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독학이라는 세계 -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양필성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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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반백 년을 넘어 살았는데 뭔가 적잖이 허망하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후반전인 5학년에 접어들었고, 6학년이 코앞이다. 그사이 세상은 눈이 멀 정도로 빠르게 변했다.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질문에 그럴싸한 답을 '딸깍' 내어주는 시대다. 스마트폰을 몇 번 두드려 결과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젊은 세대를 보며, 나는 남들 다 안다는 재테크 정보나 세상의 트렌드 요약본을 부지런히 받아 적기에 바빴다. 그게 나이 먹어서도 뒤처지지 않는 유일한 '공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머릿속에는 단편적인 정보들이 넘쳐나는데, 막상 누군가로부터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받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은 정말 내 지식일까, 아니면 누군가 꼭꼭 씹어 뱉어놓은 찌꺼기일까. 내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듯한 묘한 소외감 속에 만난 책이 바로 일본의 철학자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독학이라는 세계였다.

 

저자는 클릭 한 번으로 인공지능이 정답을 내어주는 시대에 인간이 왜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타인이 정해준 커리큘럼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학습'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오랜 시간을 들여 답을 찾아가는 능동적인 행위를 '독학'으로 규정하며 총 5가지 세계를 통해 독학자의 태도를 제시한다. 1'독학의 세계'에서 얕은 정보와 깊은 지식을 구분하는 것을 시작으로, 원전을 정면으로 읽어내는 쾌감(2장 책의 세계),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인문학적 맥락(3장 교양의 세계), 사고의 도구로서의 언어(4장 언어의 세계), 그리고 권위에 의문을 품는 사고법(5장 질문의 세계)까지, 책은 온전한 나로 서기 위한 실천법을 촘촘히 다룬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터 나의 얄팍한 안일함을 따끔하게 꾸짖는다. "인간은 스스로 탐구할 때만 비로소 자신이 된다. 독학은 바로 그런 자신이 되기 위한 길이다." 그동안 내가 해 온 것은 배움이라기보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을 수동적으로 쫓아간 '얄팍한 학습'에 불과했다.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던 젊은 시절의 총명함은 잃어버린 채, 당장 돈이 되고 이득이 되는 정보만 수집하며 늙어가고 있었다. 삶에 배어들지 않은 얕은 지식을 박식함으로 포장하려 했던 기억들이 스쳐 가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특히 요약본에 의존하지 말고 어려운 원전을 정면으로 돌파하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언제부턴가 두꺼운 고전보다는 유튜브의 '10분 요약 영상'이나 블로그의 '3줄 요약'을 먼저 찾으며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저자는 핵심만 빨리 알려고 하는 '요약 중독'이 인간의 사고 경로를 망가뜨린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며칠이고 몇 주고 스스로 고뇌하며 책의 행간을 읽어내는 일, 그것이 굳어가는 뇌를 깨우고 단단한 내면을 만드는 '진짜 공부'라는 지적은 매서우면서도 해방감을 준다.

 

50대에 시작하는 독학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것도,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롯이 나라는 주체를 지키고 남은 생을 나다운 관점으로 살아가기 위한 '존엄의 투쟁'에 가깝다. 종교, 역사, 철학을 넘나들며 지식을 지혜로 바꾸고, 익숙한 상식에도 끊임없이 '?'라는 질문을 던져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 삶. 비록 인공지능보다 속도는 느릴지언정, 질문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모르는 상태를 견디며 묵묵히 나아가는 용기야말로 중년의 삶에 품격을 더해주는 진짜 배움의 길일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동향과 흥미 위주의 책보다는 그동안 어렵다고 피해 왔던 고전 한 권을 집어 들려 한다. 남들이 요약해 준 정답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거칠고 아득하지만 짜릿한 '나만의 독학이라는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다. 삶의 후반전, 시시하게 저물지 않기 위해 오늘부터 기꺼이 진짜 독학생이 되어볼까 한다.


