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우종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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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눈의 복수 신화나 지고한 사랑이야기 같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졌던 전체주의 체제와 추한 권력에 모여든 파리 떼들에 대한 비판이 직설적 은유로 쓰여‘카다레’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특히 악과 몽매주의, 폭력과 공포로 시민의 심리를 옥죄고 영혼을 부숴대던 그런 시절을 겪었던 우리의 그 때와 동일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깊은 공감과 동질감을 갖게 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애절한 사랑의 테마를 기저로 하고 있고, 더구나 그리스 비극중 하나인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과 대유(代喩)되어 인간사회가 저지르는 던적스런 역사의 반복에서 역설적이게도 체제와 지역, 시간성을 넘어서는 보편으로서의 인간성을 읽게도 된다.

소재 또한 마치 오늘의 한국사회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천박성까지 빼 닮아서 거의 모든 문장을 우리식으로 몇 글자만 수정하고 가필하면 한국소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친근하다. 화자인‘나’란 인물은 방송국 직원으로 독재정권의 악마성, 폭력성에 수치와 혐오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골수 당원이나 서게 되는 국가의 최대 행사인 노동절 행사장에 예상치 못한 초대장이 날라든다. 이 뜻하지 않은 초대장은 권력의 상층부에 가까이 갔다는 상징적 의미이지만 그에게 달가울 리가 없다. 승승장구 권력의 핵심인물이 된 연인‘수잔나’의 아버지는 화자와 딸의 교재를 중지할 것을 명령하고, 권력 경쟁을 위해 서슬 시퍼런 감시를 놓지 않는 눈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사랑은 중단되어야 한다. 화자는 여기서 수잔나와 이피게네이아를 권력의 희생제물로서 동일시하며, ‘희생’이란 제의(祭儀)의 배후에 있는 진실을 모색한다.

희생을 요구한 권력의 진심, 그 진의를 탐사하는 관념의 여정이 독재자와 그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파렴치한 이들만이 입장 할 수 있는 행사장으로 향하는 물리적 행보와 병행하여 진행된다. 행사에 초대를 받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대중들과의 도로에서의 구별, 그리고 본 행사장에 가기까지 거치는 몇 차례의 검색지역에서 마주하는 인간들의 면면은 가히 볼만한 인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검문이 철저할수록 초대장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듯이 그 차별을 즐기는 군상들, 그리고 그 권력의 상징적 공간에 새로이 진입한 인물들을 발견할 때 “저 인간은 대체 뭘 해준 대가로 초대장을 받았을까?”, “누굴 감옥에 쳐 넣었소?”라는 자기 모순적 의혹을 드러내는 표정처럼 징그러운 벌레 같은 인간들의 역겨움이 묘사된다. 동료를, 이웃을, 상사와 부하를 고발하고 음모가 난무하는 불신의 세상에서 신분상승은 타인을 짓밟고 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제로섬게임, 극한적 경쟁에서는 살아남는 자만이 승리자다. 여기에 수단의 도덕성, 수치심, 죄의식이라는 것이 개입할 여지란 없어진다. 승리하면 정당화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권력과 부의 모양새와 똑 같다.

형편없는 자들의 이야기, 천박한 인간의 완벽한 예, 저 아래 세계에서 지상의 세계로 헛되이 날려드는 이 세계의 악마적 메커니즘이 신랄한 우화와 함께 등장한다. 인간의 살코기를 주어야 날아오르는 독수리, 그 독수리의 등에 올라 비상하지만 준비한 타인의 몸이 소진되고 나면 도달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잘라내야 한다. 이윽고 아래 쪽 세계에서 위쪽 세계로 독수리가 솟아올랐을 때 “독수리가 죽은 사람의 뼈를 싣고 올라왔어요!”라는 말만이 허공을 맴돈다.

