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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나는 계속해서 더 쉽고 간단한 시를 쓰고 싶다.”라는 시인의 시작(詩作)에 대한 의지처럼 그의 시는“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고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그대로 묵묵히 수행한다.
또한 “내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 평이하고 투박하게 호소해 보았다.”는 자평은 “무공해나 돌멩이 같이 예쁘지 않아도 확실한 시”가 되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요즈음의 시와는 달리 평온한 위안이 되어주고 우리의 감성을 이완시켜준다.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는 표제는 시인의 등단 50년을 기념하듯 수록된 50편의 절창(絶唱)에 면면히 흐르는 고향인 나라, 조국에 대한 연민, 사랑, 슬픔, 안타까움이 되어 부르는 목소리이다. 시인의 회고처럼 쫓기듯 떠나야했던 고국은 애증의 대상으로 그의 삶을 지배하였으리라. 그래서 그의 모든 시편에 이름 모를 당신을 보게 되는 그의 조국에 발을 딛고 사는 나는 괜스레 부끄럽고 수줍어진다.
시인이 손수 선택한 50편 각각의 시에 깃든 사연과 소중한 의미들이 때론 고통과 슬픔을, 그리고 기쁨과 행복을 담아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마음 따뜻한 에세이로 시의 이해를 돕는다. 작가로부터 직접 전해 듣는 시의 배경과 표현하고자 했던 감성, 주제의식은 물론 시어(詩語)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 시가 써졌을 때의 시대상, 그리고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솔한 단상까지 더해져 작위(作爲)없는 인생록이 된다.
난 비오는 소리와 그 광경을 좋아한다. 허나 왜 그토록 비에 집착하는지 명료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 ~ (前略) ~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라는 詩, <비오는 날>을 읽으며, 인생에서 마주 하기 쉽지 않은 인연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비에 담겨있을 이름 모를 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따뜻하구나. 보지도 못한 그대의 눈. / 누가 언제 나는 살고 싶다며 / 새 가지에 새순을 펼쳐내던가. ”하는 <담쟁이 꽃>같은 시인을 언젠가부터 이해하기 시작한 나는 어느덧 시인의 글에 안락하게 싸이고 만다.
그리곤“내게 축제의 날은 우선 꽃이 피는 때가 아니고 꽃이 지는 때라는 믿음이 있다.”라는 시인의 겸손한 삶의 이해에서 “소멸의 시간”이야말로 인생의 절정이자 가장 고귀한 시간임을 가슴깊이 새겨 넣는다. 서슬 퍼런 군부의 폭압이 나라를 휩쓸던 시절, 굴비처럼 엮여 정보기관에 수감되었던 그 공포와 위협의 시간을 지나 국외로 추방되듯이 떠나온 조국, 그래서 가난한 유학생이 되어 아버지 ‘마해송’의 임종과 장례에도 돌아오지 못햇던 참회의 기억, 어느덧 생의 터전이 된 미국에서 낳은 아들이 자기 정체성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는 아비인 한 시인의 낮게 흐르는 목소리에서 승화된 그리움의 실체를 목격하게도 된다.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라고 시작하는 <물빛 1>이라는 시, 그리고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이라는 죽음에 닿은 삶과 사랑의 사유가 깊게 깃들어있는 <바람의 말>이라는 시는 시인의 이해하기 쉽게 쓴 시어들이 아니었으면 이처럼 매혹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시를 쓰려고 하고 이해받으려고 노력하며 산다.”는 시인의 말은 그의 모든 시들을 진정 대변하는 표현으로 한 치의 미흡도 없다.
2000년을 전후하여 한국 시단을 휩쓰는 현대시의 몇 자락들에 대해 “내용 없는 과시와 허세”로 “신선하고 독창적인 예술에 대한 열정을 한 갓 시들어가는 문학이론에 다 소비해 버리겠다는 것인가?”하고 날로 궁핍해져만 가는 정신세계와 미혹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는다고 날선 비판도 아끼지 않지만, 시인의 따뜻함이 가득 스며든 시선들로 충만한 이 詩作 에세이집은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섬세하고 다정한 서정(抒情)’으로서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고, 푸근하게 감싸준다.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다시 그 슬픈 파두의 노래 속에 빨려들기 시작했다.”라는 <포르투칼 일기>에 비친 시인의 외로움 혹은 고독의 의미를 아로새기며 책장을 덮는 마음이 애절하게 느껴진다. 시인의 희망처럼 그의 시는 내게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 내 삶이 소멸하는 순간에 문득 한 구절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