#클랩북스 #독학이라는세계 #배우고익히기 #삶을위한공부 #계몽 #네가진짜로원하는게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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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발을 담근 채 독고독락
이새벽 지음, 김승아 그림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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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여고생 '이연'은 과거 친구들에게 심한 따돌림과 배신을 당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세상에 '진짜'는 없으며 모든 관계와 감정은 '가짜'일 뿐이라고 믿으며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지낸다. 그러던 중 이연은 학교 도예부에서 '성빈'이라는 남학생을 만나게 된다. 흙을 어루만지는 성빈의 섬세하고 다정한 모습, 그리고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태도에 이연은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 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성빈은 이연의 고백에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라는 것이다. 성빈은 그 증거로 자기 손을 물에 푹 담근 채 보여준다. 오랜 시간 물에 발이나 손을 담그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인간과 달리, 성빈의 손은 아무런 변화 없이 매끈하고 늘씬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연이 성빈의 정체에 충격을 받을 틈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누군가가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연은 성빈의 정체가 학교 전체에 소문나 그가 배척당할까 봐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소설은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한 안드로이드 성빈과 그를 지키고자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비겁함과 마주하게 되는 이연의 내면을 통해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겉보기엔 안드로이드 소년과 인간 소녀의 풋풋한 성장 로맨스 같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서늘한 경고가 숨어 있다. 특히 안드로이드가 겉보기에 인간과 완벽하게 흡사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혼란과 문제점들을 상상해본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는 인간관계와 감정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과 신뢰의 붕괴다. 이연이 성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외형과 행동 양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계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깊은 감정을 내어주었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배신감과 자괴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는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 번져 향후 인간 사회 전체의 관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위험을 경고한다.

 

또한, 완벽한 안드로이드의 존재는 인간의 심각한 열등감을 유발하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작품 속 성빈은 예술적 감수성이 필요한 도예를 훌륭히 해낼 만큼 섬세하며 육체적으로도 흠결 없는 존재다. 반면 이연을 포함한 인간들은 남을 따돌리고, 거짓말을 하며, 겁을 먹고 비겁해지는 등 수많은 결함을 드러낸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공감 능력과 감수성마저 훌륭히 모방하면서 물리적으로 완벽하기까지 하다면, 불완전한 인간은 비인간 앞에서 고유한 쓸모와 존재 이유를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가 일상에 섞여 들면 인간의 내재적 폭력성과 배타성이 비인간을 향해 집중되는 혐오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연이 누군가 엿들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성빈이 '나와 다른 존재'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에게 쏟아질 인간들의 무자비한 차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과 지나치게 흡사한 기계가 오히려 인간 사회의 비합리적인 차별과 폭력성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완벽한 안드로이드 '성빈'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 이연의 지질하고 비겁한 진짜 인간성을 낱낱이 비춘다. 사람과 지나치게 흡사한 안드로이드가 초래할 가장 큰 비극은 그들이 너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완벽함 옆에 섰을 때 인간의 이기심과 비겁함 같은 결함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 아닐까. 다행히도 인공지능이 날로 발전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 이면에는 가장 인간다워지고자 하는 본성의 외침 또한 존재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모순된 지점을 파고들어, 포기하고 실수하면서도 끝내 서로의 손을 맞잡으려는 인간만의 연대에서 희망을 찾는다. 기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넘어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인간다운 존재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의 무게를 느껴보자.


#사계절 #사뿐사뿐북클럽 #이새벽 #물에발을담근채 #인공지능 #인간성회복 #인간다움 #인간의기계사랑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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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연구 - 비밀에 부쳐진 말들, 삭제된 존재의 배회, 트라우마의 체현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김은주 해제 / 동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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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찾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문화 선진국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과 세련된 드라마와 영화는 전쟁과 빈곤을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의 성공 신화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가 눈부실수록 그 무대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 어둡기 마련이다. 저자 그레이스 조의 기록은 우리가 일부러 모른 척해 온 그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실의 문을 용기 있게 열어젖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평생 인자한 미소 뒤에 말 못 할 사연을 숨겨온 우리 할머니가 떠오른다. "사실 나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픈 젊은 날이 있었다"라며 깊은 밤 비밀 이야기를 건네받은 듯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실 이 책은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는 어렵고 딱딱한 전문 용어들이 글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 침대 머리맡에서 편하게 읽을 만큼 대중적인 부류는 아니다. 때때로 낯설고 학술적인 단어들 앞에서는 숨을 고르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록'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가장 강력하고 하나뿐인 무기라는 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저자는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비극을 흔한 에세이나 감상적인 소설의 언어가 아닌, 차갑고 예리한 학문의 언어로 쓰고자 했을까. 그것은 아마 '속상하다', '가슴 아프다' 같은 일상적인 말들로는 강대국과 국가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의 깊이를 다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한 개인의 기구한 팔자''신세 한탄'으로 묻힐 뻔한 기지촌 성노동자 여성들의 고통은, '고향을 떠난 이들의 삶', '사회가 가한 폭력' 같은 정교한 개념을 통해 비로소 '외면해선 안 될 역사적 진실'로 세상에 드러난다. 차가운 학술 용어가 값싼 동정 대신 상처를 준 거대한 사회 구조를 명확히 짚어내는 수술칼이 되어준 셈이다. 덕분에 잊혔던 존재들은 가장 당당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찾는다.