도덕적 가치들의 훼손, 불건전한 도취감, 성취감이 오늘의 인간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 한 번 더러워진 인간은 그 다음,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쉽게 더럽히게 된다. 이 패악스럽고 추악한 탐욕의 메커니즘이 보편화된 비천한 쾌락을 온통 세상에 내재화시켜 이를 분별해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많은 나라들이 신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정신적 피폐화와 인간 삶의 중요한 진실들을 파괴하는 이 정신적 몰락의 현실과 결별하려고 함에도 우리 사회는 자기성찰과 반성은커녕 더욱 더 집착하고 매달리는 꼴이다. “세계는 지금 몽매주의와 결별하고 있어요. 그런데 끝까지 그걸 옹호하고 있잖아요.”라는 화자가 기득 권력에게 외치는 분노의 울부짖음은 마치 우리를 향한 것만 같다.

그렇다면 수잔나와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제물은 권력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이 오래된 희생제의의 고전적 본보기인 권력자 아가멤논이 행한 딸의 처형은 자신의 권력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한, 즉 모든 병사들의 죽음을 요구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주기 위한 잔혹한 욕심이었을 것이다. 이를 대의를 위한 영웅의 탁월한 전략이라고 칭송하는 빌어먹을 인간들이 있겠지만 그 만큼 우리 인간들은 더욱 교활해지고 세련되고 잔인해졌다는 의미일 게다. 사랑하는 연인을 희생 제물로 뺏긴 화자가 이제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모든 삶의 원천인‘거기’부터 재교육해야 한다는 조롱어린 외침에서 사랑을 잃은 자 그대로의 분노가 느껴진다. 전체주의 권력의 독선과 그것이 조성해내는 암울하고 황폐해진 인간성의 고발을 통해 우리들이 잃어버린 고귀한 가치들을 되돌아보고 회복하고자하는 숭고한 의지의 산물로서 이 소설은 그 몫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권력의 본질이 메타포 천재의 손길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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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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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노 미로’시리즈로서는 국내에 먼저 소개되었지만 외전인 『물의 잠, 재의 꿈』을 포함하면 네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본능이나 직관에 충실한 여성 탐정이라는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앞 선 작품들에서 보았던 선악 관념이 더욱 흔들리고 보다 감성적 인물로 변한 미로를 접하게 됨으로써 도덕적 가치의 당혹스러운 도전에 직면하는 것은 또 다른 전율과 긴장이란 매혹을 주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미로가 도움을 요청하면 딸을 위해 기꺼이 능력을 보여주던 아버지‘무라노 젠조’에 대한 애증은 그녀의 출생 비화로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젠조에게 ‘의붓아버지’라는 시각을 부각하여 입힘으로써 개입될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인간적 괴리감을 증폭시킨다. 이 감정을 증오와 불신으로 확장시키는 데에는 연인이자 적대감을 동시에 지녔던 한 남자의 자살소식을 아버지가 은폐했다는 인식이 기초하고 있다.

이처럼 미로는 자기 연민과 감성에 지배당한 여성으로서 증오와 삶의 체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마치 그녀의 내면은 지옥의 어둠 같이 뒤틀린 잔인한 무엇으로 가득 차 있다. 자기의 감정, 특히 애정의 균열을 만들어낸 당사자로서 아버지 젠조를 지목함으로써 심장병을 앓고 있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폭력적 분노, 광기에 휩싸인 미로의 거침없는 감정의 질주는 악마적 탐욕스러움으로 선(善)의 편이었던 그녀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전복시켜버린다. 이제 무라노 미로는 탐정이라는 추격자의 자리가 아니라 아버지를 죽인자로서 도망자의 위치에 선 것이다.

맹인(盲人) 안마사인 아버지 내연의 처가 외치는 비난과 위협의 외침을 뒤로하고, 더구나 돈까지 훔쳐들고 도피하는 미로의 모습은 경악 바로 그것이다. 이제 좇는 자와 달아나는 자들의 이유를 통해 그들을 이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근원, 인간의 원시적 본능으로서의 추악한 욕망들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낸다. 오랜 우정을 쌓았던 이웃이었던 동성애자, 죽은 아버지의 내연녀, 아버지의 동료였던 야쿠자, 이들 저마다의 과잉의 자기연민, 그 본색인 탐욕의 역겨움이 죽음의 사자가 되어 미로를 추적한다. 그러나 추해보이기만 하는 이들 사자들에게는 사랑하는 이의 상실, 혹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고뇌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설혹 더러운 자기내면과 역사의 은폐나 물질적 욕망을 덧씌우는 자기기만일지언정, 그래서 이들의 미로 추적은 당위성을 갖추게 되는 것일 게다.

