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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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 같은 겉잡기 힘든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 그 과잉의 감정이 스러지고 나면 “들에 핀 꽃나무가 누구를 향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듯” 그런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속‘누경’의 “한 때의 공유와 공속, 공감, 공모, 개념으로 재단되지 않는 그 어떤 영역...”이라는  사랑, 강주의‘뜨거운 초연함’과 담백한 세속적 사랑을 낯 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를 발견한다.


금지된 사랑, 아내가 있는 50대의 교수와 30대 처녀와의 사랑이야기. 1970년대를 장식했던 연애스토리인‘별들의 고향’,‘겨울여자’류의 통속적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통속성이 유해하다, 무해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사람들이 그리는 사랑이란 세속성을 이탈하지 못한다는 것일 게다. 작품 속에서도 누경과 강주가 주고받는 대화에는 서로 속물 같아서 웃는 장면들과, 바로 그 속물성에‘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내재하고 있다는 자기위안을 담고 있다.

“자꾸만 생각이 나, 네 속에 내가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온통 네 속에서 살고 있어.” 라든가, “포옹이 풀렸을 때. 우리의 두 눈은 꽃처럼 많은 겹으로 피어 있었다.”와 같이 많은 문장에서 낯 붉어지는 갈망과 미화된 표현들이 등장하는데, 그 만큼 사랑의 순간은 수식과 과장, 과잉의 포장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시쳇말로 이들의 사랑은‘불륜’임에도 이를 도덕적 일탈로만 볼 수 없게 하는, “우리는 둘 다 매정하다. 우리는 둘 다 겁이 많다. 우리는 둘 다 내면이 강하다. 우리는 둘 다 이기적이다. 우리는 둘 다 순수하다. ~ 우리는 둘 다 부도덕하다...” 라는 객관적 상황인식의 나열이 등장하는데 짐짓 숭고함으로 위장하는 자기 정당화의 일면일 것이다.

한편, 고독한 천성과 사람을 최소한만 만나면서 영위하는 삶을 최선의 삶이라 생각하는 누경의 성격이나, 간결함과 앞뒤로 토막 쳐 함축된 지나치게 밀도와 강도가 높은 말을 뱉어내는 강주에게서 억제된 삶, 억눌린 감정의 참기 힘든 인내에서 풀려난 욕망을 다시 거둬들일 것이라는 또 다른 세속성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검은 콩과 매실’로 상징되는 견고하고 안정된 일상에 대한 희구가 두 사람의 짧은 여행이 지니는 의미와 대비되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또한 강주 부부의 안정된 삶과 명예를 지켜 주리라는 자기암시도 궁극의 위안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어쩜 미완성의 귀결이 주는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미진한 채 남겨둔 채로, 잠간의 남은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이별의 걸음을 내딛는 누경을 이해케 된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속물 같아도 괜찮아, 그래도 섬에 가자.”하던 강주의 말이 그리움이 되어 인후를 아프게 하였으리라. 그리고 깨진 유리병을 녹여 다시금 완성한 녹색화병, 어둠속에서 건져 올린 고통의 앙금까지도 차라리 맑고 투명 했으리 만큼 봉합된 유리병이 전하는 사랑의 의미는 그대로 사랑의 진리가 되어 날아든다. “깨어지지 않는 것이 사랑이야”
그래 “어제의 무게를 내려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추락한다.” 사랑은 지속되는 것이지. 지금 나 역시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내안에 또 다른 나, 진정한 나, 나의 내부를 응시하는 시선, 적요(寂寥)와 우수, 그리곤 사랑의 아름다운 매혹을 말하는 작가의 진솔한 내면이 다시금 깨어난 작품이란 느낌이다.
선명한 욕구, 일탈과 격렬한 사랑, 그러나 “현재야말로 매순간 얼마나 눈부신 기회인지...”를 말하는 그녀의 전언은 그대로 진정한 삶을 포착한다. 이제 사랑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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