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과학, 규칙파괴 - 새로운 존재 피터2.0,




희망이 없을 때, 합리적인 로봇처럼 행동해서는 역경을 헤쳐갈 수 없을 때에는 허약한 인간의 불합리하고, 고집스럽고, 터무니없고, 자기희생적이고, 맹목적이고, 멈출 수 없는 무조건적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막강한 힘이 될 수 있다.” -가제본 405

 

글을 시작하기 전에 세상의 규칙을 깨부수고 운명에 기꺼이 맞섰던 로봇공학자였던 저자 피터 스콧-모건박사의 2022615일 영면(永眠)에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이 자서전은 그가 2017운동뉴런 장애(MND; 일면 루게릭병)’의 진단을 받고, 5년 내 90퍼센트가 사망하는 그 수동적 운명을 거부하며자신을 사이보그(cyborg)화 함으로써 인간의 정의(定意)를 다시 쓰는 여정에서 집필 된 책입니다.

 

한 인간이 필연적인 죽음의 도래에 직면했을 때 느끼게 되는 절망과 공포에 맞서는 행동은 경이와 감동, 어떤 숭고함으로 다가옵니다. 이 자서전은 자신의 삶을 두 축()에서 기술하고 있는데, 하나는 성 정체성의 자기 발견에 따른 기성의 편견과 조직적인 혐오에 대한 저항이며, 또 하나는 MND진단 이후 이 숙명적 질병에 대한 의료와 세상의 이해에 맞선 온 몸의 투쟁, 인간 신체가 지니는 세상의 이해에 대한 반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에 전환적 여정이 된 사건들 중심으로 성장기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경력들을 술회하며, 결정적 순간이 오면 언제나 작동하는  암묵적 규칙, 즉 우주의 운영 규칙에 자신이 어떻게 반격하며 스스로의 삶을 재발명했는지를 위트와 지혜로운 문장으로 몰입토록 하고 있습니다.

 

리더십과 예술적 재능, 과학에 대한 매진 등 다방면에서 특출한 학생으로 여겨졌던, 상위 중산층의 자녀들만 다니는 이튼그룹 산하 명문 킹스칼리지 스쿨의 열여섯 살 소년이 겪었던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펜싱에서도 뛰어난 역량으로 차기 주장의 당연 후보자이기도 했던 소년은 교장실에 끌려갑니다. 그의 동료 남학생에 대한 성적 취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의 권력 행사가 소년을 향해 무참하게 자행됩니다.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와 멸시, 협박과 죄의식의 주입 등 소년의 세상에 대한 이해에 기득권자인 교장이 잔인함을 내보이며, 그의 학생 대표 자격과 모든 운동부의 주장후보 자격을 박탈하고 매질을 가합니다. 소년은 복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삶에서 이처럼 선택지를 빼앗기고 다수에 맞춰 사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큰 권력, 놈들이 굴복할 때까지 반격하고, 반격하고, 또 반격할 작정이라며, 소위 명문가의 자녀들이 당연히 진학하는 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의 입학을 거부합니다.

 

암묵적 규칙에 대한 반격 - 규칙 파괴

 

정면으로 기성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당시 유일하게 컴퓨터과학 학위 과정이 있던 임피리얼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기득권의 암묵적 규칙을 대놓고 무시한 그의 처사는 학교와 부모에 대한 배신이라며 비난을 받기까지 하지요.

 

이제부터는 상류층 중산층 동네의 역겨운 관습, 편견,...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었다.” -117

 

학교 근처의 하숙집으로 이주하며 독자적 삶이 시작 된 것이죠.  피터는 오래 지난 한 신문의 광고란에 있는 게이 전용 호텔로 짧은 휴식을 위해 떠나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연인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살 연상의 불그스레한 금발머리 미남형 남자 프랜시스에게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열정에 빠져듭니다. 그의 상상 속 연인인 전사 아발론을 본 것이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당대에는 법규는 물론 사회의 모든 시선이 용납하지 못하는 연인(게이)이 됩니다.

 

이후 피터가 불치병으로 인정되는 MND 진단과 이후의 여정, 그가 사망하기까지 두 사람의 고귀한 사랑은 계속됩니다. 이 여정은 부모는 물론, 가족 관계망 속의 사람들, 직장은 물론 온갖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소외와 배제에 대한 투쟁입니다. 즉 세계가 조직해 놓은 규칙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 도전은 그의 의학적 사망을 예정하는 진단 결과 이후, 인간의 생물학적 실체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집니다.   MND , 뇌를 각 부위의 근육과 연결하는 신경망이 서서히 파괴되어 신체 모든 근육의 움직임이 멈추는 질병입니다. 팔다리의 움직임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음식을 삼킬 수도 없으며, 배설도 할 수 없고 호흡을 자율적으로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눈으로 볼 수만 있고, 뇌만 살아있어 시체처럼 천장만 바라보다 숨을 쉬지 못해 사망하게 되는 불치의 병으로 의료계는 물론 세상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영 컨설팅 기관인 '아더 디 리틀(ADL)'의 파트너지위까지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로젝트가 바로 기업들의 경영 조직은 물론 무수한 프로젝트들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분석 규명한 암묵적 규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암묵적 규칙이란 그의 질병인 MND에 있어서는 진단 후 해당 환자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질병 해결, 즉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적, 기술적 조치를 방기하는 장벽이라 할 수 있죠.


