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소행성 - 제12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53
오영민 외 지음 / 사계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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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대, 기후 위기로 계절의 풍경마저 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예전 SF소설 속에서나 등장했을 일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현실이 더 SF 같은데, 굳이 SF소설을 읽어야 할까?”라고 의문을 품어볼 법도 하다. 하지만 현실이 점점 더 SF를 닮아갈수록 오히려 SF는 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SF는 단순히 신기한 미래 기술을 보여주는 장르가 아니라, 그런 기술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 단편은 우주, 환경 오염, 좀비, 안드로이드 같은 흥미로운 설정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독자에게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표제작 사라질 소행성 AE-1.2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행성에서 살아가는 관리 로봇 아스터의 이야기다. 아스터는 버려진 로봇 루키, 반려견 로봇 링과 함께 나름의 일상을 꾸려 왔다. 그런데 지구에서 유입되는 쓰레기로 소행성이 점점 무거워져 궤도를 이탈하게 되자, 지구는 소행성을 폐기하고 아스터만 회수하기로 한다. 얼핏 보면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래봐야 아스터는 그저 수많은 로봇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이 작품은 안전한 삶이 정말 최고일까?”를 묻는다. 아스터가 끝내 안전 대신 미지의 세계를 선택하는 장면은 비록 로봇의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인간인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길을 선택할 용기,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영민의 은하수도 비슷한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의 미래는 기술이 발전했지만 환경 오염이 심해져서 청소년들이 자연과 철저히 분리된 채 살아가는 세계다. 학생들은 밀폐된 버스로 이동하고, 건물 창문은 닫혀 있으며, 손목 밴드는 위치와 감정 상태까지 기록한다. 모든 것이 안전과 보호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 선하에게는 답답한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선하는 잠자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작은 생명에게서 자신과 닮은 무엇을 느낀다. 선하가 경계를 넘으려는 순간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음을 향한 움직임으로 읽힌다. 편리하고 안전한 세상이 꼭 행복의 척도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조은오의 아이 엠 그라운드는 좀비가 가득한 세상이라는 익숙한 SF적 배경을 사용하면서도 단순한 생존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주인공 선우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을 이용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한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핵심은 초능력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빛나는 장면은 선우가 위기에 빠졌을 때 사람들의 손이 함께 뻗어 나오는 순간이다. 세상을 구하는 힘은 한 명의 특별한 영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어두운 세계 속에서도 이 작품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남지민의 최선의 선택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최선이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살아가는 최선은 자신의 이름이 때로는 부담처럼 느껴지는 인물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늘 바르게 선택해야 한다는 기대가 그 이름 안에 담겨 있다. 어느 날 고양이를 찾다가 고장 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나면서 위험한 상황에 휘말린다. 본인부터 약골인 최선이 자기보다 더 약한 존재를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고양이와 로봇 모두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이고, 최선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 순간 최선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의미가 된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결국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약한 존재를 향한 용기와 다정함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노고유의 치명적 오류는 제목처럼 조금 더 낯설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구 소련이 쏘아 올린 최초의 유인(?) 우주견의 이름을 딴 주인공 라이카는 안전 구역인 돔 밖에서 태어났으나 운 좋게도 돔 내부로 입양된 뒤 양어머니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다. 그러다 안드로이드 트로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인간이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여전히 품고 있다. 기계의 몸을 가진 후에도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인간인 라이카가 더 오랫동안 자기 삶을 살지 못했던 셈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정말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몸의 형태일까, 감정일까, 아니면 꿈을 잃지 않는 마음일까? 치명적 오류SF다운 상상력을 통해 나다움이란 무엇인지 섬세하게 묻는다.

 

이렇게 다섯 작품은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읽으면 공통된 결을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떤 경계 앞에 서 있다. 안전하지만 답답한 세계, 정해진 역할과 스스로 선택하는 삶, 혼자 살아남는 방법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가치들이다. 선택하는 힘, 타인과 손잡는 마음, 그리고 자기만의 꿈을 지키는 용기.

 

대상 독자가 청소년인지라 SF 장르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읽기 어렵지 않다. 우주와 로봇, 환경 재난과 좀비, 안드로이드 같은 소재들은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감시 기술, 환경 문제, 관계의 단절, 정체성의 고민 같은 문제들은 사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삶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미래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신 그런 미래가 온다면,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를 묻는다.

