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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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근작(近作)파리의 아파트에 그려진 가스파르매들린이란 두 인물이 치열하게 쫓는 생의 가치일 수 있는 것, 아이와 가족, 그리고 이들을 이루는 사랑에 대한 열정적인 공감은, 아마 기욤 뮈소가 언젠가부터 우리네 삶을 버텨내는 최고의 선()은 이것이라 말하려했던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 작품에서 느낀 감정이었을까? 지금 이 순간아서리자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이 희미한 기억에 대한 확인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펼쳐든 책의 환상적 이야기는 내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생의 한 가운데일 듯한 지금 이 순간, 내 열렬한 연인이었던 아내, 그리고 작은 미소와 한 마디의 웅얼거림조차 사랑스러워했던 아이들과 어느덧 소홀하고 어색할 만큼 거리가 생겨버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시간과 공간을 어떠한 의지도 행사할 수 없이 24년을 24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으로 살아야만 하는 분신으로서의 자신을 그려내야만 했던 소설가 아서 코스텔로의 소설이 망각했던 소중한 것들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잊고 있던 내 이기적 어리석음은, 아마 ‘24방위 바람의 등대가 있는 별장의 금지된 지하 철재 문을 열고 들어간 응급의학 레지던트인 아서 코스텔로가 겪는 강제되는 시간여행의 당혹감이 끝내 귀결시킬 삶의 의미라는 진실에 직면하고서야 드러났을 것이다. 부조리한 환상에 내몰린 아서란 인물에게 닥친 시간의 불행 속에서 빚어지는 삶의 순간순간들의 이야기는 애처로울 만큼 짧기만 하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 사랑하는 이들에겐 8개월이고, 13개월이며, 혹은 15개월이라면, 한 순간 의식을 잃고 깨어나면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낯선 장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당혹감을 무어라 설명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 어느 날 그렇게 나타난다면 그 많은 시간의 공백에 방치되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고통은 또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불안의 소리를 지르는 알몸의 샴푸하는 여인, 그녀의 욕조에 누워있는 아서의 낭패감은 속히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정신없이 도주하지만 잃어버린 지갑을 찾기 위해 다시금 여자의 집으로 숨어들고, 우연히 그녀의 연극학교 학생증, 잔고가 없는 통장, 밀린 월세 고지서 등 신산한 삶의 형색을 보게 됨으로써 아서의 기이한 시간 여행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실종된 후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던 할아버지 설리반이 정신병원에 있음을 알게 된 아서는 자신이 처한 혼돈의 시간에 내재한 비밀을 알기위해 할아버지를 찾고, 그를 병원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24시간의 극히 제한된 시간이란 어떤 목적된 행위를 완결하기위해서는 턱 없이 짧은 시간이다. 이야기의 속도는 그 만큼 빠르게 내달린다. 할아버지의 탈출을 위한 도움을 받기 위해 아서는 연극학교 학생 리자(엘리자베스)에게 인생이란 무대에서의 즉흥연기를 제안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삶의 우연한 동행자가 된다. 그러나 아서는 또 다시 낯선 장소의 시간에 깨어난다. 8개월이 훌쩍 지나간 터무니없는 시간의 질주! 그리고 그가 발견한 사람은 손목의 동맥을 자른 채 의식을 잃은 엘리자베스다. 응급의사로서의 침착한 처치, 그리고 신속한 구조대의 연락과 병원이송으로 살려내지만, 1년인 그의 24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의 늪으로 사라지고 덧없는 시간은 또 1년여가 지난 어느 날이 되고, 생의 반복되는 우연의 마주침은 사랑을 만들어 내고, 두 아이를 가진 가족이 된다. 그럼에도 1일의 만남과 1년의 헤어짐이 되는 사랑이란 고통이다. 혹독하고 잔인하기만 한 통제 불능의 시간여행에 수동적 존재인 아서가 찾아 헤매는 등대의 진실, 시간의 늪이 지닌 진실은 무엇일까?

 

아서의 어린 딸이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는 사라지는 남자”,라는 문장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다. 현실의 삶에 놓여있는 소설가 아서가 쓴 소설 속의 응급의사 아서가 처해있는 상황이 바로 소설가 자신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가족을 방치하는 파렴치한, ...지금 하지 못하면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었죠. 사람들은 흔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 (P 325)

 

자신의 집필 작업과 자기의 열정에만 갇혀있는 남자, 자기실현과 돈벌이로서의 가장의 지위에만 머문,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서툰 인간이 되고, 가족과의 소통은 점점 소원해지며 단절되기에 이른다. 아내에 대한 불신은 두 아이의 죽음이라는 현실이 되어 돌아오고, 아서는 슬픔과 자기 과오에 대한 불용으로 고통에 흐느적거린다.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한 아서에게 담당의사는 말한다. “소설을 통해 현실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보란 말입니다.” 그래서 소설 지금 이 순간은 소설 속의 소설이며, 이 소설은 또한 바로 소설 그자체인 소설이 된다.

 

24방위 등대의 지하창고에서 느닷없이 맞이한 터무니없이 부조리한 시간 여행의 진실은 내가 이제껏 믿고 있었던 것과 달리 사라지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내 가족들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우리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선들, 내 가족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내와 아이들.....

 

픽션이 지닌 환상적인 이면엔 항상 일말의 진실이 감춰져 있다고 웅얼거리는 소설가로서의 아서의 말은 작가 기욤 뮈소의 감성과 감수성,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 그들과 함께하는 그 찰나의 시간을 결코 뒤로 미루지 말라는 진실의 언어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리자가 내민 손을 꼭 쥐는 아서,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잃어버렸던 사랑에 대한 용기, 어떤 가능성의 상징처럼 마음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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