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막 내린 촛불 민주주의 정치연구총서 7
정한울 지음 / 버니온더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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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9일 3만 명의 참여로 시작한 촛불시위는 2016년 10월 29일 3만명의 참여로 시작한 촛볼시위는 2016년 12월 8일 국회에서의 탄핵가결,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 국회에서의 탄핵가결,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 2017년 5월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과정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2017년 4월 29일 23차 시위로 마감할 때까지 매주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연인원 1,685만 명이 참여했다. (-16-)



돌이켜 보면 촛불시위는 2016~2017년 한국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를 통해 위기의 책임을 묻고, 민주주의 체제 정상화를 복원하는 기본 동력이었다. '시민혁명'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사건이었다. 사실 촛불 참여를'혁명'으로 상징화하고, 그 정신을 계긍하고 완성하겠다는 캠페인이나 국정전략 자체는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고, 집권 초중반에는 실제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44-)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탄생은 촛붋집회와 시민 개개인의 탄핵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렴해 현실화한 성과를 기반한 것은 사실이다. 앞 장에서 본대로 촛불의 민의가 국면 전환을 통해 광장에서 제도로 무게 중심이 이전했고, 문제인 정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구도는 엄밀히 말해 '선거' 라는 대의제도를 통해 선택받은 결과다. (-106-)



촛불혁명의 완수를 위해 가시적인 검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기에 무리한 '윤석열 검찰 총장'에 대한 징계와 다수 의석을 앞세운 야당 패싱 패스트트랙의 남발이나 '검수완박' 식의 일방적 법안 강행으로 검찰개혁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다. 무리한 검찰 개혁 올인은 오히려'정권심판론'을 점화시켰고,윤석열 총장과 한동훈 차장 검사는 '정권심판론'의 대표주자로 부상했고, 결과 여론은 완전 뒤집어졌다. (-177-)



2016년~2017년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탄핵 요구를 촛붊집회로 성사시켰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인용으로 이어졌다.그리고 대선을 앞당겨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촛불 민주주의는 5년만에 종결되었다.



책 『5년 만에 막 내린 촛불 민주주의』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재명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로 바뀌게 되었는지;, 사회적 원인, 정치적 원인을 살펴보고 있었다. 2016년 처음 시작한 촛볼시위는 , 국가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촛불 시위였다.대한민국의 민심이 민주당 정당 당원의 민심으로 수렴되었고, 촛불 시위의 명분을 쌓아갔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윤석열검찰총장과 조국 법무부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서로 다른 노선을 걸어오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항명사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이런 과정은 이해찬 당대표 때, 2020년 총선 승리로 이어졌지만, 2022년,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당내 대권주자간의 갈등으로 인해 민심의 요구를 민주당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민주당은 여전히 검찰개혁을 민주당 아젠다로 내세우고 있으며, 국민은 여전히 검찰개혁보다 국민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분리된 상황은, 민주당이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 통합을 당내 아젠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민주당은 서로 분열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고 만다.



책에서 저자가 민주당, 촛불 주역이 민심을 읽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민심을 읽지 못한 게 아니라, 민심을 민주당 당내 에서 수렴하다가는 민주당 내부 분열로 이어질 수 있고,당이 쪼개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는 민주당은 당 안에 있는 형사재판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국민의 민심을 수용하지 않고 있으며, 촛불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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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지팡이 너머의 세계 - 톰 펠턴 에세이
톰 펠턴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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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드레이코 말포이는 냉정하고 전혹한 가문의 외동아들이었다. 하지만 나의 진짜 가족은 그야말로 정반대였다. 끈끈하고 ,가족애가 넘치며, 정신없지만 서로에게 든든한 의지가 되어주는 가족은 나의 어린 시절 확실한 구심점이었다. (-24-) ​ ​

어쨌든 난 개의치 않았다. 내게 주어진 새롭고 신나는 경험을 맛보았을 뿐이다. 맥컬리 컬킨으로 오해받은 일은 일조의 전조와도 같았다.맥컬리 컬킨의 <나홀로 집에>을 감독한 크리스 콜럼버스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나를 드레이코 말포이로 캐스팅했기 때문이다. (-49-) ​ ​ 촬영장 방문 투어는 촬영날에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보통 방문객은 어린이들이었고, 이런 투어는 대개 아동 자선사업의일환이었다. 앨런 릭먼은 그가 후원하는 자선단체로부터 투어 요청을 가장 많인 받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엔 거의 매일 방문객이 있는 것 같았다. (-146-) ​ ​