 

청소년 독자에게 이 질문은 특히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앞으로의 세상을 가장 오래 살아가야 할, 그리고 가장 먼저 변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게 될 사람들이 바로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정답을 주는 대신 생각할 거리를 준다.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SF라기보다 미래를 살아갈 마음을 준비하게 해주는 이야기 모음집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은 점점 더 SF처럼 변해 가고 있기에 우리는 더더욱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더 빠른 기술이나 더 화려한 미래가 아닌,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상상해야 한다. 이 책은 낯선 미래를 보여 주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지금 우리의 삶을 더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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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 뇌를 설계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다중언어의 놀라운 힘
비오리카 마리안 지음, 신견식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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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같은 전형적인 EFL(외국어로서의 영어) 환경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나는 이따금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일부 학습자들에게는 영어가 그저 대학 진학용 수능 1등급을 받기 위한 도구이거나 취업을 위한 스펙 정도로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만 하는 '진짜 이유'를 뇌과학과 심리학의 언어로 명쾌하게 증명해 주었다. 단순히 언어 학습법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다중언어 사용이 인간의 인지, 행동, 그리고 사회에 미치고 있는 경이로운 영향력을 밝힌 훌륭한 신경과학 보고서이자 철학서이기 때문이다.

 

1. 단일언어 중심주의의 함정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지 못할 뿐, 전 세계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거나 성인이 된 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다중언어 사용자는 뜻밖에도 매우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동안 인간의 마음에 관한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일언어 사용자'에게만 초점을 맞춰왔다. 저자는 두 개 이상의 언어 사용자를 '표준에서 벗어난 예외'나 유의미한 '신호'가 아닌 '잡음'으로 보는 과학계의 편견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는 불과 수십 년 전, 의학계가 심장병과 당뇨병을 오직 '백인 남성'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던 치명적 오류를 연상시킨다. 훗날 심장병이 여성에게는 다르게 발현되고 당뇨병 관련 당 대사 과정이 북남미 원주민에게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듯 말이다. 교실에서 영어를 제2외국어로 힘겹게 배우는 우리 아이들의 뇌 역시 단일언어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다. 단일언어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의 잠재력에 대해 부정확하고 잘못된 이해를 낳을 뿐이다. 저자는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잡음'이 아니라 뇌의 새로운 '신호'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2. 뇌는 아는 언어로 현실을 인식한다

아이들에게 늘 "영어를 배우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말해왔는데, 이 책은 그것이 단순한 은유가 아님을 입증한다. 현실은 주위를 둘러싼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뇌가 감각 정보와 과거의 경험을 결합해 만들어내는 '주관적인 경험'이자 신경망 활동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같은 자극이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부른다는 것은 쉽게 인정하면서도, 다른 '감각적 경험'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낯설어한다. 하지만 드레스를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또는 흰색과 금색으로 다르게 보는 착시 현상처럼, 감각적 인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는 과거의 신경 점화 패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한 '보글 게임(Boggle, 알파벳 조합 단어 찾기 놀이)' 비유는 무릎을 치게 만든다. 보글 게임판은 방향을 돌리면 같은 글자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합되어 더 많은 단어를 찾을 수 있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언어는 정보를 조직하고 구조화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며, 과학계는 지금껏 게임판을 한 번도 돌려보지 않은 채 인간의 뇌를 연구해 온 셈이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영어 수업은 아이들의 보글 게임판을 회전시켜 정보를 다르게 추출하고 해석하도록 돕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3. '언어 자아(Language Ego)'와 합리적 마음