이에 대비되어 미로의 한국으로의 도주와 도피생활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가는‘서진호’라는 인물을 통해 타자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사랑, 즉 삶의 진정한 가치,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은 어쩌면 물질적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로 황폐해진 일본사회가 잃어버린 휴머니즘을 외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징적 이유로 파악되기도 한다. 한편 우리에게 이 작품이 특색 있게 다가오게 하는 소재, 즉 무대의 상당부분이 한국이라는 것이며, 더구나 1980년 5월 광주항쟁이라는 군부의 탐욕스런 권력욕이 만들어낸 잔인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소재가 배경으로 등장하여 나락으로 떨어진 오늘의 인간과 인간세상의 비열하고 추악한 본성을 입증하고 강화하는데 한 몫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시종 온갖 욕망으로 탁해진 절망적 세상을 그려내려는 데 더 없이 적절하다는 작가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오직 에고와 나르시시즘에 빠져드는 현대인들, 그래서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어야 할 신뢰란 미덕이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들을 구원할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게 한다. 증오의 씨앗이 에일리언처럼 몸속에서 자라고 그 아이를 자기 생존의 교환물로까지 비참하게 내몰듯이 비록 지옥의 세계 같은 절망의 현대를 말하지만 마침내 그 순박한 아이의 미소에 생명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미로의 다짐은 결코 작은 희망의 한 가닥을 놓지 않는 어둠의 미세한 균열을 보는 것 같은 낭만적 기대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인 그녀의 유일한 신뢰인 서진호를 기다리기 위해 찾은 나하(那霸)의 밤거리는 왠지 모를 불안으로 차기작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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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전집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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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를 휩쓴 전염병, 페스트가 조성한 폐쇄와 억압의 환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 인간이어서 나타내는 행동과 정신세계를 쫒는다. ‘페스트’는 하나의 커다란 우의(寓意)이며, 추상(抽象)이다. 악이요, 폭압이며, 자유의 박탈이고, 무심함이며, 폐쇄이자, 공포이다. 그래서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상황에 기초하였지만 이것은 그대로 인간이 있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고, 또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공간적 배경이나 시대적 경계를 넘어서고 확장된다.

페스트의 질병적 징후와 확산의 가능성이 나타났을 때, 권위를 가진 인간이나 조직은 물론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올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마 이것이 인간의 초기 반응일 것이다. 오늘의 인간으로서 말한다면, 석유 피크(Peak)와 같은 화석연료의 고갈, 환경오염과 생태계파괴는 고사하고, 물질적 소비에 대한 광신적 편리성과 욕망의 경쟁지대로 몰아넣는 소비자본주의의 예견되는 결말에 무심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리외’는 바로 이러한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현상들로부터 지방정부인 현청의 공식적 조치를 요구하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위집단은 시민의 집단적 사망을 야기하는 병세를 페스트로 연결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공포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것인데,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려 한들, 더구나 그네들의 이익과 무관한 페스트가 인간의 판단력을 기다려줄리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걷잡을 수 없는 사망자의 증가, 뒤늦게 중앙정부에 지침을 요청했을 때 그 답변은 도시의 폐쇄조치이다. 인구 20만의 소도시‘오랑’의 사람들이 이 상황을 자신들의 상황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개인의 안위에 직접적 관계, 즉 당사자가 되어서야만 가능하다. 정말 어리석지 않은가? 이후에 보이는 인간들의 행동은 어떤 양태를 보이게 될까?

