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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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서 제목 Incognito'익명으로',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라는 뜻의 영어 단어로 라틴어 incognitus(알려지지 않은, 미지의)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제를 탐구하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목을 사용했다. 저자는 시각적 착시와 기묘한 사례 연구를 능숙하게 엮어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동시에 도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무의식의 심층을 탐구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 부교수인 저자는 대중 과학 서적을 집필하는 인기 학자다. 이 책에서는 뇌의 작동 방식을 흥미롭게 파헤칠 뿐만 아니라, 도덕성, 심리학, 그리고 뇌 연구의 역사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 삼매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그는 특유의 친숙한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과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개념을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책에 삽입된 시각적 착시와 도표는 독자의 흥미를 끌고, 각 장에서 다루는 원리를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은 난해하고 신비로운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강조하기보다 뇌의 다른 프로세스에 주목하며 의식의 중요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1966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총기로 13명을 살해한 찰스 휘트먼의 이야기다. 이 희대의 사건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무차별한 잔혹함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휘트먼을 단순히 악인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뇌 부검 결과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휘트먼의 편도체를 압박하고 있던 거대한 종양이 극단적인 분노 폭발을 일으킨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비난의 대상이 범인이어야 할지 아니면 종양이어야 할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종양이 없었다면 13명의 목숨이 온전했을까? 그는 이처럼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하며 교도소 시스템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수감자의 행동을 수정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진정한 정의와 재활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며, 독자에게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안겨준다.

 

이 책의 흥미로운 핵심은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사실상 착각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뇌는 현실을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경험하도록 해주지만 사실은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단순히 눈을 통한 수동적 정보 입력이 아니라 뇌가 능동적으로 구성한 이미지라는 점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예컨대 시속 145km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타자나 멀리서 떨어지는 공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외야수는 이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뇌가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 궤도를 예측하고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해 움직인다.


저자는 다양한 착시 효과와 사례 연구를 활용해 이러한 뇌의 작용을 증명한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얼굴-꽃병 착시'를 비롯한 여러 시각적 착시 실험을 소개하며, 감각 대체(sensory substitution) 기술을 통해 뇌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시각 장애인은 비디오 카메라에서 받은 신호를 등을 비롯한 신체의 다른 부위나 심지어 혀를 통해 감지하면서 시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뇌가 특정 감각 기관에 종속되지 않으며, 다양한 입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그는 또한 단순한 분석에서 나아가, 이러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텍사스의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신경과학 및 법률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는 뇌 손상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한다. 범죄 행동을 포함한 인간의 비행이 뇌 화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현재의 법체계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범죄자의 행동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논지를 접한 독자들은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유전자, 호르몬, 신경 반응 같은 생물학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자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환원주의자가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우화적 접근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칼라하리 사막의 한 부족민이 우연히 라디오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다이얼을 돌려 소리와 음악을 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원래 녹음된 후 전파를 통해 전달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경 회로와 신호 전달에 대해 아무리 연구해도 인간 경험의 본질을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체는 분자와 단백질, 뉴런에 묶여 있다"고 단언하면서도 인간을 단순히 이러한 요소들의 집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국, 그의 연구는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전적인 도덕 우화가 복잡한 신경과학 연구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문화와 대중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이 책이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과학적 배경지식보다는 영화배우 멜 깁슨을 알고 있거나 영화 트루먼 쇼를 본 경험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야구 경기에서 타자의 무의식이 통제권을 가질 때 홈런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의식적으로 타격을 조절하려 들면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를 설명한다. 이런 비유 덕분에 독자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따금 일부러 유머를 의식한 농담이나 부차적인 내용 때문에 과학적 논점이 흐려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신경과학의 세계를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저자는 야심 차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기존의 질문보다 더 많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때로 책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독자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배울 기회를 얻는다. 책을 읽은 다음 누군가는 매일 스도쿠를 풀며 인지 예비 능력을 키우려 들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책에서 소개한 착시 현상을 활용해 자신의 시각적 수용체를 실험해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방식이든, 이 책은 독자에게 값진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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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 - 중세부터 현재까지 혼자의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들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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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빈센트가 저술하고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은 '프라이버시'(사생활 또는 사적 자유)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프라이버시가 단순히 현대 사회에서 법적 또는 기술적 문제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개념임을 강조한다. 또한, 이 책은 개인주의가 비교적 일찍 발달하고 자리 잡은 유럽인의 시각에서 서술되었으므로 동양 사회와의 근본적인 배경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옛날에는사람들이 사생활을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주장과 마주하곤 한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며,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고, 이러한 생활 방식 외에는 다른 대안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적어도 17세기 무렵까지는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영국의 극작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희극을 보면 이러한 가정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알 수 있다. 초서의 이야기에는 은밀한 행위, 닫힌 창문, 남편이나 관리, 도덕주의자들의 감시를 피하려는 시도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러한 잘못된 가정을 바로잡으며, 중세부터 시작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촉발된 디지털 소통과 국가 감시에 대한 현대적 논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사생활의 개념과 그 실천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프라이버시 개념을 크게 세 가지 축에서 고찰한다. 첫째는 물리적 공간의 프라이버시로서 가정과 개인적 생활의 보호 문제이고, 둘째는 정보와 소통에서의 프라이버시로서 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 온 비밀 유지와 검열의 문제이며, 셋째는 법적·정치적 차원에서의 프라이버시로서 정부와 사회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거나 침해해온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프라이버시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17~18세기에는 사적 공간 개념이 귀족과 상류층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함께 일반 대중에게도 프라이버시 개념이 확대되었다. 20세기에는 법적 보호가 강화되었으며,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감시 문제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특히 19세기 산업혁명과 도시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개념이 크게 변화했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법적·기술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은 근대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개인의 생활이 공동체 속에 깊숙이 녹아 있었으며, 현대적인 의미의 사적 공간 개념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17~18세기에 들어서면서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려는 인식이 확대되었으며 법률과 건축 양식, 가정생활의 변화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산업혁명은 프라이버시 개념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화와 공장 시스템의 확대로 인해 많은 사람이 좁은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 시기에는 신문과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공인(公人)과 사인(私人)의 구분이 더욱 명확해지는 동시에, 사생활 침해 문제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책은 사생활의 역사를 단순한 선형적 발전 과정으로 설명하는 대신, 시대별로 사생활 개념이 얼마나 급격히 변화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시대에는 사생활 개념이 점진적으로 발전했지만, 특정한 순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공적·사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뒤바꾸기도 했다.

