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은, 연암 박지원에 대한 의문“물론 박지원처럼 언문 글자는 평생 알지 못하여 50년 해로한 아내에게도 편지 한 자 써 주지 못했다고 한 인물도 있다. 박지원은 아들을 시켜 고모(즉 박지원의 누이)에게 언문으로 편지를 보내는데, 아들 역시 언문을 쓰지 못할 것이니 딸을 시켜 써서 보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 자기 누이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자기는 언문을 쓸 줄 몰라 아들에게 시키고 아들도 쓸 줄 모를 것이니 딸에게 시키라고 이중의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박지원과 아들 둘 중 하나만 언문을 쓸 줄 알았어도 몇 단계는 줄일 수 있는 일이었다. 언문을 쓰지 않은 것은 정약용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그렇게 많지만, 딸이나 아내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는 전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사례가 도리어 희소했을 것이다. 언문을 익히고 한문을 공부하면 훨씬 쉽고 가족들과도 직접 문안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런 면에서 박지원의 언설은 여러 모로 의심스럽다. 언제고 할 수 있는 언문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여성 가족과 직접 편지를 교류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도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임금도 자기 가족과 스스럼 없이 언문 편지를 주고받는 마당에 왜 이들은 스스로의 언문 쓰기를 차단해 버린 것일까? 이 결벽증적 태도가 나타내는 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156-7이 책에 담긴 질문“문자가 사라지며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없는가?정말로 다른 문자는 다른 역사상을 보여 주는가?보편 문어는 늘 보편 문어였는가?보편 문어와 구어의 세계는 어떻게 교섭하고 변화하는가?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당대에 어떠한 비중을 가진 것이었는가?새로운 문자가 불러온 새로운 현상은 무엇인가?문자의 소유가 불러온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문자 생활의 젠더화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문자가 변경에 놓였을 때, 변경이라서 얻는 것은 없는가?” 174200쪽도 안 되는 책이지만,매우 묵직한 의미가 담겼다.심지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