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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 벤츠에서 테슬라까지, 150년 역사에 담긴 흥미진진 자동차 문화사전
루카 데 메오 지음, 유상희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자동차를 원제 “사랑의 사전”이라는 틀로 풀어낸 독특한 수필집이다. 제목 그대로 사전의 형식을 빌리지만 사전적 객관성보다는 개인적 기억과 업계에서의 경험을 앞세운다. 저자는 르노 그룹의 최고경영자로 지난 30여 년 동안 유럽의 여러 제조사에서 일한 경영자이다. 이 책은 그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자동차 문명의 얼굴을 A부터 Z까지 항목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세세한 뒷이야기, 브랜드 전략과 디자인 감각, 정책과 사회 변화를 오가며 자동차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시대를 비추는 문화적 거울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 책의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각 항목은 길지 않은 글로 이루어져 있어 어디든 펼쳐 읽기 좋다. “왜 페라리는 빨간색인가”와 같은 상징의 기원부터, “19세기 초 전기차는 무엇이 달랐는가” 같은 역사적 질문, “회전교차로(라운드어바웃)는 교통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라는 도시 인프라의 이야기, “중국은 어떻게 전기차 강국이 되었는가”라는 산업 재편의 흐름까지 폭넓게 다룬다. 항목 간 연결성은 별로 없지만 그 느슨함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한다. 한 꼭지를 읽을 때마다 소소한 발견을 하고, 그 발견들이 쌓여 자동차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윤곽을 자연스럽게 그려 보게 된다.

저자의 목소리는 일관되게 현장 지향적이다. 다행히도 자랑 일색인 성공담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고전한 모델과 빗나간 전략, 전환기에 나온 실수들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예컨대 차량의 지나친 무게 증가가 가져오는 역효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비현실적 기획, 규제와 보조금의 파도에 휩쓸리는 기업의 의사결정 같은 부분을 담담히 짚는다. 이런 서술은 경영 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숫자 뒤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시선을 보여 준다. 독자는 그 시선을 통해 디자인, 브랜딩, 생산, 유통, 정책, 레이스 문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직군의 목소리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레이서, 디자이너, 경영자, 업계 종사자의 짧은 코멘트를 끌어와 한 항목 안에 여러 시각을 겹쳐 놓는다. 자동차는 오랫동안 기술과 욕망, 안전과 속도, 규제와 자유의 갈등이 교차하는 장소였고 이 책은 그 교차점을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 덕분에 독자는 “엔진의 종류”나 “신차의 사양” 같은 시시콜콜한 관심을 넘어 왜 어떤 자동차가 세대의 취향을 바꾸고 도시의 풍경을 다시 그렸는지까지 생각하게 된다. 또한 브랜드의 역사는 단지 마케팅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체감한다.

읽기의 손맛은 알파벳식 배열이 만들어낸다. 항목 하나하나가 독립된 소품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업무와 일상 사이의 짧은 틈에도 읽기 좋다. 그러나 짧다고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항목의 마지막 문장들은 종종 이어지는 다음 질문을 불러들인다. 페라리의 빨강을 이야기한 뒤에는 “색은 어떻게 권위를 얻는가”라는 물음이 남고, 초기 전기차의 흥망을 훑은 뒤에는 “기술은 왜 어떤 시기에만 대중화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저자는 답을 쉽게 단정하지 않고 사례와 맥락을 보여 준다. 독자는 그 빈틈을 스스로 메우며 사고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에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랑의 사전’이라는 기획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어떤 항목은 풍부한 사례와 통찰로 빛나지만 어떤 항목은 짧은 감상에 그치기도 한다. 항목 간의 깊이와 밀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균질한 백과사전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왕에 사전적 구성을 채택했다면, 거칠게 처리된 스케치보다 컬러사진을 수록하는 방식이 저자가 중시하는 자동차 디자인의 미학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냈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현직 유럽 제조사의 수장이라는 점은 초점을 일정 부분 유럽과 프랑스로 끌어당긴다. 유럽의 규제 환경, 유럽 브랜드의 미학, 유럽 시장의 맥락이 상대적으로 더 자세히 다뤄진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균형을 철저히 따지는 독자라면 아시아·북미의 관점이 더 많이 보강되기를 바랄 수 있다. 다만 이 편향은 기획의 성격과 저자의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라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담긴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의의는 분명하다. 첫째, 산업의 거대한 전환기—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설계, 자율주행의 꿈과 현실—를 내부자의 언어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둘째, ‘기술사’와 ‘문화사’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며 자동차를 둘러싼 욕망과 상징, 제도와 일상의 관계를 쉽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셋째, 성공과 실패를 함께 서술하면서 독자에게 현실적 균형 감각을 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 편의 찬가도, 고발도 아니다. 사랑의 사전답게 애정이 깔려 있지만 그 애정은 맹목이 아니라 성찰을 동반한다.
추천 독자는 명확하다. 자동차 문화의 역사와 브랜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 전동화와 새로운 제조 강국의 부상 같은 현재의 재편을 큰 그림으로 보고 싶은 독자, 짧은 글 속에서 실마리를 찾고 스스로 더 깊이 파고드는 독자에게 어울린다. 또한 경영과 디자인, 정책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교차점을 수업이나 강연의 예시로 활용하려는 사람에게도 실용적이다. 항목별로 핵심 사례가 응축되어 있어 발췌와 인용이 수월하고, 각 항목이 던지는 질문은 토론의 좋은 출발점이 된다.

문체는 읽기 쉽다.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고 대화하듯 풀어낸 문장이 많다. 덕분에 자동차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도 따라갈 수 있다. 동시에 오랜 업계 경험에서 나오는 구체적 장면들이 글의 밀도를 높여 준다. 디자인 리뷰 회의의 공기, 규제 변화에 흔들리는 예산 편성, 공장에서의 작은 결함이 시장에서 어떤 파장을 낳는지 같은 묘사가 간간이 등장한다. 이런 장면은 숫자와 그래프가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데이터와 연표로 밀어붙이는 정통사도, 취향 자랑에 머무는 취미 에세이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언어로 자동차 문명을 다시 쓰되, 사랑이 눈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책이다. 편향과 불균등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감수할 만한 내용적 보상이 따른다. 독자는 항목을 넘기며 세계의 도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리고 다음 교차로에서 어디로 향할지를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현장을 살아온 시선이 이끄는 자동차 문명의 입문서이자 애정과 성찰이 균형을 이루는 진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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