 

도입부의 역사 기록은 특히 흥미로우며, 우리가 흔히 아는 사생활 개념에 대한 역사적 가정을 무너뜨린다. 17세기까지도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방이 많았고 방 한 칸이 여러 기능을 수행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사적인 공간과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발달했다. 특히 침실의 중요성이 점차 커졌고 침대를 개인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지출이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쳐 20세기식 사생활 개념으로 발전해 나갔다. 세기마다, 그리고 한 세기 내에서도 사생활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연관된 개념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현재와 똑같이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었다. 사생활은 돈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는 점이다. 충분한 재산이 있다면 편지를 보관할 가구, 손님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개인 방이나 정원, 하인들을 위한 별도의 숙소, 자녀들을 위한 개별 방, 두꺼운 벽 등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실내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 개인적인 위생 활동도 방해받지 않고 수행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실내 화장실을 갖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었다.

 

사생활의 역사에서 명확한 단절점 중 하나는 1960년대 중반부터 사생활이 종말을 맞이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1969년경부터 이미 사생활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선언이 있었는데, 이는 현대 도시 생활에서 감시 기술이 향상하면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저자는 현대 사례들을 활용하여 정체성이 더 이상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개방되고 접근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향을 탐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사생활 개념은 단순하지 않으며 다양한 모순과 복잡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당신 집 주변 다섯 가구에서 가정폭력이 정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 이를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단 6%만이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감시가 반드시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특정한 형태의 사적 공간은 여전히 침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노든, 페이스북, 그리고 디지털 소통 방식에 대한 강력한 논의를 제시하면서 인터넷이 조직화되고 중앙집중화되어 있다는 믿음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감시의 거미줄 중심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일한 지성이 존재한다는 신화를 지적한다. 이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빅 아더(Big Other)’ 개념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는 전지적 존재가 있다고 상상하며 행동을 조정하는데, 스노든이 NSA를 푸코적 판옵티콘(panopticon)’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가정을 정확히 보여준다. ,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전지적 감시의 눈이 우리의 삶을 매순간 들여다본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사생활의 문제는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복합적이었다는 점이다. 15세기부터 존재했던 서간 불안(epistolary anxiety)’, 즉 개인적인 편지나 글이 잘못된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을 언급한다. 결국, 소통이란 언제나 우리 통제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지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생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왜곡된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층적인 디지털 소통과 무수한 메시지와 정보의 범람 속에서, 여전히 개인 간의 사적인 접촉 방식은 존재하며 이는 국가의 감시 시스템이나 NSA, 타인의 시선 등에 의해 노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사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생활은 여전히 사생활로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프라이버시의 역사적 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현대 디지털 환경에서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인터넷과 데이터 보호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최근의 AI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프라이버시 위협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예컨대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알고리즘을 통한 개인정보 활용 문제, 국가 차원의 감시 시스템 확대 등이 현대 프라이버시 논쟁에서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다뤄진다. 둘째, 프라이버시 개념의 변화가 주로 서구 중심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되기 때문에, 아시아나 다른 지역의 프라이버시 개념 변화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하지만 사생활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유익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사생활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재구성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고민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주로 영국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되었지만, 사생활의 역사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므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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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 - 중세부터 현재까지 혼자의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들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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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개인주의 사회의 토양을 알 수 있는 역사서. 서구보다 더 개인화되고 쉽게 침해받는 한국 현대사회의 사생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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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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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을 통해 도덕적 진보가 왜 필요한지와 저자의 문제의식, 그리고 철학적 방향성을 설정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 즉 민족주의 강화로 인한 전쟁 위험과 생태 위기 같은 심각한 상황을 언급하며, 이를 해결하려면 도덕적 진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능력을 깨닫고, 민족 국가의 이기적인 관점을 넘어 전 세계적인 협력에 나서는 것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세계사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도덕적 반성과 실천이 필요하며, 민족 국가 중심의 이익 추구를 넘어서 인류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목표와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도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도덕적 진보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도덕적 실천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와 세계적인 차원에서 협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결국, 도덕적 진보를 통해 글로벌 위기와 역사적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려 한다. 독자들에게 도덕적 진보가 왜 필요한지 설득하고,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려 한다.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도덕적 혼란과 위기를 통찰하며, 도덕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철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 도덕성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설명하며, 앞으로도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논의한다.


