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소설을 쓰고, 생활인으로서 요가강사를 하는 30대의 여성,‘서인’, 여성잡지 인터뷰에서 마주한 사진작가‘선우’는 그녀에게 야릇한 인상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어둠이 내린 호수는 이야기 주위를 항상 맴돌고, 그곳은 어둡고 깊은 인간들의 욕망을 묻는 거대한“욕망의 쓰레기장”으로 소설의 사건들을 연결시키는 지위를 갖는다.


추리적 맥락을 삽입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둬져 있는 지워진 기억들을 시간의 진행에 따라 복원하는 전개구조는 전형적인 심리 스릴러물을 연상시킨다. 밤이면 호수가로 나가 열락의 정사(情事)를 벌이는 엄마에 대한 기억, 마침내 자식들을 버리고 집나간 엄마를 자살이란 가상의 흔적으로 지워버린 ‘서인’의 상처는, 몽유병 증세로 그리곤 성폭행의 희생자란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한편 상대역인 ‘선우’또한 고아로서 프랑스로 입양되었으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안나’의 죽음을 호수에 던져 넣고서는, 파양(罷養)되어 돌아와야만 했던 깊은 심리적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듯 정신적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의 숨겨진 고독을 감지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는‘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타자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레비나스’식의 타자성을 읽게 되는데,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점차 알아가는 것, 즉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인데, ‘서인’이 ‘선우’의 낯선 행동에 대해 “선우에 대한 서인의 의혹이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그는 비밀이 많은 사람. ~ (中略) ~ 점점 알 수 없는 사람 같았다.”와 같은 기묘한 비대칭적 자각을 보여주는 것에서 읽을 수 있다.

이야기는 이러한 서로의 알아감, 자기만의 내밀한 것들을 드러냄으로서 사랑의 본질 속으로 향하게 되는 두 연인의 변질 될 수 없는 마법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 선과 악이라는 인간 내면의 투쟁도 잠재울 수 있는 자기희생, 이타적 사랑은 상대를 온통 이해하는 과정이고 그러함의 과실이라는 것이다.
호수에 던져진 여자들의 주검, 실종 된 여자들, 건져진 사체들의 죽음은‘선우’와 그의 또 다른 인격 ‘미카엘’을 보여줌으로써,‘서인’이라는 여인의 사랑을 숭고함의 경지로 올려놓는다.

호반(湖畔), 악의 꽃,‘삐아졸라’의 광인을 위한 발라드, 검은 스타킹 등 암시와 복선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 이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들려지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트라우마, 정체성장애를 필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작품들이 우연성을 보완하기 위한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하다보니 그 진부함을 극복하고 차별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소재의 빈곤과 식상함이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흔하디흔한 이야기들이 될 수밖에 없는 위험을 갖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경계를 걷다보니 얼개는 부담 없이 수용되지만 세밀(細密)에서는 엉성한 거칢의 거북함이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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