 

책의 중심을 관통하는 철저한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국가적 성공이라는 거창한 이야기 뒤에 얼마나 끔찍하게 사람을 소외시키는 과정이 숨어 있는지 보게 된다. 6·25 동란 직후 한국이 무너진 경제를 살리고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하던 시절, 가장 힘없고 취약한 여성들은 달러를 벌어오고 동맹을 유지하는 도구로 철저히 이용당했다. 그러나 이후 국가가 좋은 옷을 차려입고 국제사회에 번듯하게 서게 되자, 이들의 존재는 근대화된 조국의 '부끄러움'이자 '오점'으로 취급되어 역사의 공식 기록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건너간 10만 성노동자 여성들의 삶 역시 숨기기의 연속이었다. 이민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인 성공'을 위해 과거의 모든 상처는 없었던 일이어야 했고, 결국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끔찍한 시대의 폭력을 묻어두는 완벽한 밀실이 되었다. 저자는 이를 분석하며 '유령'이라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가져온다. 여기서 유령은 무서운 이야기 속 귀신이 아니다. 정상적인 역사에서 쫓겨나 눈에 보이는 형태는 잃어버렸지만, 끊임없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주변을 맴돌며 자신을 증명하려는 억눌린 에너지 그 자체다.

 

더욱 소름 돋고도 놀라운 통찰은 이 유령 같은 상처가 세대를 뛰어넘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뼈아픈 분석에 있다. 부모 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삼켜야 했던 침묵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자녀 세대의 몸과 마음속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때때로 할머니나 어머니가 보이던 헛것이나 환청, 앞뒤가 맞지 않는 혼잣말들을 우리는 그저 개인의 '노망'이나 '정신병'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저자의 눈을 빌리면 그것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은 역사가 마침내 입을 열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외치는 방식'으로 새롭게 풀이된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저자의 학문적 개념이 의외로 더 깊은 차원의 공감과 치유를 끌어내는 기현상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조리 있게 네 아픔을 증명해봐"라며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조각난 기억을 억지로 짜 맞추는 대신, 부서진 고백과 이야기들을 그대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진실을 흐리려는 게 아니라, 산산이 조각난 마음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려는 치열한 노력이다.

 

슬프게도 이 책이 고발하는 비극은 완전히 끝난 과거의 일이 아니다. 수백 년 전 낯선 땅으로 끌려갔다 돌아와 가문의 수치로 몰렸던 여인들(환향녀), 일제강점기의 끔찍한 전쟁터로 희생된 소녀들(위안부), 미군 부대 주변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양공주)로 이어지는 착취의 역사는, 오늘날 화려한 대한민국의 뒷골목에서 거칠고 힘든 일을 감당하는 다른 나라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삶 위로 고스란히 겹쳐진다. 철저한 연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이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의 반복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란 화려한 포장지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딛고 선 땅 밑의 감춰진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뼈아픈 반성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령 연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 빚을 기억나게 하는 학문적인 청구서다. 비록 읽어내는 과정은 마음이 편치 않고 고통스럽지만, 이 책을 덮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크기가 한 뼘 더 자라있음을 느낀다. 평생을 '수치스러움'이나 소외된 존재라는 낙인 속에 숨죽여 살아야 했던 내 할머니의 굽은 등을 이성적이고 지적인 언어로 뜨겁게 안아주는 이 다정하고 놀라운 경험을 모두가 느껴보면 좋겠다.


#한달한권할만한데 #온라인독서모임 #6월의책 #유령연구 #양공주 #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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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회사
이상교.허지연 지음 / 스토리두잉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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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 수단이 발달한 덕분에 일부러 하루 만 보 걷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만약 회사 동료들과 엿새 동안 매일 20km씩 말없이 걷는 순례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흔쾌히 응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단함이나 훈련소에서의 지옥 같은 밤샘 행군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가장 마지막으로 장시간 걸어보았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희미할 지경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온전히 내 두 발에 의지해 느리게 걷는 그 시간이야말로 끝없는 속도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멈춤'의 순간일지 모른다.