가제본 사진입니다


 

그는 의료계에 영양전달, 폐에 주입하는 공기의 흡입, 그리고 배설의 문제에 있어서 사고를 전환하면 그저 죽음의 내습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무력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합니다.  자신과 수동적 죽음을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 멋진 테크놀로지를 찾아내는 데 자신을 그 연구의 대상으로 하기로 합니다.  암묵적 규칙과 그 규칙을 파괴하기 위한 직접 증명을 자신의 신체로 나서는 것이죠.

 

트리플 오스토미(인공 항문이나 방광을 만드는 수술)를 통해 몸 안의 배관을 다시 깔고, 기도를 막는 후두부를 잘라 폐에 미칠 이물질의 차단은 물론 공기 흡입을 위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자기 눈의 시선에 의해 조작되는 특수 휠체어는 물론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원격 조작, 그리고 자신의 생물학적 뇌와 컴퓨터의 기계적 뇌를 융합하는 사실상의 사이보그가 되기로 합니다. 몸도 뇌도 모든 것이 불가역적으로 바뀌는 완전 교체된 인조인간, 그는 원래의 자신인 피터1.0은 새로운 존재 피터2.0으로 거듭 나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반려자 프랜시스에게 들려줍니다. 프랜시스는 그의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지지자죠.

 

사실 이러한 사이보그화의 변신을 향한 그의 집념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결단의 본질인 연인 프랜시스와의 영원한 융합입니다.  그는  가상현실을 이용해 우리의 현실을 되찾고 싶다고 피력합니다.  , 이 자서전은 이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암묵적 규칙에 한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반항입니다. 그리곤 그는 자신만의 우주적 생존원리인 규칙 세 가지를 선언하는데, 그 세 번째 규칙이   사랑은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이긴다.”입니다.  인간이 중요한 존재인 것은 규칙을 깨기 때문이며, 과학은 마법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과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지배하는 최고의 우주원리라고 말이죠.

 

인간의 재정의(再定意)에 대해서 - 탈신체화

 

한편   규칙을 깨는 놀라운 특성은 인간의 어떤 성질보다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가상 다중 우주의 창조,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외칩니다.  그는 조만간 지금과 같은 AI의 독자적 발달이 진행되는 미래는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라고 합니다. 지금 인류는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은커녕 이에 대한 그 어떠한 합의나 논의조차 없이 무턱대고 그쪽으로 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 번 지나치면 다시는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것이죠.


 

피터 스콧-모건의 강연모습, 우측에 반려자 프랜시스


자신의 몸을 실험재료로 삼아 신체 기능 증강에 대한 살아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자신은 그저 살아남고 싶어서,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류의 번영을 함께 누리는 초석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자서전의 말미에 2040년 살라니아라는 제목을 붙인 가상 증강현실의 세계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사이버 공간, 가상의 증강 현실 세계가 진정 암흑의 허공에 빛을 채우는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자서전을 집필 할 때(2019) 그는 책의 출간을 자신이 지켜 볼 수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가 바라던 완전한 인간-기계 융합 세계의 실현을 그의 영서(永逝)가 중단시키긴 했지만 아마 책 속에서 시작되었던 그의 재단이 그의 유지(旨)를 지속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그의 실천은 인간 진화의 나무에서 사이보그와 같은 가지에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세상의 규칙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된 한 인간의 삶은 어쩌면 인류에 대한 사랑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과 경외가 교차하는 감동의 기록물임에 그 어떤 구차한 토를 붙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삶의 기록물에는 인류 사회에서 그저 간과할 수 만은 없는 논쟁적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의에 관한 것이며, 이를 하기에 앞선 방법론으로서의 인간-기계 융합과 가상 증강 공간에서 불멸하는 존재가 과연 감각하는 신체와 정서와 이성의 복잡성의 존재인 인간의 실재를 대체하는 것을 인간의 진화라 할 수 있는 것인가의 물음입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사회학자이자 사상가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그의 저서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에서  인간을 사물화시키고 구속시키며 생명의 죽음과 삶을 자의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자유주의적 기술주의는 인류 전체의 자기이해와 규범적 동의를 요구하는 것라고 말하며,  도덕적 진공상태에서의 삶,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그런 삶의 형식 안에서 삶은 아마도 살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육체적 성질) 능력을 무한히 증강 또는 대체시켜 영생하는 새로운 인간, 즉 욕망의 실현을 위한 기술지상주의의 실체인 트랜스휴먼(transhuman)’을 비평적으로 써 내려간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마크 오코널은 그의 저술 트랜스 휴머니즘에서 인간 생명의 형식을 가공(可恐)할 정도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으려는 극단적인  탈신체화 욕망에 대해  아이를 등에 태우고 엉금엉금 기는 아내와 그 위에서 자지러질 듯 웃으며 소리치는 아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경이로운 신체적 이해의 장면을 기술하며  나는 신체였다.”고 수용할 수 없는 거북한 심리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 자서전에서 조차 저자 자신은 그의 반려자인 프랜시스와의 여행에서 찾은 한 항구 마을의 감각을 애틋하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그날 아침에 회수한 바닷가재 통발과 그물에서 짭짤하고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활기찬 항구의 냄새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았다.”고 신체 고유의 향수가 사라질 것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프랑스 토산물 시장이 열린 벤조라는 곳의 사랑하던 전망으로 마음을 달래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가 지니는 그 고유성을 상실한 사이보그가 인간의 미래여야 하는지 우리는 자문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어쩌면 저자는 이러한 공론, 인류의 번영을 위한 토대의 증인으로써 자신을 세상의 실험 재료로 내놓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인간의 정의를 진지하게 생각게 하는 특별한 제안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기 리뷰 글은 사전 서평단으로서 김영사의 가제본 도서 협찬에 의해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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