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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와 쇠고기 - 성균관과 반촌의 조선사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2월
평점 :
저 지경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살아왔구나.
”국가가 반인을 계속 성균관과 반촌에 묶어놓기 위해 생계수단으로 제공한 것은 현방의 독점경영권이었다. 곧 서울에서 소를 도축하여 쇠고기를 팔 수 있는 전매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현방 경영권은 반인의 성균관에 대한 사역에 대한 반대급부일 뿐이었지만 성균관은 이내 현방 수익의 일부를 요구하였다. 조선 후기의 성균관은 반인의 노동력을 수탈하고 반인이 현방 경영에서 얻는 수익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균관은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당연히 국가는 성균관의 유지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공급해야만 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국가는 재원을 공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요컨대 사족국가 최고의 학교이자 국가이데올로기의 교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제의소는 자신이 소유한 노비를 혹독하게 착취함으로써 겨우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142
“반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들은 성균관에서 일차 노동력을 사역의 형태로 수탈당하고, 현방의 수익을 성균관과 삼법사에 바쳐야 했으니, 이중삼중으로 수탈을 당한 것이었다.” 143
“하지만 앞으로 수없이 보게 될 것이지만, 조정에서의 결정이 실행에 옮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2
오직 이예의 삭료에 대한 항구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것만이 삼법사의 금란이 야기하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을 위시해 어떤 관료도 이예의 삭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다. 관료들은 삼법사의 직임을 맡았을 때 극히 드물게, 예외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었고, 다른 관서의 직임으로 옮길 경우, 그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다. 문제의 존재는 공지의 사실이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이 무책임은 나름 의도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달리 말해 문제를 방치함으로써 의도를 관철시켰다고 볼 수 있다. 금란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거의 모든 금란 명목이 신분제의 상징들을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삼법사의 이예는 피지 배자들에게 국가권력의 존재와 작동을 체감시키는 최말단의 도구였다. 아마도 지배계급은 이예들이 과도하게 날뛰는 것이 피지배층을 통제하는 데 적절하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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