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기 있는 과학 서적은 마치 출퇴근 시간의 버스처럼 독자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요즘처럼 뇌과학 열풍이 뜨거운 시대엔, 이 책이 그 인기몰이 버스에 탑승한 것 같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얼마나 유연한지, 그리고 우리 인간이 왜 이렇게 다재다능한지에 대한 놀랍고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비결은 바로 '생후배선(livewiring)', 즉 우리의 두뇌가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배선을 갈아 끼우듯 자신을 재구성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두뇌를 컴퓨터 배선처럼 비유하는 감각은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물론 뇌가 '입력에 따라 변화하는 자기 적응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극적인지는 최근 들어서야 주목받고 있다. 뇌의 절반을 제거했음에도 정상적으로 성장한 어린 매슈부터 방의 조명 변화에 눈 깜짝할 사이에 적응하는 놀라운 사례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심지어 언어 습득의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쳐버린 아이들이 이후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안타까운 사례도 등장한다.

책의 중심 개념인 생후배선과 뇌 가소성은 둘 다 뇌의 발달과 변화에 관련되어 있지만, 적용 시점과 방식은 다르다. 생후배선은 어린 시절에 뇌가 외부 자극을 받아 뉴런 간 연결을 빠르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 시기에 언어나 운동 기능의 기반이 만들어진다. 반면 뇌 가소성은 평생 계속되어 학습과 경험에 따라 신경망이 계속 바뀌게 만든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뇌 손상 후 회복 과정에서 중요하다. 한마디로 생후배선이 초기 설계라면, 뇌 가소성은 평생 업그레이드되는 펌웨어 업데이트 같은 셈이다. 책에서 제시한 7가지 요점은 뇌의 신비를 아주 재밌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1. 뇌는 필요에 따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다.

어린 매슈는 심각한 발작으로 뇌의 절반을 떼어냈지만, 3개월 후엔 누가 봐도 뇌의 반쪽이 없다는 걸 눈치챌 수 없었다. 약간의 불편을 빼면, 뇌가 알아서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2. 뇌는 어떤 감각이라도 처리할 수 있다.

1960년대 실험에서 한 시각장애인은 등에 달린 압력 장치로 시각을 대신했고, 이틀 만에 사물을 식별하기 시작했다. 등으로 보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신기하다.

 

3. 뇌는 어떤 신체든 작동법을 습득한다.

두 발로 태어난 개 페이스는 사람처럼 걷고, 팔 없이 태어난 양궁 선수 매트는 발가락으로 화살을 정확히 쏘는 신기록을 세웠다.

4. 뇌는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적응한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펄만의 뇌는 일반인과 확실히 다르다. 뇌도 중요하다고 느끼면 적극적으로 개조하는 모양이다.

 

5. 뇌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는 잠궈둔다.

1980년대 IBM 로고에 갑자기 빨간색이 추가됐다는 이상한 착각 사건이 있었다. 물론 로고는 변한 적 없었다. 사람들의 뇌가 너무 익숙한 이미지를 임의로 바꿔버린 것.

 

6. 나이가 들수록 뇌 가소성은 감소한다.

어린 나이에 뇌의 절반을 잃어버린 매슈는 회복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극단적인 적응은 어렵다. 뇌가 점점 덜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7. 오래된 기억은 최근 기억보다 더 강력하다.

1960~1980년대 출생한 사람들의 공감각 패턴이 당시 유명한 알파벳 자석 세트와 일치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평생 유지된 셈이다.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건 확실히 큰 불행이다. 그러나 만약 잃어버린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흥미로운 가능성은 세 가지 중요한 문제를 낳는다. 첫째,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기술 접근이 불균등하면 이미 존재하는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 둘째,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에 대한 정의가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셋째, 자아 정체성과 윤리적 동의 문제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본인의 동의 없이 기능 강화가 이루어진다면 윤리적 논란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기존의 고정된 뇌 개념을 뒤흔들며 인간의 뇌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작품이다. 뇌를 단순한 회로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연결망으로 설명하며, 우리가 학습하고 경험할 때마다 신경망이 재조직된다는 점을 생생한 사례와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더불어 신경 가소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감각 대체 기술, 신경재활, 인간 인지 능력의 확장 가능성 등 현대 뇌과학이 제시하는 혁신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특히 뇌가 특정한 입력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생후배선의 특성을 지녔다는 점은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교육, 의료 분야에도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학습과 창의성, 그리고 미래 기술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다. 우리의 뇌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적응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학부 시절 미국문학사를 배우면서 처음 접했던 피츠제럴드를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니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신선함을 느낀다. 그간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종종 영화로 보기도 했지만 특히 이번에 만난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같았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마치 피츠제럴드가 직접 작가나 작가 지망생을 위해 쓴 안내서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의 작품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글을 엮은 것이었다. 기대와 달리 안내서가 아니어서 처음엔 조금 아쉬웠지만, 생각해 보면 그는 평소에도 다른 작가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왔고, 자기의 이야기를 아주 뻔뻔하고도 유쾌하게 작품 속에 녹여냈기 때문에 편집자가 모아놓은 글 속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매력적인 무대, 역동적인 전개, 활기찬 인물, 적절한 속도감과 활기까지 소설의 구상에 모두 담겨 있어야 해. 이중 두 가지가 빠지면 소설은 힘을 잃을 것이고, 세 개나 네 개가 빠지면 매장이 반쯤 문 닫는 백화점을 운영하는 꼴이 되어 버릴 거야. (51)

