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적 욕망에서부터 외부환경과의 갈등으로 수시로 그 균형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고뇌로 슬퍼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울어진 균형을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내어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잃어버린 길은 무엇인지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여정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어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삶이란 그것이 사랑이건, 재물이건, 어떤 지적 탐구를 수반하는 정신작용이건 성취하고자 하는 대상에 이르려는 장애물과의 욕망의 투쟁이고 이의 균형이다.

특히 삶의 균형을 해치는 고통 중에서 가족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라는 유대감의 상실만큼 인간을 고립시키고 좌절케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데 절대적인 후원자이다. 혹여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신체에 손상이 생기지 않을까,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까, 그들이 미래의 성숙한 인간으로 가는 여정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와 부모의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부모의 관심과 아이의 관심사에 괴리가 생기고 그 간극은 미세하게 벌어지기만 한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어떻게 그 간극을 좁힐 것인가? 어디까지 개입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정답이 없는 양육의 딜레마에 봉착한다.

소설은 바로 이 난해한 위치에 들어섰을 때, 부모와 아이의 신뢰와 사랑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지니게 되었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대처하며, 싸우게 되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부모의 개입과 아이의 프라이버시 존중과의 경계에서 무엇이 선(善)일 수 있는지를 생각게 한다. 또한 내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가 남의 자식에게 위해가 되는 것일 경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심히 뱉어낸 어른의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는지 우린 목격하게 된다.

사소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문제들이 다양한 모습을 띤 중산층 가정들에 렌즈를 맞춤으로써 잃어버린 균형을 복원하기 위해 달려가는 인간의 용기와 사랑이 세련된 감수성, 독자의 강박적 긴장을 쥐락펴락하는 정교한 플롯의 구성, 치열한 갈등과 대립의 흥분 속에 온통 녹아 흐른다.
미스터리, 서스펜스, 극적 아이러니까지 총동원되어 호기심과 감정의 자극을 첫 장부터 마지막장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흐르는 이야기에 탈진할 정도의 재미로 독자를 몰아 부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얼굴의 형상을 완전히 짓뭉개 버리는 이들의 무참한 폭력살인, 게다가 알려지지 않는 살해동기와 신원을 알 수 없는 피해자까지 더해지고, 사건의 초등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풋내기 여성 수사반장과 무능한 담당형사와의 첨예하고 혐오감을 자극할 정도의 수사권 갈등, 그리고 10대 아이들을 둔 중산층 가정들의 팽팽한 양육갈등, 이웃집 아이의 자살, 여자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모독하는 선생의 감정적 언사가 만들어 낸 정신적 폭력 등 무수한 갈등들이 걷잡을 수 없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부글거리는 감정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홀로 침잠하는 아이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부모로서의 보호, 즉 개입의 문제와 관련하여 아이의 컴퓨터에 실시간 감시 장치인 스파이로봇을 설치하는 것은 과잉보호이며, 아이의 프라이버시 침해인가, 아니면 위험에 처해있을지도 모를 아이를 구원하기 위한 부모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인가라는 답 없는 문제의 제기부터 복선으로 작동하는 무수한 인스턴트 그리고 SNS 메시지, 시스템 엿보기 장치에 이르는 오남용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소재까지 진중한 주제와 신선한 소재의 믹스는 작품의 풍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살해된 여성들의 관계가 파악되고, 살해 동기와 살인자의 신분이 드러나는 마지막의 여정에 이르면 무심히 던진 한 마디가 얼마나 우연이란 증폭의 기제를 타고 인간의 삶을 암흑의 구렁텅이에 처박아댈 수 있는지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자식의 보호를 위해 때론 부도덕을 불사하는 더없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부모들의 편협성, 예기치 않은 우발적 피해가 삶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그 무서운 잔혹성의 실체를 보게 되기도 한다. 인간이 어찌 삶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불확실하며 우연함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 삶일지라도 우린 그 우연을 만들어 낼 작은 요소들에 관심과 사랑과 신뢰를 보냄으로써, 그리고 비록 깨진 균형일지언정 되찾으려는 용기를 잃지 않을 때 소중한 것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갈등 구조들과 치밀하게 얽힌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밝혀지는 대 결말은 가히 최고조의 카타르시를 경험하게 한다. 이 소설이야말로 스릴러가 가족소설과 결합 할 수 있는 가능한 상상의 끝이라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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