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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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짐스러울 정도의 삶, “이겨낼 수 없다는 오래된 좌절이” 어떠한 의지조차 없애버린 그런 삶, 대체 이런 삶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김이설이 그려낸 여자, ‘서윤영’이란 인물의 감당해야하는 그리고 감당할 밖에 없는 비루함에 삶의 오욕(汚辱)이 몽땅 씌워져있다.

매년 낙방하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무능한 남편, 핏덩이 아이, 단칸 옥탑방의 하찮은 생활일지라도 먹고 살기위해서는 벌어야 한다. 어렵사리 구한 도시외곽의 물비린내 나는 닭백숙집의 종업원으로 도시와 그 경계를 아침저녁으로 넘나든다. 마치 환각의 공간 같은 저 세계와 현실의 이 세계를 오가는, 아마 저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 윤영은 유령이 되어야만 했는지도, 그것이 환영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온종일 닭백숙 집에서 나르고 닦고 씻고 손님 접대를 하여 버는 한 달 월급은 백 여만원, 그나마 이십 퍼센트는 보증료라고 퇴직할 때 준다며 떼어버리고 준다. 생존을 위한 비용에도 모자란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한적한 교외의 닭백숙 집을 찾는 손님들은 음식 맛만으로 찾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식당의 별채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교환들, 식당 여종업원 월급의 몇 곱절이 되는 수입원이 되어주는 그 기이한 육체와 자본의 교환체계 , 주인의 은근한 매춘의 권유는 곧 윤영의 생존수단을 위한 질서 속으로 들어온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여인이 살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외곽의 닭백숙 집을 찾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여가라고 포장해서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불법 매춘행위를 눈감아주고 향응을 받으려는 부패한 사람들, 인간의 육체를 교환가치라는 명목에 집어넣은 자들...그런 인간들이 모여드는 곳,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환영이기만 한 걸까?

핏덩이 아이를 돌보고 아내 윤영의 밤늦은 식사를 차리는 무기력한 남편, 고시원에 홀로 앉아 공부해도 낙방하는 그가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은 없다. 차이고 밟히는 능욕의 댓가로 부양하는 남편과 아이, 그리고 집을 파산시키고 마침내 윤영의 생활까지 침몰시킨 동생들과 엄마의 몰염치한 손 벌리기는 윤영의 의지를 극한으로 내 몰기만 한다. 이 외면하고픈 우리네 삶의 한 조각 현실에 한숨과 울화와 분노가 절로 치밀어 오르지만 어디 발산해 댈 곳이 없는 사면초가의 심정에 몰린다. 정말 “그 따위 나날들”로 점철된 이 세계에 공존하는 현실, 윤영의 삶이 너무 아득해서, 그리고 이 생생한 날것들의 너절하고 염치없고 추함에 나는 쩔쩔맨다.

단지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오는, 생활비를 주는 남편, 더 이상 아내를 능욕의 현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남편이 필요 할 뿐인 그녀가 잠자는 남편의 머리를 발로 툭툭 내차는 광경은 마음을 시리게 한다. 윤영이 바라는 작은 소망, “아이 하나를 씻기지도 못하는 좁은 화장실이 조금만 컸으면 좋겠다는 거,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이다. 그런 그녀가 이건 “욕심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말한다. 욕심이어도 괜찮은 것임에도 희망이라고 말하는 그녀 때문에 다시금 울컥한다. 극한에서 극한으로만 치닫는 윤영의 환경, 대체 이 악순환의 고리는 무엇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이렇게 지독할까?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말 그대로의 최악이란 최상급은 항상 그 이상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이란 본디 그랬던 것인 것처럼 그녀는 버티고 또 버틴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는 듯이.

김이설이 시종 뚫어지게 보는 이 세상의 단면들, 참고 또 참다보면 그 통증이 무뎌져서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게 되는 삶의 그 지독한 낯짝이 너무도 시리고 아프다. 그러나 그건 이 역설적인 ‘환영’이란 제목처럼 환영이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김이설의 소설, 그 내용들을 냉큼 집어다가 어디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버릴 수 있다면, 아니 그래서 우리의 삶들에서 이러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수만 있다면 하는 어설픈 욕심을 가져본다. 작가만큼은 아니겠지만 읽는 내내 너무도 괴롭고 아팠다. 가슴 한 구석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다...김이설 파이팅! 서윤영 파이팅! 이 땅의 여인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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