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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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도입부에 묘사되는 장면의 강렬한 암시는 성의 자유가 그 어느 지역보다 관대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실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빠가 아닌 남자와 얽혀있는 엄마의 부도덕한 현장을 목격하는 소년, 엄마를 향해 “우린 이제 죽을 거라고요.”라고 외치는 소년의 분노가 왠지 오래도록 어떤 서늘함에 지배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그리곤 시간이 24년을 훌쩍 뛰어넘어 일견 평온해 보이던 가정의 주부 실종 사건에 앵글이 맞춰진다.

 

비록 강렬하지만 너무 짧아서 어떤 판단을 하기에는 미흡한, 그리고 분명치 않은 꺼림칙한 느낌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여자의 실종은 오슬로경찰청 강력반장‘해리 홀레’의 등장과 함께 심상치 않은 사건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눈사람’은 의문의 미해결 실종사건들과 연계되어 사건의 범위와 규모가 확대되고, 강도 높은 스릴에 급격하게 닿으면서 순식간에 긴장과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의 설렘으로 몰아 부친다. 600여 쪽에 이르는 두툼한 소설이 불과 몇 쪽을 읽었을 뿐인데, 이미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할 만큼 이야기에 압도당해 버린다.

 

특히 인간 남녀의 성(性)선택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을 수시로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의 제재 역시 저항 할 수 없는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짝짓기라는 종족번식, 즉 자기 재생산 비용의 남녀 차이로 인해 여성이 자신과 아이에게 충성하고 자원을 계속해서 제공할 남성을 선택하기위해 신중한 전략을 채택했음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그러나 여성의 전략은 남성에게 매우 불리하다. 만일 한 여성만을 위해 충성하게 될 경우 남성이 부담할 위험은 증가한다. 여성이 낳을 자식은 확실히 그 여성의 자식이 분명하지만 그 자식이 남성의 자식일 확률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 위험율이 소설에서는 노르웨이의 통계로 반복하여 등장하는데,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알지 못하고 양육하는 남자가 20~25%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자식이 아님에도 충성하게 된다면 남성의 재생산성은 제로(zero)라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속된 말로 오쟁이 진다고 하는 것인데, 결국 남성의 재생산 전략은 여자를 성적으로 독점해서 이 위험을 차단하는 것, 바로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것이며, 이 신뢰가 유지 될 수 없으면 남자는 재생산을 극대화하는 저비용 생산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의 이행은 사실 끔찍한 인류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설이 물론 이를 주제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유부녀들, 즉 여성의 불륜을 이처럼 중심 플롯으로 삼고 있다.

 

사건의 희생 제물이 되는 여성들은 남편이 아닌 남자의 자식을 마치 부부의 친자처럼 양육하는 유부녀들이다. 반면에 남성의 저비용 성전략 행태를 보이는 언론재벌의 파렴치도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의 성 행태로 인해 야기되는 아이들의 정체성 혼란과 도덕적 갈등으로 초점을 맞추면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연결 된다. 여성들의 실종과 피살사건이 연속되고, 현장에는 동일범의 소행임을 암시하는 눈사람이 경찰을 조롱하듯 놓여있다. 수사팀을 조직하고 사건 조사에 착수하는 해리 반장에게 여성 경관‘카트리네’가 합류하면서 해리의 수사 방향은 활기를 찾는다.

 

소설은 많은 장치들과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들이 교차한다. 장면들은 시간을 현재에서, 12년 전으로, 24년 전으로, 다시 12년 뒤로, 그리고 현재를 반복하면서 과거와 현재 사건들의 유사성과 관련성을 숙지시킨다. 또한 인간관계에 서툴고 반사회적이기까지 한, 해리 홀레의 고독한 삶의 모습과 헤어진 여인 ‘라켈’과 그녀의 아들 ‘올레그’에 대한 사랑, 동료 수사관 ‘카트리네 브라트’와 함께하는 미세한 교감과 신뢰, 관능적 호감과 공적 거리에서 흔들리는 내적 혼동이 어우러져 남편을 배신하고 타인의 아이를 양육하는 여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다분히 정신병적인 연쇄 살인 사건을 풍성한 이야기가 되게 한다.

 

의혹을 잔뜩 불러일으킨 용의자의 죽음, 그러나 뒷골목의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던 사람으로 드러났을 때의 당혹감은 믿을 수 없는 우리의 편협한 인지능력을 생각게 하고, 희생자를 편의적으로 가해자로 치부하여 영원히 진실을 덮어버리는 공권력과 사회의 집단 심리가 지닌 어리석음의 폭력성을 목격하게도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이 정말 매력적인 것은 이러한 선입견과 편협성, 폭력성, 이기심의 부당성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해리, 카트리네, 해리의 직속상사인 하겐 경정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사생아의 위치에 놓인 아이들의 불안정한 지위와 정체성에 따뜻한 시선을 맞추고 있음에 있다. 우리들이 항상 간과하고 있는 곳에 정작 우리들의 관심과 진실을 향한 에너지가 요구되고 있음이다.

 

소설은 분명 여성들의 불륜이, 부유함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부정이 만들어낸, 즉 성도덕의 파괴적 현상이 야기하는 사회 범죄적 영향의 병리적 현상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러한 표피적이고 직관적인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부당하게 희생되는 아이라는 존재들, 그에 부속되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면 진화심리학적인 접근이 보이는 결혼 여성의 불륜현상이란 성 선택 방식이 오늘의 물질중심의 문명사회에서 자연스레 적응하고 있는 진화적 산물이 아닌가하는 의심의 제기이기도 하지 않을까? 가슴에 있어야 할 양 쪽의 눈이 없는 신체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 더욱이 자신이 불륜을 저지른 엄마로 인해 잉태되었다는 자각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증오를 수반하는 것이었을 게다. 그로인해 정신과 육체가 붕괴되어가는 존재, ‘눈사람’의 처절한 복수극이 가히 수준 높은 지성과 영리함으로 똘똘 뭉쳐져 완벽한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북유럽 특유의 얼음 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즐거움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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