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있는 장강의 왼쪽은 바다인데, 눈앞이 광활하게 죽 펼쳐 보였다. 산 남쪽 발목 지점에는 낙빈왕과 문산 문천상, 문천상의 부장 김응의 묘가 있어 사람들에게 발걸음을 멈추고 옛날의 사적을 돌아보게 했다. 선생과 함께 산 아래에서 투숙했다. 다음날 인사를 하고 상해로 돌아왔으니, 10월 5일이었다.”이것이 책의 결말이다.허탈하다.인생인가.저자 이병헌은 44세인 1914년에 첫걸음을 한 뒤 1925년까지 5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홀로 여행. 이 책은 그중 2차까지의 기록을 당시 중국에 망명 중이던 김택영이 1916년에 중국에서 간행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아마도 저본의 결말이 저렇게 여행 중이리라.그는 1940년에 생을 마쳤다.우리는 모두 그때 살았던 이들의 후예이다.많은 모색이 있었다.
“여즉 남아 있는 절벽들창날 모양의 창바우, 깎아 세운 형상의 선바우 앞에서 철없던 맹세의 주먹을 몇 번 내뻗어 보고…목구멍의 욕설을 앞세워서험한 땅거죽을 뱃구레로 밀고 왔다” 70-71오정국의 고향은 경북 영양. 몇 년 전에 거기 답사를 갔을 때, 그 ‘창바우’와 ‘선바우’ 앞이 경관이 좋아 몇몇이 정말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중 한 사람, 혹 벗이 되었을지도 모를 동갑 남자는 그 뒤 세상을 버렸다. ‘욕설’을 앞세우고라도 버텨 보지. 다들 ‘육체를 땅바닥에 내려놓을 때까지 견뎌야 하는 등짐이 있’는 법인데 그는 더이상 멜 수가 없었던 게지. ‘강바닥 자갈밭이 그러하듯이 생은 언제나 목말랐던 것’이다.무미할 정도로 심심했던 기억만 있는 오정국이었는데, 가슴을 치는 구절이 많다. “등대를 선회하는 새들의해안 절벽 벼랑길 아스라이 굽이치지만손목 잡고 데려갈 파도는 없어요부교처럼 흔들리는 불빛들등허리에 아릿하게 감아 두르고이 얼굴 캄캄하게 펄밭에 파묻어도덧없는 세상을 덧칠해 온 느낌, 지울 수 없어요” 74“이제 내 가슴을 들여다보면발을 헛디딘 흙구덩이와타다 만 숯덩이,새의 날갯죽지 같은 게 흩어져 있다” 99굉장히 감각적으로 쓸쓸하다. 아득하고.“목적지 입간판이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오듯이캄캄한 국도에서 불빛을 되쏘듯이/어떤 후회는 일찌감치 당도해 있고어떤 후회는 발걸음이 더디다” 70“어느 몹쓸 꿈자리는 아닐 텐데, 이번 생을 웃고 울면서 웃기고 울리면서 하루해를 보내고 국도로 올라설 때 짐짓 헛디디는 발걸음 몇 번 강기슭 저쪽이 너무 아득해서 이쪽의 물살을 헛짚는 물결처럼” 63<영명축일>, <침묵 피정> 등의 시를 보면 가톨릭에 귀의한 듯한데, 오정국은 평온하지 못하다. 시인이다.“재의 얼굴은 무심하다재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는다/나는 재의 얼굴로나를 지나간다” 123
아주 질기고 오래된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전통이란 것이에계, 겨우?싶은 것이 꽤 많다.일본적이라는 것의 뿌리를 에도시대에서 캐낸다는데 기죽게 두껍지 않아 덥석 읽기 시작했다.모르는 사람과 일들이 많아 더디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잘 읽힌다. 꼭꼭 씹어먹어야 할 듯.
정말 희한하다. 곡부, 공자의 고향에 가서 성인을 추모하고 추숭하는 모습은 퇴계는 꿈꾸지 못했으나 갔으면 그랬을 법하게 고색창연한데,현대 직전 중국의 캉유웨이와 만나기도 하고(만남은 예스럽다)‘앵글로색슨족’을 논평하기도 하니20세기 초라는 시간은 참으로기이하다.아래의 술회는 1914년 홍콩의 일이다.
28일. 백암과 함께 화원으로 가서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꽃과 나무의 이름은 거의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종려나무는 수십 종이나 되었는데, 아름드리나 되는 것도 많았다. 형체가 기이하고 품종도 특이했다. 나무 모양도 제각각이었는데, 옆에 팻말을 세워 원산지를 표시했다. 영국인이 이 항구를 경영한 지 수십 년도 되지 않아 어엿한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으니, 이른바 앵글로색슨민족은 어느 곳에 가든 열 사람이 하나의 나라를 만든다는 말이 어찌 허풍떠는 말이겠는가.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