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겠나. 미국이 방조한 덕에 시작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로부터 요구받은 사항은 고금리정책, 전면적 구조조정 및 시장 개방이었다. 1998년 겨울에 금전적인 위기는 해소되었으나 사회 각 기업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영세 자영업자가 급증했다. 너도나도 치킨집을 개업하고 망하기를 반복하여 오늘날 미국에서조차 맛있기로 소문난 Korean Fried Chicken의 다양한 조리법은 이때 시작된 것이다.

 

Part 3-3 분식회계는 회계 사기

본래 신용카드 제도가 도입된 초기에는 이를 발급받으려면 거쳐야 할 절차가 까다롭고, 제출해야 할 증빙서류도 많아 신용카드를 소지한 자체로도 어느 정도 신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더니 외환위기 이후 국내 수요를 진작하고 신용도를 회복한다면서 대학생 직장인 안 가리고 성인이기만 하면 마구 발급해주던 시기가 있었다. 지갑에 카드 꽂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카드가 넘쳐났다. 그 풍요의 끝은 카드 돌려막기 수법과 신용불량자 양산이었다. 한편, 분식 회계의 대명사 대우그룹은 자사에 비해 덩치가 큰, 망해가던 외국 기업들만을 주로 정경유착에 의한 줍줍 전략으로 몸집을 키우며 탱크주의와 같은 세계 경영을 표방했다. 돈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려다 보니 재정이 충분한 우량 기업으로 보이기 위해 회계장부의 손실액을 이익으로 분칠하는 분식 회계를 적극 활용했다. 19997월 대우의 경영 부실이 알려지자 결국 그해 11월 대우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으며 김우중 회장은 22조의 추징금을 두고 베트남으로 도피한다. 1997년과 1998년의 조작을 추가하면 회계 부정 금액이 사상 최악인 41조에 달해 기네스북에 오른 슈퍼 분식으로 비웃음을 샀다. 이 당시 다니던 회사의 주요 거래처였던 대우자동차는 미국 GM으로부터 그들의 주특기였던 줍줍의 역습을 받는다. 역사는 돌고 돈다.

 

Part 3-4 가상화폐

2009년 등장하여 개당 2원이었다가 1천만 원을 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2021년 이후 법적 요건을 갖춘 거래소만 원화 거래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법제화된 이후에도 수많은 장외거래 화폐가 생성소멸을 반복했는데, 주위에 돈 벌었다는 사람은 없고 무리한 대출까지 받는 등 영끌 투자하다가 손해 본 사람들뿐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아직도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태라면 어떠했을까? 아마 지금껏 OECD 가입은 당연히 안 되었을 것이고 선진국 간판도 달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의 경기 불황은 순환적인 시기 탓도 있겠지만 전쟁을 옹호하는 등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국제관계를 경직시키는 국가 통치권자의 덕이 크다. 게다가 수해로 국민이 목숨과 재산을 잃고 있어도 그의 망발 행진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안팎으로 불안한 나라에 어느 투자자가 마음 놓고 돈을 들고 올까. 온 사방에 적을 깔아두는 언행을 일삼으면서 평화는 곧 경제라는 개념조차 모르고 연신 어퍼컷만 날린다. 그리고 또 그런 그를 지지한다는 얼빠진 인간들도 널렸다. 오호 애재라. 제정신만 차려도 경제 위기 소리까지는 안 들을 수 있으련만.

 

Part 3-5 빅테크버블 & 닷컴버블

한때 우리나라에 벤처기업 붐이 일었다. 2000년도 코스피에 상장한 기업이 열 개인 반면 코스닥에는 벤처기업이 117, 일반기업이 61개였다. 신기술을 가진 이들 벤처의 위상은 상장기업 못지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말 외환위기 극복을 선언한 직후였다. 활황이 기대되는 시기였고 IT붐에 어울리게 인터넷 사용자와 PC PC방 보급률, 기업 홈페이지가 급증했다. 카카오의 전신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상장을 하고 주가 역시 급등했다. 넥슨, 네오위즈, 엔씨소프트, 한게임, 한글과컴퓨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 역시 주가 상승에 춤을 추었다. 그러나 물도 급히 마시면 체한다고, 20004월 닷컴 버블이 붕괴한다. 이어 2008년 미국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발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다. IT기업들의 회생을 위해 미국이 금리를 내리자 지금은 저물어가는 초저금리 시대가 도래한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로울지 몰라도 미국의 금리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거의 없으니 경제 식민지가 따로 없다.