1. 도덕적 진보의 가능성: 역사적 사례와 철학적 분석

책의 핵심 주장은 "도덕적 진보는 가능하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인류가 도덕적으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노예제 폐지, 여성의 참정권 확보, 인권 선언 등은 도덕적 가치를 확장해온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이러한 사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자유의지와 이성적 사고를 통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더 나은 기준을 세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도덕적 진보를 "가능성의 영역"으로 정의하며, 진보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인간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의미의 영역"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통해 인간이 자기 삶과 타인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가 도덕적 진보의 핵심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내적 가치 체계의 확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 진보를 이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 사례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러한 논의는 도덕적 진보가 단지 개인적 윤리적 성숙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변화까지 포함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 권리의 확립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도덕적 진보가 사회 제도와 법률의 변화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도덕적 행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편 독자들에게 이를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2. 현대 사회의 도덕적 도전: 위기와 기회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도덕적 도전도 심도 있게 다룬다. 환경 문제, 디지털 시대의 윤리적 쟁점, 정치적 극단주의 등을 사례로 들며 이러한 문제들이 도덕적 퇴보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기후 변화 문제를 중요한 화두로 삼아 인류가 지구 환경을 보호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무관심이 단순히 환경적 재앙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 세대에 대한 도덕적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도덕적 도전도 논의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윤리적 판단을 어렵게 만들며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디지털 기술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철학적 기준과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러한 도전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위기들이 도덕적 진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적 연대와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특히 교육과 철학적 대화를 통해 새로운 세대가 더 나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 비판적 시각: 지나친 낙관과 모호함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몇 가지 제한점도 있다. 첫째, 지나친 낙관주의가 현실적 한계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강조하지만 이기심이나 구조적 불평등 등 현실적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다.

둘째, 도덕적 진보의 기준이 다소 모호하다. 도덕적 진보라는 개념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이를 평가하거나 측정할 구체적인 지표가 부족하다.

셋째, 철학적 논의가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실천적인 적용이 어렵다. 예컨대, "의미의 영역"이라는 개념은 흥미롭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지침이 부족해 보인다. 더욱 실질적인 전략과 사례가 보완된다면 저자의 주장은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4. 실천적 함의와 철학적 통찰

그런데도 이 책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도덕적 진보를 단순한 이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목표로 제시하며 공동체 연대와 상호 존중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학교에서의 철학 교육이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감을 함양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도덕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5. 결론: 도덕적 진보를 향한 희망

