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 퍼붓는 비폭탄. 맑게 갠 파란 하늘 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차창에 동그란 파문으로 떨어져서 흘러내리고 또 떨어지면 흘러내리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족적을 아로새기면서 힘겹게 꺼져가는 빗물의 업(業)처럼 보입니다. 처절하지만 담담히 그 창 너머 하늘을 반쯤 가린 소나무를 보면서 생각에 빠집니다. 시간이 주는 선물은 늘 나를 새롭게 합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보지 말라 합니다. 그래서 가끔 안부가 묻고 싶다가도 그대에게도 똑같은 선물이 주어졌을 거라 믿고 고개를 돌리는 거죠. 그대를 닮은 소나무는 그대를 닮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푸르르고 한결같습니다. 비를 맞아도, 바람이 불어도 다른 온도의 맥(脈)은 가질 줄 모릅니다. 다가가 안겨도 포근히 감싸 안을 욕심조차 부릴 줄 모르는 소나무. 나도 소나무를 닮고 싶지만, 태생은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닌 거죠. 난 바람이나 비 쪽에 가깝습니다. 그대를 휘감아 불고 때론 그대 뺨에 흐르면서 넓은 가슴에 기대어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경직되는 모습은 날 비참하게 하죠. 이젠 압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서로가 타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걸. 애초에 그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대는 타인이었다는 걸. 소유하고 싶어 흔들다가 그대 뿌리까지 상하게 할 뻔했지만 이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으로 내 사랑을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다가가는 만큼 상처가 되는 사랑이라니, 어쩌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건 억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타인으로 살다가 언젠가 반드시 올 세상 끝에선 사랑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내가 그대인지 그대가 나인지 모를 만큼 먼 훗날에 말이예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7-28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8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8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8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8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6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6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