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가 헀더니 한 낮에는 마치 여름 날씨 같은 4, 어느 순간 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외부 세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책에 대한 욕망은 다시금 자기 축적을 계속한다. '아니 에르노'가 욕망을 잠재우며 읽던 '시몬 드 보부아르'레 망다랭을 뒤적이다, 부재(不在)에 대한 치열한 응시를 담은 사진의 용도를 주어담는다.

 



사진은 쾌락을 위해 빠져나간 육체의 허물처럼, 그 잔존물인 옷가지, 구두, 악세사리의 자연스런 흐트러짐의 보존물이다. 유방암 치료 중이던 예순의 여인 '아니 에르노'와 연하의 연인 '마크 마리'의 공동의 작업물이다. 육체의 부재, 죽음의 징후들, 그 흔적물같은 사진을 찍고, 그를 확인하며 삶의 열정과 죽음의 공포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각축을 벌인다. 아마 리뷰로 남기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느닷없는 연상 작용으로 주어 모은 책들이 다시금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치 쌓아 오르기 시작한 책의 제목을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무관한 것들의 집합인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이것들은 분명 무언가의 자극들, 그 영향이 빚어낸 결과물들일 것이다. 물론 미디어 매체들이 뿜어내는 선전에 힘입은 것들도 있지만 어쨌거나 내 욕망의 산물들임에는 틀림없다.

 

'어빙 고프먼'자아 연출의 사회학은 벼르고 벼르던 책이다. 인간 관계의 다종 다양의 의례적 행위들에서 나타나는 선민의식의 치졸함이 내내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탓일 것이다. 상호작용 의례』를 읽고 난 후 한동안 잊었던 기억이 한 평범한 심리학 자기 계발서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이 연극적 행위들, 인간 일상사에 내재된 미묘하고 흥미로운 탐사가 될 것 같다.

 

이 촉발은 여러 책으로 거듭 이어졌는데, 니체와 루소의 사유 중추에 대한 어떤 총체적 줄기를 내 독서의 중심 잡기를 위한 도움을 위해서 였다. '레지날드 J. 홀링데일'이 펴낸 니체'츠베탕 토도로프'덧없는 행복은 도덕성이라는 것을 다시금 살펴보는 기회가 되어주리라 믿으면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진리에 대한 내 믿음, 제한적 상대주의의 믿음을 확인하는 읽기라 할 수 있다. 단지 이성의 실패를 확인하는 읽기. 카너먼의 설득력있는 입증과 확인, 그리고 대중적 지지로 이어진 진실 추론에 직관의 영향을 더한 탐색을 아무튼 확인하고픈 마음에서 선택했다.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어떤 사유의 목소리들이 지닌 거대한 줄기를 정리하고 싶었던 소망의 실행이었던 것 같다


 '버넌 홀 2'서양문학 비평사또한 서구문학의 중추적 정신의 지향들을 정리한 책이다. 실재와 모방에 대한 문학 비평의 길고 긴, 그리고 공허하기까지 한 오만한 지성들의 싸움을 보며 자신들만의 건축물을 지으려는 어떤 힘을 향한 욕망에 대한 씁쓸함까지 느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시학은 이에 대한 참고 도서로, 그리고 플라톤의 실재와의 다름을 발견하기 위한 대조용 읽기였다.


구입한 소설 작품은 순전히 연상이 빚은 호기심의 이어짐일 뿐이다. '베르길리우스'아이네이스,' 매들린 밀러'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호머의 일리아드의 파생, 그 아류 작들이다. '어슐러 K. 르귄' 라비니아는 여성주의, 즉 배제된 진리의 복원 작업 일 것이다


알지 못했던 '이렌 네미롭스키'의 선집으로 기획된 6권 중 그 첫 번째 출간 작품인 무도회도 여성주의 작업과 그리 멀리 있는 소설이 아닐 것이다. 작가 사후에 수여된 르노도 상 유일의 수상작인 스윗 프랑세즈에 앞서 선보이는 맛보기에 가까운 네 편의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단편 무도회는 경박하기 그지없는 속물근성과 순수 욕망의 교차가 빛난다. 아마 오늘 중에 모두 읽어낼 듯 싶다. 요사이 시간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흐른다고 느껴진다. 어떤 생각의 중추를 건설해 내야 할텐데,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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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2-04-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아님이 남기신 <식인 자본주의>를 읽어보다가 이 글에 인사를 남깁니다.

이 포스트 속 책 두께들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시선이 멈추네요. 무대로 연결되는 사회. 앞과 뒤, 그리고 무대 위까지, 이제 자기에 대한 탐구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필리아 2022-04-18 18:42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외려 그 어느 때보다 자기 비판적 성찰의 요구를 느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