"다른 언어를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영혼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명언을 이 책만큼 과학적으로 잘 풀어낸 문헌이 있을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언어 자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단단하게 형성된 자아는 새로운 언어를 접할 때 필연적으로 불안과 충돌을 겪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언어에 걸맞은 새로운 '2의 자아'를 잉태하게 된다. 실제로 교실에서 평소엔 수줍음 많고 조용하던 아이가 영어로 역할극을 하거나 말하기 평가를 할 때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당당하고 활달해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입 밖으로 영어를 내뱉는 순간, 내면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언어 자아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내가 영어 연설 모임에 나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떠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 역시 새로운 언어 자아가 실수를 용납하는 관대한 분위기에 젖어 들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이 언어 자아가 단순히 심리나 태도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뇌가 세상을 인지하는 물리적 방식까지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용자에게 영어로 "마커(marker)를 집으라"고 하면, 영어 단일언어 사용자와 달리 발음이 비슷한 러시아어 '마르카(marka, 우표)'를 떠올리며 우표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사용할 언어를 바꿀 때마다 뇌의 인식 체계가 달라지며, 사물을 다르게 기억하기까지 한다. 이 새로운 언어 자아는 인간의 도덕적 의사결정마저 뒤바꾼다.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시킬 수 있냐고 묻는 '트롤리 딜레마' 실험에서, 모국어로 물었을 때는 20%만이 동의했지만 제2외국어로 물었을 때는 33%가 동의했다. 단지 질문의 언어만 바꿨을 뿐인데 13%의 결정이 뒤집힌 것이다. 이른바 '외국어 효과(Foreign Language Effect)'라 불리는 이 현상은,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할 때 모국어의 감정적 굴레에서 벗어나 한층 더 이성적이고 공리주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언어 자아'를 꺼내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알츠하이머 방어막이자 언어 조작을 간파하는 해독제

"영어가 아이의 두뇌 발달에 정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 가지 강력한 예시로 이에 답한다. 첫 번째는 '인지 기능 저하'의 방어막 역할이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면 알츠하이머 및 치매 발병을 평균 4~6년이나 늦출 수 있다. 수년 동안 다니던 퇴근길이 무너져도 샛길을 아는 사람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듯, 다중언어 사용자의 뇌는 한 경로가 손상되어도 두 언어를 넘나들며 쌓아온 수많은 '우회 경로'를 통해 뇌 기능을 튼튼하게 방어한다. 구사하는 언어 수가 많은 국가일수록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눈에 띄게 낮다는 사실이 이를 명백히 증명한다.

 

두 번째 예시는 교육자로서 가장 흥미를 갖게 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두 살배기 자녀에게 정답이 '마지막 단어'에 오도록 유도 질문을 던져 천재처럼 보이게 했던 일화를 들려준다. 현실 세계에서도 정치인과 광고주들은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 언어를 조작한다. "생명권""선택권"의 프레임이 다르고, "상속세"보다 "사망세"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더 강한 반감을 갖는 원리다. 놀랍게도 다중언어 경험은 이러한 기만술을 간파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나보다 런던에 가본 사람이 더 많다" 같은 교묘한 논리적 오류를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훨씬 더 예리하게 찾아낸다는 실험 결과는, EFL 환경의 영어 교육이 단순한 언어 지식 습득을 넘어 세상의 프레임을 꿰뚫어 보는 '비판적 사고력'의 백신 효과를 보여준다.

 

5. 우주적 코드, 인류의 미래를 여는 열쇠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언어를 수학, 음악, 컴퓨터 언어와 같은 상징체계, '코드(Code)'의 반열에 올린다. 인간의 유전자 코드가 제한된 수의 DNA 염기쌍으로 지구상의 무한하고 복잡한 생명체를 만들어내듯, 우리의 언어 역시 제한된 알파벳과 단어로 무한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직조해 낸다. 결국 우리는 언어 학습을 통해 이 경이로운 우주적 코드를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낯선 영어 단어와 씨름하며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너희가 지금 깨우치고 있는 이 제2의 코드는 단순히 명문대를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너희 내면의 새로운 자아를 일깨우고 훗날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해 낼 인류 생존의 열쇠라고 말이다.

 

6. 결론 및 총평

저자는 결론부에서 언어 학습을 인간이 가진 '다중 지능'의 중요한 한 측면으로 제시하며, 다중언어 사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회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다른 추가적인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는 대목과 기존 학계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가설을 넘어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언제나 유익하다는 단언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뒤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는 성인 학습자들에게 든든한 과학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국무부가 영어를 기준으로 분류한 언어별 습득 소요시간 정보와 맺음말에 제시한 실용적인 언어 학습법은 매우 유용하다.

 

물론 비판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이 책은 주로 저자 본인의 연구에 뼈대를 두고 있어 이중언어의 이점을 무척 설득력 있게 증명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반론에 할애된 지면은 아쉬울 정도로 적다. 사실 학계에서는 이중언어의 인지적 이점이 과연 저자의 주장만큼 극적인가에 대해 실험 결과의 재현성 문제나 출판 편향성(publication biases)을 꼬집는 꽤 격렬한 논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혹시라도 이 책만 읽은 독자라면 반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맹신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교사로서 분명히 일러두고 싶다.

