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유물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7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7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집요한 죽음의 칼날이 언제라도 등을 꽂을 듯한 두려움, 경계의 긴장으로 팽팽해진 신경이 공포를 가득 채우고 첫 페이지부터 호흡을 조절하게 한다. 그리곤‘네페르 타리’(완벽한 아름다움)란 고대 이집트 왕녀의 이름을 가진 열네 살 딸아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Medea)』의 초법적이고 냉엄한 여성의 이미지를 지닌 한 여인, 이 두 모녀를 필사적으로 도피케 하는 어둠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순간, 장면은 2000년 전의 미라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유물의 CT촬영 현장으로 훌쩍 시공을 뛰어넘는다.

사설 고고학 박물관이 소장한 미라의 손상을 막기 위한 조심스런 단층 촬영은 뜻밖의 모습으로 참관자들을 경악케 한다. 다리뼈에 박힌 총알. 그것도 총상 후 뼈의 자생적 회복 후에 미라로 방부 처리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고고학적 탐색에서 현실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급전시킨다.

 

이처럼 소설을 구성하는 소재들의 다양성은 작품 초입부터 읽는 이를 완전히 압도한다. 신화적 요소들, 미라를 비롯한 고대 유물들과 고고학을 배경으로 인간의 말린 머리인‘찬차’와 사체의 방부처리 기술을 사용하는 변태성욕자인 사이코패스의 엽기적 연쇄살인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스릴러의 신비감을 극대화시키며 소설적 재미로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그리고 하나 더, 작품성을 아마 완전성에 도달시키는 요소가 아닐까 싶은데, 가족과 같은 혈연적 연대가 공공선을 방해하고, 인간의 신체를 사물화하는 현대인의 악마적 취미는 물론 악행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부의 권력화처럼 그 뿌리를 사회 심리적 요소에서 찾는 것 등은 이 소설의 탁월한 미덕으로 들고 싶다.

 

또한 작가의 내면적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이 작품이‘제인 리졸리’라는 여형사와 ‘마우라 아일스’라는 여성 법의관 콤비 시리즈임을 떠나서 여성 인물들과 남성인물들이 뚜렷하게 기성의 젠더에 부여된 특성을 전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강인하고 선(善)과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것과 대비되어 남성들은 심약하거나 소심하고 수동적이며 악(惡)과 도덕성을 파괴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리졸리의 파트너인 프로스트 형사는‘조세핀 펄시로’라는 박물관 여성 큐레이터의 미모에 현혹되어 수사관으로서의 판단을 잃어버린다거나 로스쿨에 들어간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아 훌쩍이는 남성인가하면, 억만장자로서 아들의 범죄를 은폐하는‘킴벌 로즈’같은 인물은 사법질서를 초월하고 이기적 연대에 집착하는 사회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면 조세핀이나 그녀의 엄마, 조세핀을 보호하는‘제머 해머턴’ 같은 여성들은 자기희생과 책임감, 강한 의지, 정의의 수호자로 그려져 성역할을 완전히 역전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성 독자들의 환호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사건의 발단이 된 총알 박힌 미라의 살인사건화의 시작으로부터 박물관에서 추가로 발견된 세 개의 찬차는 추가적 살인행위가 있었음으로 이어지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큐레이터 조세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위험의 암시는 그녀의 차 트렁크에서 또 하나의 완전한 미라의 발견으로 종잡을 수 없는 의문의 사건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비틀린 성의식에 매몰되어 극한적 쾌락을 추구하는 악의 종자들은 부모들의 막대한 부와 권력의 비호 하에 사회적 처벌을 피해가며 악마적 잔혹성을 더해간다. 이러한 현실의 시간적 진행은 이십 오년 전 이집트 유적 발굴 탐사단의 인물들로 모아진다. 박물관장, 거부인 고대유물 발굴 후원자인 킴벌, 그의 아들 브래들리, 조세핀의 엄마 메데이아..., 그 질긴 욕망의 사슬이 증오와 분노, 살인과 도피, 미라와 고고학이 되어 순환한다.

 

화려하고 지적인 소재들이 정교한 구성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는 그야말로 풍부하고 다채로운 맛스러움을 더하고, 살인자의 신원은 엎치락뒤치락, 소설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두 모녀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공포의 근원과 실체로 결합한다. 결국 작가는 그리스 비극 『메데이아』의 신화를 한편은 차용하고 또 한편은 뒤엎는다. 남편의 배신에 자식들은 물론 연적마저 죽이고 홀연히 떠나는‘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는 달리, 희생을 무릅쓴 자식에 대한 보호와 같이 헌신적인 모성애로 새롭게 그려내지만 막강한 권력과 잔혹한 악인들에 강하게 맞서는 의지와 행동의 실천은 신화 속 여성을 그대로 닮아있다. 이는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인식의 구분을 벗어던지고 인간 그 자체가 지니는 본성,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작업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일 게다.

 

한편, 여성의 사체를 쾌락의 도구로 하기 위해 그 소유의 영원성을 위해 미라(mummy)화하는 변태,엽기 살인자를 추적하는 여형사 리졸리와 그녀의 파트너 프로스트의 인간적 갈등이나 애환, 신부(神父)를 사랑하는 법의관 아일스의 성적 갈망 등 이들의 사생활이 양념처럼 흐르면서 삶의 본질이란 보편성으로서의 진실들을 보여주는 구성적 배치는 장르문학이란 언어적 폄하가 감히 미칠 수 없는 문학적 위치로 격상시켜 놓는다. 가히 환상적이고 압도적인 복수극을 등장인물의 완벽한 아름다움만큼이나 완벽하게 조성한 수작이다. 21세기의 메데이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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