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듯 또렷하다“사랑이여, 우린 서로 구겨진 걸 펴주며더 구겨진 아우성을 가진다. ” 99슬쩍 보면 모순이다. 그런데,모순이 전혀 아니다.사랑의 또다른 모습이다.익숙하고도 낯선“서로 비의 우레로 눈의 샛바람으로마르고 젖는다. 그런 이상기후가 왔다.” 97
맑고 또렷한 시들이 있다.
직지사 탑 나뭇가지 끝에서 풍경으로 댕강거리다 달이 사윈 채 져버리자 나의 비애는 사뭇 소곳해지다. 바람이 전각도 탑도 부도도 일주문도 천왕문도 들추어선 내다 말리다. 나도 속 다 내놓은 채 찬물같이 수런대다. 가을 치장으로 나무들이 밤새 옷 갈아입느라 온 산이 항라 스치는 소린데, 새벽녘 개울이 경經 조잘대며 절 감돌아 뭇 소리 씻어 내리고 나서야 늙은 나의 뜰에도 아린 단풍 물이 들다. - P90
구절초 제 누울 구덩이 파는 일은 총구의 외진 시선 앞. 함께 판 너도 그중 하나. 총살로함께, 묻혀버렸지. 그게 마지막 지점이 될 수 없기에,맨땅의, 그밀봉된 자리 뚫고 나와대지 모신의 둥지에서, 새로이 호명되는탁란들 깨어난다고 피어, 흔드는,흰 피켓들. - P59
분꽃서로 앞섶 여며주는 일로 엮이지만여며주어서 꼭, 꼭, 더 뜯어지는결국 원수지는 일이 사랑이어도빈 뜰에 꽃밭 가꾸어서 꽃 피는 걸로 이웃 보는 살림이 늘 있기 마련이어서사람들의 뜨락에 분꽃들 예쁘게 핀 까닭은 나는 안다. - P39
교토에서도 부르주아지처럼 성안 사람이 목에 힘을 준다. 라쿠츄가 성안 사람이라고 한다.요리코의 인간관계에 따라 자연스레 이야기가 흐르고 교토도 느낄 수 있다.전남편과 썸남이 나왔으니 로맨스도 무르익겠다.
한 삶을유명작가를 아버지로 둔 작가의 삶을여러 번의 죽음으로 빚는, 아주 환상적인 구성으로 아주 다채롭고 신비롭게 보여준다.다만, 결말이부자유친이다 된 밥에 코 푼 격까지는 아니더라도생뚱맞았다.