드레이코 말포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어린애였다. 고압적인 아버지에게 휘둘리고,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강요받고, 볼드모트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주눅이 들었기에, 그의 행동은 스스로 결정해서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힘을 뺏긴 소년이 꼭두각시처럼 저지른 행동 일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고, 격변한 삶 대문에 잔뜩 겁먹은 채였다. (-232-) ​ ​

우리는 자리에 앉아 그가 현금을 세면서 지폐를 불빛에 비춰 보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며, 이런 거야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애써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드디어 판매자가 돈을 다 확인하고 만족스러워하자, 크리스는 차 키를 받은 다음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 천천히 200미터 가량 차를 몰아간 다음 판매자의 집이 보이지 않는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형은 차를 세웠다. 핸드브레이크를 잡은 다음, 형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282-) ​ ​

내가 진실을 왜곡하는 할리우드의 속임수에 빠져들수록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누구여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을 만날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매일 나는 사람들과 진실하지 못한 인간적 교류를 한다고 느꼈다. 언제나 뭔가 정의가, 숨은 의미가, 무슨 의도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다울 수가 없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우리 아빠를 흉내 내 자기비하적인 익살을 부리곤 했다. (-331-) ​ ​

톰 펠턴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매력적인 빌런 드레이코 말포이로 나왔으며, 2011년 개봉한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까지 흥행이 이어졌다. 악역 말포이가 되기 위해서, 톰 펠튼은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영화에 자신을 빌런 말포이 역에 일치시켰다.톰 펠튼은 사형제 중 막내였으며, 큰 형 크리스 형에게 BMW를 사주기도 했다. 2011년 해리포터 마지막 시리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 에 출연함으로서,그가 10대 부터 20대 중반까지 성장영화로서,해리포터가 주는 이미지는 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후 톰 팰튼은 부활 ,스트라튼,테레즈 라캥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자신의 배역에 맞는 역할을 찾고 있으며,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는 사악한 악역이지만, 현실 속에서, 톰 펠턴는 친절하고, 사람을 챙기는 매력적인 영화배우다. 즉 이 에세이에는 톰팰턴의 30년인생을 돌아보면서, 헤르미온느로 나온 엠마 왓슨 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오고 있으며, 엠마 왓슨과 사귀기도 했다. 한편 다니엘 래드클리프,엠마 왓슨,루퍼트 그린트 에 비해 자신이 두각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년에 걸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세며의 주인공과 한 명의 악역이자 빌런으로 나오는 말포이까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30대 지금까지 영화배우로서 성장한 케이스는 드물었다.우리가 돌아보는 여러가지 부분에 대해서, 해리포터 시리즈 도중에 사망한 영화배우까지 소개되고 있어서, 해리포터 시리즈가 톰 팰턴에게 인생 영화라는 것을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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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이 최고의 수행이다 - 리더를 꿈꾸는 직장인들을 위한 마음건강 피트니스
정해승 지음 / 헤르몬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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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퇴사 결정을 들은 나는 그의 무모한 도전에 대해 크게 화도 내고 설득도 했었다. 그런데도 결국 그는 자기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고 모든 속세에서의 기득권을 버리고 한 명의 개인으로 돌아왔다. 이후 가끔 그와의 만남에서 친구가 하는 마음 공부에 대해 그 수행의 결과를 '들어주는'역할을 하곤 했다. (-9-)



보통 사람들은 비가 올 때면 왜 하필 오늘 비가 오는지에 대해 불만를 느낀다. 마이클은 비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면'참 아름답구나!' 비가 내리네.' 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내맡기기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 규칙은 간단했다.그저 '삶이 내게 가져다주는 사건들을 내 자아 너머로 나를 데려가기 위한 손님처럼 대하기'였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42-)



결론적으로 본다면 치유와 힐링의 목적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심리적인 시간에 불과하며 현재의 삶이란 것도 이 심리적인 시간이 만들어 낸'삶의 상황'이란 것을 깨닫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좀 더 좋은 치유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97-)



