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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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등장하는 영화 <루시>를 보신 독자라면 아프리카 모처에서 시냇물을 마시는 루시를 만나 그림 <천지창조>처럼 검지를 마주 대는 찰나 순간 이동이 이루어지던 놀라운 장면을 기억하시리라. 이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은 아마 그런 느낌으로 두 번쯤 놀랄 것 같다. 책 자체가 두툼한데다 저자가 현직 내과 의사라는데 한번 놀라고, 태초 인류의 발달사부터 현대의 나노 기술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인류학자보다 더 박식한 데 두 번 놀란다.

 

신피질은 호모사피엔스의 무기다. 다른 동물이 지닌 강한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다. 이 무기가 발휘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범용성에 숨겨져 있다. 무기를 하나 고르라 했을 때 칼이나 화살이 아니라 무기고의 열쇠를 잡은 셈이다.(87)

 

사피엔스(인류)와 로지(학문)를 결합한 책 제목에 끌려 읽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은 앞쪽에 놓였다. 지금까지 문명을 이어오며 온갖 지식이 축적된 최근세사를 이해하는데 바로 눈앞의 것만 좇아서는 알기 어렵다. 물론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이 인류사의 시작도 그래서 태초로부터 시작한다.

 

가족 시스템 외에 우리를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종으로 만든 특성이 또 있다. 이것 역시 다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타심과 협력이다. (161)

 


동물과 인간의 신체를 견줘 보자면 인류는 참으로 나약하다. 맹수를 이길만한 발톱과 이빨도 없고 달음박질도 그리 빠르지 않다. 먹이사슬의 바닥 어디쯤 있어서 언제 잡아먹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허접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한다. 저자는 그 비결로 지능과 혁신 본능 그리고 통제 욕구를 꼽는데, 이들은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이 아닌 뇌 구조에서 흘러나온 생물학적 표현이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을 합성한 연유가 나온다. ‘현생 인류에 대한 학문으로 정의하며 진화학, 고고학, 사회심리학, 역사, 과학사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인류의 빅 히스토리이자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북극곰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수천 세대를 거치는 동안 하얀 털을 진화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서너 세대 만에 그것을 빼앗아 뒤집어쓰는 방법을 터득하고 동족과 후손에게 전수했다. (307)

 



인류가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오고 아프리카에서 각 대륙으로 이주하며 전 지구적으로 뻗어나간 다음, 너무나도 오랫동안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인류는 인종과 피부색이 너무나 다른 모습에 완전히 다른 인종으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앞선 서구 문명의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지배 억압하며 사고팔기도 했던 흑역사를 잘 아실 터이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짓을 일삼던 때가 불과 200년 이내이고 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부끄럽게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의 한계인가, 피부 아래는 모두 아프리카인임을 늘 잊고 산다.

 

우리 뇌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머리로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항로를 경정하는 항법사에 가깝다. 신피질은 계산기가 아니라 패턴을 다루는 곳이자 환경 변화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억-예측 장치다. (326)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이유로는 첫째, 생존을 위해 새 땅을 찾아간 결과이며 둘째, 먹잇감인 동물의 이동을 따라나섰다는 견해가 있다. 울창한 밀림에서 햇볕이 강렬하고 숨기도 마땅찮은 사바나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척박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진화 과정을 겪는다. 밀림에 남아있던 조상들의 후손은 여전히 거의 옛 모습 그대로 산다. 불을 사용해 단백질의 공급이 늘고 뇌 용량이 커졌다는 얘기는 이제 싫증 나기까지 한 상식에 속한다. 수렵 채집의 다음 단계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인류 최악의 실수라고 일컬은 농경 집단생활이다. 식생이 예전보다 나을 것 없고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동물 매개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환경을 택한 결과는 인구수의 번성이었다. 지금은 너무 번성해서 지구 인구가 80억에 육박하고 그 가운데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끌던 부분은 뇌의 혁명이었다. 뇌가 급격히 커짐으로써 생기는 방열과 영양공급에 관한 해결 방법은 매우 신박해서 비싼 조직이라는 별명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신피질의 등장이 진화가 아닌 돌연변이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도 대단히 훙미롭다.

 

역사적으로 한 종은 더 강한 종을 만나면 멸종했다. 지능의 열세로 수많은 동물이 인간에게 밀려나 멸종했고, 이제 지구의 대형 포유류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만 남아있다. 인공지능도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모든 자원과 에너지와 공간을 차지해 인간을 밀어낼지 모른다. 미래에는 우리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 (374)

 

단순히 인류학의 영역에만 한정될 것 같던 내용이 영어교육학이나 최첨단 IT 기술까지 넓어진다. 이 방대한 내용을 어찌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까 궁금증이 일기도 하고, 일개 내과의사의 저서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읽을수록 저자의 독서량과 학문적 깊이, 통섭의 범위가 우러나온다.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학문을 총망라한 느낌이다. 이 책은 결국 지구상에 남겨진 인간의 발자취를 좇아 온 기록서의 개념을 지닌다. 사실 최근의 역사로 올수록 알아가는 재미는 덜해지지만, 인류학 교양과정 교재로 손색없는 책이다.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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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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