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핀 벚꽃 -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선집, 문학의 창 10
고바야시 잇사 지음, 최충희 옮김, 한다운 그림 / 태학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왼쪽에 시, 오른쪽에 편저자의 설명.
배경 설명을 들어야 시의 상황이 이해되는 게 너무 많다.
시로 충분한 시가 좋다.

밝은 달

산골 마을은
된장국 속에까지
밝은 달 떴네 - P136

추위

옆방서 새는
불빛으로 밥 먹는
추위로구나 - P190

눈 1

후미진 벽에
착 달라붙어 있는
빈티 나는 눈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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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혼을 찾아서
오오무라 마스오 지음, 심원섭.정선태 옮김 / 소명출판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오무라 마스오 같은 분이 있어
눈 못 감는 삶이 되살아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래 인간이 온통 추악한 것은 아니다.

29 남북화해의 선편, 주명구의 인생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올인>의 무대가 된 제주도는 피투성이의 역사도 함께 지닌 섬이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작가 오성찬(吳成贊) 씨가 작년 『한라구절초(漢拏九節草)』라는 책을 펴냈다. 책의 제목은 제주도 한라산에 피는 국화의 일종에서 취한 것이다. 올해(2006년) 66세가 되는 오성찬 씨의, 4·3사건을 다룬 소설집이다.
4·3사건이란 1948년 한국과 북한이 건국되기 직전,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거부하고 남북통일 선거를 희구한 제주도 민중을 정부군과 미군이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한 사건이다. 1946년 4월 3일부터 약 2년간, 정부군 및 미군과 한라산에서 농성하고 있던 민중 사이에 전투가 계속되었고, 섬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으며 마을들이 모조리 불에 타버렸다.
한국 정부는 2003년 10월 31일 공식 사과했지만, 희생자는 오랜 기간 ‘빨갱이‘ 라는 누명을 뒤집어썼고 유해의 매장조차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라구절초』의 권두에 수록된 「어느 공산주의자에 관한 보고서」는 실존했던 조몽구가 모델인데 소설에서는 주명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산에서 농성을 벌였던 민중 중에서 무력투쟁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무 모한 봉기에 반대한 비둘기파의 지도자였다.
그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제명되고, 은신 중 체포되어 형무소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낸다. 출소 후에는 고향 마을로 돌아 오지만, 이 마을만 해도 40명의 희생자를 낸 곳이어서 평온한 생활은 기대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에 사회주의에 공명하면서도 과격한 반정부투쟁에는 반대한 그. 공산주의자임을 자인하면서도 현실의 북한 사회에는 환멸을 느끼는 주명구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온당치 못한 대접을 받았으니, 어디를 가도 자신을 환영해 줄 곳은 없다고 하며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67세를 일기로 고향에서 병사, 공동묘지에 묻혔다.
근년 한국은 남부 간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의 융화가 요구된다. 오성찬 씨가 그 린 주명구의 인생은 그 선편을 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 P72

내가 본격적으로 윤동주와 관계를 맺은 것은 1985년 이후이다. 진작부터 그가 태어나 자란 중국 길림성 용정시(당시는 정촌) 일대에 가 자료를 수집할 생각이었는데 그 해 간신히 기회를 얻었다. 문자자료는 하나도 구할 수 없었지만 연변대학과 용정중학에 계신 여러분의 도움을 얻어 다행스럽게도 윤동주의 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가까운 친척은 한국으로 가고 40년간 방치되어 있던 윤동주의 모는 고국 한반도를 향하여 산의 정상 가까운 곳의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촌과 칠촌들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지만, 한국으로 간 기독교 신자인 윤씨 집안의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 사회적 규탄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당시 국교가 없어서 중국에 있는 사람들은 윤동주가 한국에서 민족 시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친척들도 동주가 시를 썼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조선의 전통 형식에 따라 윤동주의 제사를 지냈다. 연변민속박물관의 유기 제기를 빌려서 제물을 진설하고 중국과 조선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의 물고기를 묘 앞에 올렸다. - P88

