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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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숲길이, 한 때 세상에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숲이 있었고, 이 곳이 그런 곳이었다." -156

 

터무니없이 잔혹한 폭력이 지극히 무심하게, 세상 어느 곳에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오직 어두운 욕망만을 따르는 인물을 쫓게 된다. 아마 '하데스에서 솟아오른 영혼'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면 어울리는 비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소설의 도입부에 색슨과 켈트 혈통의 이 살인마를 "아마도 당신과 다를 바 없을 '하느님의 자녀(child of God)'"라고 정의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 정의가 괴물을 괴물로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거북함이 된다.

 

밤의 더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면 그곳을 찾아냈을 인간, '레스터 밸러드', 이 자의 시야에 들어 온 여자들의 삶은 더 이상 연속되지 않는다. 시간(屍奸),살인, 방화(放火),유기(遺棄)를 일상으로 하는 종자다. 추악한 배설을 위해 시신을 소유하는 괴물, 그리곤 불타오르는 자신의 거처인 미늘벽 판자집을 뒤로 하고 동굴에 은신처를 마련한다. 레스터는 "자신이 신들에 대항하는 매우 통탄할 만한 사례"라는 자신의 생각이 반쯤은 맞다고 믿는다.

 

사실 이 소설의 도입부야말로 이해 불가능한 괴물의 행위를 납득케 하는 단서일지도 모르겠다. '서비어 카운티'의 아무 소리도 없던 골짜기의 목가적 아침을 흔들어 깨운 것은 탐욕스런 부동산 경매를 위해 몰려든 일단의 무리들이 레스터에게 저지른 폭력이었으리라는 것이다. "선하신 주님이 세상에서 딱 몇 군데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지 못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라고 레스터를 쫓는 보안관에게 들려주는 한 노파의 말처럼 추방되어 되돌아 갈 수 없는 에덴동산(Garden of Eden)이었을까?


 



"그를 보라. 그는 같은 인간들, 당신 같은 인간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190

 


인간이 저지른 원죄로 더렵혀진 곳, 레스터를 덮친 무시무시한 영혼이란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각성의 촉구인가? 소설은 강렬한 충격들과 어둡고 구불구불한 텅 빈 돌 틈새의 동굴을 헤매는 구원을 향한 신화로 해석하고픈 충동으로 변질시킨다. 암흑의 동굴에 포위되어 꼼짝할 수 없는 상태의 유일한 빛인 "시원찮은 손전등 빛줄기가 축축한 벽을 따라 떨어져 내리다 무()와 밤에서 끝나고 멎었다."는 레스터의 생각은 구원의 실패인가?

 

비인간이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어 제도와 규범 등 문명과 충돌하며 발생되는 비열함과 잔혹함의 서사 끝에 어둠의 동굴에 도망해 "아침 틈새의 빛", 계속해서 "동쪽을 살피"고 마침내 자진해서 출두한 인간들의 법정이 심판하지 못하는 것은 이유 없는 죄로 처형되고 마는 카프카의 소설 '요제프 K'의 역설적 판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잔혹한 살인자의 암울한 욕망으로 연결된 서사에서 문자로 서술 될 수 없는 신비, 말 할 수 없음으로서 드러나는 죄와 심판의 문자적 죄 물음이 실패하는 결말은 '죽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낙원의 인간'이었다는 카프카의 의심의 여지없는 죄와 닮아있다.

 

그런데 과연 이 소설이 죄의 구원이나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긴 한가? 이 폭력적 이야기 끝에 만나는 법의 결합은 성공한 것만 같다. 카프카는 실패함으로써 인류 기원의 표현 할 수 없음이라는 실패를 보여줌으로써 성공적 소설을 썼다. 코맥 매카시는 에덴에 돌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인간이 태생적 비열함을 떨어내고 무구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심판이 지닌 내재적 신비성이 지닌 단죄의 불가능성이라는 또 다른 실패의 표현인가? 결코 단순치 않은 인간 기원에 대한 또 하나의 독특한 서사시의 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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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영목님이 번역하신 매카시는 믿고 구입합니다!

이책 첫 문장 부터 강렬하네요
찜!👆 ^^

필리아 2021-10-07 18:45   좋아요 1 | URL
네,,극단적일 만큼 강렬한 작품이지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