 


Part 4-1 주식하면 삼대가 망해

최근 주식 투자에 열풍이 분다. 대학생 자녀들도 재미 삼아 10주를 굴리고 있다. 한때 주식에 재미를 봤다가 생활비로 다 털린 이후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자본금을 불리기 위해 주식을 발행한다. 개장 직후 전쟁으로 파산했던 증권시장은 전쟁 중 부산에서 꽤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괜찮은 회사라면 외부의 투자 덕에 금방 성장한다. 군사정권 시기인지라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과업 수행상 실수라며 1962년 공매수를 악용한 증권파동으로 국가적인 손해를 입혔던 윤응상 일당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권한도 없는 재무부 장관이 결재해주는 등 타짜 세력에 의한 주가조작으로 조성된 자금은 오늘날 국민의힘 전신인 공화당 창당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조작이 진화하여 차떼기로 이어지는 참으로 징글징글한 부정부패의 역사다. 이 때문에 특정 세대에게 정당한 방법임에도 주식은 곧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머리에 박히게 된다. 주식 한다면 나서서 말리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Part 4-2 삼성 이건희

대기업 체제가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매우 효율적인 구조였다. 명민한 회장의 전격적인 결정에 따라 회사가 민첩하게 움직이고 성장에도 유리한 건 분명했다. 정경유착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금은 다국적 기업의 시대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해야 하고 상식적이고 투명한 경영과 민주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60년대에 이미 재벌이면서 사카린이나 밀수하다 걸렸던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의 흑역사를 보면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Chaebol 의 뜻이 과연 좋게만 해석될까? 더욱 놀라운 것은 밀수가 대통령의 생각이었고 군사정권의 묵인이나 협조 없이 대단위 밀수를 자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란 점이다. 재벌과 부패 내각은 그저 꼬리 아니면 방관자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Part 4-3/4 저축은행 뱅크런, 대기업 파산

뱅크런(bank run)은 은행에서 단기간에 대량의 예금 인출 요구가 일어나는 사태를 뜻하며, 은행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예금을 찾으러 달려간다고 해서 생겨났다. 현직 대통령이 2011년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담당 검사로서 장부조작과 부실대출 관련한 수사를 수수방관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양심 있는 대선 후보쯤 되면 사퇴했어야 옳았다. 허나 만일 사퇴하더라도 자신의 의혹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마니, 계속 밀어붙여야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잘못된 선택으로 이후 국격과 나라 살림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결과는 다들 잘 아실 터이다. 한국의 부패는 참으로 특이한 이권 카르텔형이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 부패 세력과 결탁한 유형으로 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그렇게 속고도 또 그들을 지지하는 아주 이상한 나라다.

 

국내 1세계 7위 컨테이너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20168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물류대란을 일으켰고, 결국 이듬해 2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 사태는 경영진의 경영 미숙과 정부의 대응 미숙의 합작품이다. 파산에 이르게 된 가장 큰 경영 원인은 선박 투자에 대한 실패로 이는 선박 투자 전략 부재와 경영진의 전문성 부족이었다. 특히 해운 비전문가들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직원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분명한 지시가 나오고, 비용 절감을 위해 영업 정책에서 중요한 해외 서비스 센터를 통폐합하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과거 정부가 해운업에 대한 이해 없이 해운선사 부채비율 200%를 강제 적용하면서 선사들이 선박을 매각하고 다시 높은 가격으로 용선(빌려 쓰는 선박)하게 돼 한진해운 파산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또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서 조선, 해운, 무역으로 이어지는 국가 경제의 고리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연관 산업에 다양한 악영향을 미쳤다.