 

현대 사회는 바야흐로 초고속의 시대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성과를 내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우리는 어제를 돌아볼 틈도 없이 오늘을 버텨내고 있다. 회사라는 조직은 더더욱 그렇다. 냉정히 말해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며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 나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 아닌가. 매일 숨 가쁘게 질주하며 우리는 종종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어버리곤 한다.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그저 타성에 젖어 어지러운 삶을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상교·허지연 저자의 걷는 회사는 이처럼 앞만 보고 달리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우리에게 매우 이례적이고도 묵직한 충격을 전해준다. 치과용 영상기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 '바텍 네트웍스'는 어느 날 직원들의 손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 낯선 일본 시코쿠의 순례길 위에 세웠다. 출장이나 워크숍도 아니고 성과를 논의할 회의나 발표 계획도 없다. 그저 단출한 흰옷을 입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하루 20km56일 동안 말없이 걷는 게 일정의 전부이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처럼 지독한 비효율과 무모한 낭비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생각 없이 걷는 하루에서부터 진정한 변화와 성장이 시작된다.

 

길을 떠나기 전, 참가자들에게 업무 도구인 노트북을 내려놓으라는 주문은 커다란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히 업무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거라는 오만이거나 '나는 어딘가에 꼭 필요한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불안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 대신, ‘나는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가라는 사회적 역할로 자신을 정의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누군가의 부모 또는 자녀, 회사의 임직원이라는 관계의 이름들이 나의 본질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도 없고 대화도 허용되지 않는 침묵의 순례길에서, 단단하게 굳어져 있던 자존심과 완벽주의의 껍데기는 서서히 균열을 일으킨다. 발바닥에 터져버린 물집의 통증을 느끼며 흙길을 걸을 때 비로소 온전히 자기 내면과 독대하게 된다. 어떤 참가자는 자신이 그동안 가정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아내와 어머니를 내 방식대로 통제하고 지배하려 했던 이기주의자였음을 깨닫는다. 또 다른 참가자는 내가 옳다는 확신에 가득 차 동료들을 질책했던 날 선 잣대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참회한다. 나아가 과연 내가 괜찮은 남편이자 아들인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였는지를 걸음 수만큼이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저녁 휴식 시간에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 질문들의 답은 어김없이 탄식과 눈물 폭탄으로 터져 나온다.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화려한 기업의 성공담이나 세련된 조직 혁신의 지침서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쉼 없이 달려온 구성원들을 잠시 멈춰 세우고 "정말로 당신이 없으면 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느냐"고 묻는, 다정하지만 처절한 자아 해체의 기록이다. 길 위에서 겪어낸 지독한 고통, 부끄러움과 통찰을 통하여 방황하던 이들은 비로소 타인을 완벽하게 분리된 독립적인 우주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내 태도를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실천임을 자각하게 된다.

 

