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금요일엔 역사책 1
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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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연암 박지원에 대한 의문

“물론 박지원처럼 언문 글자는 평생 알지 못하여 50년 해로한 아내에게도 편지 한 자 써 주지 못했다고 한 인물도 있다. 박지원은 아들을 시켜 고모(즉 박지원의 누이)에게 언문으로 편지를 보내는데, 아들 역시 언문을 쓰지 못할 것이니 딸을 시켜 써서 보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 자기 누이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자기는 언문을 쓸 줄 몰라 아들에게 시키고 아들도 쓸 줄 모를 것이니 딸에게 시키라고 이중의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박지원과 아들 둘 중 하나만 언문을 쓸 줄 알았어도 몇 단계는 줄일 수 있는 일이었다. 언문을 쓰지 않은 것은 정약용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그렇게 많지만, 딸이나 아내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는 전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사례가 도리어 희소했을 것이다. 언문을 익히고 한문을 공부하면 훨씬 쉽고 가족들과도 직접 문안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런 면에서 박지원의 언설은 여러 모로 의심스럽다. 언제고 할 수 있는 언문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여성 가족과 직접 편지를 교류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도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임금도 자기 가족과 스스럼 없이 언문 편지를 주고받는 마당에 왜 이들은 스스로의 언문 쓰기를 차단해 버린 것일까? 이 결벽증적 태도가 나타내는 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156-7

이 책에 담긴 질문

“문자가 사라지며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없는가?
정말로 다른 문자는 다른 역사상을 보여 주는가?
보편 문어는 늘 보편 문어였는가?
보편 문어와 구어의 세계는 어떻게 교섭하고 변화하는가?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당대에 어떠한 비중을 가진 것이었는가?
새로운 문자가 불러온 새로운 현상은 무엇인가?
문자의 소유가 불러온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문자 생활의 젠더화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문자가 변경에 놓였을 때, 변경이라서 얻는 것은 없는가?” 174

200쪽도 안 되는 책이지만,
매우 묵직한 의미가 담겼다.
심지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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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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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공감이고 감동이지. 서로 울리니까.

아버지를 잃고도 아내가 떠나가도 울지 못하던 할아버지가 눈물 수집하는 아저씨에게 눈물을 받아 크고 길게 울고 하는 말
“정말 이상하구나. 이런 기분은 평생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기쁜 일들과 감사할 일들이 있었는지, 고통스러운 시간과 평화로운 시간들이 함께 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깊이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영혼을 물로 씻어낸 기분이구나.“ 49

아저씨와 헤어지면서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눈물을 참는 마음이 어떤 것인 지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구나. 숨겨진 눈물은 그 가슴 가운데에서 점점 진해지고, 단단해지는구나.“ 66

박용래 시인이 그렇게 울었다던데, 어떤 ‘빛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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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서사의 영토 1 - 실사와 허구 사이, 한문단편소설
임형택 지음 / 태학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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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단편. 이야기들. 조선초 성현, <용재총화>부터 달린다. 그 중 <신수 스님>에 나온 얘기. 고기도 먹고 여자하고도 살며 거침없고 일흔이 되어도 ‘기운이 날아갈 듯 보’이는 그에게

“무슨 까닭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고기를 먹소?”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망령스럽게도 사욕을 일으켜 이해를 따져서 서로 빼앗기를 일삼지요. 혹은 마음속에 포악한 생각을 품고 있고, 혹은 번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 명색 출가를 했다는 사람들 또한 이와 같지요. 고기의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 줄줄 나오는 침을 삼키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간음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데, 나는 이와 다릅니다. 고기를 보면 즉시 먹고 미색을 대하면 즉시 취하여 물이 콸콸 흘러가는 것 같고 흙이 저절로 무너지는 것 같아, 형세를 따라 딴마음이 없으매 조그만 사심도 모두 사라집니다. 내가 내세에 여래가 되지 못한다면 필시 나한은 되리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에 인색하여 모으기에 힘쓰지만 제 몸이 죽으면 즉시 남에게 넘어갈 터라, 생전에 좋은 음식 먹고 마음껏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지요. 무릇 자식 된 도리는 자기 아비를 섬김에 모름지기 큰 떡을 만들어 좋은 꿀 한 되에 담가 놓고서, 술을 거르고 고기를 썰어 아침저녁으로 봉양해야 할 것이오. 죽은 다음에 건어물, 마른 과일, 술 몇 잔, 식은 적 따위를 차려 놓고 관 앞에서 곡하며 올리면 과연 달게 자실 것이오? 당신은 비록 이와 같이 어버이를 섬기지 못했더라도 당신 자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당신을 받들도록 한다면 좋을 것 아니오.” 31

조르바가 조선초에도 있었네.
카르페 디엠,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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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금요일엔 역사책 1
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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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다.
04장에 따르면,
조선조 성리학하에서 지배층 남자 사인들은 한문, 지배층 여자들이나 피지배층은 한글을 전용했다는 것이 통념인데,
“다 같이 한글을 쓰더라도 그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달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더 깊고 길게 이어질 주제가 여럿인데
슬로슬로 잽잽으로 가볍게 넘어간다.
‘금요일엔 역사책’시리즈가 그렇게 하기로 한 제약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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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 문예중앙시선 23
장승리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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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기를 부린다
묘기를 부리지 않고
남겨지는 법을 알지 못한다” 57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로 ‘묘기’를 부린다. 말 그대로 ‘묘기’를 부리지 않고 시를 쓰는 방법은 모르는 듯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 묘기를 부리는 자만 묘기로 생각할 뿐, 바라보는 자는 저게 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뭘 쓴 줄 알고 썼을까
출판사는 뭔 소린 줄 알고 책을 냈을까

애매도 모호도 없다. 애초에 의미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형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방향 없는 진지함’으로 ‘악몽을 글로 옮겨 적’을 뿐이다.

한글로 지은 추상시라고나 할까. 작가와 평론가와 업자들끼리 안다 하고 좋아하는 추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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