 

Part 4-5, 5-1 정경유착, 한일청구권협정

대구 페놀 방류는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공업 단지 안의 두산전자에서 314일과 4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톤과 1.3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사건이다.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생산 설비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발생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수돗물 불신 풍조가 높아져 "소독약 냄새 나는 수돗물을 끓여 먹느니 깨끗한 물을 사 먹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법 생수 시장과 정수기 사업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OB맥주를 주력으로 삼던 두산은 만년 2위였던 크라운 맥주(이후 하이트로 개명)에게 선두를 내어주게 되며 소비재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어 중공업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현재 팀플레이의 국제 확장판인 국가 간 분업 체계’ GVC(Global Value Chain) 구도를 보면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는 중국은 미국에 맞먹는 거대 교역국의 위상을 지닌다. 미국의 위력도 예전 같지 않은 이 상황에 중국은 자꾸 미국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한국의 입장은 미국과의 오랜 협력관계도 중요하고 가까이 있는 중국과도 좋은 사이를 유지해야 국익을 보전할 수 있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국가 간의 관계가 경색되면 이는 곧 경제적 손실과 국민적 삶의 질 하락을 의미한다.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국이 중국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방어선이 있어서 없어도 그만인 한국이 미국에게 중요한 이유는 세계의 반도체 공장이기 때문인데, 이 기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아쉬울 게 없다면 어찌할 텐가? 일개 국민도 알만한 내용인데, 국제 정세에 관한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큰일이다.

 


Part 5-2/3 에너지 가격, 유가와 환율

북한의 김일성이 공산당체제를 굳혔다면 남한에서는 박정희가 덜 매운 맛 독재체제를 잡았다. 집권 이후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거대한 거짓말을 뒤로 북한과 안보를 팔아 내리 18년을 해 먹었다. 60년대는 박정희 아니라 그 어떤 대통령이었더라도 전 세계적인 경제개발 기조 덕분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리라는 분석이 있다. 만일 김재규 장군이 구국의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종신집권에 성공했을 수도 있고, 본인이 생을 마감했더라도 그 호위 세력과 딸이 대를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든 전두환의 신군부가 들어섰던 것을 보면 불행히도 이 나라가 독재자에게 휘둘릴 운명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더군다나 그를 추앙한다는 자가 다시금 통수권자라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1차 석유 파동 때 아버지는 운영하시던 농장을 접으셔야만 했다. 돼지 가격보다 비료가 더 비싸서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었다. 아들은 어려운 형편에 겨우 결혼식을 올렸더니 2차 석유 파동을 맞았고 가계 수입이 동결되었다. 이렇게 해외에서 일어난 경제적 사건들도 일개 개인의 삶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국개방경제로 불리는 이 현상은 국외의 경제적 행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불가역적 관계를 뜻한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봐야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지만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아주 뭣 같은 관계다.

 

1980년대는 3저 현상 덕분에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는 별명이 붙는다. 1985년에 컬러TV 방송이 시작되었고 1986년에 해외여행 자유화, 1988년에 올림픽 특수를 맞이했다. 어떤 직장인들은 3년 만에 연봉이 세 배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마이카시대 덕분에 아버지는 중고차 매매로 두 아들의 대학 학비를 감당하실 수 있었다.

 

Part 5-4/5 UR, 북방정책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는 이전까지 세계 무역 질서를 이끌어 온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 체제를 다자간 무역기구로 발전시키려는 국가 간 협상이다. 19869월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서 협상이 시작되었으며(그래서 이름이 우루과이 라운드), 몬트리올, 제네바, 브뤼셀, 워싱턴, 도쿄에서의 협상에 이어, 마침내 19944월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세계무역기구 설립, 정부조달협정 등을 포함한 마라케시 합의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일단 기존 GATT를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농산물 분야다. 기존에는 농산물 부문을 비롯해 몇 개 부분은 제외되었으나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포함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2014년 농산물 시장 개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원래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개방되어야 했던 것인데 그동안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수입하는 대신 이를 유예해왔었다는 내용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이미 한국처럼 자국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려던 다른 국가들도 의무 수입량을 늘리겠다는 제안을 하고도 퇴짜를 맞았고 끝내 한국도 완전 개방을 하게 되었다.

