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대한 백과사전 - 눈보라 속에 남겨진 이상한 연애노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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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충격, 아니 진기한 구성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선형적인 시간적 관념에 익숙한 접근으로서는 당혹스럽고 이질적인 작품이 되기도 한다. 소위 근대적 이성과 시간관을 전복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지향하는 이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의 편린들을 따라가는 형식은 “‘W.G.제발트’를 위하여”라는 발문처럼 제발트의 <이민자들>이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케 한다. 한편, 폭설이 휘몰아치는 어느 날 찌그러진 픽업트럭에서 한 남자의 시신과, ‘눈에 대한 백과사전’이라는 원고뭉치가 발견되었으며 이를 버팔로 경찰청이 수사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는 이어지는 이상한 구성을 하고 있는 눈(snow)에 관한 시(詩),희곡, 한 소녀의 성장기, 과학적 진실과 정의, 편지 등을 사건의 단서라는 관점에서 접근케 한다. 사실 이러한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은 다분히 작가적 의도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주의 깊게 작가의 안내를 따르지 않으면 공감을 형성키 어렵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허구의 백과사전은 여럿의 테마가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그들이 갈등하고 하나의 힘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어떠한 인위적인 서사를 통하지 않고 전달하려는 무의지의 의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허나 굳이 하나의 연결된 서사로서 이 작품을 이야기 할 경우 ‘Truth(진실)’이 정점이 되어, 폭설에 갇혀 사망한 아내(도라)의 사건을 야기함으로써, 바로 '눈(snow)'이 야기하는 세상의 모든 의미의 수집을 표면화하고, 그 이면에 숨겨둔 진실을 쫓게 하는, 그래서 그 자리에 그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발견케 되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도 있다.

또 하나의 읽기 방식을 제안한다면 일종의 제안 링크(link)라 할 수 있는 관련 어휘 및 각주로의 안내를 성실하게 따라가면 헝클어진 선형적 질서를 회복 하여 감성의 연결고리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방식을 취하든지 이 작품은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서서히 누적되는 감정적 공감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미묘하고 정밀한 지적 정보에 연결시킴으로써 ‘눈의 결정(結晶)’이 지니는 신화적인 낭만과 과학적 이성,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예술적 개념으로서 승화시키고, 작품 전체를 마치 영혼의 언어를 듣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결국 “위대한 예술이란 모름지기 개별성들 안에 보편성을 함유한 홀로그래픽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실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몇 토막의 서사적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는 “삶을 조정하기 위해”애쓰는 화자의 분투로써, 또는 “고문처럼 깊은 고통을 주는” 사랑의 날카롭고 강렬한 고통과 삶의 섭리에 대한 이해를 갖추는 보조적 장치라 하는 것이 오히려 옳을 것이다. 소설이 말하려는 많은 형태의 애달픈 사랑 중에서‘양극성’이라는 인간의 어쩌지 못하는 충동, 즉 “극은 극을 열망하며, 순수한 불의 존재와 순수한 얼음의 존재는, 한번 흘끗 본 다음 잊어야 할 희열이라는 사실”은 작품전체를 애틋한 분위기로 몰아간다. 그래서 ‘조화롭지 못한 조화’에서‘완벽한 조화를 이룬 눈 결정의 가지’로 이르는 사랑의 본질을 향한 탐색은 지금껏 이야기되던 사랑의 담론들을 전혀 새로운 세상의 현상들로부터 획득케 한다. 이 기묘한 순백색 결정에 대한 지향, 바로 그 감성적 공명이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일런지도 모르겠다. 손을 뻗지만 닿지 않았던 그 사랑에 대한 이야기, 차마 말하지 못하였지만 비로소 전달되는 그 진실의 이야기들이 신비롭게 펼쳐지는 사랑의, 눈의 우아한 컬렉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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