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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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는 젊은 시절에 비디오 가게에 근무하면서 숱하게 봤던 싸구려 B급 영화들을 인용하여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감독으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성향 덕분에 미국 영화계에서 덕질로 가장 성공한 영화 오타쿠’, 'B급인척 하는 S급 영화 감독' 으로 불린다. 그의 특징이라면 극단적인 폭력성, B급 성향, 찰진 대사, 과거 영화에 대한 오마주, 탁월한 음악 선곡 능력 등이 꼽히며, 이 외에도 극단적 성향 캐릭터의 충돌, 장황하지만 시시껄렁한 대사, 긴박감 넘치는 전개와 비선형적 서사 구조 등이 있다.

 

바스터즈, 저수지의 개들, 킬 빌, 헤이트풀 8, 쟝고 등 타란티노의 영화 대부분이 재미를 선사하는 요소는 질리지 않는 소재, 즉 통쾌하고 유혈 낭자한 복수에 있다. 나치의 머리 가죽을 벗겨 이마에 철 십자를 새기고, 이미 외눈박이인 상대의 눈알을 마저 뽑아 으깨고, 아예 폭발물로 몸통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폭력 한 가지만 놓고 보면 상당히 께름칙하지만 대개 폭력을 당하는 이는 만렙 악당이다.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는데 관객은 환호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와 대상을 철저히 희화하기 때문이다.


사실 타란티노의 첫 소설이자 이론적으로는 같은 제목의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인 이 책을 어떻게 평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영화에 대한 동반 작품이 아닌 이상 별반 효과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영화의 필사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역할을 하는 챕터가 몇 개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전혀 나오지 않으며, 영화가 끝난 후 등장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긴 부분에서 지나가는 대화로만 언급되는 방식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절정 부분이 책의 마지막이 아니라 4분의 1 정도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 기존의 영화에 대한 재구성이나 삭제된 장면에 양념을 치는 듯한 소설화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하리란 뜻이다.

 

대신, 타란티노는 시간을 앞뒤로 넘나들며 다양한 시점을 통해 릭 달튼이 랜서 파일럿을 촬영하던 당시의 느슨한 흐름을 따라 훨씬 더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펼쳐낸다. 브래드 피트의 클리프 부스에 대한 많은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타란티노는 종종 캐릭터를 둘러싼 모든 언어 외적인 의미를 말로 표현한다. 종종 브래드 피트의 간결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조화시키기가 조금 더 어렵거나 더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달튼의 경력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아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 밖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샤론 테이트가 할리우드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맨슨 가족과 함께한 푸시캣의 초기 경험도 볼 수 있다. 타란티노가 영화를 시작하기 전 염두에 두었던 더 큰 세계와 배경에 대한 감각을 통해 그가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 이야기를 구상하는 방법 등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상당히 목적이 없고 느슨하며, 토끼 굴을 헤매며 시간을 표류하는, 매우 느슨한 의미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맨슨 가문이라는 줄거리가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샤론 테이트의 일부 장면이 흥미롭기는 하다. 그녀 역시 릭과 클리프처럼 타란티노를 사로잡지 못하는 줄거리 흐름처럼 느껴지는 등 몇 가지 문제를 강조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단순히 왔다가 사라진 할리우드 시대, 즉 이 시점에서 이미 사라지고 있었지만 끔찍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더욱 밀려난 시대에 어울리고 싶은 욕망이다.

 

클리프가 일본 영화를 처음 접하고 방황하거나, 릭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폭발적인 성장과 씨름하고, 노배우들이 한때 알고 지냈던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당대의 중심인물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원초적 욕구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역사 속 이름과 인물을 삭제하는 것을 허용한다. 알도 레이의 고통스러운 몰락이나 배역을 얻지 못한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동료 배우들 간의 대화와 한 장면에 불과한 예상치 못한 마지막 장까지, 영화의 힘과 연기의 기술에 대한 연애편지로 느껴질 정도로 타란티노에게는 기대 이상의 더 많은 진심이 담겨 있다.

