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밖의 길 - 백무산의 길 잡도리 하나
백무산 지음 / 갈무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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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슬프다.
늙어가는 투사의 ‘문드러진 발톱’이
‘세월에 쓸려가 버린 날들’이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 많은 ‘형’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공고한 ‘무한경쟁의 자본’과 ‘무한차별의 혐오화’가 탄생시킨 ‘제국’이.
그러나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무엇이 세상을 지배하는가
무엇이 권력을 탄생시키고
무력을 조직하며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가
무엇이 전쟁을 유도하고
무엇이 학살을 지시하는가

그것은,

혐오다



그대, 다시 거리에 나가 이제
정의와 평등을 외쳐 보아라
이것들이 보편적 가치라고 알고 있다면
그대는 손가락질을 면하지 못하리라

저 무지하고 저급한 무리들과
저학력과 유색 피부와 저열한 종족들과
같은 거리를 활보하고 같은 권리를 누리고
같은 식탁에 마주앉다니 어떻게 저들과
아래위도 없이 자연의 질서도 무시하고 살 수 있느냐고 혀를 차고 비웃으며
혐오하고 있다

그대, 다시 거리에 나가 이제
사랑이라고 외쳐 보아라
그것이 초월적 가치라고 생각했다면
그대는 손가락질을 면할 수 없으리라
언제라도 준비된 폭력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떠한 침략이 신의 정의와 사랑의 이름으로 짓밟지 않은 것이 있느냐
저들이 차별의 금기를 확고히 하고
저 높은 곳에서 시혜를 베풀 때만 사랑이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차별의 혐오를
재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평화를 제압하여야
저들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 P115

지나간 날들이여, 오 슬프고 어두침침하고 창백한 것보다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나는 사랑이 아니라 분노를 택하였네. 처음 그것은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으나 내 사랑은 분노의 불길로 인해 깊은 화상을 입었네.
나는 아직도 사랑이 두렵네. - P36

슬프고 놀라운


내가 가꾼 텃밭에 잡초만 무성하네
내가 심어 싹을 틔운 것은
그늘에서 햇빛도 받지 못하였네

잡초들만 꽃을 피워 가득하네
내가 가꾼 것은 꽃망울도 맺지 못하였네

내가 꿈꾸어 온 것은 어디 가고
낯선 것만 내 텃밭에 뿌리 내렸네

어쩌다 이리 낯선 삶만 무성한가

그래도 저것은 모두 내 텃밭에 핀 꽃들
저 꽃들 모두 날 찾아 온 꽃들

뱉고 나면 언제나 낯선 말처럼
삶은 낯설어 슬프고 놀라운 것 - P51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기차는 떠나는데
봄볕이 저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
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 P44

이 싸움이 네 욕망이냐 내 욕망이냐가 될 수 없다
네 권력이냐 내 권력이냐가 될 수 없다
네 것 내 것 차별이 될 수 없다 그 자체다
강도라면 강도 자체를
총칼이라면 총칼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
이것이 얼마나 먼 길이냐
얼마나 가까운 내 안의 길이냐
그래서 삶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살아서 언제까지나 가슴을 치며 울기를
두려워 말자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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