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 월스트리트 저널 부고 전문기자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제임스 R. 해거티 지음, 정유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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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이번 여름에 장례식 소식을 많이 접한다. 일전에 문상 다녀온 장례식장은 바로 옆방이 유명 연예인 차**씨의 부친상이었다. 워낙 유명 인사라서 유명세를 치르는지 식장 입구부터 늘어선 화환이 이중 삼중으로 복도를 메워 다니기 불편할 정도였고 심지어 대통령실에서도 장례기를 보내왔다. 문상갔던 집이 여염집은 아닌데도 비교의 대상이 못 된다.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똑같은 죽음인데 본인과 자녀의 신분에 따라 죽어서까지 차별대우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세상에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다. 동시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음을 알면서도 정작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것을 부고라고 한다. 요즘은 예전처럼 상주가 직접 전화를 돌리거나 신문에 내기보다는 대개 SNS나 문자로 연락한다. 한국에서 신문의 부고란에 이름을 올릴 정도면 고관대작이나 대기업, 유명인쯤 된다고 보면 되지만, 미국과 같은 서구 사회는 신분과 관계없이 부고는 매우 보편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망자의 이름과 생몰일시, 상주 등을 간략히 알리는 반면, 미국은 이 책의 저자처럼 고인에 관한 기사를 쓴다. 고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짚어 유품을 정리하며 기억할만한 사진이나 글 등을 이용해 추모 게시판을 만들기도 한다. 대개는 고인의 이름, 삶에 대한 약력, 직계 유가족, 추모 또는 장례 정보, 기부처 등을 기재하여 사망 기사의 자료로 제공한다. 저자는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망자가 지나온 삶의 흔적을 바탕으로 이야기라는 하나의 예술 분야로 승화시킨다.


이 책의 원제 <Yours Truly>는 본래 편지글의 결구로 쓰이며 우리말로는 이만 총총쯤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써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억을 되살려 볼 것을 권유한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부고 기사 작가로 일한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얻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손에 아무렇게 부고 기사를 맡기기보다는, 일반적인 전기적 서사를 뛰어넘어 우리가 누구인지 본질을 포착해 보라고 독려한다. 아울러 부고에 포함할 내용, 포함하지 말아야 할 내용, 가족에 대해 솔직해지기,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 등 다양한 실용적인 도움을 준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인터뷰 내용, 일화, 사례를 통해 각계각층 사람들의 개인적 이야기의 가치를 설명한다. 그의 어조는 친절하고 지지적이며,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할 때 고려할 만한 인터뷰 질문과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가 아직 할 수 있을 때 추억을 담는 행위의 중요성을 즐겁게 상기시켜 준다. 진심 어린 사색과 매력적인 이야기를 통해 후손을 위한 선물일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글을 쓰자는 영감 어린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일이므로, 인생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게 된다. 이 책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해준다. 아마도 친구, 가족, 그리고 인생을 거쳐 간 다른 모든 이들이 분명히 고마워할 것이다. 부고 기사 작성 가이드로서 저자의 목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야말로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첫째,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둘째, 그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목표를 이루었는가?

 

저자가 보는 시각의 요점은 우리가 인간이므로 결점 투성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고인의 잘못과 실수 등이 부고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견디고 극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자기 삶에서 의미를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저자는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본인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친구나 친척이 부고를 작성한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진부한 표현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저자는 짧은 시간에 구술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친절함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보여주면 어떨까. 미리 부고(자신의 이야기)를 써 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으시는지?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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