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본 리뷰는 소설의 흥을 미리 깨어버릴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소설은 두 개의 시간에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유명 소설가가 된 마커스 골드먼2012년이라는 현재로서 새로운 소설 쓰기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헤어진 연인 알렉산드라와의 우연한 재회에서 시작된 그의 사촌들과 함께했던 성장기로부터 시작되는 과거의 시간이다. 그리곤 이 둘의 시간은 현재라는 하나의 시간에 서로 교섭하면서 삶의 행로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마주해야만 했던 비극, 그것의 기원이었던 무수한 순간들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불완전성, 그 부조리함을 반추케 하며 하나의 완성된 소설로 결집한다.

 

비극의 기원을 찾아서

 

마커스에게 뉴저지의 중산층인 몬트클레어 골드먼으로 불리는 자신의 부모들에 비해 볼티모어 골드먼으로 불리는 로펌을 이끄는 변호사인 큰아버지 사울 골드먼과 대학병원 의사인 큰어머니 아니타 골드먼의 대저택, 고급 별장 등의 부유함은 동경과 숭배의 대상이다. 그에게 볼티모어는 곧 성공과 부의 기호이며, 동갑내기 사촌인 힐렐, 그리고 외톨이가 되어가는 힐렐을 위해 사울과 아니타가 거둔 양아들 우디는 마커스의 성장기 깊은 우애를 나누는 골드먼가의 형제들이 된다.

 

<골드먼 갱단>이라는 이들의 애칭과 볼티모어로의 귀속감은 마커스의 자긍심이 되지만, 부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뉴저지 몬트클레어의 집으로 향하는 마커스는 열등감으로 조바심을 낸다. 아마 돈독하기만 했던 이들에게 미세한 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힐렐과 우디가 그들의 동료로 안아준 스콧 네빌과 그의 누이인 알렉산드라 네빌과 함께하게 되는 변화된<골드먼 갱단>으로부터 일 것이다. 소년들에게 아름다운 연상의 소녀 알렉산드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라는 감정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작은 균열의 시작, 우리네 삶을 결정짓는 어떤 순간들의 시작으로서.

알렉산드라가 눈부시도록 예쁘게 웃었다. 그녀가 비로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고, ... 우리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P207)

 

풋볼팀의 최고 선수인 우디, 힐렐은 보조코치로서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두 소년의 불가피한 분리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점액과다증으로 호흡곤란을 겪는 병약한 스콧의 간절한 소망, 풋볼 경기에서 질주하는 자신을 느끼는 것, 힐렐은 스콧의 기쁨을 위해 터치다운을 향한 마지막 찬스에 그를 투입하고, 스콧은 생의 통렬한 환희를 느끼지만 사망하고 만다. 학교는 힐렐에게 책임을 묻고, 사울과 아니타는 힐렐을 특수학교로 보내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우디와의 분리는 힐렐의 운명을 결정짓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었음을, ‘볼티모어 골드먼이라는 그 화려함의 숭배어린 가문의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었음을 훗날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골드먼 갱단>들은 볼티모어 오크파크 저택에 모여들고 그들만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한다. 힐렐과 우디는 주식투자로 거대한 부를 쌓은 알렉산드라의 아버지 패트릭 네빌의 권고로 그녀가 다니고 있던 대학에 각기 법학도로서, 풋볼팀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마커스는 알렉산드라의 반대로 이들과는 다른 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지만, 힐렐과 우디와의 합의를 깨고 알렉산드라와의 비밀스런 연인관계를 발전시킨다. 대학리그 최고의 풋볼 선수로 각광받는 우디, 오크파크 저택이 초라해 보일정도의 호화저택에 사는 패트릭의 권위는 사울에게 자식들을 향한 사랑과 권위의 박탈감을 가져온다. 이것은 대학 풋볼팀 전용구장의 스폰서가 되어 사울 골드먼구장의 명패를 다는 행위로 이어지지만 막대한 기부금의 부담은 그가 쌓아올린 변호사의 명성뿐 아니라 오크파크의 삶 전반을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결정이 되어 돌아온다.