분별심이란 말 그대러 '좋은 것,나쁜 것','예쁜 것,못난 것','착한 것',못된 것' 등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일체 유심조의 마음이 지어내는 것처럼 스스로 좋고 나쁜 것의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 분별심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마음공부의 근본이 된다. 그런데 이 분별심에 대해 좀 더 공부하다 보면 곧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그것은 바로 '사물과 현상을 둘로 구별하지 않는 일원론','완벽한 둘로 구분하는 이원론'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개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59-)



속담 '참을 인 (忍) 자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가 있다.직장 생활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회의감,분노, 좌절을 느낄 때가 있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감정이 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하였던가, 평상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직장생활에서, 승진에 누락되고, 일하던 책상이 갑자기 시라지면,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열심히 일하여도, 그 결과가 신통찮을 때,나의 성과르 누군가 가로챌 때, 나타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다.그런 상황에, 마음챙김,수행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수행은, 마을을 챙기는 것이다. 치유와 위롤르 얻는다. 견디고,참아내고, 분별심을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절제하고, 욕심을 비우고., 사색하며,산책하고, 명상하며,  유혹에서 휘둘리지 않으면서, 불편함을 참아내고, 선입견을 버리고, 성격을 죽이는 것, 감정을 절제하는 것 등등이 여기에 해당되고 있다.



결국 나는 마음공부를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아성찰,자기반성을 할 수 있다.사람를 오해하지 않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수행 중 하나이며,분별심을 버려야 한다. 옳고 그름에 따라서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분별심에 갇햐 버리게 된다. 우리가 강조하는 도덕심,예절과 태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분별심을 버리면 스스로 추해지지 않는다. 스스로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고, 마음 수행의 목적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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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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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는 내게 첫 편지를 썼다."작품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사무적인 말로 끝나는 평범한 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건 아우성이고, 함성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그때 비로소 하게 되었다.나는 그의 삶에 대한 정열에 압도당하고 있었다.내가 구하다 못 구한 것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19-)



보수적인 충청도 사람답지 않게 네오필리아 neophilia의 경향을 가진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아도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새 것에 대한 갈망이 크다. 여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프랑스 사람들처엄 '새것 찾기 chercher de nouveau'애 골몰하고 있다.그런 그에게 균형을 잡아주는 추가 충청도이 전통문화다. 그는 항상 새로운 문제를 개발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날들을 살아왔는데 그 새로움의 원천은 중부지방에 남아 있던 토착적인 우리 고유의 문화다. (-24-)



올림픽을 준비할 때도 그는 새 일을 찾아해내느라고 날마다 밤잠을 축낸다.자고 나면 다시 고칠 부분이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박세직 위원장이 새 아이디어가 어제 것보다 좋으면 무리가 가더라도 뜯어고치며 박자를 맞추어주셔서,올림픽 계폐회식이 성공할 수 있었다. 88올림픽에는 세상을 경악시킬만한 새로운 것이 많았다. (-41-)



이어령 씨도 젖떼기가 많이 늦은 아이였다. 동생을 늦게 봤기 때문이다. 동생이 다섯 살 때 태어났으니, 다섯 살 초반까지는 젖을 물고 산 것이다. 마음이 약한 어머니가 막내아들의 젖 떼는 고통을 미루어주고 싶어서 그때까지 젖을 물리셨던 모양이다. (-75-)



인간는 누구나 자기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니,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공감하면서,경탐하면서 자기 이야기만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소원인데 , 상대방도 똑같은 걸 원하니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오네스코의 희곡처럼 마주 앉아 모놀로그를 교환하는 비극이 생겨난다. (-140-)



그는 자신의 담론에 몰두하는 형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소리가 커지고 진지하다. 우리는 앞산을 보기 위해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바로 옆에 상대가 있어도 그의 성량은 줄지 않으니 오래 듣고 있으면 나는 머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163-)



1972년 10월에 이어령 씨는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문학사상』이라는 문예지르 창간한다. 그 해에 『독서신문』 김봉규 회자이 이어령 씨와 안병욱,이부홍 씨 3인을 모시고 전국 규모의 교양 강좌를 기획했는데, 첫 도시인 부산에서 청중이 5천 명이나 모이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 청중을 보면서 이어령 씨는 그들의 지적 갈증을 메워줄 잡지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아이디어는 김봉규 회장의 동의를 얻어 곧 현실화되었다. 새 문예지 『문학사상』출간이 결정된 것이다. (-216-)



