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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브레이커 -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쳐 자신의 길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탄소에너지의 고갈,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 생태계의 파괴, 인간의 도덕적 오만을 대표하는 유전공학 기술의 남용이 만들어 낸 반인(半人), 이렇듯 암울해진 미래의 인간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부자들의 세계와 빈자들의 세계는 차단되어 폐허가 된 쓰레기 더미에서 재생품을 수집하기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그들을 착취하고 폭력과 살인, 배신과 기만만이 숨 쉬는 무법 공간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아무런 안전도구도, 생명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없는, 생존의 욕구만 팽배한 현장, 거대한 폐선(廢船)을 해체하여 수입이 될 수 있는 구리, 철, 폐유(廢油) 등을 수집하기 위해 불빛조차 없는 암흑의 폐선 바닥과 좁은 덕트 속에서 쉴 새 없이 목숨을 건 노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러한 묘사는 상상의 미래도, 과장된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바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 어린 소년소녀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끔찍한 선박해체 작업의 현장은 즐비하기에 소설 속 소년과 소녀를 보는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 되는 세계이고, 중노동일지언정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이 거친 일마저도 얻기 위해 비굴함과 폭력에 시달려야 하고, 노동력을 상실하면 장기를 비롯한 신체를 팔아야 하고 이마저도 없어지면 죽음만이 기다리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감독자가 되고 쓰레기 수거권리를 가지는 자가 되어 노동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쥐기 위해 남들이 찾아내지 못한 가치 있는 물건을 찾는 것은 이상이자 꿈이 된다. 선박 해체작업의 경량(輕量)팀 일원인 소년‘네일러’는 우연히 팀의 조장인 연상의 소녀인‘피마’와 해안 근처의 섬을 탐색하던 중 폭풍우에 전복된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쾌속선을 발견하고, 그들의 눈앞에 전개된 엄청난 귀중품들과 유일한 생존자인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네일러와 피마에게 있어 이것은 중노동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의미한다. 소녀는 그들의 세계에 돌려주고 보상을 받을 수도, 아니면 신체라는 물질로서 팔수도 있는 대상이며, 그녀를 장식하고 있는 금과 다이아몬드등 귀금속만으로도 하나의 작업권리를 살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내 생존의 수단으로서 한 인간 생명의 사생결단권을 갖게 되었을 경우 내 이익과 타자의 생명을 교환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자신들의 신체를 착취하고 인간적 존엄성을 부정하는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소녀를 위해 자신에게 온 행운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조차 여의치 않게 되는데, 폭력과 살인, 타자의 생명에 대해 어떠한 연민도 갖지 않는 잔혹한 인물, 바로 네일러의 아버지가 이끄는 일군의 무리와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이게 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 끔찍한 이 세계에도 사랑과 보호와 연민의 유대는 있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경멸과 조롱의 의미를 담은 부자들, 스웽크(swank)인 소녀와 탈출을 감행한다.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소녀의 세계, 즉 부자들의 세계 또한 그치지 않는 탐욕으로 얼룩진 세계임을 드러낸다. 불법과 야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녀의 생명을 노리는 세력들로 인해 네일러의 꿈과 희망, 소녀의 귀환이라는 여정에는 끊임없이 위험이 놓이고 용기와 도전을 요구한다.
성취를 향한 길은 결코 평탄치 않다. 때론 예기치 않은 존재로부터의 도움이 있고,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를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 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절대 절명의 선택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것은 미지에 대한 과감한 도전의 용기이며, 폭풍우 몰아치는 거칠고 거대한 파도의 비탈과 협곡을 곤두박질치는 사투를 건 승부의 세계이기도 하다. 소녀 니타와 소년 네일러는 그들 서로에게 ‘러키 걸’, ‘러키 보이’라는 행운으로 불리지만 이들에게 다가온 행운(lucky)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위해서는 이처럼 힘겨운 풍랑과 마주하는 태도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진부하고 낭만적인 교훈이라고, 선박해체작업에 내몰린 어린 소년소녀들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찾아야 할 꿈조차 꿀 수 없고, 도전해야할 희망조차 없다면, 우린 무엇을 말 할 수 있겠는가?
“교만과 죽음은 빨리 찾아오는 법”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우리 세계가 보이는 행태는 인류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 오만하고 자기 과신에 젖어있다. 물질은 정신을 압도하고, 과학은 자연의 본성을 통치하려한다. 아마 우린 죽음, 자신들의 운명을 재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난자에 개, 호랑이, 하이에나의 유전자를 혼합하여 만들어낸 혼합생명체인 반인, 가난한 자들의 노동착취와 신체를 거래대상으로 하는 파텔, 로스앤칼슨 등 거대기업들의 부도덕성, 해수면 아래로 잠겨버린 한때 영화로 불리던 도시의 음울함 등은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들을 이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 세대들, 지금의 어린 소녀 소년들에게 지향해야 할 인간의 진정한 가치, 덕목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생명의 이야기가 된다. 생명, 인간의 존엄성, 그 고귀한 가치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