 

이쯤에서 질투라는 감정이 야기하는 형언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불공평성, 어떤 폭력성에 직면하게 한다. 힐렐의 우디에 대한, 사울의 패트릭에 대한, 마커스의 볼티모어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대상에 끼어드는 방해자들을 향한 단호한 거절과 잠재적 폭력의 양상들이 싹트는 양상의 그 어리석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이 한계라는 부조리에 대해서. 결국 프랑스의 사상가인 알랭 핑켈크로트인간적인 것은 어떤 것도 어리석음과 낯설지 않다. 이점에서 어리석음이 해학을 넘어서 부동의 힘이 되고 잔인함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러한 관조(觀照)를 마치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질투와 분별력을 상실한 어리석음과 폭력은 뒤엉켜 삶의 향방을 비극의 낭떠러지로 가속화되어 내몰기 시작한다. 거듭되는 오해의 연쇄적 반응들, 금지 약물의 복용으로 NFL입단 최고유망주였던 우디의 대학풋볼팀 퇴출, 아니타 골드먼의 터무니없기만 한 죽음, 그리곤 상습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부터 시작된 우발적인 사건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영화의 상징이기만 했던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그 작은 균열이라는 틈새의 기원, 그것의 본질을 생각게 한다. 아마 사랑이라는 얄궂은 얼굴의 이중성, 삶의 의미이기도 한 이것의 부조리한 본성이 아니었을까?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 자비와 욕망, 자선과 소유욕을 동시에 의미하는 유일한 낱말, 어떤 존재가 갖게 되는 격렬한 욕망과 무조건적인 헌신이 같은 어휘 안에 역설적으로 담겨 있는 이 사랑의 음험한 모순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어리석음 그것 말이다.

 

글쓰기,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

 

영화화된 첫 소설의 성공, 그럼에도 마커스 골드먼에 족쇄처럼 채워져 있는 힐렐과 우디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예리한 슬픔, 그리고 상처만 가득 가슴에 안은 채 생을 다한 큰아버지 사울 골드만에 이르는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영원한 상실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연인 알렉산드라와의 재회에서 사랑의 복원을 향한 걸음을 주저하게 한다. 그의 온 마음을 장악했던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우월한 지위와 풍요로운 부, 아름다움과 지성 가득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우아한 매력들에 대한 동경이란 외피는 열등감이라는 내피를 포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한 그의 앞에 서있는 것은 삶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대한 당혹이지 않았을까?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란 의미를 비로소 직면한 사람의 각성, 그것은 마커스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는 행복에 대한 이해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몬트클레어 골드먼으로 행복했잖아. ... 우리가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바랄 이유는 없어.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달라. 행복이란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 (P469)

마커스가 새롭게 펜을 든 소설이 <볼티모어의 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마주선 슬픔과 자기 책임에 대한 도전의 의미로써 이다.

 

결국 마커스의 자기 삶의 정립을 위한 글쓰기는 글을 쓸 수 있어서 전부 지울 수 있었고, 전부 잊을 수 있었고, 전부 용서할 수 있었고, 전부 치유할 수 있었다.” (P605)는 독백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 쓰기의 여정에서 알렉산드라의 자기 연인인 마커스를 잃지 않으려했던 진실, 사랑, 그 변화무쌍했던 여인의 얼굴을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임종의 자리에서 마커스에게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들(불행)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울의 이 유언은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용서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단다. 그 나머지는 흘러버린 시간의 합에 불과해.” (P635)라는 말과 함께 마커스의 새로운 소설이자 조엘 디켈의 이 소설의 진정한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인 것만 같다.

 

마커스는 외친다.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P640) 라고.

 

아마 이 소설은 치유의 서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삶의 어느 순간에 스치듯 발생하는 작은 균열이 우리네 인생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될 수 있음을, 그럼에도 그것조차 사랑의 다른 면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허물, 슬픔, 과오, 아픔, 이 모든 생의 부조리함 그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사랑의 서라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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