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평생을 함께해 온 반려자가 나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래서 그 주검이 문득 나의 앞에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막 끓인 커피향이 감돌고 따뜻한 체온이 머무는 침대의 안락함에서 벗어나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이 주는 안정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는 그 때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남편을, 바로 그의 죽음을 비로소 인식하는 순간, 이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살아있는 자의 당혹스러움, 그 혼란의 시간을 우린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소파에 반쯤 감긴 눈을 하고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온기를 잃어가는 남편‘쥘’의 주검을 두고 ‘알리스’는 쥘과의 이별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되뇐다. 오십 여년을 함께 해온 동반자를 선뜻 자식들에게, 친지에게, 장의사에게, 목사에게 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쥘의 죽음이 그녀의 뼛속까지 스며들기 전까지는 그는 진정으로 죽은 게 아니다.”아마 오랜 세월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들이 그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저장 될 수 있는 그런 시간, 그녀에게 남편이 온통 흘러들어올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소설은 차마 남편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 못하고 차갑게 굳어가는 남편의 주검을 두고 자신만의 이별의 시간을 보내는 하루의 이야기다. “일상이라는 이름에 묻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털어놓고 용서하는 화해의 시간이 된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고통과 증오, 그러나 그때만큼 사랑했던 적이 없노라고 고백하며, 살아있는 당신보다 죽은 당신을 떼어버리는 게 나한테는 더 쉽다고 말하는 알리스의 떠나보냄의 수긍은 시큰거림과 슬며시 흐르는 눈물을 동반케 한다.
익숙한 체취, 그것은 하나의 기억이고 삶에 대한 충동이자 현실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쥘과 함께 얼음이 되어버렸으면. 그와 함께 빛을 꺼버렸으면.”하는 상실의 아픔으로 갈등하는 여인의 사무침이 내내 가슴에 울린다.

한편 남편과 규칙적으로 체스를 두던 아파트 아래층의 자폐증 소년‘다비드’의 극도로 제어된 언어와 행동이 알리스의 혼란과 망설임의 시간에 개입하여, 그 어떤 죽음에 대한 위로의 수다보다 이별을 위한 완벽한 배경이 되어준다.
“쥘 할아버지 껍데기”라고 죽음을 이해하는 소년의 표정, 두 명의 산 자와 하나의 주검이 마치“ 세 명의 성좌가 확정되어 있는 삶과 죽음 사이의 지대”처럼 나란히 앉아있는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며 괜스레 목이 메어지기도 한다.

날이 기웃기웃 저물어가는 눈 내리는 밤이 오고, 정말 이별을 위한 완벽함이 도달한 시간, “눈은 밖에 있고 안은 따뜻해요”하는 소년의 무심한 듯한 한 마디는 삶과 죽음과 대비되어 산 자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의 평온함이 되고, 그래서 “밤이에요. 이제 자야겠어요.”라며 쥘의 자리에 누워 잠에 빠져드는 소년을 바라보는 알리스의 표정에서 삶의 안식을 본다.

죽음이란 삶의 가장 큰 상실을 극복하는데 요구되는 다독거림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부부의 연을 맺고 세월을 같이하는 동반자의 증오와 사랑의 실체가 진정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감동적 작품이다. 단숨에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짤막한 소설이지만 그 감동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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