김사량은 조선 본국의 문학자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재일조선인 문학자의 길을 연 시조(始祖)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민족적 저항의식을 간직한 채 유려한 서정성으로 시정 사람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이번 여름 나는 김사량이 1941년 4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하숙하고 있던 가마쿠라시 오오기가야쓰 407번지 고메신테이여관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신축된 탓에 당시 건물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입구의 돌계단, 정원의 너구리 장식품과 수령(樹齡) 100년쯤 된 백목련, 온천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할머니뻘 되는 분이 고메신테이의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반은 하숙생, 반은 식객이었던 김사량을 돌봐주었다고 한다. 원래는 온천여관이었지만 식량배급제도하에서는 여관을 꾸려나가기가 힘이 들어 빈방을 이용해 하숙을 놓았던 것이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고메신테이의 손자는 김사량이 자신과 잘 놀아주었다며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다음날 사상범예방구금령에 의해 김사량이 헌병대로 끌려갔을 때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조반만이라도 해먹이고 싶다고 부탁하자, 헌병도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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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멍은 해녀 창비청소년시선 28
허유미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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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뭍에 비해 당연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국가폭력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는 한국적이다.
청소년 시선이라고 해서 4.3을 두루뭉술 지나가려니 했는데, 곳곳에서 읊는다.
관광지 이전에 사람 사는 곳이다. 그 모습도 또한 진솔하다.

백비* 앞에서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백비에

이름 없이
갓난이로 불리던
아기의 식은 볼

그 아기를 안고 죽은
어미의 탱탱 불은 젖

북촌 마을로
고개 돌리지 못한
아비의 뒤집힌 눈

눈보라 헤치며
서우봉으로 달리다 넘어진
할머니의 굽은 등

할아버지 제사사오가
무남촌 제사상을
밝히던 촛불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해의 입김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고 싶어

짝꿍이 위령탑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팔을 잡아당기는데도
발을 뗄 수 없었다

* 제주 4.3평화기념관에 있는 비석. 제주 4.3 사건이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올바른 이름을 얻지 못했기에 비문을 새기지 못한 채 누워 있다. - P100

올레길은 돌아서

길은 주인이 없다지만
동네에선 널어놓은 깨가 먼저고
귤 실은 트럭이 먼저고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먼저고
아기 업은 엄마가 먼저라서
친구들과 우르르
올레길에 몰려다니다가도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길마다 코스 이름 번호 붙더니
전세 버스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는
트럭도 막아서고
지팡이도 막아서고
우는 아기 막아선 줄도 모르고
널어놓은 깨를 툭툭 치며
즐거워한다
이젠 심부름 갈 때
올레길은 돌아서 간다 - P75

재활용

코 풀린 스타킹은
생선 엮을 때

낡은 가방은
보말 캐서 담고

클레이는
물에 들 때 귀마개로

페트병 한 아름 모아
동생 튜브 만들어도

낯선 이방인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쓰레기들

종일 단내 나던 바다는 어둡고
꿈에서만 환하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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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옆 얼굴 문학과지성 시인선 35
이하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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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끝나기 전에 행갈이를 하는 문장이 잦다.
의도적이겠지.
덜컹인다.

그는 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도
민주주의도 자유도 혁명도 그의 집 대문이 아니라
텔레비젼 안테나를 통해 그의 방에 들어온다.
그는 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다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텔레비젼을 꺼 버릴 수도 있다. - P29

제기랄, 지랄 같은 그리움의
봄. - P27

붉은 녹물을 흘리며, 깡통에는 몇 개의 이즈러진
글자와 숫자가 지워지고 있다. 사랑의
표시일까, 그것을 이젠 해독할 수 없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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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 불러서 미안해 시인의일요일시집 19
이은림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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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이 무민과 연양갱과 동갑인 1945년생이며, 향년 70세이고,
본인은 아추증후군이 있고.
같은 처지의 시인은 처음.
담담한 서술이라 잘 읽힌다.

아빠,
오늘은 좀 더 최선을 다해 죽어 볼게요
눈뜨자마자 작별인사를 시작하는 봄꽃들처럼요 - P107

피사체


새장 안에서 새가 되어 가는 사람
꽃병 속에서 꽃이 되어 가는 사람
어항 속에서 물고기가 되어 가는 사람

무엇이든 되어 보자
어떻게든 되어보자

지저귀는 꽃
헤엄치는새
활짝 핀 물고기

나는 내가 아닌 채로
나를 벗고 나를 지나쳐서
최대한 내가 아닌 듯

새장 안에서 헤엄치고
꽃병 속에서 지저귀고
어항 속에서 만개한다

어쩌면
가장 나처럼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들고
그렇게
그렇게 - P46

제발, 지나가 버릴 어떤 사람들에게
이름 따윈 없었으면 좋겠다
잊은 줄 알았던 이름 따위에
고개 돌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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