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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촛불 ㅣ 애지시선 24
복효근 지음 / 애지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복효근은 무척 따뜻하다. 뭇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특히 그러하다.
“오체투지, 일보일배다
/걸음걸음이 절명의 순간일러니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은 없다
/제가 걸어온 만큼만 제 일생이어서
몸으로 읽는 경전
/한 자도 건너뛸 수 없다.” 20, 자벌레
자벌레가 어디 가는 모습을 아주 섬세히 묘사하면서 거기서 배운다. 경전으로 모시고. 목숨을 건 한 걸음걸음. 우리의 삶도 다를 바 없고.
그리고, 애틋하게 바라본다.
“땟물 지문이 드문드문 찍혔다
참고 참았다가
누이가 건네주던
차게 식은 삼립호빵” 85, 보름달
보름달을 보고 누이가 준 호빵이 떠오른다. 땟물 지문에서 느껴지는 가난과 망설임과 사랑. 지금은 그 호빵 회사가 비정한 한국식 자본주의의 선두 주자가 돼버려 그 애틋함이 반감되어 읽힌다. 한때 이쁜 이름이었을 것이 개명 대상이 된 ‘조주빈’처럼 언어는 제한된 표상에 불과한지라 힘센 의미에 휘둘리기도 한다.
유난히 감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병풍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다섯 번 등장한다.
“어디까지가 고욤나무고
어디까지가 수수감나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접목
대신 살아주는 생이어서
비로소 온전히 일생이 되는”16-17, 접목椄木
‘늘그막의 두 내외’의 해로를 다른 두 나무의 접목에 빗대면서 한 나무로.
“새벽비가 늙은 감나무 잎사귀 하나하나를
다 씻어놓으니
감나무는 잎사귀, 잎사귀 제 귀마다에
햇살에 말갛게 행군 첫 꾀꼬리소리를
가득—
한가득 쟁여 넣는지
잎사귀 그 둥근 귓바퀴에
무슨 보석 귀걸이인 듯 이슬방울이 찰랑찰랑하다” 54, 아침
맑고 싱그러운 ‘햇빛 범벅 푸른 우주의 음률’을 들려주는 주체로
“감을 감으로 불리우게 하는,
그 무엇을 그 무엇으로 불리우게 하는 것은
다 사라진 뒤에도
사라진 그것을 추억하는
그 얇은 껍질일지도 모른다” 70, 껍질을 위하여
껍질의 의미를 파고들 때 그 알맹이로
“나팔 덩굴이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그 길
…잘 못 디딘 덩굴손이 휘청 허공에서 한번 흔들리는 순간
한눈팔고 있던 감나무 우듬지도
움칫 나팔덩굴을 받아낸다” 72-73, 막막한 날엔
길도 소용 없고, 알고 모르고도 소용 없이 꽃 피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그대를 찾고 사랑하겠다는 연시에서 그것을 지지하며
“겨울 감나무 가지가지에
참새가 떼로 몰려와
한 마리 한 마리가 잎이 되었네요
…나무야 참새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것 같아도
안 자고 다 듣고 있다는 듯
가끔씩 잔가지를 끄덕여주기도 합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모두 다 무심한 한 통속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제 길 갑니다” 76, 무심풍경
우주 만물의 한 존재로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 무심한 풍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