 

미국 경기의 퇴조기를 겪는 동안 부지런히 달러를 모은 중국이 기세 좋게 차이나머니로 세계의 전주 노릇을 하면서 여러 국가와 채무 관계에 놓였는데, 문제는 채무 반환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물린 돈이 늘어난 점이다. 과연 경제력만으로 세계를 이끄는 선두 국가가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은 돈의 맛을 보았으나 여전히 공산당체제이기 때문에 민주화된 세계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상승세에 편승하여 재미를 보았던 우리나라는 최근 모종의 정치적 이유로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은 중국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후일 역사가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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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 월스트리트 저널 부고 전문기자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제임스 R. 해거티 지음, 정유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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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이번 여름에 장례식 소식을 많이 접한다. 일전에 문상 다녀온 장례식장은 바로 옆방이 유명 연예인 차**씨의 부친상이었다. 워낙 유명 인사라서 유명세를 치르는지 식장 입구부터 늘어선 화환이 이중 삼중으로 복도를 메워 다니기 불편할 정도였고 심지어 대통령실에서도 장례기를 보내왔다. 문상갔던 집이 여염집은 아닌데도 비교의 대상이 못 된다.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똑같은 죽음인데 본인과 자녀의 신분에 따라 죽어서까지 차별대우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세상에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다. 동시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음을 알면서도 정작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것을 부고라고 한다. 요즘은 예전처럼 상주가 직접 전화를 돌리거나 신문에 내기보다는 대개 SNS나 문자로 연락한다. 한국에서 신문의 부고란에 이름을 올릴 정도면 고관대작이나 대기업, 유명인쯤 된다고 보면 되지만, 미국과 같은 서구 사회는 신분과 관계없이 부고는 매우 보편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망자의 이름과 생몰일시, 상주 등을 간략히 알리는 반면, 미국은 이 책의 저자처럼 고인에 관한 기사를 쓴다. 고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짚어 유품을 정리하며 기억할만한 사진이나 글 등을 이용해 추모 게시판을 만들기도 한다. 대개는 고인의 이름, 삶에 대한 약력, 직계 유가족, 추모 또는 장례 정보, 기부처 등을 기재하여 사망 기사의 자료로 제공한다. 저자는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망자가 지나온 삶의 흔적을 바탕으로 이야기라는 하나의 예술 분야로 승화시킨다.


이 책의 원제 <Yours Truly>는 본래 편지글의 결구로 쓰이며 우리말로는 이만 총총쯤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써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억을 되살려 볼 것을 권유한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부고 기사 작가로 일한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얻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손에 아무렇게 부고 기사를 맡기기보다는, 일반적인 전기적 서사를 뛰어넘어 우리가 누구인지 본질을 포착해 보라고 독려한다. 아울러 부고에 포함할 내용, 포함하지 말아야 할 내용, 가족에 대해 솔직해지기,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 등 다양한 실용적인 도움을 준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인터뷰 내용, 일화, 사례를 통해 각계각층 사람들의 개인적 이야기의 가치를 설명한다. 그의 어조는 친절하고 지지적이며,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할 때 고려할 만한 인터뷰 질문과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가 아직 할 수 있을 때 추억을 담는 행위의 중요성을 즐겁게 상기시켜 준다. 진심 어린 사색과 매력적인 이야기를 통해 후손을 위한 선물일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글을 쓰자는 영감 어린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일이므로, 인생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게 된다. 이 책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해준다. 아마도 친구, 가족, 그리고 인생을 거쳐 간 다른 모든 이들이 분명히 고마워할 것이다. 부고 기사 작성 가이드로서 저자의 목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야말로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첫째,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둘째, 그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목표를 이루었는가?

 

저자가 보는 시각의 요점은 우리가 인간이므로 결점 투성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고인의 잘못과 실수 등이 부고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견디고 극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자기 삶에서 의미를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저자는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본인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친구나 친척이 부고를 작성한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진부한 표현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저자는 짧은 시간에 구술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친절함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보여주면 어떨까. 미리 부고(자신의 이야기)를 써 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으시는지?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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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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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등장하는 영화 <루시>를 보신 독자라면 아프리카 모처에서 시냇물을 마시는 루시를 만나 그림 <천지창조>처럼 검지를 마주 대는 찰나 순간 이동이 이루어지던 놀라운 장면을 기억하시리라. 이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은 아마 그런 느낌으로 두 번쯤 놀랄 것 같다. 책 자체가 두툼한데다 저자가 현직 내과 의사라는데 한번 놀라고, 태초 인류의 발달사부터 현대의 나노 기술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인류학자보다 더 박식한 데 두 번 놀란다.

