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취미의 권유 - 무라카미 류의 비즈니스 잠언집
무라카미 류 지음, 유병선 옮김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이 경험하고 사유하는 것들은 동일한 생물학적 기관, 즉 오감 탓에 보편성을 지니고 그래서 서로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러한 경험과 사색의 시간을 보다 더 확보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판단력이란 개별화된 작업을 거치면 서로 다른 해석을 내 놓는다. 이것을 좌우하는 것이 소위 지식이란 것인데, 이 한계 때문에 편협하거나 잘 못된 이해로 치닫기도 한다.

 

일본의 방송인이자 소설가이고 영화인이기도 한 작가가 세상을 향한 삶의 이치에 대한 나름의 권유인 이 책은 때문에 그 광범위한 영역으로 인해 사유의 흠결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지리한 삶을 자극하고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도약의 언어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정신없이 달려 온 후 인생의 누적된 피로로 회의와 공허함에 사로잡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느낌을 덜어내기 위한 삶의 어떤 새로운 해석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무취미의 권유’라는 일견‘취미 없음’을 권유한다는 모순어를 지닌 표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맞춤이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총 38개의 단상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이러한 내 시선에 들어 온 글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아마 자신이 처한 현실적 위치에 따라 그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나는 작가처럼 취미(趣味)를 해석하지 않는다. 취미란“자신을 위협하고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결국 이것은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니 무취미라는 것인데, 취미가 반드시 삶의 위협과 격정을 초래하는 것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일 이외에 자기 내면의 성취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작업들이 취미로서 충분히 의미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첫 대문에서 이렇게 낙망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세계화의 적응에 관한 장에서 그 유명한 영화 <대부 II>에서‘마이클 콜레오네’가 했다는 대사 한 마디에서 작은 자극을 얻었다. “아버지는 친구와 가까이 하고, 적과는 더 가까이 하라고 날 가르쳤네.” 소통 능력에 대한 교훈인데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었다는 이유 때문이어서 였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이처럼 내 마음에 파동을 가져온 몇 개의 장이 있는데, 집중하기위해서는 이완(弛緩)이 필요하고, 더구나 당면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자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조언은 준비되지 못한 자의 긴장을 부끄럽게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직장 부하나 조직에의‘동기부여’라는 필요적 동력을 견인함에 있어서 정곡을 찌르는 “희망과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라는 한 마디나, “선택지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가장 어렵고, 가장 귀찮은 것을 고르는 게 정답”이라는 인생길의 결단에 대한 촌철살인의 문장은 내가 어떤 문제의 문턱에서 해매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도와준다. 특히 일본 무사도 정신 중 하나인 죽음에 철저히 임하는 결연한 삶의 자세를 말하는‘하가쿠레’는 내가 잊고 있던 ‘미셸 푸코’의 '멜레테 타나토(melete thanatou)', 즉 막 죽으려 할 때처럼 내 자신의 행동을 사유해 보려고 목표하는 것, 그럼으로써 ‘내 자신으로의 회귀, 내가 영위한 영원한 삶으로의 회귀, 죽음의 척도에 비추어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의 가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진정한 삶의 빛을 다시금 떠올리는 불꽃을 댕겨주어 어둡게 드리워졌던 어떤 장막을 걷어낼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촉매가 되어주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내 행동양식의 범주를 성찰하게 해준“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살펴보고 바깥을 향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기 위해서는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구절을 통해 잃었던 용기에 대해 생각게 되기도 한다. 내가 너무 안주하고 버티려고만 하지 않았는지, 이제라도 나도 모르게 둘러쳤던 벽의 존재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의외의 실마리나 단서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세련된 삶의 지혜를 담은 단상으로 세상에 대한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도 있다.

 

다만, 지나치게 경제주의(經濟主義)적 시류에 경도되어 효율화, 성공, 목표 지향과 같은 자칫 편향된 가치들로 분별없이 단정 짓는 일부의 단상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례로 근대이전에도 노예, 병졸, 소작농으로 여유라는 개념과 무관한 삶을 강요받아왔으니 근대산업사회의 덕목인 효율화는 중요한 미덕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효율화에 대해 시시비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살아가는데 성공, 돈 이외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품격과 미학’을 얘기하는 것은 생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생뚱맞은 발상이라고 폄하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더구나 월급쟁이들의 노후대비에 대한 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유명 프로골퍼가 “한 번도 월급쟁이였던 적이 없어 모르겠네요.”라고 답변한 것을 솔직하다고 칭송하면서 “녹화 스튜디오는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찼다.”는 사례는 사실 아찔한 현기증을 나게 하기도 한다. 이건 솔직함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무관심, 무지라고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감을 상실한 오늘의 개인주의 병폐의 현주소가 아니겠는가?

 

이 책이 우리들 인생의 조언, 혹은 마음의 위로, 세상의 이해에 대한 멋진 사유들이란 미덕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세대와 현실의 처한 양상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와 감동을 분명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 된다. 그러나 삶의 가치가 오직 일과 효율, 성공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소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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