 

피츠제럴드가 이 책에서 말하는 두 가지 분투는 근본적으로 글쓰기의 내적 갈등과 작가로서 살아가는 현실적 갈등이다. 첫 번째 분투는 바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가져오는 고통인데, 사실 글쓰기란 자기 내면의 혼란과 마주하며 언어로써 이를 조각내고 다듬어 가는 까다로운 과정이다. 피츠제럴드의 표현대로라면 작가는 항상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아주 고약한 질문과 끊임없이 씨름하는 존재이다. 두 번째 분투는 작가로서의 삶이 전혀 녹록지 않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피츠제럴드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경제적 압박,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갈증, 복잡한 인간관계 등 현실의 문제들은 항상 작가를 괴롭힌다. 글쓰기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가다 보면 현실과의 타협도 불가피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대체 내가 이 일을 왜 하는 거지?"라며 존재의 목적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피츠제럴드가 이야기하는 이 두 가지 싸움은 서로 맞물려 있다. 작가로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려는 내적 투쟁과 현실의 냉혹한 벽을 뛰어넘기 위한 외적 투쟁은 모두 작가가 자신을 계속해서 탐구하며 나아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늘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피츠제럴드 역시 그 질문을 작품과 삶 속에서 온전히 살아낸 인물이었다.

 

삶에 대한 날카롭고 명확한 태도 없이, 어찌 소설가로서의 책임을 떠맡을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69)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헤밍웨이에 대해 언급한 편지와 그의 딸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중에서도 딸에게 추천한 애정 가득한 책 목록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보다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나았다고 본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1920~30년대 파리의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두 작가로, 서로의 삶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맺었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쇠퇴와 비교하며 자존감을 상실해 갔고,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존중하면서도 그의 방탕한 삶과 자존감 부족에 대해 실망을 드러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마치 서로의 궤도를 돌며 간헐적으로 충돌하는 위성처럼 경쟁과 우정, 존경과 실망 사이를 오가는 공전하는 관계를 이어갔다고 알려졌다.

 

내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실제로 덜어낸 부분과 감정적으로 걷어낸 것만으로도, 또 한 권의 소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85)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소설인 <낙원의 이편><위대한 개츠비>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1920년대 미국의 번영기, 즉 재즈 시대(Jazz Age)의 화려한 면모와 함께 그 뒤편에 숨겨진 공허함, 환멸, 도덕적 타락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가장 밝은 동시에 가장 어둡기도 한 달의 양면처럼 특히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재물과 쾌락의 풍요로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부패와 상실감을 심층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상이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개츠비의 삶을 통해 성공과 부를 얻고자 하는 개인의 열망이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는 영혼의 황폐함과 환멸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은 대체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하다. 상류층 인물들의 겉모습과 내적 진실 사이의 괴리를 묘사하여 당시 미국 상류층의 위선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네 갈망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때닫게 된다는 거야. 그 순간 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그들 중 하나가 되거든. (101)

 

<낙원의 이쪽(This Side of Paradise)>이나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 등에서도 피츠제럴드는 청춘의 방황, 낭만적 꿈, 이상주의가 결국 환멸과 무기력, 허무로 빠져드는 과정을 잘 묘사하면서 젊음의 화려한 순간 뒤에 찾아오는 인생의 실망과 상실을 강조한다. 인물들이 지닌 이상주의적 열망과 냉혹한 현실 간의 괴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개인의 꿈이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는 비극적 순간을 포착한다. 개츠비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대개 이상을 좇다가 현실과 충돌하여 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낭만적 이상주의(로맨티시즘)와 세련된 스타일의 문학적 모더니즘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으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와 정교한 서술 구조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섬세히 묘사했다는 평을 듣는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저 자신이 본 것을 더 많이 기록할 수 있을 뿐이지. (115)

 

피츠제럴드는 흔히 타고난 작가로 묘사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나비 날개 위에 쌓인 먼지가 자연스레 그리는 무늬처럼 타고난 것"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다르게 보았으며 "내가 성취한 작은 것들은 모두 가장 고된 노력과 힘든 싸움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인용구에 밑줄을 긋게 되는데, 아마 시간이 좀 더 흘러 다시 읽는다면 더 많은 부분에 표시를 남길 것 같다. 그는 실제로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이 그런 재능을 지녔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인용구마다 정말 많은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내 인생은 글쓰기를 향한 열망과 이를 방해하는 온갖 상황이 만들어낸 투쟁의 역사다. (143)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미국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읽히고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그의 문학이 단순한 시대 묘사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의 본질과 인간 욕망의 보편성을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그의 소설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과 그 이면의 공허함, 계급 상승에 대한 갈망과 좌절, 사랑과 자아의 분열 같은 주제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공감과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녔다. 이는 문학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한 사회의 정신적 거울이자 교육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예술이 공적 가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지인과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말을 많이 남겼다. 다만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작가로서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쓰기는 스스로를 깎는 과정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깍고 나면, 더 앙상하게 벌거벗겨진 아주 작은 무언가만 남게 되는 거지. (165)

