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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멍은 해녀 ㅣ 창비청소년시선 28
허유미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4월
평점 :
제주도는 뭍에 비해 당연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국가폭력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는 한국적이다.
청소년 시선이라고 해서 4.3을 두루뭉술 지나가려니 했는데, 곳곳에서 읊는다.
관광지 이전에 사람 사는 곳이다. 그 모습도 또한 진솔하다.
백비* 앞에서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백비에
이름 없이 갓난이로 불리던 아기의 식은 볼
그 아기를 안고 죽은 어미의 탱탱 불은 젖
북촌 마을로 고개 돌리지 못한 아비의 뒤집힌 눈
눈보라 헤치며 서우봉으로 달리다 넘어진 할머니의 굽은 등
할아버지 제사사오가 무남촌 제사상을 밝히던 촛불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해의 입김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고 싶어
짝꿍이 위령탑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팔을 잡아당기는데도 발을 뗄 수 없었다
* 제주 4.3평화기념관에 있는 비석. 제주 4.3 사건이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올바른 이름을 얻지 못했기에 비문을 새기지 못한 채 누워 있다. - P100
올레길은 돌아서
길은 주인이 없다지만 동네에선 널어놓은 깨가 먼저고 귤 실은 트럭이 먼저고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먼저고 아기 업은 엄마가 먼저라서 친구들과 우르르 올레길에 몰려다니다가도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길마다 코스 이름 번호 붙더니 전세 버스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는 트럭도 막아서고 지팡이도 막아서고 우는 아기 막아선 줄도 모르고 널어놓은 깨를 툭툭 치며 즐거워한다 이젠 심부름 갈 때 올레길은 돌아서 간다 - P75
재활용
코 풀린 스타킹은 생선 엮을 때
낡은 가방은 보말 캐서 담고
클레이는 물에 들 때 귀마개로
페트병 한 아름 모아 동생 튜브 만들어도
낯선 이방인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쓰레기들
종일 단내 나던 바다는 어둡고 꿈에서만 환하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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