대개 자신만은 그 공포의 죽음을 피해가게 해달라고, 피해 보려는 몸짓을 한다. 미신과 그 은밀한 처방들, 도시의 탈주를 위한 몸부림, 그리고 신을 찾는다. 주술이 무엇을 해결하겠는가, 신을 섬기지 않는 인간들의 죄악을 벌하려는 신의 노여움이라고 말하며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요구한다. 영혼이 설사 있다한들 영혼이 범한 죄악이란 것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기탁한들 의지가 없는 전염병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더구나 영혼이 정화된들 병 걸린 육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페스트의 공포에 온 도시가 질려있을 때 페스트가 신의 징벌이라고 말하는 신부와 그 앞에서 악의 오염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어린 육체가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은 신의 분노의 본성을 의심하게 한다. 이 처절한 모순을 인식한 신부의 행동은 마침내 페스트에 전염된 채 죽어가는 육신으로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한 채 자신의 믿음으로 순응하며 또한 항거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話者는‘리외’의 목소리를 빌어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인류의 구제라니, 너무 과장된 말씀입니다. 나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아요. 나의 관심사는 인간의 건강입니다.”

페스트가 현실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것,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되어 있는 사건으로 등장하고서야 비로소 인간사회의 선악의 구체성, 미덕의 생생한 실체가 조명된다. 특히 카뮈는 비록 실존주의자임을 부정하지만 관념주의의 공허함을 비판하며 페스트에 대항하는 인간의‘성실성’이나‘건강’이라는 덕의 실체 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죽음의 공포가 무겁게 내려앉은 곳에서 사람들의 생명, 삶을 지켜내기 위해 묵묵히 자신들의 신념을 수행하는 행동의 실천자들,  의사‘리외’, 보건봉사대 ‘타루’, 하급관리 ‘그랑’그리고 도시의 폐쇄가 만들어낸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을 수긍하지 못해 탈출 의지를 접지 않지만 결국에는 봉사대로 잔류하는 기자 ‘랑베르’등을 통해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를 물으며, 관념의 추상성이 인간들에게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모든 사람들의 주위를 맴돌 때, 사랑이란 한낱 추상적 의미이상이 되지 못한다. 자기를 주체하기도 버거운 상황, 곧 자기 존재의 보존이란 명백한 가치는 평상시에는 노출되지 않는 은폐된 진실이다. 끊임없는 죽음과 격리의 행렬, 죽음이란 평등한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지만 사람들은 더욱 에고(Ego)에 몰입한다. 그러나 타루의 억압과 폭력에 대한 집단적 저항정신과 평화를 향한 소망이나 도시폐쇄의 해제를 맞이한 후 이별의 해후를 즐기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항상 바라고, 가끔씩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하는 리외로부터 사람간의 유대와 애정이라는 찬미해야 할 인간의 덕목을 말하게 하는 것은 카뮈식 요청일 것이다. 『이방인』의 부질없음에도 반항하는 부조리한 숙명을 살아가는 ‘뫼르소’의 깨달음, 관계성의 회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아랍인을 살해한 젊은이의 얘기, 재판을 받는 청년의 모습처럼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임을 알리는 장치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카뮈의 인간상에 대한 소망이고 의지랄 수 있는 “언제나 침묵 속에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리외의 어머니에 대한 연대의식이 그것일 것이다.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숭고함이 절로 읽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밑줄 그며 읽게 하는 소설이다.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흔들어 깨운”카뮈의 정신에 새삼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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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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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올림픽 준비 등 일본의 전후(戰後) 고도성장기인 1963년 9월을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경제발전 중심의 급속한 변화의 추진은 사회 저변에 대한 균형적 관심을 쏟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인권이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시민권리가 희생되고, 인간의 소외로 인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의 1988년을 전후(前後)한 격동의 시기쯤으로 이해하면 얼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기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현되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회적 분노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에게 향하는 것인데, 아마 사회적 불균형을 의미하는 하나의 표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에 일본을 발칵 뒤집은 동일인 소행으로 추정되는 연쇄적인 다중 사상(死傷)사건인‘소카 지로’사건은 이러한 시대상을 상징하고, 더구나 미해결 사건이어서 사회학적으로도 중요한 이슈였던 모양이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나 공공시설에 폭발물을 장치하여 다수의 사람들에게 손상을 가하는 악질적 범죄이다. 주간지의 특약기자인‘무라노 젠조’는 소속사인 <주간담론>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폭발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낯익은 이름‘무라노’는 여탐정‘무라노 미로’시리즈에 아버지로 등장했던 그 인물이다. 바로 미로의 아버지, 야쿠자의 조사역으로 탐정 일을 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반가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의 기막히게 정교한 플롯이나 탄탄한 구성이 압도적으로 탁월한 것은 물론이지만,  미로의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의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무라노 미로’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미로의 출생에 관한 비밀(秘密)이라 할 내용이 담겨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소설 외적 정보만으로‘무라노 미로’시리즈의‘걸작’외전(外傳)이라는 격찬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소재의 독보적인 선택은 차치하고라도 본전(本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진감, 그리고 짙은 인간애와 끈끈한 남자들의 우정까지 가세하여 작가의 여느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깊은 감동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무라노 젠조, 일명 ‘무라젠’은 스물여덟의 잘나가는 특종꾼이다. 중앙언론사가 아니어서 경시청은 물론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지만 그의 민완한 사건의 조사능력은 동종 업계에서 이름을 떨칠 정도이다. 범인이 남긴‘소카 지로’라는 닉네임 탓에 사건명이 된 연쇄 사건은 해를 넘기며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을 괴롭히고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특종사건 기자인 무라젠은 사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몰입하고,  <주간담론>의 가장 친한 동료이자 친구인‘고토’와의 우정을 쌓아간다. 여기서 고토가 자신의 연인인‘사에이’를 무라젠에게 소개하게 되지만 곧 그녀가 고토의 여자임을 알게 된다. 이는 친구에 대한 무라젠의 유일한 질투가 된다.

