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고 슬프다.늙어가는 투사의 ‘문드러진 발톱’이 ‘세월에 쓸려가 버린 날들’이‘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 많은 ‘형’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공고한 ‘무한경쟁의 자본’과 ‘무한차별의 혐오화’가 탄생시킨 ‘제국’이.그러나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무엇이 세상을 지배하는가무엇이 권력을 탄생시키고무력을 조직하며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가무엇이 전쟁을 유도하고 무엇이 학살을 지시하는가그것은,혐오다…그대, 다시 거리에 나가 이제 정의와 평등을 외쳐 보아라 이것들이 보편적 가치라고 알고 있다면 그대는 손가락질을 면하지 못하리라저 무지하고 저급한 무리들과저학력과 유색 피부와 저열한 종족들과같은 거리를 활보하고 같은 권리를 누리고같은 식탁에 마주앉다니 어떻게 저들과아래위도 없이 자연의 질서도 무시하고 살 수 있느냐고 혀를 차고 비웃으며혐오하고 있다그대, 다시 거리에 나가 이제 사랑이라고 외쳐 보아라 그것이 초월적 가치라고 생각했다면 그대는 손가락질을 면할 수 없으리라 언제라도 준비된 폭력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떠한 침략이 신의 정의와 사랑의 이름으로 짓밟지 않은 것이 있느냐 저들이 차별의 금기를 확고히 하고 저 높은 곳에서 시혜를 베풀 때만 사랑이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차별의 혐오를 재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평화를 제압하여야 저들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 P115
지나간 날들이여, 오 슬프고 어두침침하고 창백한 것보다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나는 사랑이 아니라 분노를 택하였네. 처음 그것은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으나 내 사랑은 분노의 불길로 인해 깊은 화상을 입었네.나는 아직도 사랑이 두렵네. - P36
슬프고 놀라운내가 가꾼 텃밭에 잡초만 무성하네내가 심어 싹을 틔운 것은그늘에서 햇빛도 받지 못하였네잡초들만 꽃을 피워 가득하네내가 가꾼 것은 꽃망울도 맺지 못하였네내가 꿈꾸어 온 것은 어디 가고낯선 것만 내 텃밭에 뿌리 내렸네어쩌다 이리 낯선 삶만 무성한가그래도 저것은 모두 내 텃밭에 핀 꽃들저 꽃들 모두 날 찾아 온 꽃들뱉고 나면 언제나 낯선 말처럼삶은 낯설어 슬프고 놀라운 것 - P51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기차는 떠나는데봄볕이 저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 P44
이 싸움이 네 욕망이냐 내 욕망이냐가 될 수 없다네 권력이냐 내 권력이냐가 될 수 없다네 것 내 것 차별이 될 수 없다 그 자체다강도라면 강도 자체를총칼이라면 총칼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것이 얼마나 먼 길이냐얼마나 가까운 내 안의 길이냐그래서 삶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살아서 언제까지나 가슴을 치며 울기를두려워 말자 - P31
시인은 어머니를 잃었다. 1부에 그 상심을 담았다. “살던 집 문 닫히고제주 바다 하얗다청천강 옆 마을로날아가신어머니” -새, 15쪽그리움이 왜 없겠는가마는”아내가 집에 있다아파트 문열기 전걸음이 빨라진다어렸을 때엄마가 있는 집에올 때처럼“ - 엄마, 65쪽그의 시는 아주 짧고내내 ‘덤덤하다’그래서, ‘선명하다’
녹나무연둣빛 바람누렇게지는 이파리하나 다시바람 분다저 너머어제와 다른구름 - P58
다니구치 지로 완숙의 경지를 보여준다.그림도 줄거리도 여유롭고 자연스럽다.고바야시 잇사가 두 번 나오는데, 하이쿠의 묘와 이야기 전개가 아주 잘 맞물린다.엊그제 읽은 줄 알았는데, 일기앱을 찾아보니 딱 8년 만이다. 그사이 작가는 가시고 작품은 여전히 훌륭하구나.
가만히 뭇 생명을 바라본다. 선량한 온기 가득한 눈으로. 그리고 ‘받아 적’는다.
따뜻한 외면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나비 쪽을 외면하는늦은 오후 - P43
이다지도 이 사람은 따수운지.너무 짧은 게 이 시집의 유일한 흠.
금강경 몇 줄팔순 지난 할머니꼬물꼬물진종일 기어간 자리침 묻혀 다듬었나기름 발라 빚어냈나늦가을 햇살 아래푸른 배추밭하나 둘세 이랑 - P40
달 때문에추석날 밤고향집 마당에 앉아오래전의 그 둥근달 보네달빛 동동주 한 잔에발갛게 물든 아내가꿈결인 듯 풀어놓는 한 마디지금 같으면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다 용서할 수 있을 거 같아하마터면 울컥다 털어놓을 뻔했네 - P43
그런 집 어디 없나몇 십리 자갈길 달려가 만나는사무치는 그리움 하나 -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