아버지 이병승(1896~1996)와 어머니 원경자 (1897~1944) 사이에서, 7남 중에 다섯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어령 교수는 막내처럼 지내왔고, 도련님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11살 되던 해 갑자기 어머니께서 사암함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살아왔으며, 아내는 1958년 함께 결혼했다.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항상 무언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교수로서 강의를 준비할 때도 항상 새로운 강의를 준비한다. 이러한 그이 기질은 평생 책을 썼고,일본을 연구하였고,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탈바꿈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그의 문화적 역량을 십분발휘할 수 있었던 거대한 이벤트였으며,이어령 교수가 대한민국 문화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는 학자로서 존경받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으로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다.아내의 기념일은 항상 놓치지 않았고, 도련님 스타일을 유지하였으며, 고집세고, 하고 싶은 건 해야 했다. 항상 솔직하고,진지하게 임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약점이 되었건만,아내 강인숙에게는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어령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확인하는 증거가 되었다. 서로 존중하고,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비결,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왔던 이어령 교수의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개인적인 이야기를 아내 강인숙에 의해서, 아내가 쓴 남편 이어령의 회고록 『만남』이다. 그동안 수많은 회고록을 읽었건만, 아내가 남편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책은 이 책 『만남』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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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 먼 훗날 장애 아이가 혼자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꿈꾸며
박현경 지음 / 설렘(SEOLRE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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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조치 후 구급차를 타고 불과 내가 일주일 전까지 근무했던 대학병원으로 향했고, 중환자실에 아이를 눕혔다. 가녀린 혈관에 주삿바늘이 수없이 꽂히는 걸 보자 , 내 심장을 시퍼런 칼이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각종 기계에 휘감김, 발가벚겨짐, 내 아이가 낯설었다. 중환자실 간호사였기에 24시간 환한 형광등 불빛과 기계음,알람소리는 익숙한데, 그곳에 아이가 환자로 있고 내가 보호자로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



장애인이나 보호자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나 전용레인이 있으면 좋겠다. 수영은 신체 경직이 심한 아이에게 효과적인 운동인데 ,성별이 다른 엄마는 수영장 탈의실 이용이 불가능하니 수영가르치기가 험난하기 때문이다. (-71-)



내 예감은 늘 100퍼센트 적중한다.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확인해야만 하는 역할에서 도망가고 싶다. 아이는 내가 없는 동안 벌어진 사건을 재현했다.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얘기하지 못하지만, 유추해보니 거실 tv 서니 엉켜 있었는지 선을 잡아당기자 tv가 무릎 쪽으로 고꾸라지며 떨어져서 액정이 또 깨졌다는 거다. (-145-)



작가 박현경은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다. 죽음과 사투하는 직업이다. 간호직을 평생직으로 생각했던 박현경 간호사는 자신의 아이에게 건강을 위해 예방접종을 맞았건만, 뇌성마비, 뇌병변장애를 겪는 첫째아이, 삶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으며,자신이 근무하였던 대학병원에서, 주삿바늘에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내 아이의 민낯을 직접 목도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어린 아이는 뇌성마비였고, 또래 아이들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30년 간 견뎌온 시간들이 에세이집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에  담겨 있었다. 세 아이 아들 중 아픈 손가락, 첫째 아들과 함께 살면서, 서서히 재활훈련을 하면서, 사회에서,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은 사치였다.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놀러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영화 한 편 볼 수 없었고,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고, 내 아이를 위해서,수영장에서, 마음 편하게 수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AI스피커, 스마트TV,스마트폰 액정이 수시로 깨졌고,TV를 갈아야 한다. 부모 없니 혼자 둔다는 건, 어떤 큰 사고를 예고했다.한순간에 TV 두 대의 액정이 깨졌고,수리하는 비용이 사는 비용보다 더 많이 청구되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말을 듣지 않아서,액정이 깨졌고,고스란히 돈으로 때워야 햇다. 이런 상황들은 장애인 부모가 아니라면 알수 없다. 정부가 운영하는 긴급돌봄 서비스도 조건이 붙는다.내 아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고, 복지 서비스를 쓰기 위해서, 조건과 상황에 맞아야 했다. 사비 아닌 사비를 써야 했다. 몸은 성인이지만, 행동은 물가에 내 놓은 어린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현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편견없이 평범하게,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작가 박현경의 마음과 인생이 오롯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에 아픔과 고통,고민과 걱정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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