한편 조카와 도와주기를 요청하는, 한 소녀에 대한 내키지 않는 도움의 인연은 그녀의 죽음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고, 살인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 무라젠은 스스로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여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살해된 소녀의 폭력적인 주정뱅이 아버지, 이상한 강박 증세를 보이는 그녀의 오빠, 조카를 찾으러 갔다가 목격하게 된 유명작가 저택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현장과 그곳의 사람들, 신설잡지사의 편집자로 가는 친구 고토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힘, 야쿠자 세력, 그리고 가정의 폭력으로 인해 집을 등지고 수면제와 각성제에 의존하는 아이들, 이들을 이용하는 어둠의 세력들, 게다가 해결하지 못한 소카지로 사건으로 독이 오른 무능한 형사와 경찰집단까지 무라젠은 이들과 탐색하고 맞서며 사건의 배후와 진실로 한걸음씩 다가간다.  

 

그러나 사건의 조사를 위해 감행한 한 현장에서 형제 같은 친구 고토를 잃게 된다.  이처럼 사건을 객관적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당사자로서 직접 개입되는 것은 감성의 출렁거림을 크게 느끼게 한다. 더구나 하나의 중심 사건에 지류의 사건들이 어느 순간 물밀듯이 몰려들어 거대한 실체를, 그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게 될 때, 그 카타르시스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것을 그 어느 작가보다 잘 이해하고 멋지게 만들어 낼 줄 아는 것 같다. 또한 그녀만이 쓸 수 있는 소재의 전형이 있다. 잠든 여자를 눈으로만 범하는 기이한 관찰자의 시선은 바로 이 작품의 그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로서의 잠의 어둠을 뚫고 타버린 재(災)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탄생은 외전으로서의 책임을 지닌 소설임을 확인시켜준다. 미로의 아빠, 무라젠의 저돌적이고 추진력 넘치는 남성적 매력이 더해져 시리즈의 본전과는 또 다른 감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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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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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상처를 입히기 쉬운 사람들은 누구일까? 뒤집어 말하면 우린 누구로부터 가장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것일까? 아마 우리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신뢰를 확인시켜주는 사람들, 부모이고 그리고 자매와 형제들일 것이다.

