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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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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가의 한 도시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유럽의 제국주의화, 근대화 나아가 인류 이성의 거대한 판도를 변화시키는 데에 이르는 폭넓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점에 감탄하게 된다. 21세기 오늘, ‘포르투칼’이라는 국가가 지구촌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나라의 수도인 ‘리스본’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이해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포르투칼, 아니 리스본은 유럽세계의 중심 무대라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교역, 상업, 경제, 문화의 거점 도시였다. 해상을 장악하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마카오)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식민지의 풍부한 황금과 설탕, 담배 등 자원뿐만 아니라 노예수출에 이르는 제국주의 본산이었으니 당시 유럽 제국들이 희귀하고 저렴한 이방의 산물을 위해 포르투칼의 항구도시 리스본에 몰려든 것은 당연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한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에게 조차 ‘하느님의 도시’라 불릴 정도의 카톨릭 교세가 맹위를 떨치는 나라였으니, 세상의 모든 이치와 현상은 신앙의 정도에 따른 신의 단죄로 설명되는 중세적인 고행이 여전했음은 이미 볼테르, 로크, 홉스 등을 통한 계몽주의 이성의 시대가 열린 18세기 여타 유럽국가에 비해 시대의 인식이 낙후되었음을 대변한다.
볼테르의 한 묘사에서 “포르투칼의 왕에겐 종교행진이 곧 축제였다. 건물을 지을 땐 수도원을 지었으며 정부(情婦)가 필요하면 수녀 중에서 골랐다.”는 이 조롱어린 이야기는 포르투칼의 비뚤어진 종교적 삶의 실상의 다른 표현이다.

교황 니콜라스5세의 강력한 후원 하에 교회의 공식적 허가를 받은 노예무역, 그리고 식민지 착취를 통해 국가경제를 유지하려던 포르투칼의 가장 비열하고 탐욕적인 정신세계는 유럽의 다른 기독교 국가들까지 비난했던 종교재판소를 유지했던 하느님의 나라라는 비아냥과 절묘한 모순의 일치를 보인다.   

어떠한 산업기반도 없이 식민지의 금과 노예수출로 흥청대던 이 탐욕스런 신정국가의 수도에 1755년 11월 1일 만성절에 가해진 가공할 만한 대지진은 그네들의 카톨릭 사제들이 주장한 것처럼 신의 벌이었을까? 수도사, 주교, 대주교, 추기경은 선(善)하기만 한데 시민들이 타락해서 신이 벌했다? 그러나, 대성당, 종교재판소, 수도원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고 수도원장, 주교가 무너지는 돌기둥에 맞아 죽은 것은 신이 실수라도 했던 것일까? “칼을 휘두르며 인간의 양심을 강요하던”혐오스럽던 종교재판소의 편협함과 파렴치함이 한 나라를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지게 하기까지 했다면 과연 지나친 이야기가 될까? 어쨌든 16.7세기의 유럽, 아니 세계를 호령하던 포르투칼은 오늘날 그때의 국가가 아니다.

이 저술의 빼어난 시선은 포르투칼의 세계 식민지 사냥이 유럽의 역사, 그리고 세계문명사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발단을 당시 유럽, 세계시장의 중심도시인 ‘리스본’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역사적 대지진을 전환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유럽에만 시선을 가두고 있던 유럽 국가들은 포르투칼의 신세계 탐험이 가져온 수확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는 곧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화의 중대한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대지진 후 세계 식민지의 첨병이었던 극악한 기독교 진단인 예수회와의 근대이성과의 갈등과 처절한 싸움의 무대로서 폐허가 된 리스본의 도시재개발은 오늘의 인류문명에 이르는 중요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시대배경 하에서 ‘리스본 대지진’은 당시 유럽의 지성들에게 중대한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네들의 기억으로 자연재앙이 인류에게 이보다 큰 상처를 입힌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폼페이우스 화산 재앙은 당시 확인되지 않았음)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 그리고 그 유명한 <캉디드>의 노골적인 낙관주의의 조롱은 리스본의 대지진과 종교재판소의 사악함을 소재로 한 종교의 위선적 악행에 대한 비난, 그리고 사회정의와 평범한 시민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통한 근대 이성의 인문적 관점을 낳기도 한다.

이렇듯 전대미문의 최대 재난이 근대이성의 확산과 시민혁명의 발원이 되었음에 대한 분석과 병행하여, 평범한 소시민 출신의 총리가 회개와 종말론만 외쳐대는 당시 카톨릭의 실세인 ‘말라그리다’신부를 비롯한 사악한 예수회교회 세력과의 투쟁은 이 저술의 한 축을 구성하여, 광적 신앙과 인간 이성의 역사적 대결을 심도 있게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권력 자체를 위해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개인적 탐욕을 채우려 하지도 않았던 진정한 계몽주의자인 ‘카르발류(일명 폼발 후작)’총리의 개혁이 중세봉건주의의 낙후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가를 근대국가로서의 나아가 유럽계몽주의 시대의 정착에 기반이 되었음은 매혹적인 근대사의 한 장을 이룬다.

오늘날에도 툭하면 자연재해를 인류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징벌로 몰아대는 이 땅의 기독교도들을 보면 리스본의 ‘말라그리다’와 어쩜 그리 닮았는지 섬뜩하기조차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들에 대항하여 실천적 행동으로 국가를 재건한‘카르발류’의 재난 관리를 위한 선구적 대책들과 그의 리더십, 추진력 등 대처 사례는 또 하나의 지혜를 선사해주며, 17,8세기 유럽사에 대한 개관으로서, 삶의 주체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 사상의 개화에 대한 역사철학서로도 기여한다.

신의 섭리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로의 전환은 ‘리스본 대지진’이란 자연 재앙이 절대적인 공여를 한 셈이 된다. 흥미롭고 지적인 책이다.

「 리스본 지진은 단순히 자연적인 지각변동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혁명이었다. 」-포르투칼의 역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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