 

이러한 일말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심리학자, 언어학자, 교육학자는 물론 일반 대중까지 모두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는 탁월한 대중서임이 틀림없다. 저자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뇌과학 정보를 명확하고 매력적인 어조로 전달하며, 간간이 번뜩이는 유머 감각으로 글의 풍미를 더한다. 연구 현장에서 우러나온 저자 본인의 친근한 일화들 덕분에 독자들은 따뜻하게 환영받는 느낌 속에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소화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행위가 어떻게 우리의 집중력을 극대화하고, 무관한 정보를 걸러내며, 기억력과 창의성을 향상시키는지 궁금하셨는가? 더 나아가 그것이 고차원적인 추론 능력을 발달시키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이끌며, 내 뇌의 인지 예비능을 튼튼하게 키워주는 마법 같은 과정을 엿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EFL 환경에서 묵묵히 영어를 가르치는 동료 교사들과 끝없는 외국어 공부에 길 잃은 모든 학습자 그리고 치매 예방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다중언어 #심리언어학 #언어정체성 #언어는어떻게인간을바꾸는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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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1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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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 뇌를 설계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다중언어의 놀라운 힘
비오리카 마리안 지음, 신견식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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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언어 학습의 이점을 고찰한 유용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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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세종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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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50대에 접어들고 보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짐을 느낀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나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놓치고 살았나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오는 동안 사람들과는 잘 어울려 지냈는지, 매 순간 선택의 기준은 뚜렷했는지, 자신을 다독일 여유는 있었는지 문득문득 자문하게 된다. 이런 시점에 만난 이 책은 그저 단순한 독서를 넘어, 바쁘게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문하게 만든다.

 

이 얇은 문고판 책이 각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세종대왕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흔히 세종하면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성군을 떠올리지 않던가. 하지만 책 속의 세종은 완성형 위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점검하는 과정형 인간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기보다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신하들의 쓴소리에 귀 기울였고 잘못이 드러나면 주저 없이 고쳤다. 절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자세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리더의 모습과 겹치며 꽤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사람을 보는 기준에 대한 통찰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누가 더 뛰어나고 유능한지 서둘러 평가하려 든다. 하지만 세종은 사람을 탓하기 전에 문제그 자체를 먼저 보라고 조언한다. ‘누가 예민한가를 찾기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살피라는 그의 태도는 오랜 세월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수없는 갈등을 겪어온 중년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순간, 정작 중요한 본질은 놓치고 만다는 뼈아픈 진실과 함께 말이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역시 깊이 새겨볼 만하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내치지 말라는 세종의 철학은, 오로지 성과와 효율만 따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자칫 무르고 느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훨씬 깊은 곳을 향해 있다. 결과만 가지고 벌을 주면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숨기게 되고 조직은 안에서부터 병들고 만다는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 역시 젊은 시절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누군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너그러움은 단순한 관용을 넘어, 사람과 조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단단한 뿌리와도 같다.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세종은 사람을 믿되 결코 방치하지 않는 리더였다.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깔려 있지만, 그 믿음은 철저한 관찰과 질문, 그리고 책임지는 자세 위에서만 작동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가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의 입을 막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그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아 최선의 결정을 끌어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드는 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진정한 통솔력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서늘한 일침에 있다. 우리는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지만 정작 그 속에서 내 삶의 방향키를 놓쳐버릴 때가 많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기보다 얼마나 빨리 가고 있나만 따지며 사는 것이다. 책은 그런 우리를 멈춰 세우고 묻는다.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그 길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의외로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찬찬히 되짚어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목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세종의 태도와 마주치게 된다. 자신을 의심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그 담백한 자세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진짜 잃어버린 건 대단한 능력이나 기회가 아니라 바로 이런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완독 후에 당장 속 시원한 정답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한 기준하나가 자리잡는 느낌이 든다. 더 가지려고 욕심내기 전에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먼저 묻는 것. 더 빨리 가려고 채찍질하기 전에 지금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점검하는 것. 중년 아재의 가슴에 이 책이 툭 던져놓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생의 후반전은 얼마나 더 채우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덜 놓치느냐의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정신없이 내달려온 시간 끝에 비로소 마주하게 된, 실로 값진 깨달음이다.

 

#세계철학전집 #세종대왕 #세종대왕의마음가짐 #에세이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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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세종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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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것은 능력이고, 얻은 것을 지켜내는 것은 실력이다. 인생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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