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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최유안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평점 :
지난 여름 미국으로 출장 왔던 설기윤 총장은 한국계 최연소로 로스쿨 교수가 된 은경을 만나 보고 싶어 했다. 은경이 국제통상 전공으로 테뉴어 심사를 앞두고 있을 대였다. 로스쿨 동문이 모인 그 자리에서 설 총장이 와서 자신을 마나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은경은 별 뜻 없이 동문회가 진행 중이라는 로스쿨 옆 건물 행사장을 찾았다. 설 총장은 학교의 동문 자격으로, 은경은 학교의 교수 자격으로, 그렇게 둘은 만났다. (-24-)
세상에 '원래 이상한 일'이라는 건 없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거나 감지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 이상한 일 바깥에 있는 다른 건 정상이라는 뜻인데, 그 말도 이상한 게, 애초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계속 태어나고 자기몫을 챙기며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쥐지 못하고 다시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가장 이상한 일 아닌가. (-63-)
파란색 텀블러가 흔들거리며 거치대 안쪽에 겉면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보이차는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재성은 아침마다 차를 만들어 거치대에 끼워 두곤 했다. 재성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민선은 그것을 제대로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그걸 마신다고 마음이 안정될 거였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안정되었을테지. (-86-)
김은해에게서 메시지가 왔던 것은 다음 날 오후였다. 어차피 김은해에게도 이용당할 거고, 성해윤에게 이용당할 거라면, 민선도 제 영역을 지키면서 영악하게 , 아니 영민하게 적당한 선에서 그들을 이용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른 다음 날이기도 했다.
김은해는 민선에게 어제 오후 함께 커피 마시자던 약속을 잊어버려 미안하다고 했다. (-128-)
"사람들은 진실과 관련 없이 제 눈이 확인했다고 믿는 것들을,자기가 보고 듣고 해석한 방식으로 전해요. 그러니 그 말들이 진실에 가까울 리는 없지 않겠어요. 발라동의 행동이 뻔뻔함으로 보인 이유이기고 하겠죠. 수잔 발라동의 그림이 이전의 세계가 모사해 온 아담과 이브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고요.거짓말하지 말아라. 아담과 이브는 그저, 즐거웠다. 거기에 어떤 죄책감 같은 게 있었을 리 없다. 인간에게 죄책감을 부여한 건, 그 상황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믿었던 화가들일 뿐이다."
그렇게 말하던 초희의 입술을, 전구 빛이 밝힌 민혁의 얼굴이 들여다보면서 밝게 웃고 있었다. (-204-)
최유안 작가의 단편 연작 소설 『먼 빛들』은 여은경, 최민선, 표초희로 이어지는, 세편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이 한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세 단편은 세 명의 이름 여은경, 최민선, 표초희로 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사회에 있음직한 이들을 내세우고 있었다. 부조리하고, 무능하지만 영악한 이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도덕적 윤리 가치에서 벗어난 이들이 먼저 출세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눈길이 들었다.
첫 뻔째 단편 「여은경」 이다. 여은경은 미국의 재원이다. 그녀는 한국계 최연소로 로스쿨 교수이며, 우연히 설총장의 눈에 띄어서 국내에 돌아왔다. 여은경이 가지고 있는 최연소 타이틀 때문이다. 설총장은 여은경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노력을 자신이 총장으로서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은경은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 돌아오면서, 가족과 부딪치게 된다. 맞는 것은 맞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서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여은경과 달리 한국적인 정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면, 틀린 것도 맞다고 해야 여은경도 편할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은경 앞에서, 대학원생 황예은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 대해서, 여은경은 이해하지 못하느 것 뿐만 아니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두번 째 단편 『최민선』은 성해윤이 '디지털 미디어 아카이브 TF팀'을 만들기 위해 센터장으로 부른 이가 최민선이었다. 하루 아침에 센터장이 되었던 최민선은 열심히 일하는 최민선, 김은해가 함께 일하게 되는데,「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곰은 일처리가 깔끔하고, 똑똑한 최민선이며, 왕서방은 성해윤 원장이었다. 이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TF 팀의 목적은 최민선이 모든 일을 총괄하지만 ,결국 성해윤이 자 되길 바라는 목적이 더 강하다. 대체적으로 자신이 일한 것에 대한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하지만, 대한민국 정서는 내가 한 일에 대한 성과가 윗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어서, 왜곡된 사회적 문화가 고착되어 있다.
세 편의 소설을 보면, 우리 사회가 항상 강조하는 사회생활을 아주 잘한다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황예은과 김은해 같은 이들이 사회생활 잘하는 이들이며, 상당히 영악하고, 눈피가 빠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 사회에 보이지 않은 여러가지 부정 부패나, 불륜, 갈등, 부조리,공금횡령과 같은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소설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도, 매우 적나라하게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어서, 부끄러움 마저 느껴진다.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일할 때, 사고방식, 문화에서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대목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