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상쾌한’23느낌의 문장이다. 늘 그렇듯 ‘난해의 병풍 뒤에 숨지 않고’60 거침없다.코로나의 답답함편찮으신 모친을 바라보는 아픔불행하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씁쓸한 현재. 77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은“더 슬픈 기억은 따로 있다만, 쓰지 못한다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망가뜨릴 것이다” 85“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94아직도 말 못할 상처의 심연이 있구나.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것들은.
105일 단식 끝에 돌아가신 이한빈이 죽기 3일 전 수감 동료에게 남긴 유언. “나는 더 살 수 없으니 나의 뒷일을 동무들이 계승하여 조선 독립을 완성하기를 바라며, 만일 동무가 살아 나가거든 동무들에게 일제가 이 같이 나를 죽인 것을 전하여 달라!” 333기억해야 한다. 독립에 좌우가 어딨나기억해야 한다.수많은 숭고도 배신(6장)도.술술 읽힌다. 뛰어난 문장이다.
“길을 잃은 사람일수록 온갖 길 생각으로 꽉 차는 것인지.” 78길을 잃고 헤맨다. 갈 길이 없는 때. 아득하다.“너는 여전히 직바른 속도를 꿈꾸지만거기 벼랑 위의 원추리꽃에 눈이 팔려한순간 까마득한 추락을 할 뻔도 하는이 길을 누군가의 음덕인 양 여기는 건우리 생의 곡절을 항상 과장만 해온그 앞에 태산준령은 또 도사리고우린 그 길을 넘어야 하는 엄정함으로또 한 생을 여며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81험난한 첩첩산중이 버티고 섰다. 그래도 한 떨기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도. 그래서 위태로워지기도 하지만, 덕택에 덕분에 살아간다.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십일월갱변의 늙은 황소가 서산 봉우리 쪽으로 주둥이를 처들며 굵은 바리톤으로 운다밀감빛 깔린 그 서쪽으로 한 무리의 새떼가 날아 봉우리를 느린 사 박자로 넘는다그리고는 문득 텅 비어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 늦가을 저녁이 있다소소소 이는 소슬바람이 갈대숲에서 기어 나와 마을의 등불 하나하나를 닦아내는 것도 그때다” 116단순한 진리가 있다.“배꽃 길을 걷는 할머님워매! 바람에 꽃 다 져부네, 하니같이 걷던 영감님꽃이 져야 열매 맺제, 하네” 122
<십현담>은 10편의 7언율시이다.중국 불교 선종의 한 계파 조동종 승려 동안상찰이 지었다.선불교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한다. 동안의 동문 청량문익이 주석을 달았고거기에 김시습이 주해를 더해 <십현담 요해>를 남겼고그걸 설악산 오세암에서 한용운이 읽고,느끼고 깨달은 바 있어쓴 글이 바로 이 책, <십현담 주해>이다.<님의 침묵>과 같은 자리, 같은 시기에 쓰여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대승과 선의 말들이 비수처럼 꽂힌다.“더러움에 있다고 열등하지 않고 깨끗함에 있다고 고상한 것은 아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겠는가. 또한 더러움은 깨끗함에서 떠나 있지 않고 깨끗함은 더러움에서 떠나 있지 않다.“ 47”부처님이 간 길은 이미 낡은 자취이니 다시 다른 곳을 찾아야 묘한 경지이다. 부처님이 가지 않은 길이 어디인가?“ 55“배우는 사람은 오직 인연을 쉬고 생각을 끊음을 종지로 삼아 마치 마른 나무와 죽은 재와 같이 된다. 그러면 도에서 멀어진다. 이에 이르면 마치 바위 앞에 갈림길을 만난 것과 같아서 바른길로 들어가기 어려우니 오히려 미혹하게 된다.” 105깨달음의 자리가 심산유곡 탈속에 있지 않고 여기 속세에 있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