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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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계몽주의가 설쳐대던 18세기에 서구의 기독교 수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교조적이고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권위를 유지할 공간이 여전히 필요했으리라. 그것은 식민지들이었고, 자기들과 다른 모든 종교와 풍습,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에 대한 악랄한 불용과 배제를 통한 기독교적 쾌락이었을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거행되고 묵인되는 식민지배자들의 야만성은 시간을 거스르며 18세기를 중세의 암흑기로 되돌려 놓았다. 소설은 이러한 기독교의 수구성, 폭력성이 뒤집어쓰고 있던 위선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이요, 자신들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들에 악마의 이름을 붙였지만 정작 그 악마는 바로 그들 자신이었음을 밝히는 일환이다.

 

무지에서 비롯되는 광기만큼 공포를 담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 거침없다. 여기에다 죽음을 조장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내세를 말하는 종교, 즉 죽음의 종교인 기독교 교리가 더해지면 정말 끔찍한 일들을 사람에게 저지른다. 이 광기는 인간을 자신들의 권위에 묵어두는 파렴치한 수단이 되고, 그것은 바로 마녀사냥이자, 종교재판이라는 잔혹하고 탐욕스런 정치적 권력이 된다.

나와 다른 타자는 모두 이단이요, 악마이며,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는 포악성은 선량한 무수한 인간들을 끔찍하게 처단했다. 그래서 희생자들의 문화와 종교, 전통, 풍습, 언어는 소멸되고, 그 자리에는 탐욕스런 서구의 종교만 남았다.

 

부모의 무관심에 방치되어 흑인 노예들의 손에 양육되던 후작의 열두 살 외동 딸 ‘시에르바 마리아’는 생일 파티를 위해 장에 갔다가 개에게 한 쪽 다리를 물린다. 그러나 그 개에게 물린 사람들이 광견병으로 사망하자 마리아 역시 발병을 의심받는다. 뒤 늦게 딸의 사고를 알게 된 후작은 그녀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몽주의자인 명의(名醫)‘아브레눈시우’에게 치료를 의뢰한다. 광견병의 소견이 없음에도 흑인의 풍습과 언어에 능한 마리아에 대한 소문은 점차 사악함, 악마의 기운으로 확산되고 이윽고 지역의 주교는 후작을 소환하고, 아이의 광기, 사악한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서 수녀원에 감금되어야 함을 명령한다.

 

기독교의 교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곧 악마라는 것이다. 더구나 항상 기독교의 야만적 폭력을 포장하는 말처럼, 자신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종교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의 목을 베는 것이 아니요, 예수께서 하심이라.’ 이 얼마나 기만적인 목소리인가! 자신들은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교활한 술책이다. 또한 “우리는 소녀가 아니라 소녀의 안에 있는 악마와 전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녀 안의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 소녀를 죽여야 한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것이라 말하며 이원론을 고집하는 기독교의 이 모순된 악의는 대체 어디서 연원하는 것일까?

 

열두 살 소녀는 종교의 무지와 야만성에 이끌려 수녀원에 인도되고, 편협과 아집, 독단에 사로잡힌 수녀원장에 의해 마녀가 되고, 악마가 된다. 멀쩡한 소녀가 서구 백인의 언어와 풍습과 다른 표현과 이해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말이다. 주교는 자신이 총애하는 사제인 ‘델라우라’에게 소녀를 감시하고 엑소시즘을 시행할 소임을 맡긴다. 그러나 사제는 마리아가 광기에 젖어있는 것도, 악마가 깃든 것도 아니요, 단지 후작 내외의 방치 탓에 흑인 풍습을 습득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고, 소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쌓아간다. 사제는 그와 반목하는 수녀원장의 진정에 의해 주교로부터 임무를 박탈당하고 정신병원 간호인으로 쫓겨나지만 깊은 밤 수녀원 감방에 몰래 잠입할 정도로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간다.

 

이윽고 주교가 직접 나서 고위 사제단을 이끌고 후작의 딸 마리아에게 엑소시즘을 실행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기독교의 광기에 어린 야만성 그 자체이다. 주교의 신들린 고함소리, 성가대의 굉음, 격정으로 이글거리는 주교의 눈 빛, 그것은 바로 원한의 악마, 관용을 모르는 악마, 백치의 악마, 혐오스러움이다. 델라우라에게 끔찍했던 엑소시즘의 순간을 토해내는 마리아의 창백한 목소리, “마치 악마 같았어요!”는 악마란 과연 누구인가를 역설한다.

그런데 또 하나 아주 우스운 기독교인들의 단골 언어가 떠오른다. “악마는 심지어 진실을 말하고 있을 때도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아퀴나스의 모순어이다. 대체 악마자체가 모호한 것을, 전체주의자, 파시스트들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독선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서구 식민 지배자들의 탐욕과 이들의 체제 수호적이고 회귀적이며 수구적인 기독교의 악의성이 어떻게 식민지민들의 언어와 종교, 풍습을 억압하고 압살했는지를 사랑과 악마라는 그네들의 이분법적 언어에 담아 아릿한 환상적 사랑의 얘기로 풀어낸 걸작이다. 도시개발로 허물어지는 옛 수녀원의 묘지 이장(移葬) 현장에서 발굴된, 죽어서도 길게 자란 머리를 한 소녀의 사체를 모티브로 식민지 남미의 역사를 거슬러 서구의 종교적 문화적 이중성을 고발한 이 작품은 거장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유감없는 소산(所産)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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