결론적으로, 이 책은 도덕적 진보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비록 지나친 낙관주의와 추상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독자가 도덕적 진보에 대해 깊이 고민할 여지를 준다. 마치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듯 도덕적 혼란 속에서 방향성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제공하며 도덕적 진보를 위한 행동을 촉구한다. 개인과 사회, 전 지구적 차원에서 도덕적 변화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 책은 현대 철학과 도덕 담론에 크게 이바지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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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붕괴의 시대 - 반도체칩부터 생필품까지, 글로벌 공급망의 숨겨진 이야기
피터 S. 굿맨 지음, 장용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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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마법 같은 시대라 불릴 정도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물건을 바로 집 앞까지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토스터에서 고양이 사료에 이르기까지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하면 하루 이틀 만에 도착한다. 그러나 소비자 대부분은 이 과정의 단순함과 편리함의 혜택을 누리기만 할 뿐,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공급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뉴욕 타임스> 기자 피터 굿먼은 이 책에서 세계 경제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현대 공급망이 가진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이 편리함이 마법이 아니라 착취와 구조적 취약성 위에 세워진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택배 상자를 바라볼 때 그 상자가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눈에 띄지 않는 노력이 담겼다는 사실을 떠올리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누리는 편리함 뒤에 감춰진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한다.

이 책은 세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각 부분을 통해 한 개의 사례 상품, 즉 Glo라는 야광 목욕 장난감의 생산과 배송 과정을 따라가며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과 취약성을 해부한다. Glo가 중국 공장에서 미국 소비자들의 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상세히 서술하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시스템적 문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 제조를 외주화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한다. 저자는 ‘경제적 경쟁’이라는 수사(修辭)를 비판하며, 미국 중산층의 임금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한 내부적 요인이 외주제작을 가속했다고 주장한다. ‘범죄가 있었다면, 그것은 내부자 소행이었다’라는 표현은 이 문제의 핵심을 간명하게 짚어낸다. 그는 투자자 계급의 단기적 이익 추구가 노동 착취를 심화시키고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적기 생산(Just In Time) 생산방식의 폐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토요다가 창시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비용을 절감하려는 이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수익성을 높였으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공급망의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이 방식은 ‘중독성 강한 효율성의 형태였다’며, 노동자들의 시간과 복지를 희생시켜 이룬 효율성의 대가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특히, 이 모델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을 희생하며 작동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저자의 주장은 팬데믹 이전의 세계화 역사와 맞닿아 있다. 냉전 이후 세계는 중국을 제조 허브로 하는 전 지구적 생산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는 저렴한 상품과 신속한 배송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팬데믹은 이러한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공급망의 혼란이 직접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세계화가 가져온 이점과 부작용을 동시에 살펴보며 소비자와 정책 결정자 모두가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또한 세계화가 월스트리트와 같은 금융 엘리트의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왔음을 지적한다. 세계화가 노동자와 소비자들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시스템이 대규모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경고한다. 팬데믹은 이러한 문제를 가시화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에 또 다른 충격에 대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화의 재구성이 단순히 필요한 것임을 넘어 세계 경제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상품 운송 과정에서의 문제들을 조명한다. 여기서는 특히 해운업 종사자, 항만 노동자, 그리고 트럭 운전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팬데믹 기간 동안 겪었던 고충이 두드러진다. 선원들이 항구 앞 바다에서 수개월간 배에서 내려오지 못했던 사례를 통해 고립과 비인간적인 조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묘사한다. 또한, 항만 노동자와 트럭 운전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 문제를 강조하며, 이러한 노동자들이 공급망의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착취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노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국제 항만 및 창고 노동조합(ILWU)과 같은 조직이 공정한 임금과 복지를 확보한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단기 계약에 의존하는 트럭 운전사와 철도 노동자들이 직면한 구조적 실패를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효율성을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시스템적 문제를 꼬집는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글로벌 무역의 변화하는 동향을 다룬다. 베트남과 멕시코로 제조 허브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논하면서, 이는 글로벌화의 종말이 아니라 허브의 재구성이며 여전히 자급자족에서 먼 현실임을 강조한다. "세계화는 끝나지 않는다. 국제 무역의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문제의 근본은 노동 착취와 기업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저자는 노동자 권리 보호와 규제 강화, 이익 중심적 의사결정에서의 탈피를 요구한다. 그는 공급망 혼란의 궁극적 해결책은 경쟁을 촉진하고 노동자들이 공정한 몫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의 재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급망 안정성을 위한 방안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의 논의 중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노동자들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다룬 부분이다. 그는 해운업 종사자와 트럭 운전사들이 가정에서 겪는 소외와 단절을 생생히 묘사하며, 효율성 중심의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개인적 삶에까지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러한 논의는 공급망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 관점에서 재고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책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저자는 근본적 문제를 철저히 분석하고 있으나 공급망의 탈세계화나 지역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근거리 생산’, ‘리쇼어링’ 등의 대안들을 언급하지만, 그 실효성과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데는 성공적이었으나 실제적 해결책에 대한 갈증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팬데믹을 계기로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노동 착취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 수작이다. 복잡한 문제를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공급망의 본질을 통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 제시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와 노동 문제, 물류와 무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줄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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