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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명 앗아가주오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지음, 강성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내 생명 앗아가 주오. 내 심장을 꺼내 버려요.
내 생명 앗아가 주오. 고통이 그대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그대 다시는 내 모습을 볼 수 가 없어요, 드디어 그대의 두 눈을 훔쳐버렸거든요, 난.
- 카탈리나의 <내 생명 앗아가 주오> 노래 中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의 아내인 한 여인의 발칙하고 철철 넘쳐나는 끼를 만끽하는 재미가 물씬하다. 절제의 위선을 벗어던지고 진솔하게 쏟아내는 감성의 향연이 더 없이 극적인 즐거움을 주고, 철모르던 소녀가 성숙한 여인으로, 남성과 정치 세계의 관찰자로서 보내는 그 시니컬한 냉소와 운명적 사랑의 전율이 야릇한 흥분으로 달뜨게 한다.
1930,40년대 멕시코 혁명기의 권력계층의 부패하고 파렴치한 실체를 깊숙이 조명하고, 민중의 시름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본질을 사회비판이나 정치적 작품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싶다. 주인공‘카탈리나(카티)’라는 여인의 여성이 되고, 그래서 하나의 견고한 주체로서의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바로 그 과정에서 겪고 느끼고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적나라한 내면을 읽는 것이 오히려 이 소설의 진정성이라 하여야 할 것 같다.
열다섯 살 소녀와 서른이 넘은 남자의 결혼, 혁명주체세력의 실세로 권력과 부를 쌓아가는 야심가인 ‘안드레스 아센시오’장군의 아내가 된 이 소녀,‘카탈리나’의 시선으로 본 상류사회의 위선과 폭력, 그리고 그네들의 일원이자 공범일 밖에 없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갈등, 특히 소설의 중심사건이 되는 불꽃같은 관능의 열기로 싸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카를로스 비베스’와의 사랑을 정점으로 하는 유기적 구성과 전개는 달콤한 낭만적 쾌감에 그대로 젖어들게 한다.
권력과 부정한 부를 쌓아가기 위해 노동자와 정적을 스스럼없이 제거해대는 남편의 실상을 깨달을 정도로 성숙한 여인이 되자, “난 그 사람 아이들의 엄마였고, 그이의 집 안주인이었으며, 마누라이자 하녀였고, 그림자였고, 노리개이기도 했다.”라는 카티의 인식은 남편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자기 권력의 자각으로 나타난다. “난 다리를 계속 모으고 있었다. 처음으로 꼭꼭 닫고 있었다.”고 항변하는 모습처럼.
소설의 시작부와 말미에‘뒤마’의『춘희』가 카티에 의해 인용되는데, 춘희의 주인공인‘마르그리트 고티에(Marguerite Gautier)’의 삶, 즉 사랑과 비극의 이야기를 자신과 연인 비베스의 비련(悲戀)과 슬그머니 동일시하는 것에서 이 작품의 속살을 살필 수 도 있다.
한편 남성과 배우자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없이 결혼했으나 탐욕스럽고 사악하기만 한 남편의 그늘이 오직 불행한 삶으로 느껴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의 생각을 캐고 싶어 하면서도 그가 무슨 일을 벌이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바로 그 여자, 바로 그 카탈리나.”라고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그 갈등과 좌절이란 연약한 여인네로서의 한계를 시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방조할 수 있는 방편의 귀띔을 듣는 순간 “이상야릇하고 돌발적인 기쁨”을 느끼고 “나 자신이 생소했다.”고 평화로운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되는 구절은 자유의지의 희구라는 인간본성이 섬뜩함으로 다가오기조차 한다.
페미니스트적 시각, 즉 주인공인 카탈리나의 시선이기에 남편인 주지사였고, 경제부 장관이자 대통령 고문인 안드레스의 인간적 욕망이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죽음을 감지한 그가 마음껏 쉴 수 있는 언덕빼기가 있는 고향‘사카틀란’을 말하며, “바다는 괴로워. 조용히 있는 법이 절대로 없지.”하는 말에서 그 분주했던 삶의 소란스러움에서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음을, 그래서 위로받고 싶었던 외로움에 대한 연민을 통해 권력과 명예와 부의 공허함이 다가온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애통함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는 여인. 더구나 죽은 옛 연인을 떠올리고서야 남편의 장례에서 오열을 터뜨리는 미망인의 모습이나, “빗물 아래로 웃음을 머금었다. 내 미래를 생각하며 흐믓해 했다. 거의 행복하기까지 했다.”는 여인의 고백의 실체는 정말이지 발칙함을 넘어선다.
화려함과 욕정과 권력의 비열함, 그리고 상류계층의 허영과 부조리로 가득한 흥미만점의 이 소설의 맛을 무어라 할까. ‘아베프레보’의『마농레스코』를 떠오르게도 하고, 뒤마의 『춘희』와 같은 그 맛이라 할까? 대중성 높은 수작(秀作), 고전적 대열에 놓인 현대문학의 한 편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