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연금술
캐럴 맥클리어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주인공인 뉴욕월드 신문의 탐사보도기자인‘넬리 블라이(Nellie Bly)’란 여성에 대한 궁금증도 자못 흥미로울뿐더러, 이 작품의 작가인‘캐럴 맥클리어리’또한 한국의 서울에서 출생했다는 인연으로 작품외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소설 속에서도 넬리의 성향이 충분히 소개되고 있지만, 그녀가 한창 활동하던 1890년이란 시간은 여성이 남성의 보조자란 지위를 떠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회활동, 더구나 남성 전유의 세계인 신문기자를 한다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래서‘넬리 블라이’는 오늘날에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참여를 열어 제친 여권신장의 개척자(pioneer)로 칭송받는 역사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실존적 인물에 대한 매혹을 물리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쥘 베른, 오스카 와일드, 루이 파스퇴르, 게다가 틀루즈 로트렉까지 가세시켜 파리 만국박람회, 에펠탑, 물랭루즈 등 당시 스펙타클의 정점에 이른 사회분위기에 빈틈없이 이들이 얽혀 빚어내는 정교한 얼개는 작가의 높은 구성력으로 이어져 흠뻑 매료케 된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사회적 인식을 넬리를 통해 부각하고 있는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 여성의 사회진출 제한 등에 대한 저항,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르주아지 지배계층의 착취와 빈곤의 고착에 대한 무정부주의자의 저항운동이 작품의 저변을 받쳐 더욱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게 된다. 악명 높은 정신병원의 인권유린을 밀착 취재하다 대면케 된 살인자의 홀연한 사라짐, 그리고 이어 영국런던에서 발생한 희대의 연쇄 살인은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파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뉴욕월드지의 사장인‘퓰리처’에게 어렵게 취재승낙을 얻어낸 넬리의 추적은 환락과 퇴폐의 상징이었던 몽마르트 언덕의 카페와 살롱, 희미한 가스등이 비추는 음울한 길거리에서 시작된다.

『해저 2만 마일』,『80일간의 세계일주』등 공상과학과 모험의 세계를 그린 당대에는 선구자라 할 수 있는‘쥘 베른’이 넬리의 살인자 추적의 파트너로 등장하여, 노작가와 젊은 여기자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기묘한 조합에서 연륜과 패기, 신중함과 열정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파리 빈민가를 죽음의 공포로 뒤덮고 있는 흑열병의 실체를 조사하는 세균학자‘루이 파스퇴르’는 물론, 동성연인의 피살로 범인을 추적하는‘오스카 와일드’의 수다스러움이 더해져 1890년이란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들의 화려한 활약이 작품의 재미를 북돋운다. 거기다 슬그머니 당시 파리의 흥청거리던 캬바레와 무희들, 창녀들의 화려한 풍경 뒤에 감추어진 비애를 그렸던‘틀루즈 로트렉’까지 그야말로 매머드급 조연들이 적재적소에서 퍼즐 조각처럼 등장하여 살인자에 한 걸음 접근케 한다.

빈곤층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리고 평등과 자유를 위해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무정부주의자로 분(扮)한 살인자의 실체로 다가가는 과정에는 묵직한 조연들 못지않게 무기상 등 자본주의의 추악한 얼굴들을 드러내게 하는가하면, 시민운동의 모습에 대한 사려 깊은 사유를 동반하고, 관료조직이 발생시키는 무능과 안일함의 고발까지 오늘의 사회상으로 오버랩시켜 자연스럽게 문제를 제기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난폭한 연쇄 살인자와 그가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의 진의를 쫒는 넬리와 베른의 여정은 마음 졸이는 긴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들에게 애정 전선이 드리우면서 또 다른 긴장의 달콤한 기운으로 안내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병원체를 인간에 주입함으로써 순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살인자, 사회가 지켜주지 못해 불가피하게 몸을 파는 여성들을 유인해 잔혹하게 실험용으로 난도질한 후 버리는 인면수심의 괴물과의 두뇌 싸움은 스릴러로서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치밀한 추리물로서 인물들의 면면에 숨겨진 반전의 장치와 복선은 물론, 세균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접근 요소들까지 무한한 흥분과 재미를 안겨준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생활사, 문화사를 훑어본 느낌까지, 제법 풍성한 스토리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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