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투명한 내 마음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이에 누군가 있음에도 외로움이 착 달라붙는 쓸쓸함도 있지만, 다만 같은 지붕아래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평온한 고독감도 있다. “고요한 배타성”, “쾌적한 고독”, 바로 이러한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된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적대적으로만 바뀌어가는 그 어떤 힘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이 아닐까?

 

작품에 마냥 취해 나 또한 감미로운 현기증과 몽롱한 분열의 상태에서 한동안 빠져나오기가 싫어진다.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아쉽지만 정작 사람들의 무리에 휩싸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그런 마음, 이기적인가? 화해하라고? 불온하지만 세상의 불온함이 가득 든‘작은 상자’를 열어보면 고통스러우니 바쁜 도시생활에 휩쓸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소설은 그래서 거침없이 나가는 주류의 세상을 파괴하고, 물건들이 사라지는 새로운 시공(時空), 새로운 삶의 체계와 세상, 그 윤곽과 형태를 찾아간다.


더없이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랜슬롯’이란 사내, 그 수동은 세상에의 순종이 아니라 방심이라고, 살짝 세상 밖에 속해 있었다고 하는 남자다. 욕망이란 것이 유실된 삶, 그래서 타인에 대한 평화로운 방심에 익숙한 사람, 그러나 삶의 우연이란 그렇게 무력하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어서, 알 수 없는 생명력이 자신의 고독한 영역에 깊숙이 쳐들어와 고요함을 붕괴시키기도 한다. 하이힐! 이 물체 고유의 관능성이 느닷없이 그에게 떨어지는 순간, 그의 삶은 살아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매혹적인 물건의 소유자, ‘이리나’, 세상에 대한 분노, 연민, “줄곧 세상의 끝으로 가서 멸종 위기의 동물을 찍어야”하는 여자, “육체가 별도로 존재하는 정서적인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여인과의 결합은 정말이지 삶이란 이렇듯 모순 같으면서 조화인 것이라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 그러나 이 자유분방하고 세상의 어둠을 파헤치고 그래서 제거하는, 기성의 불온함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되도록 하려는 여인을 이해하는 과정, 아니 그러함에도 사랑하도록 하는 여인의 존재는 무엇일까?

권력을 가진 위험한 집단, 혐오의 대상들을 처단하고자 했던 여자, 세상의 분노를 착실히 지워버리려 했던 여자, 섹스는 그저 상대에게 예의를 표시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한 듯 한 여자, 그 여자의 옛 남자들로부터 전해 듣는 그녀의 모습들로 인한 남자의 고통, 커져만 가는 의혹과 질투, 그 모호한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래서 이 모순되는 감정 속에서 몸부림치는 남자의 상처는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 산다는 것이란 그 본성이 본디 당혹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당혹감이란‘대상’으로부터 피어나는 건 아닐까? 소설의 남자처럼“자신과 사물들의 적대감을 혼동”했다고, 그래서 비로소 이 세상 그 누구도, 무엇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없음을 음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오늘도 파렴치한 이들, 사악한 이들, 잔인한 이들이 벌인 온통 우울한 아침 뉴스로 시작한다. “무질서가 지배하는 헛것 같은 장소”인 이 겹겹의 혼돈이 장악하는 세상의 진실을 사소한 일상으로 덮어두면, 또는 회피하고 자신의 내면의 둥지만을 감싸 안으면 평화는 오는 것인가? 춥고 음산한 벽지와 시끌벅적한 도시도 아닌 어떤 도시의 외곽지대를 정착지로서 만족해하는 남자의 돌아왔다는 이성(理性)은 왠지 낯설다.

 

내 마음의 고동을, 밤의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것이 위안이고 평화라는 말일까? 그럼에도 사랑하는 여인의 부재(不在)에 대한 강박적 집념, 그 지독한 감정의 내면 일기를 좇으면서 거듭 이 모순된 감성이 내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여자의 대항과 돌발이라는 분노의 근본과 행동에 동조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핏줄 속에 파닥거리는 화해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그 말이 더욱 진실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해해 주었던 세상에 유일했던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페스트 2015-11-1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필리아님의 리뷰를 저희 뮤진트리 페이스북에 공유해도 될지요.

2015-11-1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페스트 2015-11-1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페이스북에 한번 놀어 오세요 ;;

https://www.facebook.com/mujintree/?ref=hl

헤닝 만켈 페이지도 찾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