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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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는 내게 첫 편지를 썼다."작품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사무적인 말로 끝나는 평범한 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건 아우성이고, 함성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그때 비로소 하게 되었다.나는 그의 삶에 대한 정열에 압도당하고 있었다.내가 구하다 못 구한 것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19-)



보수적인 충청도 사람답지 않게 네오필리아 neophilia의 경향을 가진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아도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새 것에 대한 갈망이 크다. 여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프랑스 사람들처엄 '새것 찾기 chercher de nouveau'애 골몰하고 있다.그런 그에게 균형을 잡아주는 추가 충청도이 전통문화다. 그는 항상 새로운 문제를 개발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날들을 살아왔는데 그 새로움의 원천은 중부지방에 남아 있던 토착적인 우리 고유의 문화다. (-24-)



올림픽을 준비할 때도 그는 새 일을 찾아해내느라고 날마다 밤잠을 축낸다.자고 나면 다시 고칠 부분이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박세직 위원장이 새 아이디어가 어제 것보다 좋으면 무리가 가더라도 뜯어고치며 박자를 맞추어주셔서,올림픽 계폐회식이 성공할 수 있었다. 88올림픽에는 세상을 경악시킬만한 새로운 것이 많았다. (-41-)



이어령 씨도 젖떼기가 많이 늦은 아이였다. 동생을 늦게 봤기 때문이다. 동생이 다섯 살 때 태어났으니, 다섯 살 초반까지는 젖을 물고 산 것이다. 마음이 약한 어머니가 막내아들의 젖 떼는 고통을 미루어주고 싶어서 그때까지 젖을 물리셨던 모양이다. (-75-)



인간는 누구나 자기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니,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공감하면서,경탐하면서 자기 이야기만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소원인데 , 상대방도 똑같은 걸 원하니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오네스코의 희곡처럼 마주 앉아 모놀로그를 교환하는 비극이 생겨난다. (-140-)



그는 자신의 담론에 몰두하는 형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소리가 커지고 진지하다. 우리는 앞산을 보기 위해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바로 옆에 상대가 있어도 그의 성량은 줄지 않으니 오래 듣고 있으면 나는 머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163-)



1972년 10월에 이어령 씨는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문학사상』이라는 문예지르 창간한다. 그 해에 『독서신문』 김봉규 회자이 이어령 씨와 안병욱,이부홍 씨 3인을 모시고 전국 규모의 교양 강좌를 기획했는데, 첫 도시인 부산에서 청중이 5천 명이나 모이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 청중을 보면서 이어령 씨는 그들의 지적 갈증을 메워줄 잡지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아이디어는 김봉규 회장의 동의를 얻어 곧 현실화되었다. 새 문예지 『문학사상』출간이 결정된 것이다. (-216-)



아버지 이병승(1896~1996)와 어머니 원경자 (1897~1944) 사이에서, 7남 중에 다섯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어령 교수는 막내처럼 지내왔고, 도련님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11살 되던 해 갑자기 어머니께서 사암함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살아왔으며, 아내는 1958년 함께 결혼했다.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항상 무언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교수로서 강의를 준비할 때도 항상 새로운 강의를 준비한다. 이러한 그이 기질은 평생 책을 썼고,일본을 연구하였고,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탈바꿈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그의 문화적 역량을 십분발휘할 수 있었던 거대한 이벤트였으며,이어령 교수가 대한민국 문화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는 학자로서 존경받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으로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다.아내의 기념일은 항상 놓치지 않았고, 도련님 스타일을 유지하였으며, 고집세고, 하고 싶은 건 해야 했다. 항상 솔직하고,진지하게 임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약점이 되었건만,아내 강인숙에게는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어령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확인하는 증거가 되었다. 서로 존중하고,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비결,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왔던 이어령 교수의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개인적인 이야기를 아내 강인숙에 의해서, 아내가 쓴 남편 이어령의 회고록 『만남』이다. 그동안 수많은 회고록을 읽었건만, 아내가 남편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책은 이 책 『만남』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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