의지해야 할 대상인 이들이 신뢰를 배신하고 이기적이며,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온통 불안과 불신, 두려움의 상처를 안고 암흑 같은 세상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듯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법,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 그리 자신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과 부모형제에 대한 신뢰의 기대는 그 무엇보다 삶을 지탱하는 첫째가는 요소이다. 하물며 부모의 사랑과 보호에 의지하며 세상을 조금씩 이해하고, 불안을 여과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란 거의 절대적인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삶의 현실은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맞벌이 부부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축소되고, 또한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는 그래서 오로지 물적 자본과 과시적 명예자본을 축적하는 데에만 골몰한다. 이것은 그대로 아이의 양육방식에 이전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뛰어난 인간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아이들의 성품과 인격은 오직 성공이란 기준 하에서만 재단된다.

소설은 이처럼 사회적 지위라는 명예자본을 중시하는 부모로부터 성장하는 두 소녀의 빗나간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학업, 운동, 미모...모든 것에서 최고여야 하는 아이, 그래서 부모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그 관심과 지원에서 차별된다. 우등생인 첫째 딸 ‘앨리슨’, 민감한 감수성과 섬세한 성격으로 그런 잘난 언니를 배려하는 둘째 딸 ‘브린’,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에 무심한 브린은 부모의 관심으로부터도 배제된다. 열등감과 신뢰에 상처를 확대시킨다. 그러나 끊임없는 경쟁 레이스는 열여섯 살 고등학생 소녀 앨리슨의 평정심을 손상시키고 뜻하지 않는 임신으로 이어진다. 오직 경쟁의 우위에만 관심을 가진 부모는 속이기가 쉽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 성과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아이의 신체나 감성의 변화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앨리슨,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환경은 이 사실이 은폐되어야만 하는 까닭이다. 고통스러움 속에서 언니의 출산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리는 브린, 그리고 아기는 강보에 싸여 강물에 버려지지만, 영아 살해죄로 앨리슨은 5년의 형기를 마치게 된다. 자신들의 명예만을 중시하는 부모들은 앨리슨을 그들의 삶 속에서 지워버리고,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브린 역시 부모의 무대에서 배제된다. 한편 불임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던 작은 서점을 꾸려가는 ‘클레어’는 소방서 앞에 버려진 사내아이 ‘조슈아’를 입양하고 그 아이를 세상의 축복으로서, 지극한 사랑으로서 양육한다. 혹여나 그 극진한“사랑이 세상에 대한 아이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자신의 사랑을 의심할 정도로.
 

여기에 상처를 준 유일한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남자를 갈구하고, 그 남자들로부터 어린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의 이기심만을 좇는 엄마를 말하는 스물한 살의‘챠메인’은 엄마가 버린 남자,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준 폐암으로 죽음에 임박한 전직 소방관인‘거스’를 간호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의 신뢰와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전령처럼 황폐해진 오늘을 일깨운다. 소설은 이렇듯 좋은 부모, 좋은 가족, 좋은 사람의 의미를 환기시키는데 열중하는 것 이상으로 소설로서의 견고한 구성과 속도감, 긴장감과 같은 요소로 이야기로서의 즐거움을 놓지 않는다. 소도시의 작은 서점, 다섯 살 소년 조슈아, 그의 양부모인 클레어와 조나단, 앨리슨, 차메인, 브린 등을 한 무대에 집결시킴으로써 가족의 갈등과 유대, 사랑과 용서,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의 양육이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관심으로서 이해되어야 함을 밀도 높은 감성과 긴박감 속에 그려낸다. 더구나 앨리슨과 브린 자매의 영아 살해와 관련한 진실을 쫓게 하는 또 하나의 시선은 거대한 비극으로서의 구성적 축이 되어 소설을 더욱 풍성하고 조용한 웅장미를 창출해 내기도 한다. 섬세한 여성적 문체와 이야기로서의 아름다움 속에 부모란 무엇인지, 또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다시금 생각게 하는 진중하고 충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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