 

신피질은 호모사피엔스의 무기다. 다른 동물이 지닌 강한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다. 이 무기가 발휘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범용성에 숨겨져 있다. 무기를 하나 고르라 했을 때 칼이나 화살이 아니라 무기고의 열쇠를 잡은 셈이다.(87)

 

사피엔스(인류)와 로지(학문)를 결합한 책 제목에 끌려 읽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은 앞쪽에 놓였다. 지금까지 문명을 이어오며 온갖 지식이 축적된 최근세사를 이해하는데 바로 눈앞의 것만 좇아서는 알기 어렵다. 물론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이 인류사의 시작도 그래서 태초로부터 시작한다.

 

가족 시스템 외에 우리를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종으로 만든 특성이 또 있다. 이것 역시 다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타심과 협력이다. (161)

 


동물과 인간의 신체를 견줘 보자면 인류는 참으로 나약하다. 맹수를 이길만한 발톱과 이빨도 없고 달음박질도 그리 빠르지 않다. 먹이사슬의 바닥 어디쯤 있어서 언제 잡아먹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허접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한다. 저자는 그 비결로 지능과 혁신 본능 그리고 통제 욕구를 꼽는데, 이들은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이 아닌 뇌 구조에서 흘러나온 생물학적 표현이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을 합성한 연유가 나온다. ‘현생 인류에 대한 학문으로 정의하며 진화학, 고고학, 사회심리학, 역사, 과학사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인류의 빅 히스토리이자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북극곰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수천 세대를 거치는 동안 하얀 털을 진화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서너 세대 만에 그것을 빼앗아 뒤집어쓰는 방법을 터득하고 동족과 후손에게 전수했다. (307)

 



인류가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오고 아프리카에서 각 대륙으로 이주하며 전 지구적으로 뻗어나간 다음, 너무나도 오랫동안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인류는 인종과 피부색이 너무나 다른 모습에 완전히 다른 인종으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앞선 서구 문명의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지배 억압하며 사고팔기도 했던 흑역사를 잘 아실 터이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짓을 일삼던 때가 불과 200년 이내이고 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부끄럽게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의 한계인가, 피부 아래는 모두 아프리카인임을 늘 잊고 산다.

 

우리 뇌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머리로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항로를 경정하는 항법사에 가깝다. 신피질은 계산기가 아니라 패턴을 다루는 곳이자 환경 변화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억-예측 장치다. (326)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이유로는 첫째, 생존을 위해 새 땅을 찾아간 결과이며 둘째, 먹잇감인 동물의 이동을 따라나섰다는 견해가 있다. 울창한 밀림에서 햇볕이 강렬하고 숨기도 마땅찮은 사바나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척박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진화 과정을 겪는다. 밀림에 남아있던 조상들의 후손은 여전히 거의 옛 모습 그대로 산다. 불을 사용해 단백질의 공급이 늘고 뇌 용량이 커졌다는 얘기는 이제 싫증 나기까지 한 상식에 속한다. 수렵 채집의 다음 단계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인류 최악의 실수라고 일컬은 농경 집단생활이다. 식생이 예전보다 나을 것 없고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동물 매개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환경을 택한 결과는 인구수의 번성이었다. 지금은 너무 번성해서 지구 인구가 80억에 육박하고 그 가운데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끌던 부분은 뇌의 혁명이었다. 뇌가 급격히 커짐으로써 생기는 방열과 영양공급에 관한 해결 방법은 매우 신박해서 비싼 조직이라는 별명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신피질의 등장이 진화가 아닌 돌연변이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도 대단히 훙미롭다.

 

역사적으로 한 종은 더 강한 종을 만나면 멸종했다. 지능의 열세로 수많은 동물이 인간에게 밀려나 멸종했고, 이제 지구의 대형 포유류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만 남아있다. 인공지능도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모든 자원과 에너지와 공간을 차지해 인간을 밀어낼지 모른다. 미래에는 우리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 (374)

 

단순히 인류학의 영역에만 한정될 것 같던 내용이 영어교육학이나 최첨단 IT 기술까지 넓어진다. 이 방대한 내용을 어찌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까 궁금증이 일기도 하고, 일개 내과의사의 저서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읽을수록 저자의 독서량과 학문적 깊이, 통섭의 범위가 우러나온다.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학문을 총망라한 느낌이다. 이 책은 결국 지구상에 남겨진 인간의 발자취를 좇아 온 기록서의 개념을 지닌다. 사실 최근의 역사로 올수록 알아가는 재미는 덜해지지만, 인류학 교양과정 교재로 손색없는 책이다.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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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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