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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ㅣ 수확자 시리즈 3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평점 :
인간의 영생이 실현된 세계에서 인간의 자율성이란 과연 자신들에게 안전한 것인지를 묻는 수확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이 마지막 편에 앞선 전편 『선더헤드』는 인간성이라 일컫는 인간의 본질은 양심과 연민이 다스리는 세계와는 한참이나 멀다는 증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처럼 이 소설은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총체적 모습들에 대한 일견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윤리적 언어들이 매 쪽마다 빼곡하게 박혀있다. 그럼에도 이 사색적 문장들이 서사적 흐름의 재미를 더하는 압도적 페이지터너로 작동하여 가히 살인적인 몰입에 빠져들게 한다. 나누어 읽겠다던 목표를 어느새 잊고 밤을 꼴딱 새는 후유증을 남길 정도이니, 결코 하루 180쪽 이상을 읽지 말 것을 충고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종소리』에 앞선 『수확자』와 『선더헤드』를 통해 수확자들과 그들의 지대인 ‘수확령’,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전 인류의 세계를 통제, 관리하는 지능체계인 선더헤드는 상호불가침의 양립하는 세계이며, 죽음을 독점한 수확령의 부패로 더 이상 수확자들의 세계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윤리적 미덕이 작동하지 않는 원초적 폭력의 세계로의 변질을 목격케 했다. 인간지성의 통합체인 선더헤드는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불신이라는 최종 결정을 내리고, 인류 모두와 연결되었던 소통채널을 단절시키면서 ‘불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신뢰할 수 없는 종족, 다만 하나의 소통 창구, 즉 단 한 명에게만 자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존재를 남겨두었다. 그가 ‘종소리’다. 이 마지막 편은 종소리로 명명된 존재, 다시 말해 신뢰할 수 있는 인간 존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과정과 이미 도덕성과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 연민을 상실한 권력화 된 수확 세력과의 생존을 향한 싸움의 과정이 전개된다. 또한 타락한 권력, 부패한 지배 수확자와 이로 인해 변화하는 인간과 그 집단들의 궁색한 부하뇌동, 오늘의 우리 인간사회에서 펼쳐지는 그 무수한 현상들의 본질이 지닌 하찮음과 탐욕 등을 드러내 보여준다.
어쩌면 이 마지막 편에서 우리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이 만든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천박한 욕망들로 구축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목숨을 거두는 수확자에게 요구되었던 미덕과 이타심, 명예가 자만심과 자기편익에 의해 얼마나 쉽사리 무너지는지를 본다. 이 세상의 무엇이든 일궈내기 위해서는 오랜 인내와 노력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이룩된 것들을 망가뜨리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임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한다. 소설은 바로 이 순식간에 세상을 퇴행, 악화 시키는 것들의 열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류 사회의 조화로운 평화를 유지하던 인류를 대표하던 7인의 대(大)수확자들과 그들의 신성함을 상징하던 인공섬 인듀라를 함께 해저의 심연에 침몰시키고 불의하게 최고위 수확자가 되어 세계를 유린하는 인물이 자신의 거처에 시민을 향해 설치한 포대처럼 지배와 군림, 권력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은 총구가 겨누어야 하는 본연의 이익이 어떻게 뒤바뀌는 지의 일례이다. 국가의 보위를 위해 만들어지고 조성된 무기와 병사의 총부리가 침략하는 적을 향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빈번하게 내부의 국민들을 향해, 권력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겨누어졌는지 또한 우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소설의 핵심 제재인 ‘수확자’란, 불사(不死)의 세계가 된 세상에 공정한 죽음을 가져오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마치 오늘날 국가의 대표자와 여러 형식의 국민 대표기관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보위하기 위한 수단인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본질이 얼마나 쉽게 역전되어 그 도구와 수단이 주인으로 행세하려는 드는지를 소설 속 고위 지배자 ‘고더드’는 권력을 손에 넣은 자의 최악의 유형을 보여준다. 이 자는 “공포는 존경이 사랑하는 아버지”임을 역설하며, 인류를 향한 폭력의 공포를 통해 순수한 복종을, 자신 만의 자유를 추구한다.