우리는 늘 조금이라도 늦으면 인생의 낙오자, 패배자가 될 것처럼 자기를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고백을 읽다 보면 대중가요 <한 걸음 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라는 노랫말처럼,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시간은 결코 뒤처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경쟁력은 사람을 소모품처럼 쥐어짜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구성원의 온전한 성장이 곧 조직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이 걷는 회사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동자승 인형과 친필 엽서는 일상에서 다시 예전의 속도로 빨라지려 할 때마다 "지금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느냐"고 묻는 멈춤의 표식이다. 속도를 늦추고 부드러운 눈맞춤을 시작했을 때 사무실의 공기를 봄눈 녹듯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천천히 걷는 걸음이 가진 위대한 힘을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성과와 효율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나를 둘러싼 이들을 떠올리며 지금을 보다 잘 살아가기 위해 천천히 걷는 걸음은 우리의 삶을 겉보기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하게 변화시킨다. 여기서 생업과 관련하여 문득 한 가지 따뜻한 상상을 해본다. 우리 사회에 구성원의 삶을 귀하게 여기며 함께 걸어주는 '걷는 회사'가 존재하듯,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이 자라나는 교육의 현장에도 '걷는 학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윤 창출을 위해 효율과 성과를 최우선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회사와는 달리, 학교는 온전한 사람을 길러내고 만드는 공간이기에 더더욱 바른 성품을 심어주는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 그 망가진 기능의 원상 복구를 원하는 듯, 오죽하면 참교육이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까.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질주하고 등수와 숫자로 서로를 평가하며 스마트폰의 차가운 액정 속에서 타인과 단절되기 쉬운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느림과 성찰의 시간이 간절하다. 실제로 내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도 예전에는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발을 맞추며 정을 나누던, 인간미 물씬 풍기는 '사제동행'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길 위에서 교사와 학생이라는 인위적인 관계의 벽을 허물고 온전한 한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며 마음의 물집을 터뜨리던 그 따뜻한 시간이 지금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사라져버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오히려 우리가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 들어야 할 이유가 된다. 걷는 회사가 증명해 낸 무모한 비효율의 기적은 속도와 성과라는 괴물에 잠식당한 우리 사회를 깨우는 통렬한 일침이다. 진정한 성장의 길은 숫자가 아닌 사람을 향할 때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이 담담한 순례 기록은 기업과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을 넘어 매일의 무한 경쟁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멈추어도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이제 숨 가쁜 일상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온전히 자신을 마주해보자. 삶의 새로운 이정표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스토리두잉 #걷는회사 #이상교 #허지연 #책추천 #성장 #순례 #걷기 #길위의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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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동물들 -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최태규 지음, 이지양 사진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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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콘크리트와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는 오롯이 인간만을 위해 설계된 탐욕의 집약체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빌딩 숲과 격자무늬로 촘촘하게 짜인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서, 우리는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배제했다는 오만한 착각 속에 살아간다. <도시의 동물들>은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이기주의와 무감각함의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들추어내며, 우리가 도시라고 부르는 이 거대한 콘크리트 정글이 사실은 수많은 생명의 숨통을 조여 만든 찬탈의 현장임을 고발한다. 본래 그곳은 숲이었고, 강이었으며, 수많은 야생동물이 대를 이어 생을 영위하던 그들만의 온전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와 풍요라는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물들의 터전을 무자비하게 파헤치고, 콘크리트로 대지를 질식시키며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 책은 인간의 무분별한 팽창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생명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회색빛 틈새에서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버텨내는 그들의 고단한 발자취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인간들은 도시 안에서 마주치는 생명체들을 지극히 이기적인 기준과 잣대로 분류하며 또 한 번 잔인함을 드러낸다. 매일 아침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기웃거리는 너구리나 고양이를 향해 배설물이 더럽다며 손가락질하고, 밤마다 도심 공원에 나타나는 고라니를 보며 유해 야생동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혐오의 시선을 보낸다. 길냥이, 닭둘기, 들개, 자라니 등으로 멸칭하며 인간으로 인해 비루해진 그들의 처지를 조롱한다. 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황조롱이가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둥지를 틀면 신기한 볼거리나 시혜적인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중성을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동물들에게 도시는 결코 스스로 선택한 서식지가 아님을 지적한다. 동물의 처지에서는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보금자리가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중장비에 의해 부서지고 그 위에 매끄러운 시멘트가 덮여버린 재앙의 현장일 뿐이다. 그들이 내는 날갯짓과 울음소리, 인간의 눈을 피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행동은 도시를 어지럽히려는 침범이 아니라, 자신들의 원래 집을 빼앗은 침입자 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생존 투쟁이다.

 

오늘날 도심에서 벌어지는 생태적 비극들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속도의 경제를 위해 산을 깎아 만든 도로 위에서 매일 밤 수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의 로드킬(Roadkill) 잔혹사, 그리고 더 탁 트인 시야와 미관을 위해 아파트와 빌딩에 설치한 통유리창에 부딪혀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하는 새들의 비극은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소리 없는 만행이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둘러싼 이웃 간의 이기적인 갈등이나,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생색 내기로 만들어 놓은 단절된 생태통로는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얕고 기만적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단순히 도시 생물들의 생태적 특징을 나열하는데 머무르지 않으며, 인간이 저지른 이 거대한 약탈의 현장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인지 무겁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결국 <도시의 동물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누리는 도시의 안락함은 동물들의 생존권을 찬탈한 대가로 얻어진 시한부 풍요이며, 이제는 인간 중심적인 오만을 버리고 그들을 배척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생태계의 일원'이자 '먼저 살고 있던 이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아스팔트 아래에서도 여전히 묵묵히 숨 쉬며 삶을 이어가려는 생명들의 경이로움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부끄러운 과오를 돌아보게 된다. 건축물에 작은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난개발의 속도를 늦추며, 동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일은 그들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으로 무너뜨린 지구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당연한 의무이다. 삭막한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상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이 책은 우리가 자연에 가한 폭력을 참회하고 진정한 공존의 길을 모색하라고 촉구하는 경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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