 

소설로서의 이 책은 분명 미진한 부분이 많다. 랜서의 줄거리를 기본적으로 소설화하기로 한 타란티노의 선택은 깔끔한 아이디어이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맨슨 장면은 완전히 엉성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지며, 이는 영화의 결말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선택으로 인해 더욱 악화될 뿐이다. 그 외에도 타란티노가 기본적으로 액션이나 장면을 필사할 때마다 대화의 속성은 밋밋하고, 묘사는 거칠고, 산문은 너무 기능적이라는 등 작가로서 그의 약점을 잘 드러낸다. 캐릭터의 마음을 묘사한다거나 영화관을 바라본다거나 자신의 창작물을 농담으로 풀어낼 때면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소설가가 그의 전업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 책은 나름의 읽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구성은 자갈밭처럼 거칠고 내용은 마구 얽혀 있고 몇 가지 약점도 보인다. 그러나 1969년 할리우드의 정치와 스크린 규칙에 빠져들거나, 펄프 웨스턴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상기하거나, 클리프와 릭 같은 캐릭터가 더 살이 붙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볼 때 타란티노의 예술적 흥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저랑 같이 놀러 갑시다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문자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보다 이 책이 필수인가? 영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 심지어 소설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이 동반 작품으로서의 매력을 지녔고 타란티노가 항상 보여줬던 영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애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만큼은 마음에 든다.

 

<보너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마지막 결투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TBEvEsv1OeE

 

릭의 집 안으로 침입하는 히피들. 그런데 그 사이 LSD 담배에 취한 상태인 클리프가 브랜디와의 산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클리프는 처음에는 히피들에게 '너네 진짜냐?(You are real right?)'라고 환각인지 아닌지를 묻지만 곧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클리프는 침입자 셋이 모두 스판 영화 농장에서 봤었던 패거리들임을 기억해 낸다. 권총을 겨눈 텍스와 뒷문으로 들어온 새디가 클리프를 포위하고, 집시는 방에서 잠들어있던 프란체스카를 인질로 잡은 상황. 텍스가 총의 공이치기를 젖히자 클리프는 애완견 브랜디를 시켜 총을 들고 있던 텍스를 공격토록 한다. 그리고 신명 나게 울려 퍼지는 라디오 음악 속에서 통쾌한 역관광이 시작. 텍스는 브랜디의 일격에 권총을 떨어뜨리고 이어 온몸을 사정없이 물어뜯긴다. 새디는 뒤늦게 칼을 쥐고 달려들려다가 클리프가 던진 통조림에 정면으로 맞아 쓰러진다. 그러고도 칼을 쥔 채 기어서 움직이려는데, 클리프의 신호를 받은 브랜디가 텍스를 놓고 새디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한다. 브랜디에게서 풀려난 텍스는 칼을 꺼내지만, 클리프는 순식간에 칼 든 손을 내리쳐 텍스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버린 다음, 얼굴을 쳐서 쓰러뜨리고 목을 짓밟아 부러뜨려 죽여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케이티는 프란체스카의 기습으로 한 방 맞고 쓰러졌지만, 이내 칼을 들고 클리프를 기습해 그의 골반을 찌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LSD의 효과 탓인지 클리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꽂혀있는 칼을 툭툭 건드린 뒤, 오히려 더 빡쳐서 케이티의 머리채를 붙잡곤 전화기부터 시작해 액자, 기둥, 벽난로 모서리, 테이블에 안면이 박살 나도록 여러 번 찍어 죽여버린다. 케이티를 내동댕이친 클리프는 출혈과 LSD의 효과 탓인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히피족 텍스가 떨어뜨린 권총을 간신히 집어 든 새디는 총을 쏴서 브랜디가 달아나게 만들지만, 상처의 고통으로 공황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다가 유리 창문을 뚫고 나와 뒷마당의 수영장에 빠진다. 수영장에서 헤드폰을 낀 채 술을 마시느라 아무것도 못 듣고 있던 릭은 이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미 급격하게 흥분해 제정신이 아니던 새디가 피 칠갑을 한 채로 물에 빠지자 더 발광하며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마구 총을 쏘아댔고, 위험을 느낀 릭은 도망치듯 들어간 창고에서 예전 영화에서 써먹었던 화염방사기를 위풍당당하게 들고나와 정면에서 화염을 퍼부어 새디를 구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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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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