이 같은 추악한 권력이 저지르는 여러 형태 중 아주 멋진 장면으로 인류 공공의 적으로 누명을 씌워 한 청년의 처형을 대형 이벤트, 즉 휘황찬란한 쇼로 바꿔 놓는, 소위 스펙터클이라는 대중을 향한 기만적 행위를 들 수 있다. 자신의 부패와 불의로 인해 모여진 시민적 분노의 시선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외교적 실패와 무능, 국익의 훼손이라는 국민적 추궁이 집중되자 정적에 대한 조작된 악성 루머를 통해 시선을 돌리는 행위와 같은 양태라 할 것이다. 대중 분노의 출구를 스텍터클화된 쇼로. 그러나 곧잘 그것을 즐기는 천박하고 우매한 인간들의 자멸의 길이 되기도 함을 참담한 비극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 이 소설을 리더의 덕목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고더드라는 최악의 인물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를 읽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자아가 너무나 비대해져 자신이 저지른 온갖 거짓과 위선과 기만에 대해 언제나 합리적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그 부도덕성의 향연이라 해도 될 것이다. 잘못 선택된 한 인간이 수 없는 피와 고통으로 이룩한 사회적 건강성을 얼마나 짧은 시간에 항구적으로 파괴하는지, 그래서 인류의 삶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시간적 회귀를 하게 되는 지의 일례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게는 윤리와 도덕성 따위는 헛소리가 되고 만다. “양심은 깨끗했는데, 양심이 아예 없기 때문”이라는 말은 헛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고결한 수확자로서 이 부패한 인물과 대척에 선 패러데이가 하는, “우리 인간은 뭐가 문제일까? 발 딛고 선 곳을 뜯어내고 마는 까닭이 무엇일까? ” 라는 자조적 물음이 있다. 물론 단순히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완벽한 세상에 들어맞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그만일까? 불완전하니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어떠한 공감도 연민도 없는 것이 당연한 행위가 될 수 있는가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이를 부정한다면 오늘의 인간 문명이 설 토대는 사라지고 만다. 물론 내면에서 일어난 자기 욕망에 어떻게 의심을 품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과 같이 인간의 뚜렷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계를 알기에 자문할 줄 알며, 성찰(省察)이란 것을 할 줄 안다. 그리고 타인의 의견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함을 안다.
사실 이 소설에는 선더헤드라는 인류지성의 총체인 초지능의 자의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물음의 멋진 사색들, 정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가 지닌 단독성, 종교에 대한 현대적 수용과 비판에 대한 은유적 서사들, 효율성이 지배하는 사회의 불가피한 연민의 소멸에서부터 대중의 계층적 차별 인식이 권력의 위선 은폐의 용이한 도구적 관점이 되는 것, 인간의 희망이 정치적 불의와 자기 편익에 의해 소멸할 수 있는지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로 수놓아지고 있다. 한편 ‘종소리 성서’와 그에 뒤따르는 사제의 해석, 그리고 해석에 대한 현대적 분석이라는 기발한 장들과 같이 작가의 재치 넘치는 종교 비판의 지적 환유를 만끽할 수도 있으며, 인류의 자기 구원을 향한 원대한 지향을 발견할 수 도 있다.
지금 이러한 열렬한 비판적 자기 탐색의 이야기들도 아마 수십 년 내에 조잡함과 근시안적 이해를 보고 웃음 지을 확률이 거의 절대적 일 것이다. 요즘들어 이러한 비판적 성찰의 감상을 끄적이며 이 열렬함이 민망스럽게만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태도는 이것이 최선일 것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1편 『수확자』 리뷰참조: https://blog.aladin.co.kr/729034103/14373732
2편 『선더헤드』 리뷰참조: https://blog.aladin.co.kr/729034103/1438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