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p.87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 <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p.95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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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p.64~66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합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에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매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사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다.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않고 한꺼번에 통쨰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김훈 <자전거여행> 중 재인용

 

p.67

만일 오랜 병상의 세월을 보내는 노인이 있다면 존중하라

그 모습을 결코 추하다 하지 마라.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과 결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헤어짐은 헤어짐다워야 한다. 오랜 사랑의 무게는 시간의

절약을 미덕으로 삼지 않는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기능적이지만,

인사에 인사를 거듭하고 나서도, 적어도 동네 어구까지 나가서 떠나는 이의 꼭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드는 것이야 말로 인간에 대한 참된 예의다. 그것이 작별이다.

 

p.67~68

목련 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자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복효근 <목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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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p.17~18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p.20

인간 존재의 모순과 그에 따른 불안, 자신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흔들리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인간은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유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p.28~29

영화 '시월애'에서 은주(전지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고

 

p.29

<갈대>는 슬프지만 그 관조와 성찰이 우리에게 미소를 준다고 했다

반면 <가난한 사랑노래>는 그 성찰과 체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위안을 주는가?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긍정과 초월의 덕목과, 정의와 진리와 갈등과 비판과 투쟁의 가치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가난한 갈대의 사랑 노래는 지상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천상의 노래인가?

 

p.34~35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 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 중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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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조훈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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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p.25

초읽기에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다음 수를 고민한다. 설사 끝이 보이는 바둑이라 하더라도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 한다. 호수(好手)가 아니라면 묘수(妙手)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악수(惡手)나 과수(過手)라도, 치열하게 고민하여 스스로 선택한다.

 

p.36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건 매우 쉽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조금이라도 공식에서 벗어난 문제가 나오면 힘을 쓰지 못한다. 반대로 혼자서 실컷 헤매본 사람은 공식 따위는 몰라도 된다. 생각을 하면서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p.43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때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집중하여 생각해야 한다.

 

p.52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는 말이 있다.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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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p.54

50000년~10만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의 능력에는 분명히 어떤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그러한 대약진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대약진 촉발 원인과 지리적 위치)가 있다.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졸저 <제3의 침팬지>에서 후두가 완성됨에 따라 현대적 언어를 위한 해부학적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언어야말로 인간의 창의성을 구현하는 밑바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p.55

현생 인류가 국지적으로 기원한 후에 다른 곳으로 퍼져 다른 유형의 인류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은 유럽에서 가장 뚜렷한 증거를 보이고 있다. 약 40000년 전에 현대적인 골격을 가진 크로마뇽인이 우수한 무기를 비롯한 각종 발달된 문화적 특성들과 함께 유럽에 진입했다. 그때까지 수십만 년 동안 유럽을 독차지하고 진화해 왔던 네안데르탈인은 그로부터 몇천 년 이내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결과는 현대적인 크로마뇽인이 훨씬 월등한 기술 및 언어 또는 두뇌를 이용하여 네안데르탈인들을 감염시키거나 죽이거나 대체했음을 강력히 시사하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사이의 혼혈 증거는 거의 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p.55

대약진 시기는 우리의 조상이 유라시아에 살기 시작한 이래 인류의 지리적 범위가 처음으로 크게 확대되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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