 

#글쓰기 #스콧피츠제럴드 #위대한글쓰기 #피츠제럴드글쓰기의분투 #리뷰어스클럽 #서평 #책추천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실한 작품은 작가가 진실한 삶을 살아야 세상에 빛을 보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에 논리와 근거로 맞서는 힘
리처드 도킨스 외 30인 지음, 존 브록만 외 엮음, 김동광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가장 단순한 질문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답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에 논리와 근거로 맞서는 힘
리처드 도킨스 외 30인 지음, 존 브록만 외 엮음, 김동광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사람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가미를 필요로 하듯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뇌를 필요로 한다. 바다가 소금물로 가득 차 있듯이, 사람의 바다는 언어처럼 배워야 할 무수히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 리처드 도킨스, 30

 

이 책을 저술한 학자들은 주로 영국 아니면 미국 출신이다. “사물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비과학적 설명으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웅장함과 영광이 있다는 마리안 스탬프 도킨스의 표현처럼 일부 저자는 마치 과학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과학계의 대중 친화적 면모를 보이기도 하나 그럼에도 대부분 저자들은 지나친 단순화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어떤 글은 표현의 명료함에 주목할 만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진화론에 대한 겸손한 설명은 우리가 무성한 수목이 우거진 생명 나무에서 작고 늦게 피는, 궁극적으로는 일시적인 나뭇가지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이클 S. 가자니가는 잡음이 많은 데이터 집합에서 관계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평균과 통계 정보에 대한 잘못된 의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앤 파우스토-스털링은 동물의 동성 결합에 대해 놀랍도록 독창적인 생각을 펼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빛나는 사상가와 과학자들이 모여 각자의 분야와 관련된 글을 통해 우리의 지성에 도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동시에 과학의 세계를 지배하는 '핵심' 이슈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일깨워준다. 또한 자연 세계와 그 모순에 대한 생생한 담론을 제공하며, 학술적이면서도 일반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준의 접근성을 유지한다. 다양하고 활기찬 이 에세이집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읽을거리이다.


 

만약 내가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려는 이 에세이집을 좀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시큰둥함을 넘어 약간의 거부감마저 유발하던 과학 수업, 특히 물리와 화학 과목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과학 교과서는 실용적인 응용이나 그 배경이 되는 역사가 별로 없어 흥미를 끌어내기보다는 과학사적 사실 위주로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철학, 논리, 윤리와 함께 융합되어 제시되는 추세로 보아 과학을 과목별로 분리하여 학습한 것이 꼭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닌 듯하다. 르네상스가 과학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과학을 분야별로 나눈 것이기는 했지만, 과학은 항상 다른 학문과 함께 어우러져 작동하게 되어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각 에세이의 마지막에 과학자 또는 저자에 대한 짧은 약력이 소개되는 점은 마음에 든다. 이 약력에는 해당 저자가 쓴 다른 책의 제목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반인을 위해 저술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서문에서 밝혔듯 이 에세이를 읽는 것은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과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엿듣는 상황과 비슷하다. 짧으면서도 주제 집중적인 에세이에는 각 과학자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세부 정보가 제공되며,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뤄지는 주요 주제는 과학, 기원, 진화, 마음, 우주,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과학적 개념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과학적 방법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가설이 어떻게 설정되고 검증되는지, 그리고 새로운 발견이 기존 지식과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설명한다. 관찰과 실험,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우리에게는 주관적인 편견이나 감정보다는 객관적 증거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복잡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한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아우르며 각 분야의 최신 연구와 이론을 소개한다. 과학의 다양한 측면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으며 각 분야 간의 연관성과 통합적인 관점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물리학적 논의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물학적 논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지식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과학 내에서의 다양한 견해와 논쟁을 소개하며, 과학이 단일한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와 논의를 통해 발전하는 동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심화시킬 수 있다. 과학적 배경이 없는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언어로 쓰였으며, 전문 용어를 최소화하고 일상적인 예시와 비유를 통해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고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임으로써 독자들은 힘들이지 않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다.

 

혹시라도 일부 독자들은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각 에세이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인 흐름이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무려 30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책이므로 일부 내용은 현재의 과학적 발견이나 이론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최신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은 이를 감안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데 탁월한 자원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에세이를 통해 현대 과학의 핵심 개념과 논쟁을 접할 수 있으며 과학적 사고방식을 습득할 좋은 기회이다. 과학은 잘 모르지만, 호기심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과학적으로 훌륭한 독자다.

 

#포레스트북스 #세상은어떻게작동하는가 #과학에세이 #과학적사고방식 #과학사 #리처드도킨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